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긍정 정보처리

난 소중하니까
: 자기긍정과 효과적 정보처리

 

 

 

 

  긍정적인 자기개념을 자기고,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 Reed와 Aspinwall(1998)은 자기긍정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여부와 위험한 정보의 관련성에 따라 정보에 대한 기억과 평가에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평균연령 20.6세의 여성 66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여성이 하루에 커피를 2잔 이상 마시는 사람인지, 1잔 이하로 마시는 사람인지를 물은 후, 무작위로 선정한 절반에게는 자기 스스로를 훌륭하고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고 긍정하도록 하였고, 다른 절반에게는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았다. 자기긍정 조작 후에는 ‘카페인과 유방암의 관계’에 대한 기사를 제공하였고, 이 외에도 일광욕과 피부암 사이의 관계 등의 직접적을 관련은 없지만 위험에 관련된 기사와 위험과 전혀 관련 없는 몇 가지 기사를 추가적으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각각의 기사 내용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7점 척도로 평가하게 하였다(1: 전혀 그렇지 않다, 7: 매우 그렇다).


  이 과제를 수행한지 일주일 후에 연구자들은 사전 예고 없이 참가자들에게 연락을 하여 읽은 기사 중 기억나는 내용을 회상하게 하면서, 첫 번째로 회상한 기사가 무엇인지와 전반적으로 자신과 관련된 위험에 대한 기사내용을 회상했는지 아닌지를 측정하였다.

 

 

 

 

 

일일 커피 섭취량 많은 사람

(고관여, 하루 2잔 이상)

일일 커피 섭취량 적은 사람

(저관여, 하루 1잔 이하)

자기긍정

통제

자기긍정

통제

카페인유방암 연관성 기사에 대한 신뢰

4.47

3.98

4.47

4.98

카페인유방암 연관성 이외의

위험관련 기사 기사에 대한 신뢰도

4.56

4.38

4.54

5.31

위험 비관련 내용에 대한 신뢰도

3.75

4.63

4.00

4.46

일주일 후 처음 회상한 기사가 카페인과 유방암의 연관성 기사인 비율

88%

65%

60%

75%

1명 당 위험관련 내용을 회상한 수

2.09

2.24

1.83

1.59

1명 당 위험 비관련 내용을 회상한 수

1.06

2.00

1.43

1.19

표 1. Reed와 Aspinwall(1998)의 연구결과

 

 

  표-1은 이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먼저 커피를 하루에 2잔 이상 마시는 경우, 자기 긍정을 시행한 집단이 통제집단보다 기사를 더 신뢰하였다. 하지만 하루 1잔 이하로 커피를 마시는 집단은 자기 긍정을 시행한 집단보다 통제집단이 더 기사를 신뢰하였다. 이는 자기긍정이 자신과 관련이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크게 신뢰하게 하면서 위험을 회피하게 만드는 반면, 관련 없는 위험에 대해서는 무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카페인과 유방암의 연관성 이외의 기사에 대한 신뢰에 대한 데이터 분석에서도 나타난다. 고관여 집단의 경우 자기 긍정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사이에 기사에 대한 신뢰도에 차이가 없었지만, 저관여 집단의 경우에는 자기긍정을 했을 때보다 통제집단에서 기사를 강하게 신뢰하였는데, 이는 자기긍정이 자신과 관련 없는 위험에 대해서는 무시하게 하는 반면, 자기긍정을 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위험에 다 민감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험 비관련 내용에 대한 신뢰도에서도 유사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고관여 집단과 저관여 집단 모두 자기 긍정을 했을 때가 통제 집단보다 위험 비관련 기사 내용을 낮게 신뢰하였는데, 이는 자기긍정이 위험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둔감하게 하고, 위험한 내용에 민감하게 함을 다른 측면에서 보여준 것이다.


  일주일 후의 기억회상 과제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피를 평소 많이 마시는 사람들 중 자기긍정을 한 사람들의 88%가 카페인과 유방암의 연관성과 관련된 기사를 가장 먼저 회상한 반면, 통제 조건의 사람들은 65%만이 이것을 먼저 회상하였고, 커피를 적게 마시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긍정을 한 사람들이 60%, 하지 않은 사람들이 75% 이 기사를 회상하면서 자기긍정이 자신과 관련 있는 내용에 기억인출을 증진시키고, 관련 없는 내용에 대한 기억인출을 저하시킴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위험 관련 내용과 비관련 내용을 회상한 수를 비교한 결과를 볼 때도 자기긍정을 한 고관여 집단은 위험 관련되니 내용을 2.09개 비관련 내용을 1.06개 회상하면서 위험관련 내용에 민감하고 위험과 관련 없는 내용은 둔감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반면, 자기긍정이 없었던 고관여 집단은 관련 있는 정보를 2.24개 관련 없는 정보도 2.00개 회상하면서 정보를 과하게 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


  자기긍정을 한 저관여 집단은 위험 관련된 내용을 1.83개, 위험 비관련 내용을 1.43개 회상하면서 실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저관여 집단 중 자기긍정을 하지 않은 집단도 위험 관련 내용을 1.59개, 비위험 비관련 내용을 1.19개 인출하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 연구는 자기긍정이 자신과 관련 있는 위험에는 민감하게 하고, 관련 없는 위험에는 둔감하게 함을 보여주었다. 즉 자기긍정 관련 있는 위험에 집중하고, 다른 불필요한 정보를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더 중요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인지적 여유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자기긍정을 통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에만 집중하면, 또 다른 중요한 정보들에 집중할 수 있는 작업기억용량을 확보할 수 있고, 이렇게 인지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삶에 필요한 심리적 자원들을 구축하는 것에 유익하다.

 

 

*더 알고 싶다면,

 

Reed, M. B., & Aspinwall, L. G. (1998). Self-affirmation reduces biased processing of health-risk information. Motivation and Emotion, 22(2), 99-132.
http://dx.doi.org/10.1023/A:1021463221281

 

General Happiness Series 

있는 자 더 있게, 없는 자 더 없게

있는 자 더 있게, 없는 자 더 없게
: 행복을 영구적으로 낮출 수 있는 큰 고통과 시련

 

 

신약성경 마태복음에는 “있는 자 더 있게 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느니라.”는 구절이 2번이나 등장한다.

 

 

  2015년 5월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K. 샌드버그(Sheryl Kara Sandberg, born August 28, 1969)는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Dave Goldberg, October 2, 1967 – May 1, 2015)와 여행을 즐기던 중, 호텔 체육관으로 운동하러 간다던 남편이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아 이상하고 느낀다. 그 이상한 느낌이 틀리지 않아, 호텔 체육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편을 발견한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셰릴이 남편 데이브와 함께한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관상동맥(coronary artery disease)이 막혀가고 있었고, 운동 중 급성으로 동맥이 막히면서 급사를 한 것이었다. 셰릴은 7살과 10살 된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혼자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과연 아이들은 잘 살 수 있을지 모든 것에서 혼란에 빠졌다. 주변의 동료들도 갑작스럽게 비극을 맞이한 친구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간혹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말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용기는 그녀에게 힘이 되기보다는 더 큰 좌절 혹은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들이 했던 말 중 셰릴이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바로 “힘내, 다 괜찮아 질거야,” “지금 몹시 힘들다는 것을 알아, 그렇지만 다 괜찮아 질 거라고 믿어.” 도대체 어떤 면에서 괜찮아 진다는 걸까?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지.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비극, 혹은 비슷한 수준의 끔직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결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그녀는 좋은 친구이자, 심리학자인 아담 그랜트(Adam Grant)의 도움을 받아 여전히 페이스북에서 일하고 있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며, 일상의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것이 다 남편을 잃기 전과 같이 회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와 같이 갑작스럽게 배우자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회복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사는 것이 가능할까?


  유전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큰 건물에 있는 온도 조절 장치처럼, 우리 마음속의 행복도 유전적 온도 조절 장치가 있어서, 내려가면 다시 끌어 올려 설정된 온도로 돌아오게 하고, 올라가면 다시 끌어 내려서 설정된 온도로 돌아오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좋은 일에서 올라간 행복과 나쁜 일에서 내려간 행복이 항상 돌아오는 걸까? 좋은 일에서 올라간 행복은 내려오지만, 나쁜 일에서 내려간 행복은 올라오지 않는 것 아닐까? 또 인생의 큰 사건이 계기가 되어 유전적 설정점 자체가 변화하는 일은 없을까?


