이번달도 어김없이 신용 카드 결제내역을 받았다. 현금보다는 소지가 용이한 신용카드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요즘이라 결제 내역이 몇장에 걸쳐 빼곡하게 적혀있다. 특별히 이번 달은 해외 여행도 다녀와서 기본적인 마트쇼핑, 카페, 식사, 교통비에 호텔, 비행기표까지 추가 되었다. 이렇게 수 많은 소비를 하며 과연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구매 내역 하나 하나가 모두 행복으로 연결되었던가? 어떤 소비가 나에게 가장 큰, 지속되는 행복을 가져다 주었나.
인간은 소비자다. 소비가 없는 인간의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생존에 기본이 되는 의식주 해결을 위해 소비를 해야 하며 (필수 소비), 최소한의 소비가 이뤄진 이후에도 조금 더 나은 의식주, 취미와 문화생활, 여행을 위한 소비를 해야한다 (여유 소비). 또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를 하게도 된다 (과시 소비). 소비 내용과 빈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정한 소비를 해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소비가 나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이 주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비가 있을까? 소비 활동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주로 마케팅 분야에서 이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소비 심리 분석은 필수다. 미국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 성공의 비밀 전략은 경쟁 기업이 아닌 소비자에게 강박적일 만큼 집중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풍요로워진 만큼 행복이 증가하지 못했다. 행복과 관련한 연구 결과 중 놀라운 발견이 바로 물질적 상품의 증가가 이에 상응할 만큼의 행복 증가를 불러오지는 못했다는 점이다(Diener & Biswas-Diener, 2002; Easterlin, 1995). 물질주의적 열망이 행복 혹은 심리적 건강과 부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 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는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다”. “물건을 사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다” 이 두 문장에 많이 동의하는 사람일 수록 삶에는 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Richins & Dawson, 1992). 그렇다면 소비는 행복을 불러오지 못하는 걸까?
💸경험적 구매 vs 물질적 구매
연구자들은 소비 의도에 따라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 의도에 따라 구매를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경험적 구매와 물질적 구매가 바로 그것이다.
“경험적 구매”는 삶의 경험을 얻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이뤄지는 구매를 뜻하며, “물질적 구매”는 물질의 소유권을 획득하기 위한 의도로 이뤄지는 구매를 말한다. 간단하게 경험적 구매는 경험하기 위한 소비, 물질적 구매는 소유하기 위한 소비라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사건이더라도 사람의 의도에 따라 경험적 구매가 될 수도 있고 물질적 구매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이킹을 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구매했다면 경험적 구매가 될 것이고, 자전거 수집을 위해 구매했다면 이것은 물질적 구매가 될 것이다(Van Boven, 2005).
연구자들은 이 두 종류의 구매 중 행복을 높였던 것은 바로 경험적 구매라고 말한다. 최근 한 연구 결과 가지고 있는 자원을 “인생 경험”에 할당하는 것이 “물질적 소유”에 할당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Van Boven, 2005). 즉, 삶의 경험을 채우려고 무언가를 구매할 때 물질적인 소유를 목적으로 구매하는 상황보다 더 행복했던 것이다. 뿐 만 아니라 경험적 구매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물건 구매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경험적 구매가 물질적 구매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경험적 구매가 행복을 가져다준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세가지를 언급하였다(Gilovich et al., 2015; Van Boven, 2005).
첫째, 경험적 구매는 물질적 구매보다 긍정적인 재해석에 더 열려 있다. 시간이 지나면 경험은 기억에서 더욱 개선되고 향상된다. 등산을 예로 들어보자. 등산을 하다 예고없이 소나기를 만났다면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은 즐거움이 아니였을 것이다. 예고없는 비가 달갑지 않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고 나면 순간의 즐거움을 앗아간 부정적 사건과 감정들은 잊혀지고, 이 경험이 실제 경험 보다 더 나은 경험으로, 비를 뚫고 산을 내려왔던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개선되는 이유는 경험이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긍정적이고 추상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경험적 구매는 물질적 구매보다 비교에 있어 훨씬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즐거운 사건 일지라도 사회적 비교를 하면 이것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가치와 생각이 손상될 수 있다. 처음으로 집을 사고, 차를 구매한 것은 충분히 즐거운, 인생 최대의 이벤트이다. 하지만 내 집과 차가 친구의 더 넓은 집, 고급 자동차와 비교되는 순간 그것에 대한 가치와 즐거움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은 물질만큼 비교에 취약하지 않다. 경험은 물질보다는 훨씬 개별적이고 고유성(uniqueness)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특별함이 다른 경험과의 비교 과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경험적 구매는 물질적 구매보다 사회적 관계를 더 촉진한다. 경험은 물건 소유보다는 본질적으로 더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하는 것은 사회적 활동이지만, 신발을 구매하는 것은 개별적인 활동에 가깝다. 또한 사람들은 물질주의적인 사람에게 부정적 선입견을, 경험적인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선입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한 실험 연구에서 참여자로 하여금 경험에 돈을 투자한다는 학생과 물건을 구매한다는 학생의 인상에 대해 답하도록 하였다(Van Boven & Gilovich, 2004). 연구 결과 참여자들은 물질주의적인 참여자보다 경험주의적인 학생에게 더 좋은 인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는 참여자에게 최근 만족했던 물질적 또는 경험적 구매에 대해 모르는 학생들과 이야기하도록 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학생들은 경험적 구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갖고, 친구가 되고 싶어 했으며, 대화하는 것을 더 즐거워 했다 (Van Boven & Gilovich, 2004). 경험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고, 이는 행복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슬기로운 소비 생활을 위하여
물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마케팅 전략은 물질적 구매에 경험적 구매를 가미하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때 TOMS(탐스) 라는 신발이 큰 인기를 끌었다. TOMS(탐스)는 2006년 여름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라는 미국의 한 청년이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 많은 아이들이 맨발로 수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부터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다 아르헨티나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의 편안한 착화감에서 영감을 얻어 플랫한 고무바닥과 가죽안창, 심플한 캔버스 어퍼로 만들어진 신발을 소개하여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한 켤레를 맨발의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탐스를 선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https://www.musinsa.com/brands/toms). 다른 신발과 비교할 때 기능이나 디자인적인 면에서 크게 대단하지 않지만, 신발 구매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경험을 갖을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달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해보자. 나의 소비 생활은 경험적 구매와 물질적 구매 중 어디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가. 경험적 구매가 너무 적다면, 다가오는 5월 가정의 달에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경험을 위한 구매를 추가해보자.
출처
Diener, E., & Biswas-Diener, R. (2002). Will money increase subjective well-being? Social Indicators Research, 57, 1119 –1169
Gilovich, T., Kumar, A., & Jampol, L. (2015). A wonderful life: Experiential consumption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25(1), 152-165.
Easterlin, R. (1995). Will raising the incomes of all increase the happiness of all?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27, 35– 47.
Richins, M. L., & Dawson, S. (1992). A consumer values orientation for materialism and its measurement: Scale development and valida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19, 303–316
Van Boven, L., & Gilovich, T. (2004). The social costs of materialism. Unpublished manuscript,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Van Boven, L. (2005). Experientialism, materialism,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9(2), 13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