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시간 베풂의 법칙과 행복

100시간 베풂의 법칙과 행복

 

은퇴 후에 타인이나 공동체, 사회 전체를 위해 매년 100시간을 베푸는 것은 마법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2008년 호주에서 60대 중반 성인 2,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간 봉사시간이 100~800 시간인 사람이 100시간보다 적거나 800시간보다 많은 사람보다 더 큰 행복을 느꼈고, 삶의 만족도도 높았다(Windsor, Anstey, & Rodgers, 2008).

 

미국에서 1998년에 60대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유사한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최소 10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한 성인이 이로부터 2년 후인 2000년에도 살아 있는 비율이, 봉사활동 시간이 100시간 보다 적은 성인들보다 높았다(Lum& Lightfoot, 2005; Luoh & Herzog, 2002). 자원봉사를 100시간 이상 한 것이 2년 후에 생존율에 더 이점을 가지진 않았다. 이렇게 100시간을 기준으로 행복과 만족도, 수명이 증가하는 현상을 자원봉사 100시간의 법칙이라 부른다.

 

100시간은 1년을 50주라고 봤을 때, 매주 2시간씩 투자하면 채울 수 있는 수치이다. 실제로 매주 하루를 정하여 2시간씩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년 후 행복감, 삶의 만족도, 자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Booth, Park, & Glomb, 2009).

 

새로운 영역에서 일주일에 두 시간씩 봉사하여 연간 100시간을 봉사하는 것은 우선순위에 있는 자신의 일을 희생시키거나 무리하는 일 없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 야구에서 배트로 공을 치기에 가장 효율적인 곳)이다. 또한 자원 봉사를 한 사람과 이것의 수혜자 모두에게 기여할 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의 균형을 찾는 지점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1년에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과 그 봉사활동을 통해 기술적, 사회적, 조직적 지식 및 기술을 얼마나 습득할 수 있었는지를 묻는 조사를 실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일주일에 5시간 까지는 봉사활동 시간이 증가할수록 자원봉사에서 습득하는 지식과 기술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했다. 그러나 봉사활동 시간이 일주일에 5시간 넘어가자 자원봉사를 통해 얻는 것이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 났고, 일주일에 10시간이 넘게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그랜트, 2013, p. 284-285).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애덤 그랜트(Adam M. Grant). (2013). 이기적인 이타주의자.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윤태준 역) (6, pp. 284-285). 서울, 서울: 생각연구소.

 

Booth, J. E., Park, K. W., & Glomb, T. M. (2009). Employersupported volunteering benefits: Gift exchange among employers, employees, and volunteer organizations. Human Resource Management, 48(2), 227-249.

 

Lum, T. Y., & Lightfoot, E. (2005). The effects of volunteering on the physical and mental health of older people. Research on Aging, 27(1), 31-55.

 

Luoh, M. C., & Herzog, A. R. (2002). Individual consequences of volunteer and paid work in old age: Health and mortality. Journal of Health and Social Behavior, 43(4), 490-509.

 

Windsor, T. D., Anstey, K. J., & Rodgers, B. (2008). Volunteering and psychological well-being among young-old adults: How much is too much? The Gerontologist, 48(1), 59-70. 

연령에 따른 긍정정서 표현

연령에 따른 긍정정서 표현

 

 

 

 


*출처: Pennebaker & Stone (2003)의 그림-1

 

  페니베이커와 스톤(2003)은 17개 대학교에서 수행된 45건의 글쓰기 연구에 참여한 바 있는 8세부터 80세 (평균연령 = 24세)까지의 사람들 3,200명의 글을 대상으로 연령대별 언어사용 특성을 분석했다. 분석에는 언어 조사와 단어 계산 프로그램 (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 LIWC)가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연령이 증가할수록 글에 긍정적 감정 (기쁜, 감사한, 좋은, 아름다운, 긍정적인 등)을 표현하는 비율이 증가하였고, 특히 70대가 이상에게서 긍정적 감정 사용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다음 글은 80세 퇴직자의 글이다:

 

  “나는 나이가 여든이지만 인생에 마지막이란 영영 없을 것처럼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전처럼 민첩하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암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남아 있는 것들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면 바로 그 순간부터는 여전히 이곳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고 애쓴다. 38차례에 걸쳐 치료를 받으면서 아침마다 혼자서 차를 몰고 갔던 시간들은 명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나 자신의 긍정적인 태도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반면 연령이 어릴수록 글에 부정적 감정 (슬픈, 화난, 괴롭히는, 짜증나는, 무시하는, 나쁜 등)을 표현하는 비율이 증가하였고, 특히 10대에게서 부정적 감정 표현이 가장 많았다가 차츰 감소했다. 다음 글은 8세 초등학생의 글이다:

 

  “나의 원수 랜디는 나를 하나게 한다. 밖에서 나에게 욕을 하고, 나를 무시하고, 쉬지 않고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그 애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면 나도 그 애에게 욕을 한다. 그 애는 쉬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그러면 나도 그 애를 괴롭히기 시작하고, 그러면 그 애가 다시 나를 약올리고, 나도 그 애를 약 올리고, 그러면 나는 그 애를 무시하려고 애쓰는데 그 애는 계속 나를 화나게 한다. 우리 엄마는 그 애가 나쁜 영향을 주는 애라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Pennebaker, J. W., & Stone, L. D. (2003). Words of wisdom: Language use over the life spa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2), 291-301. 

심적 충전과 동기부여를 위한 영향력 지각의 힘

심적 충전과 동기부여를 위한 영향력 지각의 힘

    

 

 

버클리대학 심리학자이자 직장에서 경험하는 정신적 에너지 소진 연구의 선구자인 크리스티나 매슬랙(Maslach, Schaufeli, & Leiter, 2001)에 따르면 모든 직종 중에서 남을 가르치는 일(공교육 교사 등)이 심적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크다. 왜냐하면, 교사와 같이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의 효과(학생의 성취 또는 긍정적 변화)를 대부분 자신이 가르치는 기간 안에 확인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자신의 영향력을 낮게 지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르치는 일 종사자는 보람을 인지하기 힘들고, 동기부여를 위한 적절한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다가 지치게 된다. 이렇게 심적 에너지 소모가 큰, 가르치는 일에 종사자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스물네 살의 Teach for America (TFA, 열악한 교육환경에 있는 미국 청소년들의 교육과 상담, 코칭을 진행하는 비영리 봉사단체로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초보교사 콘리 캔러핸(Conrey Callahan)나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과 성공 기회를 주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요.”라는 큰 꿈을 안고 TFA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 파견된 학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오버브룩 고등학교(Overbrook high school)로 영화 배우이자 가수인 윌 스미스(Willard Carroll “Will” Smith Jr., born September 25, 1968)가 졸업한 학교로 유명하다. 또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블루포드(Guion S. Bluford, Jr, born November 22, 1942)도 이 학교 출신이다. 심지어 오버브룩은 NBA 프로농구 선수를 10명 이상 배출한 미국 고등학교 여섯 곳 중 한 곳이다.

 

그러나 오버브룩 고등학교 주변의 환경은 이러한 긍정적 측면과는 거리가 멀다. 오버브룩 고등학교가 있는 필라델피아 59번가는 미국에서 마약거래가 가장 활발한 10곳 중 한 곳이고, 범죄발생 통계를 근거로 지정하는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위험한 지역중 하나에 선정 된 적도 있다. 또한 매년 재학생 1,200명 중 500명 이상이 폭행, 무기소지, 마약 등의 이유로 정학을 당하고, 입학생이 졸업하는 비율이 54% 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대학입학시험 SAT 점수는 전국평균보다 300점 이상 낮으며, 심지어 재학생 75%SAT 성적이 미국 하위 25%에 속한다.

 

다음 세대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겠다는 콘리의 이상주의적인 꿈은 오버브룩 고등학교라는 가혹한 현실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녀는 오전 645분까지 학교에 도착해 새벽 한 시까지 학교에 남아 스페인어 수업 계획과 채점을 끝내야 했다. 낮 시간에는 싸움을 말리고, 범죄를 단속하고, 1년에 단 이틀밖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묻나 결석생을 찾아 헤맸다.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결국 콘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끔찍했어요. 완전히 지치고 너무 질려서 언제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죠. 두 번 다시 그 학교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어요. 그 학교, 그 학생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어요.”