  Lucas(2007)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위의 질문들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제공한다. Lucas(2007)의 연구는 21년 이상 독일인의 행복을 추적조사해온 독일의 사회경제패널 40,000명에 대한 데이터와 14년 이상 영국인의 행복을 추적조사해온 영국의 가정패널 27,000명에 대한 데이터에 기초한다. Lucas(2007)는 이들의 데이터에서 ‘결혼(Marriage), 사별(Widowhood), 이혼(Divorce), 실직(Unemployment), 불구(Disability), 중증 불구(Severe Disability)’를 경험한 시점 전과 후에 개인의 행복이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에 대한 정보를 추출하였다.

 

 

 

 


그림 1. 인생의 전환점(가로축의 ‘0’)이 될 수 있는 큰 사건 전후의 행복변화. (A) 결혼, 사별, 이혼 전후 행복의 변화를 보여준다. (B) 실직, 불구, 중증 불구가 된 경험 전후 행복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림-1은 이렇게 추출한 정보를 그림으로 모형화한 것이다. 그림-1A(좌측)는 결혼, 사별, 이혼 전후의 행복 변화(Y축, 삶의 만족도)를 보여주고, 그림-1B(우측)는 실직, 불구, 중증 불구가 된 사건을 경험한 전후의 행복 변화를 보여준다. 각 그림 X축의 ‘0’이 해당 사건이 발생한 해이고, ‘0’을 기준으로 마이너스(-)로 갈수록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을, 플러스(+)로 갈수록 그 사건이 발생한 후를 의미한다.


  먼저 그림-1A를 살펴보자. 결혼(Marriage)의 경우 결혼한 당해까지 행복이 꾸준히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해가 지날 때마다 결혼 5년 전 수준의 행복, 즉 설정된 행복의 수준으로 돌아간다. 사별(Widowhood)은 사별하기 5년 전부터 행복이 저하되기 시작하다가 사별 1년 전에 행복이 급격히 저하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보통 배우자가 사별 5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다가, 사별 1년 전에 급격히 나빠지고, 그 후 사망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배우자의 사별 당해와 사별 5년 전의 행복 사이의 차이는 이혼 5년 전과 이혼 당해의 행복 차이에 비해 큰데, 이는 사랑하던 배우자와의 사별이 인생의 그 어떤 사건보다 충격적임을 보여준다.


  이혼은 사별과는 조금 다른데, 이혼이 발생하기 5년 전부터 계속 행복이 감소하다가, 이혼 발생 1년 전이 가장 행복이 낮고, 이혼 당해에는 이혼 발생 1년 전보다 행복이 조금 증가한다. 이는 이혼 발생 1년 전, 즉 가장 불행할 때 이혼을 결정하고, 이혼을 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혼하는 사람들의 행복은 사별한 사람이나, 결혼한 사람들의 행복보다 처음부터 낮았음을 보여주는데(한 가지 가능성은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을 수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님), 이는 결혼할 때 얼마나 행복한지가 이혼할지, 사별할지를 어느 정도 예측하는 요인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혼과 사별 후 행복이 이혼과 사별이 발생하기 5년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혼과 사별 모두 각 사건이 발생하기 5년 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다. 심지어 이혼한지 4년이 지나면서 부터는 행복의 증가가 체감하기 시작하여 이혼하기 5년 전 행복보다 0.5점 정도 낮은 상태에서 행복이 고정된 듯한 양상을 보인다. 사별도 비슷하다. 사별한지 5년 정도가 지나면 행복 증가가 체감하기 시작하여 사별하기 5년 전 행복보다 0.5점 정도 낮은 상태로 행복이 고정된 듯한 경향을 보인다.


  그림-1B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심각한다. 실직(Unemployment)을 경험한 사람은 그 다음 해에 행복이 회복하는 듯하지만, 결코 실직 5년 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계속 저하되는 양상을 보인다. 실직 7년 후에 이르러도 행복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며, 실직 5년 전과 비교할 때 0.8점 정도의 차이가 날 정도로 행복이 낮아진다. 특히 실직의 경우에는 실직을 경험하기 5년 전과 실직 당해 낮아진 행복의 격차가 거의 1점 이상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실직의 충격이 거의 인생을 잃어버린 수준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사고로 인해 신체 일부가 불구(Disability)가 된 경우에는 불구가 된 그해에 낮아진 행복이 7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신체의 일부가 불구가 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행복이 낮아진 상태로 평생 보낼 가능성도 있다. 신체의 절반 이상이 불구가 되는 중증 불구(Severe Disability)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5년 전보다 행복을 2.5점 정도 낮출 뿐 아니라, 신체 일부 불구와 마찬가지로 낮아진 행복을 결코 높이지 않는다. 이는 인생의 중대한 사건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생할 경우 행복의 설정점 자체가 낮아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이혼, 불구, 중증 불구와 같은 불행한 일을 경험한 사람의 행복이 결혼 사람의 행복보다 처음부터 낮다는 것이다. 이는 불행한 일을 경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평균적인 수준보다 행복이 낮은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즉 불행한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생기고, 행복한 사람에게는 행복한 일을 계속 생기는 것인지 연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심리학에 분야에서 이 현상을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약 성경 마태복음서에 “있는 자 더 있게 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는다.”(마태복음 13장 11-12절, 마태복음 25장 29절)라는 구절이 두 번이나 나오기 때문이다.

 

 

 

 


그림 2. Lucas(2005)에서 인용함. Lucas, R. E. (2005). Time does not heal all wounds: A longitudinal study of reaction and adaptation to divorce. Psychological Science, 16(12), 945-950.

 

  Lucas(2005)에서 인용한 그림-2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결국 이혼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행복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집단은 결혼 당해가 가장 행복하지만, 결국 이혼한 사람들은(마치 그림-1A의 이혼 당해 전이 가장 불행했던 것처럼) 결혼 1년 전에 가장 행복하고, 결혼 당해에는 오히려 행복이 감소한다. 즉 이들에게는 결혼 자체가 벌써 불행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혼한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혼을 계속 지속한 사람들에 비해 결혼 후에 행복이 감소하는 폭이 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마치 불행한 사람에게는 계속 불행한 일이 찾아오고, 행복한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 없거나, 행복한 일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낮아진 행복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내버려 두어야 할까? 아니다. 마태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자발적 행동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증가시키기 위한 활동들을 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관점을 바꾸고,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비교하지 않으며, 목표를 다시 세우고, 삶을 음미하며, 무언가에 몰입해보고, 관계를 돈독히 하고, 나누고 베풀며, 용서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 때이다.


  셰릴 샌드버그의 중요한 조언자 아담 그랜트는 갑작스럽게 배우자를 잃은 셰릴에게 더 큰 불행을 겪지 않아서 감사하도록 권장했다. 셰릴은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아서 감사하라고!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담 그랜트는 담담하게 만약 급성 심근경색이 남편 데이브가 아이들과 함께 운전을 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을 때 발생했다고 어땠을 것 같은가? 셰릴은 가슴이 철렁했다. 정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남편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셰릴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이 되어야 함을 느끼고 실천했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마태 효과를 경험하고 싶은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 더 행복해지는 데는 소용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더 큰 불행을 막는 것에는 효과 있어 보인다.

 

 

* 더 알고 싶다면,

 

Lucas, R. E. (2007). Adaptation and the set-point model of subjective well-being: Does happiness change after major life events?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6(2), 75-79.
https://doi.org/10.1111/j.1467-8721.2007.00479.x

 

General Happiness Series 

외모로 평가받는 것의 불행함

외모로 평가받는 것의 불행
: 또래집단보다 불행한 패션모델들

 

 

 

 

 

  패션쇼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워킹, 디자이너의 옷을 완벽 그 이상으로 소화해내는 신체 비율, 디자이너의 옷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포즈로 청중을 압도한다. 모델만으로도 충분히 멋있고 아름다운데, 적절한 무대장치, 조명, 음악, 그리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의 플래시가 더해지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화려한 겉모습을 가진 모델들의 내면은 어떨까? 이들의 내면도 이들의 외모만큼이나, 자신감 넘치고, 아름다우며, 행복할까? Meyer와 동료들(2007)은 패션모델들의 행복과 모델들과 비슷한 또래의 일반인들의 행복을 비교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연구자들의 첫 번째 연구에는 패션모델 56명(여성은 63%)과 일반인 53명(여성은 63%)이 참여하였다. 먼저 참가자들은 인간의 3가지 기본적 욕구인 자율성(예: 나는 내 스스로 내 삶을 결정할 수 있다), 유능감(예: 나는 삶 가운데 내 역량을 증명할 기회가 충분하다), 관계성(예: 나는 언제든지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에 대해 7점 척도(1: 전혀 그렇지 않다, 7: 매우 그렇다)로 응답하였다(Ilardi et al., 1993).