 

그녀가 보여준 태도는 심적 에너지 소진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이러한 증상은 콘리만 겪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TFA 봉사자들은 최초 계약기간 2년이 끝나면 절반 이상이 일을 그만두고, 3년이 지나면 80퍼센트가 그곳을 떠난다. 심지어 TFA 출신 중 약 3분의 1은 아예 교육현장을 떠난다. 콘리와 같은 교사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희생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할 때가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이루어진 포괄적인 연구에 따르면,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하면 일의 능률이 크게 떨어진다. 탈진한 직장인은 집중력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오랫동안 열심히, 활기차게 일할 만한 에너지가 부족해서 일의 양과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 에너지를 소진한 직장인은 우울증, 만성피로, 불면증, 면역력 감소, 알코올 의존증 그리고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이렇게 심적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하여 모든 동기부여를 상실했던 콘리가 여전히 TFA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콘리는 어떻게 심적 에너지 소진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콘리가 취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영향력을 쉽고 빠르게 지각할 수 있는 일을 진행한 것이었다. 단시간에 인지하기 어려운 학생의 성취나 긍정적 변화를 찾고자 하기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자신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 콘리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주말을 활용하여 같은 TFA 교사를 돕는 일을 병행하였다. 교사들에게 콘텐츠를 지원해주거나, 시험문제 출제 혹은 새 강의 계획 수립을 도와주었다. 학생들을 돌보는 일에 비해 같은 동료를 도와주는 일은 대부분 즉시 감사하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도움 받은 교사가 수업과 학생관리를 더 수월하게 진행하게 됨으로써 다음 주에 콘리를 만났을 때 행복과 기쁨을 표현하였다.

 

더하여 역시 주말을 활용하여 저소득층이지만, 학업 의지가 높고 비교적 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학업코칭을 진행하였다. 학업 의지가 높은 아이들은 콘리의 학업코칭을 통해 더 높은 성취를 거둘 수 있었다. 이렇게 주말을 활용하여 동료 교사를 돕고 학업 의지가 높은 학생들을 별도로 돕는 것은 콘리가 자신의 영향력을 지각할 수 있도록 견인하였고, 일에 대한 보람과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Maslach, C., Schaufeli, W. B., & Leiter, M. P. (2001). Job burnout. Annual Review of Psychology, 52(1), 397-422.

 

http://www.annualreviews.org/doi/abs/10.1146/annurev.psych.52.1.397

 

애덤 그렌트(Adam Grant). (2013). 이기적인 이타주의자: 지쳐 떨어지는 사람과 계속해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의 차이.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윤태준 역) (6, pp. 264 ~ 274), 서울, 서울: 생각연구소.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barcode=9788962605815

 

실적 나쁜 사람을 실적 좋은 팀에 넣으면?

실적 나쁜 사람을 실적 좋은 팀에 넣으면?
: 실적 좋은 팀에 악영향을 끼친다!

 

 

 

 

  누군가를 바로잡고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를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팀원들이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탁월한 팀을 맡고 있는 리더가 있다고 해 보자. 팀원들은 하나 같이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단결력까지 강하다. 그런데 또 다른 팀에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적도 형편없는 직원이 있다. 리더는 그 문제의 직원이 탁월한 팀에서 일하다 보면 다른 팀원들의 영향을 받아 나아지리라 생각하고 그 직원을 탁월한 팀으로 이동시킨다.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이런 문제를 연구한 심리학 논문이 많은데, 결론은 분명하다[1]. 문제의 직원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훌륭한 직원으로 거듭났을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팀 전체의 수준이 떨어진다. 새로 들어온 팀원은 냉소적이고 오만하며 신경증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한다. 습관적으로 불편을 늘어놓고 책임을 떠넘기며 그나마 맡은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의 잦은 실수로 일의 진행이 늦어지고, 다른 팀원이 그의 업무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그 직원은 다른 팀원들과 똑같은 월급을 받는다. 그러면 열심히 일하는 다른 팀원들에게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왜 내가 이 프로젝트 때문에 고생해야 해? 새로 들어온 팀원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교사가 문제 아동을 비교적 착한 소년들 모임에 억지로 끼워 넣으면 모임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고 비행 발생 비율이 올라간다[2, 3, 4]. 언제나 추락은 상승보다 훨씬 빠르고 쉽다.

 

[1]  Barrick, M. R., Stewart, G. L., Neubert, M. J., & Mount, M. K. (1998). Relating member ability and personality to work-team processes and team effectivenes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83(3), 377-391.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은

[2] Dishion, T. J., McCord, J., & Poulin, F. (1999). When interventions harm: Peer groups and problem behavior. American Psychologist, 54(9), 755-764.

 

[3] Rhule, D. M. (2005). Take care to do no harm: Harmful interventions for youth problem behavior. Professional Psychology: Research and Practice, 36(6), 618-625. 