  그리고 자신의 현재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삶의 만족도, Satisfaction With Life Scale)에 대해 5점 척도(1: 전혀 그렇지 않다, 5: 매우 그렇다)로 응답하였고(Diener et al., 1985), 주관적 행복(Subjective Happiness Scale)에 대해서도 7점 척도(1: 전혀 그렇지 않다, 7: 매우 그렇다)로 응답하였다(Lyubomirsky & Lepper, 1999).


  이어서 자기 사실화(Self-actualization) 척도를 통해 현실의 자신과 이상적인 자신이 얼마나 가까운지에 대한 문항들(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내 감정에 솔직하다)에 7점 척도(1: 전혀 그렇지 않다, 7: 매우 그렇다)로 응답하였고(Jones & Crandall, 1986), 일반적 건강 척도와 불안-우울 척도, 사회적 기능 척도, 자신감 상실 척도에 응답하였다(Shevlin & Adamson, 2005; Werneke et al., 2000).

 

 

 


표 1. 첫 번째 연구의 결과

 

  위의 표는 이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먼저 인간의 기본욕구(need satisfaction)의 측면에서 일반인들의 기본 욕구(M = 5.54, SD = .70)가 패션모델들의 기본 욕구(M = 5.12, SD = .59)보다 강하게 충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성은 자율성(Autonomy), 관계성(Relatedness), 유능감(Competence) 모두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행복과 관련된 측면(well-being)에서 일반인들의 행복이 패션모델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현상도 삶의 만족도, 주관적 행복, 자기 사실화의 모든 측면에서 일관성 있게 관찰되었다.
  아울러 패션모델들이 일반인들보다 건강 이상 징후(general health), 불안-우울, 사회적 기능장애, 자신감 상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패션모델들이 유사한 연령대의 또래집단에 비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인간의 내면적 욕구가 적게 충족되고, 그에 따라 행복감이 낮아지며, 낮아진 행복감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의 두 번째 연구는 첫 번째 연구와 동일하게 진행하면서 인간의 기본 욕구 충족, 전반적 웰빙, 건강 이상 징후들이 실제 성격 장애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35명의 패션모델과 40명의 일반인이 참여하였다. 기본적 욕구 충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자존감과 관계성을 측정하였고, 성격 장애 확인을 위해서는 DSM-IV에 있는 10가지 성격장애들(피해망상적, 조현증적, 정신분열형, 반사회성, 경계선, 연극성, 자기애성, 회피성, 의존성, 강박성 성격장애) 을 확인하기 위한 설문을 진행하였다. 웰빙 측정을 위해서는 삶의 만족감과 주관적 행복을 측정하였고, 자기 사실화는 측정하지 않았다. 나머지 실험 재료와 절차는 첫 번째 연구와 동일하였다.

 

 

 


표 2. 두 번째 연구의 결과

 

  위의 표는 두 번째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첫 번째 연구와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기본 욕구가 패션모델들의 기본 욕구보다 더 높게 충족되었다. 또한 일반인들이 패션모델들보다 더 행복하고, 자존감도 높았으며, 관계도 좋았다. 반면 일반인들은 패션모델들보다 자신감 상실을 덜 경험하였고, 전반적으로 성격 장애관련 증상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패션모델들이 일반인들보다 피해망상 증상이 많이 나타났고, 조현증적 증상도 많았으며, 정신분열증적 증상도 많았고, 반사회성 성격장애관련 증상도 많았으며, 경계선 장애, 자기애성 장애, 강박증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는 패션모델들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음을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패션모델들이 외모라는 외재적 목표를 추구하기 쉽다는 측면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가진다. 먼저 외모, 돈, 성공, 성취와 같은 외재적 목표를 추구하거나 이것을 인생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행복, 신체 및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개인적 성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람 되기, 좋은 관계 만들기와 같은 내재적 목표를 추구하거나 이것을 인생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행복, 신체 및 정신 건강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본 연구의 시사점

 

  더하여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것은 전반적인 웰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1은 패션모델과 같이 외재적 목표를 추구하는 집단 vs. 일반인과 같이 비교적 내재적 목표를 추구하는 집단 사이의 인간의 기본욕구 충족 차이가 전반적인 웰빙에 미치는 효과를 도식적으로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때 달성되는 자기실현적 행복(eudaimonic happiness)과 즐겁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의미하는 쾌락주의 행복(hedonic happiness)이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표 3. 첫 번째 연구에서 측정한 요인들 사이의 상관관계

 

  구체적으로 표-3에 있는 것처럼 삶의 만족이나 주관적 행복 같은 쾌락주의적 행복과 인간의 기본 욕구와 같은 자기실현적 행복 사이에 높고,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본 연구는 자기실현적 행복과 쾌락주의적 행복 모두 성격장애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표 4. 두 번째 연구에서 측정한 요인들 사이의 상관관계

 

  표-4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듯이 주관적 행복과 삶의 만족은 성격 장애의 높은 부적 상관관계를 보였고, 자존감과 관계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도 성격 장애 증상들과 높은 부적 상관관계를 보였다.
 

 

*더 알고 싶다면,

 

Diener, E. D., Emmons, R. A., Larsen, R. J., & Griffin, S. (1985). The satisfaction with life scale. Journal of Personality Assessment, 49(1), 71-75.
https://doi.org/10.1207/s15327752jpa4901_13

 

Ilardi, B. C., Leone, D., Kasser, T., & Ryan, R. M. (1993). Employee and supervisor ratings of motivation: Main effects and discrepancies associated with job satisfaction and adjustment in a factory setting.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23(21), 1789-1805.
https://doi.org/10.1111/j.1559-1816.1993.tb01066.x

 

Jones, A., & Crandall, R. (1986). Validation of a short index of self-actualiz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12(1), 63-73.
https://doi.org/10.1177/0146167286121007

 

Lyubomirsky, S. & Lepper, H. S. (1999). A measure of subjective happiness: Preliminary reliability and construct validation. Social Indicators Research, 46(2), 137-155.
https://doi.org/10.1023/A:1006824100041

 

Meyer, B., Enström, M. K., Harstveit, M., Bowles, D. P., & Beevers, C. G. (2007). Happiness and despair on the catwalk: Need satisfaction, well-being, and personality adjustment among fashion models.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2(1), 2-17.
https://doi.org/10.1080/17439760601076635

 

Shevlin, M., & Adamson, G. (2005). Alternative factor models and factorial invariance of the GHQ-12: A large sample analysis using confirmatory factor analysis. Psychological Assessment, 17(2), 231-236.
http://dx.doi.org/10.1037/1040-3590.17.2.231

 

Werneke, U., Goldberg, D. P., Yalcin, I., & Üstün, B. T. (2000). The stability of the factor structure of the General Health Questionnaire. Psychological Medicine, 30(4), 823-829.
http://dx.doi.org/10.1017/S0033291799002287 

 

General Happiness Series 

관점 바꾸기

게임의 이름
: 어떻게 이름을 짓는지가 당신의 행동을 좌우할 수 있다.

 

 

 

 

 

  창의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관점을 다르게 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도대체 생각을 다르게 하거나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실천법이 있을 수 있지만 ‘이름 짓기’도 사람의 관점을 전환시키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변형한 실험자극. 모두 협력하면(C, cooperate) 가장 큰 이득을 얻고, 두 명 모두 협력하지 않으면(D, defect) 둘 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Liberman, Samuels와 Ross(2004)는 이름 짓기가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경험적 증거를 제공하였다. 연구자는 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서로 알고 지내는 48명의 스탠포드 대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협력적인 친구와 가장 경쟁적인 친구를 지목하게 하였다. 그리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는 친구와 한 조가 되어 게임을 진행하였다(그림-1). 과연 가장 협력적이라고 평가를 받은 사람이 경쟁적이라고 평가를 받은 사람들보다 협력을 자주 했을까?


  가장 협력적인 사람들 협력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아쉽게도 당신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상생활에서 느낀 평판은 이 게임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즉 협력적인 사람들이건, 경쟁적인 사람들이건, 게임에서 실제 협력하는 것과 경쟁하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림 2. Liberman과 동료들(2004)의 결과를 보여준다. 공동체 게임이라고 할 때의 협력하는 비율이 월가 게임이라고 할 때보다 높았다. 이 현상은 첫 번째 라운드 평균과 7번 모두 시행한 평균에서 동일하였다. 일반적으로 경쟁적이라고 평가를 받는지, 협력적이라고 평가를 받는지는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야기 하지 않았던 이 실험의 감춰진 조건이 영향을 미쳤다. 바로 연구자들이 게임의 이름을 무엇으로 제시했는지 이다. 연구자들은 참가자의 절반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게임의 이름을 ‘공동체 게임(Community game)’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절반에게는 ‘월가게임(Wall-street game, 미국 맨하탄의 월스트리트는 자본주의와 무한경쟁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심하다)’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예상한 대로 공동체 게임에서 사람들이 협력하는 비율이 월가 게임에서 사람들이 협력하는 비율보다 높았다. 실제로는 같은 게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림-2는 이 연구의 결과를 도식적으로 보여준다.