[4] McCord, J., & McCord, W. (1959). A follow-up report on the Cambridge-Somerville Youth Study.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322(1), 89-96.

 

발췌: 조던 B. 피터슨(Jordan B. Peterson).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혼돈의 해독제. 강주헌 역. 서울, 한국: 메이븐. 

소소한 일상의 고마움

소소한 일상의 고마움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참 감사하다.

 

 

“범사에 감사하라 (In everything give thanks)”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살다보면 지루하리만치 반복되는 일상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왜 나에겐 감사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거지?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지 한 번 살펴보자.
 

 

 

 

그림. 통계청이 2016년에 발표한 사망자수와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연합뉴스에서 편집한 것이다.
(출처: https://goo.gl/Y9NjfZ)

 

  [그림]은 2016년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한국인 사망자수와 사망원인 통계이다. 여러분이 뉴스나 교통사고만 다루는 방송 때문에 발생한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 heuristic)으로 인해 ‘한국인 사망원인’이라는 말을 듣자마다 ‘순위에 있을 거야’라고 추측했을 교통사고 사망자는 순위에 들지도 못할 정도로 더 강력한 사망원인들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2015년 한 해 168,425명이 다양한 원인으로 죽었다(Kim, 2016). 그중 가장 강력한 원인은 암으로 독보적인 원인이며, 2015년 한 해에만 76,855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 다음은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으로 역시 2015년 한 해에 28,32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다음으로는 뇌혈관 질환이 비슷한 정도의 생명을 빼앗았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보통 21세기 과학문명 사회에 이런 걸로 죽겠어?”라고 생각하는 폐렴이 당당 4위를 차지했으며, 2015년 한 해에만 14,718명의 목숨을 잃게 했다. 순위에는 없지만, 여전히 매년 2,136명이 결핵으로 죽는다(Kim, 2015). 한국은 OECD 결핵환자 1위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13,513명이나 된다. 특히 10대부터 30대 사이에서는 자살이 가장 강력한 사망원인이다. 40대와 50대는 자살 비율이 낮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두 번째로 높은 원인이다. 2015년 통계이지만, 매년 이정도 인원이 이정도 비율로 죽는다.


  조금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이렇게 다양한 사망원인, 심지어 여러분이 폐렴이나 결핵같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정도만 해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다니, 오늘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니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다가 아니다. Emmons와 McCullough(2003)의 과학적 연구결과는 이렇게 소소한 일상과 살아 있음 그 자체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관찰했다. 구체적으로 연구자들은 192명의 참가자들을 모아 65명은 감사하기 조건에, 64명은 불평하기 조건에, 67명은 통제조건에 무작위로 할당하였다. 참가자들이 할 일은 10주 동안 매주 1번 씩 연구자가 요청한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감사하기 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에게는 “살다보면 크게 때론 작게 감사할만한 일들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보면서, 감사할 만한 일을 5개를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불평하기 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에게는 “살다보면 크게 때론 작게 불만스럽고 짜증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보면서, 불평할 만한 일을 5개를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통제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에게는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보면서,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5개를 매주 한 번 씩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과연 감사하기 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감사했을까? ‘복권에 당첨되어서 감사하다’와 같이 대단한 내용을 기대했다면,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참가자들은 ‘아침에 일어날 수 있어야 감사하다’, ‘나에게 판단력이 있었음에 감사하다’, ‘부모님과 함께 해야 감사하다’, ‘좋은 음악을 들어서 감사하다’와 같이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해 했다. 아마 한두 가지 사건은 참가자 자신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5개 까지 써보려고 하니 결국 소소한 일상이 감사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리라.


  불평하기 조건은 어땠을까? ‘나에게 정말 큰 사건 사고가 있었나서 힘들었다’와 같이 비극으로 가득차 있었을까? 이번에도 그런 내용은 드물었다. 참가자들은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웠다’, ‘기숙사 공동 부엌을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건강 심리학 시험을 망쳤다’, ‘내가 도와줬는데, 친구가 고맙다고 안했다’와 같이 소소한 일상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나마 가장 강력한 것이 시험을 망친 정도다. 즉 사람들은 실제로 엄청난 것에 불평하지도 않는다.


  통제조건의 사람들은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신발장을 정리했다’, ‘의대에 대해 의사와 상담했다’, ‘축제에 참여했다’ 등을 일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주부터는 감사/불평/통제 조건 관련 이벤트 보고와 함께 전체적인 삶의 질이 어땠는지(life as a whole, 1: 끔찍했다, 2: 행복했다), 다음 주가 얼마나 기대되는지(upcoming week, 1: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7: 매우 기대한다), 지난 한 주간의 신체적 증상(physical symptoms), 운동한 시간(hours of exercise)을 측정해보았다.

 

 

 

표. Emmons와 McCullough(2003)의 연구결과

 

  [표]는 이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먼저 매주 동안 매주 감사하기(Grateful) 리포트를 제출했던 사람(평균 = 5.05)이 불평하기(Hassles) 조건 참가자(평균 = 4.67)와 통제하기 조건(Events)의 사람(평균 = 4.66)보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의 질이 높았다. 또한 다음 한 주에 대한 기대치도 매주 감사했던 사람(평균 = 5.48)이, 매주 불평한 사람(평균 = 5.11)과 통제 조건 사람(평균 = 5.10)보다 강함을 확인하였다.


  두통, 경련/현기증, 복통/통증, 호흡 곤란, 가슴 통증, 여드름/피부 자극, 콧물/코피, 근육통/뭉침, 위통, 메스꺼움, 과민성 장염, 식욕 부진, 기침/목 아픔(headaches, faintness/dizziness, stomachache/pain, shortness of breath, chest pain, acne/skin irritation, runny/congested nose, stiff or sore muscles, stomach upset/nausea, irritable bowels, hot or cold spells, poor appetite, coughing/sore throat)과 같은 ‘신체적 증상’의 측면에서도 매주 감사한 사람들은 평균 ‘3.03’건을 보고하면서 매주 불평한 사람들의 ‘3.54’건 그리고 통제조건의 ‘3.75’건 보다 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 시간에 있어서도 매주 감사했던 사람들은 주당 평균 4.35시간을 운동하면서 주당 평균 3.01시간을 운동한 불평조건과, 주당 평균 3.74시간을 운동한 통제조건의 사람들보다 건강을 잘 관리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소소한 감사하기의 위력이다. 소소한 감사하기를 실천한 사람은 불평한 사람과 감사도 불평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더 건강하고, 더 건강관리를 잘한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면 좋겠지만, 그것을 하나의 업무를 받아들여서 스트레스를 받으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매일 소소한 일에 감사하면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에 다 유익하며, 더 행복하다는 뜻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더 알고 싶다면,

 

Emmons, R. A., & McCullough, M. E. (2003). Counting blessings versus burdens: an experimental investigation of gratitude and subjective well-being in daily lif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2), 377-389.

 

Kim, D. (2016, September 27). The first cause of death is ‘cancer’: 10 to 30 are the most suicide deaths. Yonhapnews. Retrieved from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7/0200000000AKR20160927083700002.HTML

 

Kim, S. (2015, October 19). It’s more frightening than Mers. 60 times more tuberculosis deaths. Weekly Donga. Retrieved from  http://weekly.donga.com/List/3/all/11/151046/1 

분노에 직면하지 말고, 멀어지기

분노에 직면하지 말고, 멀어지기

 

*본 내용은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의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 “2장 속마음을 표현해야 건강하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2001911일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후, 버펄로 대학의 연구팀은 같은 날 2000명의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9.11 테러 이후 심적 변화에 대한 글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조사 대상으로 삼은 사람 중 4분의 3이 응답을 했고, 나머지 4분위 1은 요청을 무시했다. 그 후 2년간 버펄로 대학 연구팀은 조사 대상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감정적인 고통이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최초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은 응답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감정적으로 안정돼 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써서 보낸 사람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 전에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써서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덜 상처받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사연을 많이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두 집단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아니라, 처음부터 겪었던 경험의 강도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카르니 긴즈부르크(Karni Ginzburg) 박사와 동료들이 심장마비를 겪고도 살아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이들은 감정을 억누른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을 곰곰이 되씹어보았던 사람들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긴즈부르크 박사의 결론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 억누르는 스타일 때문에 감정적인 사람들보다 상황에 더 잘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분노를 묻어두지 않는 편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맞는 말일까?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한 연구는 과연 이 통념이 그토록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 문제에 대한 40년간의 연구를 검토한 제프리 로어(Jeffery Lohr)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결론은 같았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공격적인 성향을 감소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는 분노를 마음껏 분출하면 잠깐 동안은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그 감정을 감소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1872년 찰스 다윈은 감정을 외부 신호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면 감정이 더욱 강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이 말을 더 깊이 되새겨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의 주장은 행동을 통해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실질적으로 그것이 더욱 확고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감정이라는 것이 행복과 사랑이라면 꼭 나쁠 것은 없겠지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면(분노, 질투, 경멸) 괜히 속 마음을 드러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만 얻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실시된 연구 중에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있다.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 열을 실험 대상자의 팔뚝에 가져다 대는 실험으로, 참가자들은 이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각각 긴장을 푼 표현, 중립적 표현, 부정적 표현을 사용하도록 미리 지시 받았다. 부정적인 표현을 채택한 사람들은 다른 두 집단보다 더 높은 수준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는 감정의 표현 그 자체가 어느 정도는 우리의 진짜 감정에 영향을 미치며, 이 두 영역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속마음과는 다르게 항상 예의 바르게 웃고 있는 일본인들이나 불편이나 불만,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을 교양없다고 판단하는 태국인들은 이러한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더 알아보고 싶다면,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 속마음을 표현해야 건강하다?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 (구계원 역) (2, pp. 39-49). 서울, 서울: 동양북스.