  본 연구는 사람들의 협력이 개인의 성향 또는 주변 사람들의 관찰에 달려있지 않고, 게임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부여했는지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즉 내가 어떻게 이름 짓고,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가 무언가에 대한 관점을 다르게 만들고, 그렇게 달라진 관점은 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더 알고 싶다면,

 

Liberman, V., Samuels, S. M., & Ross, L. (2004). The name of the game: Predictive power of reputations versus situational labels in determining prisoner’s dilemma game mov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0(9), 1175-1185.
https://doi.org/10.1177/0146167204264004

 

Happiness Practice Study Sketch 

새 관점과 새 힘

새 관점과 새 힘

 

  제한된 심적 자원(mental resource)을 가진 인간은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통해 수많은 외부자극들 중 일부만을 선택하여 처리한다(Treisman, 1969). 그리고 한 사람이 이 제한된 심적 자원을 활용하여 어떤 일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다보면, 더 이상 그 일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 ․ 신체적 피로를 느끼게 되고, 결국 그 일을 중단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자아고갈(ego depletion)이라고 부른다(Baumeister et al., 1998).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자아고갈 상태에 이른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집중적으로 수행하던 일에 한정하여 그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까?

 

 

 

 


그림 1.  더 이상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 ․ 신체적 피로를 느끼게 된 상태를 자아고갈(ego depletion)이라 부른다.

 

  이것이 궁금했던 심리학자 애니트라 칼스텐(Anitra Karsten)은 거의 한 세기 전에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시킨 다음 그것을 즐기면 계속 반복하게 하고, 지치기 시작하면 중단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Karsten, 1928). 실험 참가자들은 더는 할 수 없을 때까지 그림 그리기, 큰 소리로 시 낭독하기 같은 과제를 오랫동안 열심히 수행했다. ‘ababab’를 쓰고 또 쓰라는 과제를 받은 남성도 있었다.


  모든 참가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릴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손에 감각이 없어 한 글자도 더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순간 연구자가 그에게 다른 목적으로 이름과 주소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자아고갈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인지능력의 고갈이라면(한 주의 자원을 사용하는 것), 그 사람은 주소를 쓸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 쓰지 못했을 것이다(Reisberg, 1983). 혹은 일정 시간 휴식을 가진 후에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반면 자아고갈이 현재까지 집중하던 과제에 한정된 인지능력의 고갈이라면(여러 주의 자원 중 하나를 사용하는 것), 이전까지 수행하지 않았던 주소를 쓰는 과제에 대한 에너지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고, 즉각적으로 쉽게 주소를 적을 수 있었을 것이다(Wickens, 2008).

 

 

 


그림 2. 인간의 심적 자원의 원천은 하나일까? 여러 개일까?

 

  결과는 후자의 가설을 지지하였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아주 쉽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과제에서도 나타났다. 한 여성은 팔을 들 수도 없을 만큼 지쳐서 더는 한 글자도 못 쓰겠다고 말했다. 그때 실험자가 팔을 들어 머리를 만져보라고 요청하였다. 그녀는 곧 팔을 들어 머리를 매만졌다. 보아하니 별로 힘들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듯했다.


  목이 쉴 때까지 큰 소리로 시를 낭독한 참가자들에게는 이 과제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불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왔다.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랭거(Ellen Langer)는 참가자들이 일부러 지친 것처럼 둘러댄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Langer, 1975; 1989). 그리고 ‘맥락이 바뀌자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 것이고 덧붙였다.


  이처럼 자아고갈은 전체적인 인지능력의 저하가 아니며, 특정한 맥락 혹은 관점에서의 고갈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하는 일에 지쳐서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는가? 심적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관점과 맥락을 전환해보자. 이것이 당신에게 새 힘을 선사할 것이다.

 

 

 

그림 3. 심적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관점과 맥락을 전환해보자. 이것이 당신에게 새 힘을 선사할 것이다.

 

*더 알고 싶다면,

 

Baumeister, R. F., Bratslavsky, E., Muraven, M., & Tice, D. M. (1998). Ego depletion: Is the active self a limited resour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4(5), 1252-1265.
http://dx.doi.org/10.1037/0022-3514.74.5.1252

 

Karsten, A. (1928). Untersuchungen zur Handlungs-und Affektpsychologie. Psychologische Forschung, 10(1), 142-254.
https://doi.org/10.1007/BF00492011

 

Langer, E. J. (1989). Mindfulness. MA: Addison-Wesley/Addison Wesley Longman.
http://psycnet.apa.org/record/1989-97542-000

 

Langer, E. J. (1975). The illusion of contro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2(2), 311-328.
http://dx.doi.org/10.1037/0022-3514.32.2.311

 

Reisberg, D. (1983). General mental resources and perceptual judgment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9(6), 966-979.
http://dx.doi.org/10.1037//0096-1523.9.6.966

 

Treisman, A. M. (1969). Strategies and models of selective attention. Psychological Review, 76(3), 282-299.
http://dx.doi.org/10.1037/h0027242

 

Wickens, C. D. (2008). Multiple resources and mental workload. Human Factors, 50(3), 449-455.
https://doi.org/10.1518/001872008X288394

 

Happiness Practice Series 

비교하는 마음은 불행하다

너의 실패는 나의 기쁨
: 비교를 통해 웃고 우는 불행한 사람

 

 


양팔 저울은 무게를 정확히 측정하는 용도와 무게를 비교하는 용도로 모두 쓰일 수 있다. 우리 마음에도 양팔 저울이 있다면, 당신은 이것을 무게를 측정하는 것에 쓰고 있는가? 비교하는 것에 쓰고 있는가?

 

  양팔 저울은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도 쓸 수 있고, 무게를 비교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무게를 측정하는 용도로 양팔 저울을 쓸 때는 한쪽에 600그램짜리 추를 올려놓은 후, 다른 쪽에 소고기를 한 조각이 올려놓다가 600그램에 도달하면 두 저울은 수평을 이루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소고기가 600그램(한 근)임을 알게 된다. 무게를 비교할 때는 한 쪽에 사과를 다른 쪽에 배를 올려놓고, 둘 중에 더 내려간 쪽이 무게가 무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저울을 우리 마음에 옮겨 놓는다면 어떤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까? 다양한 용도가 가능하겠지만, 먼저 우리의 성취를 달아보는 용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쪽에 각자가 정한 성취의 목표를 올려놓은 후, 반대쪽에 우리가 실제로 수행하면서 이룬 성취를 올려놓아 둘이 수평이 되면,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아울러 성취를 비교하는 용도도 될 수 있다. 한쪽에 자신의 성취를 올려놓고, 다른 쪽에 타인의 성취를 올려놓아 내 쪽의 기울면 내가 더 잘한 것이고, 타인 쪽으로 기울면 타인이 더 잘한 것이 된다.


  한쪽에 자신의 성취를 올려놓고 다른 쪽에 자신의 수행을 올려놓을 때는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만 평가하기 때문에 수평을 이루면(목표 달성) 좋고, 더 무거우면(초과 달성) 더 좋고, 달성하지 못해도(미흡) 더 노력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쪽에 타인의 성취를 올려놓는 순간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것 같다. 타인보다 무거우면 좋지만, 타인보다 가벼우면 기분이 좋지 못하며, 타인과 같더라도 그것은 타인과 내가 같은 수준이라는 뜻이기에 더 좋을 이유가 없다. 심지어 자신의 성취 목표라는 추는 이미 달성했음에도 타인이 그것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저울에 한 쪽에 대부분 타인의 성취를 올려놓는 사람, 즉 저울을 ‘비교의 용도’로 쓰는 사람과 우리 마음의 저울 한쪽에 대부분 자신의 성취를 올려놓는 사람, 즉 저울을 ‘측정의 용도’로 쓰는 사람을 구분하는 중요한 심리적 특성은 무엇일까?


  Lyubomirsky와 Ross(1997)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성취를 평가하는 사람들(비교의 저울)이 자기 자신의 성취 자체로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들(측정의 저울)보다 불행한 사람들임을 보여주면서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는 것이 행복의 조건임을 확인하였다.


  두 사람의 첫 번째 연구는 스탠포드 대학교 학부생 5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실험에 도착한 50명은 먼저 행복과 관련된 4가지 설문에 각각 7점 척도로 응답하였다. 첫 번째 문항은 자기 스스로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1: 전혀 행복하지 않다, 7: 매우 행복하다), 두 번째 문항은 또래들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1: 전혀 행복하지 않다, 7: 매우 행복하다), 세 번째 문항은 자신은 특별히 좋은 일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인지(1: 전혀 그렇지 않다, 7: 매우 그렇다), 네 번째 문항은 자신은 특별히 나쁜 일이 없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인지(1: 매우 그렇다, 7: 전혀 그렇지 않다)였다.


  행복에 대한 측정을 마친 참가자들은 자신이 퍼즐 맞추기 능력을 7점 척도로 평가하였다(1: 매우 못함, 7: 매우 잘함).


  행복과 자신의 수행을 예측하는 질문에 응답한 참가자들은 철자 맞추기 퍼즐을 진행하였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와 함께 나란히 앉았고 실험자는 앞에 있는 테이블 곁에 앉았다. 이때 다른 참가자는 사실상 실험 조력자(연기자)였다. 실험자는 두 사람에게 뒤섞인 철자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었는데, 종이에는 A-S-S-B-I, Y-O-N-S-W, N-O-X-T-I 등이 쓰여 있었고, 참가자는 이것을 BASIS, SNOWY, TOXIN이라고 맞추면 되었다.


  참가자는 주어진 낱말을 맞출 때마다 받은 종이를 실험자에게 되돌려주었고, 그러면 실험자는 새로운 낱말이 적힌 종이를 제공하였다. 참가자는 옆에 앉은 다른 참여자가 자신보다 퍼즐을 빨리 맞추는지, 늦게 맞추는지가 알 수밖에 없었는데, 실험자가 퍼즐 종이에 숫자를 부여하고, 그 숫자가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즉 한 참가자가 1번을 푼 후, 그 다음으로 5번을 받았다면, 다른 참가자가 2, 3, 4번을 이미 풀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내가 1번을 푼 후, 바로 2번을 받았다면, 다른 참가자보다 내가 빨리 풀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실험자는 참가자에게 연습장 사용을 허용하되 새로운 퍼즐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종이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종이를 넘길 때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는데, 옆에 앉은 참가자에게서 이 소리가 들리는 간격이 당신보다 빠르다면, 당신은 옆 사람보다 퍼즐을 늦게 풀고 있다는 신호이다. 반면 옆에 앉은 참가자에게서 이 소리가 들리는 간격이 느리다면, 당신은 옆 사람보다 퍼즐을 빨리 풀고 있다는 신호이다.


  낱말 퍼즐 맞추기 과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의 행복(네 가지 질문에 7점 척도로 응답)과 능력(1: 매우 못함, 7: 매우 잘함)을 평가하였다.


  분석을 위해 과제 수행 전 참가자들의 행복 점수 상위 50% 집단을 행복한 집단으로 하위 50% 집단을 행복하지 않은 집단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행복한 집단과 행복하지 않은 집단의 참가자들의 행복이 과제 수행 전과 후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고 과제 수행 전 능력 평가와 수행 후의 능력 평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보았다.

 

 

 


그림 1. 과제 수행 전후의 능력 평가 변화(수행 후 평가 – 수행 전 평가).

 


  그림-1은 퍼즐 맞추기 수행 전과 후의 참가자들의 능력 평가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행복한 집단(happy)은 옆에서 수행한 사람이 자신보다 빠르게 했을 때와 느리게 했을 때 모두 과제 수행 전보다 과제 수행 후 자신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했다. 물론 옆에서 수행한 사람이 자신보다 느렸을 때 자신의 능력을 조금 더 높게 평가하긴 했지만, 처음 생각보다 스스로를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 자체는 동일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집단(unhappy)은 달랐다. 이들은 옆에서 수행한 사람이 자신보다 느리게 했을 때만 과제 수행 후 자신의 능력을 과제 수행 전보다 높게 평가했고, 옆에서 수행한 실험 조력자가 자신보다 빨랐을 때는 과제 수행 후 자신의 능력을 과제 수행 전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그림 2. 과제 수행 전후의 행복 평가 변화(수행 후 평가 – 수행 전 평가).

 

  그림-2는 퍼즐 맞추기 수행 전과 후의 참가자들의 행복도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행복한 집단(happy)은 옆에서 수행한 사람이 자신보다 빠르게 했을 때와 느리게 했을 때 모두 과제 수행 전보다 과제 수행 후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집단(unhappy)은 여기서도 달랐다. 이들은 옆에서 수행한 사람이 자신보다 느리게 했을 때만 과제 수행 후 자신의 행복을 과제 수행 전보다 높게 보고했고, 옆에서 수행한 실험 조력자가 자신보다 빨랐을 때는 과제 수행 후 자신의 행복 과제 수행 전보다 낮게 보고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이는 행복이 높은 사람들은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적 기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한 반면, 행복이 낮은 사람들은 비교가 자신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스탠포드 대학교 학부생 81명(남 44, 여 37)이 참가한 두 번째 연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참가자들은 첫 번째 연구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행복을 측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참가자들 중 42명은 행복한 집단으로, 나머지 39명은 행복하지 않은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참가자들의 과제는 6~7세 아동들이 관객이라고 상상하면서 <허락 없이 가지고 놀던 친구의 장난감을 망가지게 한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메시지를 손가락 인형 연극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에게는 강의실 뒷벽의 반거울(one-way mirror) 너머에 평가자가 있다고 알려주었고, 또한 그들의 연기가 녹화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하였다. 이렇게 과제를 제시받은 참가자는 과제를 수행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은지를 7점 척도로 측정하였고(1: 매우 못함, 7: 매우 잘함), 곧 이어 과제를 수행하였다.


  과제 수행이 끝나면,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피드백이 제공되었다. 이 피드백은 실제 평가가 아니라, 연구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먼저 참가자의 4분의 1은 다른 동료들은 어땠는지에 대한 언급 없이 우수하다(7점 만점에 6점)는 평가를 받았고(positive; no peer feedback), 다른 4분의 1은 우수한데(7점 만점에 6점) 다른 참가자가 더 잘했다(7점 만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를 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positive; peer even better).


  그리고 또 다른 4분의 1은 다른 동료에 대한 언급 없이 미흡하다(7점 만점에 2점을 받았다고)는 평가를 받았고(negative; no peer feedback), 나머지 4분의 1은 미습한데 다른 사람은 너보다 더 미습하다(다른 사람은 1점을 받았다고)는 평가를 받았다(negative; peer even better).

 

 

 

 


그림 3. 과제 수행 전후의 행복 평가 변화(수행 후 평가 – 수행 전 평가).

 

  그림-3은 참가자들의 과제 수행 전후의 행복도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행복한 그룹은 동료와의 비교와 관계없이 우수한 성적이라는 긍정적인 피드백(7점 만점에 6점)을 받았을 때는 과제 수행 전보다 높은 행복을 보고 한 반면, 미흡하다는 부정적인 피드백(7점 만점에 2점)을 받았을 때는 과제 수행 전보다 낮은 행복을 보고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부여된 피드백에 의해서만 행복이 변화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그룹은 다른 동료의 결과를 모른 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과제 전보다 과제 후에 더 행복하였지만, 우수한데 다른 동료는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과제 전보다 오히려 행복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심지어 행복하지 않은 그룹은 다른 동료의 결과를 모른 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과제 수행 후의 행복이 과제 전보다 낮아지지만, 다른 동료가 자신보다 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과제 수행 후의 행복이 과제 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그림 4. 과제 수행 전후의 자신감 평가 변화(수행 후 평가 – 수행 전 평가).

 

  그림-4는 참가자들의 과제 수행 전후의 자신감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행복한 그룹은 동료와의 비교와 관계없이 우수한 성적이라는 긍정적인 피드백(7점 만점에 6점)을 받았을 때는 과제 수행 전보다 높은 자신감을 보고 한 반면, 미흡하다는 부정적인 피드백(7점 만점에 2점)을 받았을 때는 과제 수행 전보다 낮은 자신감을 보고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부여된 피드백에 의해서만 자신감이 변화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그룹은 다른 동료의 결과를 모른 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과제 전보다 과제 후에 더 자신감이 높았지만, 우수한데 다른 동료는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과제 전후의 자신감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행복하지 않은 그룹은 다른 동료가 자신보다 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과제 수행 후의 행복이 과제 전보다 높아지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는 행복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부여된 평가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주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행복하지 않은 그룹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실천하듯이 다른 사람이 잘 된 것에 배 아파하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면서 고소해했다. 행복한 사람은 실패의 쓴 맛과 성공의 단 맛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었지만, 불행한 사람에게는 단 맛과 쓴 맛이 모두 타인에게 달려있었다.