 

목표인가? 욕망인가?

목표인가? 욕망인가?
: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우리는 관심이 있는 대상에 눈길을 보내고 다가가서 살펴보고 만져 보고 소유한다. 인간은 시각적인 존재다. 무엇인가를 보려면 먼저 대상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뭔가를 목표로 삼아 눈길을 보낸다. 인간의 정신은 수렵과 채집에 길들어진 몸이라는 토대 위에 들어서 있다. 수렵은 표적을 정해서 돌멩이 같은 무기를 던져 맞히는 행위이고, 채집은 대상을 줍고 뜯는 행위다. 우리는 목표물을 향해 돌이나 창, 부메랑을 던지는 행위에 익숙하다. 둥근 링을 통과하도록 공을 던지고, 그물망을 향해 공을 때리며, 얼음판 위에 그려진 과녁으로 둥근 화강암 돌덩어리를 굴린다. 또 활과 권총, 소총과 로켓으로 표적을 향해 발사체를 쏘아 올린다. 던지고 쏘는 대상은 그것만이 아니다. 한턱을 쏘고, 질문을 던지고, 돈을 투자하고, 물량도 투하해야 한다. 표적을 맞히거나 점수를 올리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거나 죄를 짓는다. 흥미롭게도 영어의 ‘죄(sin)’라는 단어의 어원은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이다[1]. 목표가 없으면 우리는 항해할 수 없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끝없이 항해해야 한다[2].

 

  우리는 언제나 ‘A’라는 지점에 있고, 동시에 ‘B’라는 지점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때 ‘A’는 기준에 못 미치는 지점이고, ‘B’는 지금보다 더 나은 지점이다. 우리 자신뿐 아리나 이 세상 역시 불충분한 상태로 보기 때문에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늘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었더라도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낸다. 만족은 잠시 뿐이고 곧 호기심이 다시 발동한다. 현재는 부족하고 미래는 낫다는 생각, 이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미래를 보지 않으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현재 상황도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보려면 초점을 맞춰야 하고, 초점을 맞추려면 먼저 대상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다는 것은 대상을 정했다는 것이다. 그 대상 중에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다. 새로운 가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던 문제가 드러나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보인다. 이런 상상을 통해 세상은 바뀌어 왔다. 엉망인 현재 상태를 미래에는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예지력과 창의력은 만성적인 불안과 불만을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는 늘 현재 상태를 목표와 비교한다. 목표는 너무 높거나 너무 낮거나 얼토당토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지 못해 실망하거나 목표를 이루더라도 생각보다 못한 결과에 실망한다.

 