  마음의 저울을 자신의 내적 기준과 실제 성취 사이를 측정하는 용도로 쓸지, 아니면 내 성취와 타인의 성취를 비교하는 용도도 쓸지는 당신의 자유다. 그러나 그 저울로 내적 기준과 실제 성취 사이의 일치도를 측정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같은 저울로 타인과 나의 성취를 비교하는 사람은 더 불행하다는 사실은 당신의 자유가 아닌, 당신이 마음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 과학적 현상이다.


마음의 저울을 타인의 성취와 비교하는데 사용하기보다,
자신의 내적 기준을 측정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Lyubomirsky, S., & Ross, L. (1997). Hedonic consequences of social comparison: A contrast of happy and unhappy peopl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3(6), 1141-1157.
http://dx.doi.org/10.1037/0022-3514.73.6.1141 

나눌고 베풀기_시간을 내어주면 시간이 생긴다

시간 주면 시간을 생긴다
: 시간이 없어서 못 돕는 게 아니라 돕지 않아서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와 같은 말을 자주 입에 달고 다니지는 않는가? 초단위로 바뀌는 현대 세상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시간에 쫓기게 만들고는 한다. 심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인심이 점점 더 강퍅해지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에는 변화가 없더라도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친사회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심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아래에 Mogilner와 동료들이 진행한 일련의 연구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타인을 돕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과 그냥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이후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도록 만들까?’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첫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스트코스트 대학생 218명은 5분간 중병으로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주어진 라틴어 텍스트 중 ‘e’가 몇 개 들어 있는지 세었다. 전자는 ‘시간을 할애하는 조건’이며, 후자는 ‘시간을 낭비하는 조건’이다. 5분간 과제를 한 후 참가자들은 Lang and Carstensen(2002)의 미래시간전망 척도(Future Time Perspective scale)의 4가지 문항에 응답했다.  (예 : “내 미래는 무한해 보인다”, 1 = 매우 그렇다, 7 = 매우 그렇지 않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아픈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 사람들이 라틴어 철자 ‘e’의 개수를 센 사람들보다, 자신에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즉, 시간을 타인을 위해 할애한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한 사람들보다 자신의 미래에 시간이 훨씬 많다고 느낀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위의 실험(실험1a)에서 ‘e’의 개수를 세는 것에 대한 불쾌감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타인을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의 양이 미치는 영향을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Cassie Mogilner와 동료들은 추가적인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 참가자는 온라인 실험자 150명이었다. 이들은 시간을 할애하는 대상이 ‘나’ 또는 ‘다른 사람’인지, 소비하는 시간의 양이 ‘10분’과 ‘30분’인지에 따라 네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각 집단의 참가자들은 “오늘 할 계획이 없었던 것들 중 무언가를, 당신 스스로를 위해 10분간 하십시오”(나x10분), “오늘 계획하고 있지 않았던 무언가를, 다른 사람을 위해 30분간 하십시오”(타인x30분)와 같은 지령을 수행한 후, 이전 실험과 동일한 척도에 응답했다. 

 

 

 


그림 1. 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왼쪽)과 나를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오른쪽)이 인지한 미래시간

 

 

   그림 1은 이 실험(실험1b)의 결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사람(Another)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은 자신(Self)을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에 비해 미래의 시간을 더 많게 여겼다. 이것은 10분이든 30분이든 할애한 시간의 양과는 상관이 없었다. 즉 남을 위해 내 시간을 쓸 때, 나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쓸 때보다 시간에 대한 심적 여유가 더 생기는 것이다. 

 

  Cassie Mogilner와 동료들이 품은 또 다른 의문은 다음과 같다. 시간을 할애하는 상황과 반대로 여유시간이 갑자기 생기는 상황에서는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또 지금 이 순간에 미래 시간을 판단한 것이, 실제로 그 미래 시간이 현재가 된 시점에 영향을 줄까?

 

  시간에 대한 실험 2는 이스트코스트 대학생 136명을 통해 실시되었다. 그들은 1시간짜리 연구 세션에서 45분을 보낸 후, 15분짜리 마지막 과제를 하게 되었다. 마지막 과제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속하는 지역의 공립 고등학교 위험군 학생들의 연구 에세이를 교정하여 돕는 것이었다. 한 집단은 빨간 펜과 에세이가 받아 교정을 했고(시간을 할애한 집단), 다른 한 집단은 교정이 이미 끝났으니 일찍 떠나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15분의 여유시간이 생긴 집단). 두 집단 모두 집에 가기 전에 ‘시간은 소모되는 자원이다’에 대해 동의하는 정도를 7점 척도(1=전혀 그렇지 않다, 7=매우 그렇다)로 응답하였다. 또한 ‘얼마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에 대해 -5(매우 여유시간이 적음)에서 +5(여유시간이 많음)사이로 응답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음 주 중에 온라인 봉사활동에 얼마나 참여할 것인지(0분, 15분, 30분 또는 45분)에 대해 물었다. 일주일 후,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의 실제 온라인 로그인 기록을 확인하였다.

 

 

 

 


그림 2. 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Gave Time)과 여유 시간이 생긴 사람들(Got Time)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시간(왼쪽)과 실제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간(오른쪽)

   


  교정을 통해 위험군 학생들을 돕는 것에 시간을 할애한 집단은 여유시간이 생긴 집단보다 시간을 소모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시간적 여유도 더 많다고 평가했다. 그림 2를 보면, 시간을 타인을 위해 할애한 사람들이 여유시간을 얻게 된 사람들보다 온라인 봉사활동에 더 오래 참여하겠다고 말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주일 후, 실제로도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이 반대 집단에 비해 더 오래 온라인 봉사활동을 했다. 실험 2의 결과를 종합하자면, 타인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시간을 인식함에 있어 더 여유롭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행동은 친사회적 활동(봉사활동 등)에 대한 참여를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그런 행동을 실제로 하도록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는 걸까? Mogilner와 동료들은 원인을 사람의 ‘자기 효능감’에서 찾고자 하였다. 여기서 자기 효능감이란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타인을 돕는 것은 개인의 자기 효능감을 높여준다. 높아진 자기효능감은 주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인식하게 하며, 시간의 전체적인 총량도 더 크게 생각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이 관계에 대해 알아내고자 실험 3이 진행됐다.
 
  실험 3은 아마존의 M-Turk를 통해 모집한 105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참가자들은 최근에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해 한 일을 회상하였으며 그것에 할애한 시간을 기록하였다. 이후 시간에 대한 심적 여유 인식과 자기 효능감, 사회적 유대감, 의미, 즐거움 등을 관련 척도로 측정하였다.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고 느꼈으며, 자기효능감도 더욱 높게 나타났다. 즉 전자가 후자에 비해 심적으로 더 시간적 여유가 있고, 스스로의 능력도 좋게 평가하는 것이다. 더불어 Mogilner와 동료들이 예측한 것처럼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자기 효능감을 향상시키고, 향상된 자기효능감이 심적인 시간 인식을 더욱 여유롭게 해준다는 관계성 또한 나타났다. 사회적 유대감과 의미, 즐거움은 관계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타인에게 기꺼이 내 시간을 쓰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시간을 쓴 당사자는 시간에 있어서 좀 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할애 받은 타인도 객관적으로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서로 win-win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쓰는 시간에는 상한선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무작정 남을 위해 시간을 쏟아 붓는 것이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시간에 쫓겨 초조한가? 그득그득 쌓인 할 일을 보며 ‘시간 없어, 바빠!’를 연신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소중한 친구, 가족, 이웃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족했던 시간이 오히려 더 늘어나는 신기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 더 알고 싶다면,

 

Mogilner, C., Chance, Z., & Norton, M. I. (2012). Giving time gives you time. Psychological Science, 23(10), 1233-1238.
https://doi.org/10.1177/0956797612442551 

사후가정적 사고: 동메달이 은메달보다 행복한 이유

언제 적은 것이 더 가치있는가?
: 올림픽 메달리스트들 사이에서의 사후가정적 사고와 만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운동경기가 끝난 후, 메달을 수여받기 위해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흔히 생각할 때, 3위 선수보다 성적이 더 좋은 2위 선수가 더 밝은 표정을 지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은메달을 딴 선수는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반면, 동메달을 딴 선수는 너무나도 신나고 행복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구하기 위해 1992년 하계 올림픽 경기를 분석하였다. 그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본 경기를 보도한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의 영상을 두 개의 테이프로 제작하였다. 테이프에는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가 경기 직후 결과를 알게 되었을 때, 메달 시상대에 올랐을 때가 각각 들어있었다. 메달 장면은 은메달이 20개가, 동메달이 15개였다. 참가자인 20명의 코넬대학교 학생들은 영상을 보며, 각 운동선수들의 모습에서 표현되는 감정을 10점 척도(1점=‘극도의 고통’, 10점=‘최상의 황홀경’)로 평가하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림 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해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메달 시상대에 올랐을 때보다 경기 직후 결과를 확인하였을 때 더 행복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행복해 보이는 정도의 평균
까만 막대가 은메달 선수의 행복 평균이고, 무늬가 있는 막대가 동메달 선수의 행복 평균, 숫자가 클수록 더 행복보임을 의미한다.

 

 

  그림 1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선수들이 경기 직후 즉각적으로 반응할 때, 동메달을 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7.1의 점수를 얻었으며, 은메달을 딴 사람들은 4.8의 점수를 얻었다. 메달 시상대에선,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평균 5.7,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평균 4.3로 평가되었다. 경기 직후보다 시상대에 올랐을 때 차이가 좀 줄어들기는 하였으며, 두 시점 모두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덜 행복해보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2위와 3위의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3위는 4위와의 경쟁에서 ‘이겼고’, 2위는 1위와의 경쟁에서 ‘졌다’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승패 여부가 둘의 행복지수를 가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육상, 수영, 체조 경기와 같이, 스스로의 성적에 따라 간단히 1위, 2위, 3위를 가르는 종목들을 대상으로 다시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로, 동메달을 딴 사람들이 은메달을 딴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고 평가되었다. 즉, 직전 경기의 승패 여부는 원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기 전 그들이 가진 기대치와 실제 결과가 많이 달라서가 아닐까도 원인으로 재기되었다. 그러나 각 선수에 대해 경기 전 기대되던 성적(Sports Illustrated의 Olympic preview 참고)과 실제 성적을 대조한 결과, 동메달리스트는 차이가 없었고 은메달리스트는 오히려 기대보다 실제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상대적으로 더욱 행복해 해야 할 것 같은 은메달리스트의 침울한 반응은 경기 전 기대치와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닌 것이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최종적으로 ‘사후가정적 사고(counterfactual thought)’로 인해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사후가정적 사고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반대되는 상황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는, 벼락치기로 시험을 준비해 시험을 망친 학생을 들 수 있다. 이 학생이 ‘만약 내가 그때 벼락치기가 아니라 미리미리 시험공부를 했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사후가정적 사고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후가정적 사고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향 비교와 상향 비교가 그것이다. 하향 비교는 현재보다 더 안 좋은 상황 즉, 최악의 결과에 대한 사고를 의미한다. 반대로 상향 비교는 현재보다 더 좋은 상황 즉, 보다 나은 결과에 대한 사고를 뜻한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동메달리스트는 전자에, 은메달리스트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고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즉, 동메달을 딴 선수는 ‘와 난 메달을 아예 못 딸 뻔했는데, 동메달이나 땄네!’라고 하향 비교를 하고, 은메달을 딴 선수는 ‘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을 텐데’와 같은 상향 비교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영상 속 운동선수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은메달리스트들은 그들이 어떻게 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는지 계속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까? 동메달리스트들은 메달을 놓칠 뻔한 상황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릴까? 정확하게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메달 순위를 알게 된 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구 2에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사후가정적 사고에 대해 알기 위해 1992년 하계 올림픽 경기에 대한 NBC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 번 조사하였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NBC에서 경기 직후와 시상식 이후 메달 수상자들(은메달리스트 13명, 동메달리스트 9명)에게 한 인터뷰들을 두 개의 테이프로 만들었다. 실험은 10명의 코넬 대학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연구 1과 유사하게 진행하였다.

 

  참가자들은 영상을 보고 두 가지를 평가하였다. 첫째로, 인터뷰 속 인물들의 말을 10점 척도로 측정하였다. 여기서 1점은 ‘적어도 나는 ~’, 10점은 ‘나는 거의 (~를 얻을 뻔했다)’이었다. 즉 1점에 가까울수록 만족 또는 하향 사고를, 10점에 가까울수록 상향 사고를 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a) “선수는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더 나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 같고,
    자신보다 순위가 낮은 경쟁자와 비교한다.“

 

(b) “선수는 자신이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 같고,
    자신보다 앞선 순위의 경쟁자와 비교한다.”

 

(c) “선수는 자신이 성취한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고 경쟁자와 비교하지 않는다.

 

  둘째, 인터뷰 속 운동선수들의 생각이 아래의 세 범주에 해당되는 정도를 평가하였다. 각각의 항목에 0%부터 100%까지 부여할 수 있었으며, 합이 100%이 되어야 했다. 

 

  결과는 Medvec과 그의 동료들이 예상한 것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평가에서 은메달리스트들의 생각(평균 5.7점)은 동메달리스트들의 생각(평균 4.4점)보다 ‘나는 거의’(즉 상향비교)에 가깝다고 평가 되었다. 두 번째 평가에서는 ‘자신의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카테고리’에서 ‘상향비교를 하는 카테고리’에 할당된 비율을 빼 결과를 얻었다. 이 평가에서 은메달리스트들과 동메달리스트들 간에 유효한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동메달리스트(평균 53%)가 은메달리스트(평균 16%)보다 덜 상향 비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2를 통해, 은메달리스트들은 ‘거의’ 얻어낼 뻔 했던 금메달에 집중하는 듯하였고, 동메달리스트들은 “최소한 나는 이것을 잘했다”는 생각에 만족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분석은 선수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실제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연구 3을 진행하였다.

 

 

 

 

 

  연구 3은 뉴욕에서 유명한 아마추어 운동경기로 뽑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게임(Empire State Games)’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1994년, 이 게임에서 메달을 얻은 115명(은메달 60명, 동메달 55명)이 실험에 참가하였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개별적으로 연구 2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10점 척도로 자신의 수행 능력에 대한 생각을 평가했다. 연구 3의 결과 또한 앞선 연구들과 동일하였다. 은메달을 딴 선수들의 생각(평균 6.8)은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생각(평균 5.7)보다 ‘나는 거의’에 더 집중했다.

 

   모든 연구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은메달을 딴 사람들은 동메달을 딴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성취보다 성취하지 못한 것(금메달)에 초점을 맞추는 상향 비교 사후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객관적인 성취와 상관없이 비교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덜 행복하거나 더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단기적인 행복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의 행복은 아직 알 수 없다. 이후 업적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행복과 업적 달성에서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더 나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 더 알고 싶다면,


Medvec, V. H., Madey, S. F., & Gilovich, T. (1995). When less is more: Counterfactual thinking and satisfaction among Olympic medalist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9(4), 603-610.
https://doi.org/10.1037//0022-3514.69.4.603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 설정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혼의 상처

 

 

 

 

  사람들은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상처 받은 자기 자신에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 ‘시간이 약이야’라고 말한다. 또 사람의 행복과 가장 관련성이 강한 요인으로 알려진 유전적 설정점(set point)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사람들은 모든 환경에 빠르게 적응(adaptation)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유전적으로 설정된 행복의 수준, 즉 설정점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 2010년 8월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Homme(창민, 이현)의 《밥만 잘 먹더라》 가사 중에서

 

 

  위 노래 가사처럼 아무리 모진 사랑의 시련을 겪더라도 ‘한 순간 뿐이고,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자고,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자명한 사실일까? 시간이 정말 모든 것을 해결해줄까? 너무 자명한 사실이기에 정말 그런지 검증해볼 필요도 없는 것일까?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Science)이다. 과학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술해주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만약 세상의 풍파를 겪더라도 한 순간 뿐이고,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자고, 죽는 것도 아니라면 그러한 현상이 관찰되어 그렇게 기술될 것이지만, 아니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Lucas(2005)의 종단연구는 바로 이 상식-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에 대한 것이고, 이 상식이 잘못되어 있음-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을 보여준다.
  Lucas(2005)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상식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무려 18년이다. 즉 이 연구는 1984년부터 시작되어 2002년까지 계속되었다. 1984년 당시 가정을 이룬(결혼 상태인) 사람 3만 명 이상이 참여하였는데, 이들의 과제는 자신의 삶의 만족도(Life satisfaction)을 0-10점 사이로 보고(0: 최악의 삶, 10: 최상의 삶)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날 때마다 삶의 만족도를 보고함과 동시에 그 사이에 이혼을 했는지 등을 보고하게 하였다.


  18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삶의 만족도를 매년 보고하면서 그 사이에 이혼을 하는 조건을 충족한 사람은 817명이었다(조사를 시작한 해에 이혼한 사람은 이전 데이터가 전무하므로 제외). 이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재료가 모두 모였다. 바로 이 817명의 행복이 지난 18년 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한다면, 이혼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의 가장 좋은 약이 시간이었는지 아닌지가 드러날 것이다.