  그래서 먼저 무엇을 볼 것인지 잘 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보기로 작정한 것이 목표인지 아니면, 빗나가서 죄가 될 예정인 욕망인지 점검해 봐야 한다. 목표든 욕망이든 일단 보기로 정하면 다른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처음부터 바른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정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음을 증명한 실험이 있다. 1997년 당시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대학원생이던 대니얼 사이먼스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을 통해 목표와 시각의 관련성을 입증했다[3]. 사이먼스는 ‘지속적인 부주의에 의한 맹시(Sustained inattentional blindness: 사물을 보고 있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흔히 ‘부주의맹’으로 쓰인다)라는 심리 현상을 연구하며 몇 가지 실험을 설계했다. 먼저, 화면에 밀밭 사진을 띄우고 실험 참자가들에게 밀밭을 유심히 보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밀밭을 주시하는 동안 사진이 조금씩 바뀌었다. 밀밭 사이로 난 길이 서서히 희미하게 변한 것이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오솔길이 아니라, 화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큰길이었다. 놀랍게도 실험 대상자 대부분이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자 사이먼스는 더 대담한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다. 실험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사이먼스는 사전에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한 팀에 3명씩 두 팀을 구성해 3 대 3 볼패스 게임을 하는 영상이었다[4]. 두 팀은 엘리베이터 앞 좁은 공간에서 자기 팀원끼리 공을 주고받았다. 한 팀은 흰색 셔츠을, 다른 팀은 검은 색 셔츠를 입었다. 두 팀은 멀찍이 떨어져 있지도 않고, 구분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또한 6명이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가까이 찍어서 표정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이먼스는 그 영상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주며 흰색 팀 팀원들이 공을 몇 번이나 주고받는지 세어 보라고 요구했다. 영상을 본 실험 참가자들은 대부분 15회라고 대답했다. 정답이었다. 많은 참가자가 정답을 맞혀서 만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실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사이먼스는 뿌듯해하는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고릴라를 봤습니까?”

 

장난하는 건가? 고릴라라니?

 

  어리둥절해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사이먼스가 말했다.

“영상을 다시 한번 보시겠어요? 패스 횟수를 셀 필요는 없습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나타나 가슴을 두드렸다. 고릴라만큼 큰 사람이 화면 정중앙에서 가슴을 두드리는데 알아채지 못하는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험 참가자 절반 가량이 영상을 처음 볼 때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부주의맹에 대한 사이먼스의 실험이 하나 더 남았다. 이번에는 바텐더가 손님들을 대접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다. 중간에 바텐더가 뭔가를 가지러 주방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번에도 실험 참가자 대부분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다. 원래 바텐더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났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나라면 알아챘을 거야!’라고 생각하는가? 안타깝지만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바텐더의 성별이나 피부색이 바뀌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부주의맹은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시각이 매우 복잡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시각은 정신 생리학적으로나 신경학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감각이다. 망막은 안구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투명한 신경조직이다. 망막이 빛을 받아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시긴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 망막 한가운데에 있는 중심와(황반-그래서 황반변성이 오면 실명한다)이다. 망막으로 들어온 빛은 중심와에서 초점을 맺는다. 중심와가 고해상도로 빛을 처리해 주는 덕분에 사물을 세밀하게 구별하고 얼굴과 형체 등을 인식할 수 있다.

 

  시각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훨씬 복잡하다. 중심와를 이루는 세포들이 시각 과정의 첫 단계를 처리하는데만도 시각 피질에 있는 만 개의 세포가 관여한다[5]. 여기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만 개의 세포가 추가로 필요하다. 만약 망막 전체가 중심와로 되어 있다면 뇌가 지금보다 몇 배는 커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인간의 모습은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을 닮았을 것이다. 따라서 뭔가를 보려면 대상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인간의 시각이 감지하는 대부분은 주변적이고 해상도가 떨어진다. 중요한 것들만 중심와가 처리한다. 목표로 삼은 대상을 고해상도로 처리하는 데 시각 능력이 집중된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진다.

 

  관심 밖에 있던 뭔가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집중을 방해하면 그게 뭔지 보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이먼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집중은 고릴라에 의해 깨지지 않았다. 고릴라가 현재 진행 중인 과제를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공에 집중하는 동안 고릴라는 다른 배경과 다를 바 없었다. 집채만 한 덩치의 유인원이 나타나도 관심이 다른 데 있으면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를 견뎌 낸다. 개인적인 관심사에만 집중하며 나머지는 무시한다.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에만 시선을 둔다. 그럴 방해하는 장애물은 눈에 들어오지만 그 밖의 것들은 보지 못한다. 우리와 관련 없는 것이 더 많아 보지 못하는 것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서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볼 것인지 신중하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흰두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자 인도 문화의 기반이 되는 <베다>는 ‘인지된 세계는 겉모습이나 환영에 불과하다’라는 심오한 개념을 가르쳐 준다. <베다>에서는 이를 ‘마야(maya)’라고 한다. 인간은 욕망 때문에 눈이 멀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과녁의 목표인가? 아니면 그 목표에서 벗어나 있는 욕망인가?