 

 

 

 


그림. 이혼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있기 전과 후의 행복 변화. X축은 18년간의 시간 흐름을 보여준다. ‘0’은 이혼이 있었던 해이고, -8년은 이혼이 발생하기 8년 전을 6은 이혼이 발생한 후 6년 후를 의미한다. Y축은 삶의 만족도의 변화인데, 각 사람의 삶의 만족도 평균, 즉 각자의 행복 설정점을 ‘0’으로 표준화한 후, 0보다 낮은지 높은지로 표현한 수치이다.

 

  그림은 바로 이 분석의 결과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각 사람이 이혼한 해를 0으로 전환했을 때, 이혼 전과 후의 삶의 만족도(행복)가 어떤 패턴으로 변화하는지를 모형화한 것이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혼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이혼하기 8년 전부터(-8) 설정점(각자의 평균, 그래프에서는 ‘0’) 이하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혼이 발생하기 직전 해(-1년)의 삶의 만족도가 최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혼한지 6년이 지났지만, ‘0’점 즉 개인의 삶의 만족도 설정점(set point)로 회복하지 못하고, 설정점보다 0.42점 낮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의 만족도가 설정점보다 낮은 정도가 남성이 여성보다 더 심했는데, 이혼 남성은 6년이 지나도 설정점보다 0.56점 낮은 만족도를 보였고, 여성은 6년이 지나도 설정점보다 0.28점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본 연구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상식이 과학적 사실이 아닌, 신화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실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아울러 인간의 행복과 관련성이 높은 또 다른 조건인 자발적 행동(voluntary behavior)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설정점 수준으로 행복을 회복하는 것과 설정점 이상의 행복을 지속시키는 것에 모두 유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Time does not heal all wounds.
시간이 모든 상처를 낫게 해주진 않는다.

 

 

*더 알고 싶다면,

Lucas, R. E. (2005). Time does not heal all wounds: A longitudinal study of reaction and adaptation to divorce. Psychological Science, 16(12), 945-950.
https://doi.org/10.1111/j.1467-9280.2005.01642.x

 

General Happiness Series 

소득불평등과 이스털린 패러독스

소득증가의 힘은 소득 불평등이 감소시킨다.
: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3

 

 

 

 

  지금 이 순간 나보다 부자인 친구가 나보다 행복할까? 이 질문에 대한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대부분 ‘네(yes)’일 가능성이 높다. 같은 시점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리를 가질 가능성이 높고, 돈을 사용하여 서비스를 받음으로써 존중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즐거운 오락을 즐길 가능성이 높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높으며, 지루함, 우울, 신체적 고통 등을 경험할 가능성이 낮다. 이처럼 소득은 인간의 기본욕구 충족에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같은 시점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기본욕구를 더 충족시킬 수 있고, 이에 따라 더 행복할 수 있다.

 

  자!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부자인 그 친구는 10년 전보다 연소득이 3배 증가했다. 그 친구는 10년 전보다 지금 더 행복해졌을까? 비슷하게 나도 10년 전보다 연소득이 3배 증가했다. 나는 10년 전보다 지금 더 행복해졌을까? 이것에 대한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대부분 ‘아니오(no)’일 가능성이 높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인 요인은 두 가지 정도다. 먼저 그 친구는 10년 전에도 나보다 부자였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보다 부자이다. 즉 두 친구 동일하게 3배 씩 소득이 증가했지만, 내가 부자였던 그 친구보다 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것이 아니다. 경제적 지위는 그대로다. 즉 실질 소득 증가와는 별개로 내 사회-경제적 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에 따라 내가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사실상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자 친구가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 부자이던 사람이 3배 더 부자가 됐다고, 하루에 3끼 먹던 것을 9끼 먹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두 번째, 요인은 비율로 봤을 때는 동일한 3배이지만, 부자이던 친구의 3배 자산 증가와 가난하던 나의 3배 자산 증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산이 천만원이던 내가 10년 후 자산이 3배 늘어, 가지게 된 것은 삼천만원이다. 즉 실제 자산 증가는 이천만원이다. 그러나 원래 자산이 2억원이던 부자 친구의 3배 늘어난 자산은 6억원이다. 즉 4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요약하면 나는 이천만원 늘었지만, 친구는 4억원이 늘었고, 나는 3천만원이 되었지만, 친구는 6억원이 되었다. 친구와 나의 자산 차이가 10년 전에는 1억 9천만원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5억 7천만원 차이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다. 부자인 사람은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 사람과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 소득불균형(income inequality)이 특정 기간 동안 실질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행복을 크게 증가시키지 못하는 주원인이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이다(Gini, 1912).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는 0에서 1사이의 수치로 표시되는데 소득분배가 완전평등한 경우가 ‘0’, 완전불평등한 경우가 ‘1’이다.

 

 

 


그림 1. 로렌츠 곡선이다. X축은 인구누적 비율을 Y축은 소득누적 비율을 보여준다. 소득 불평등도는 A면적을 A와B를 합친 면적으로 나누어서 계산한다. 즉 A/(A+B)로 표현할 수 있다.

 

  지니계수는 그림-1과 같은 로렌츠곡선을 이용하여 계산할 수 있다. 로렌츠곡선을 그리기 위해서는 소득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 순으로 전체 인구를 나열하여 총인구를 100으로 설정하고 가로축은 인구누적비율로, 세로축은 이 사람들의 소득을 차례로 누적한 총소득을 100으로 하는 소득누적비율로 설정한다. 그리고 인구누적비율과 해당소득누적비율을 연결한 선을 로렌츠곡선(Lorenz curve)이라고 정의한다.

  지니계수는 대각선과 로렌츠곡선 사이의 면적(A)을 대각선 아래 삼각형 전체의 면적(A+B)으로 나누어 얻은 값과 같기 때문에 로렌츠곡선을 이용하여 계산한다[A/(A+B)]. 소득분배가 완전히 평등하다면, 즉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다면 대각선과 로렌츠곡선 사이의 면적이 ‘0’이 되어 지니계수 역시 ‘0’이 된다. 반대로 소득분배가 완전히 불평등하다면 로렌츠곡선은 직각의 형태를 갖게 된다. 이때는 대각선과 로렌츠곡선 사이의 면적이 대각선 아래 삼각형 전체의 면적과 일치하여 지니계수는 ‘1’이 된다.

 

 

 


그림 2. 소득불평등과 아주 행복하다고 응답하는 사람의 비율의 관계.

 

  Oishi와 Kesebir(2015)는 이 지니계수를 활용하여 소득불균형이 소득의 행복 증진 효과를 막는 중요한 요인임을 개인수준과 국가수준에서 보여주었다. 그림-2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지니계수가 낮은 해일수록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 증가하지만, 지니계수가 높은 해일수록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 감소함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소득이 불평등해질수록(지니계수가 높아질수록)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 감소하고, 소득이 평등해질수록(지니계수가 낮아질수록)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 증가한다. 이는 개인수준의 행복에 소득불평등이 미치는 효과를 보여준다.

 

 

 


그림 3. 소득불균형 그리고 돈과 행복사이의 연관성. X축은 지니계수이고, Y축은 돈과 행복의 연관성이다.

 

  그림-3은 소득불평등이 심한 국가(지니계수가 높은 국가)일수록 소득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가 작고, 소득불평등이 낮은 국가(지니계수가 낮은 국가)일수록 소득이 행복에 미치는 효과가 높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페루(Peru)같은 국가는 지니계수(X축)가 .5으로 매우 높은데, 소득과 행복의 관계(Y축)이 ‘0’에 가깝다. 즉 행복과 소득이 거의 관계가 없다. 그러나 스웨덴(Sweden)은 지니계수가 .3 이하로 상당히 낮은데,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5로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들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이 이스털린 패러독스를 해소하는데 유익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한 나라의 평균소득 증가가 1% 부자들에 의해 견인된 것이라면, 그리고 나머지 99%의 소득은 아무런 증가가 없었다면, 그 나라의 평균 행복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 나라의 평균소득 증가가 그 나라 사람 30% 이상의 소득 증가에 의해 견인된 것이라면, 그 나라의 사람 30%의 행복이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알고 싶다면,
Oishi, S., & Kesebir, S. (2015). Income inequality explains why economic growth does not always translate to an increase in happiness. Psychological Science, 26(10), 1630-1638.
https://doi.org/10.1177/0956797615596713

 

Gini, Corrado (1912). Variabilità e mutabilità. Reprinted in Pizetti, E.; Salvemini, T., eds. (1955). Memorie di metodologica statistica. Rome: Libreria Eredi Virgilio Ves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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