 

 

[1] sin이란 단어는 ‘과녁을 벗어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ἁμαρτάνειν (hamartánein) (The term hamartia derives from the Greek ἁμαρτία, from ἁμαρτάνειν hamartánein, which means “to miss the mark” or “to err”.)에서 파생되었다. 함의된 뜻으로는 판단의 오류, 치명적인 결함 등이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Hamartia

 

[2] Gibson, J. J. (1979). The ecological approach to visual perception. Boston, MA, US: Houghton, Mifflin and Company.

 

[3] Simons, D. J., & Chabris, C. F. (1999). Gorillas in our midst: Sustained inattentional blindness for dynamic events. Perception, 28(9), 1059-1074.

 

[4] http://www.theinvisiblegorilla.com/videos.html

 

[5] Azzopardi, P., & Cowey, A. (1993). Preferential representation of the fovea in the primary visual cortex. Nature, 361(6414), 719-721.


발췌: 조던 B. 피터슨(Jordan B. Peterson).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혼돈의 해독제. 강주헌 역. 서울, 한국: 메이븐. 

마이너스 요소가 하나도 없어야 행복이라고?

마이너스 요소가 하나도 없어야 행복이라고?

: 행복에 집착하지 않고 기대치를 낮추기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지나가는 부모에게 아이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우리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행복은 최고의 선()이자 모든 인간이 일생 동안 추구해야할 목표이며, 혹여 가장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더라도 매우 정당한 인간의 목표라는 것에는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Briers, 2012).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행복을 부의 축적, 성공 또는 성취라고 잘못 가정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사회성이 서툴러서 생긴 문제,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체계적이지 못한 생활 방식 때문에 생겨난 부담감, 또는 직장에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장애물 등 어떠한 행태를 취하고 있든 문제는 항상 이 공통의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놓여 있는 장애물로 간주된다.

 

이러한 가정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장애물을 제거하면 행복이 올 것이라고 너무 쉽게 간주한다는 것이다. 즉 내 성취를 저해하는 마이너스 요인들을 제거하면, 마치 바로 플러스가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Briers, 2012). 그런데 이것은 논리적인 비약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이너스를 모두 제거 하면, (zero)은 될 수 있겠지만, 바로 플러스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이너스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마이너스 요인이 하나라도 존재하면 행복이 아니다혹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불편함이 하나라도 존재하면 행복이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가설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것이 문제이다(Schwartz et al., 2002).

 

다양한 연구들은 마이너스 요인이 하나라도 존재하면 행복이 아니다라는 식의 가설을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수록 행복이 그 사람을 피해가는 경향이 있다는 보여준다(Gruber, Mauss, & Tamir, 2011; Mauss et al., 2011). 먼저 심리학자 WilsonSchooler(1991)2000년 송년의 밤 행사에 실망감을 표시한 참가자의 83% 중에서 가장 심하게 실망한 사람들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모든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갈 것이라 가정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see also, Wilson et al., 1993).

 

마찬가지로 Mauss와 동료들(2012)행복에 대한 가치 평가의 역설적인 효과에 대한 보고에서 행복이 자신에게 특별히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노출도니 이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을 밝혀냈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미국 작가 로라 몬쿠어(Laura Moncur)행복의 열쇠는 낮은 기대치이다라고 말했고,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행복해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당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역설했다(Briers, 2012).

 

행복 연구의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이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와 동료 연구자들에 따르면, 자기 성철과 자아 분석을 하는 사람일수록 일관되게 스스로 평가하는 행복의 수준이 낮았다고 보고한다(Lyubomirsky. 2001; Lyubomirsky & Nolen-Hoeksema, 1995; Nolen-Hoeksema, Wisco, & Lyubomirsky, 2008). 또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스스로에게 행복한지 물어보라. 그러면 더 이상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는데 행복과학 연구자들이 말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Briers, 2012).

 

긍정심리학자와 행복과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의 정의는 행복에는 즐거움과 고통이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구체적으로 행복은 감정적 즐거움과 만족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가 적절히 결합된 상태이다. 이 분야의 권위자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매일 즐거운 상태,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기분 그리고 자신의 삶이 유의미하며 가치 있다고 인지하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한다(Lyubomirsky, Sheldon, & Schkade, 2005).

 

매일 즐거운 상태만 바라본다면, 고통이 전혀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또 행복을 의미추구로만 바라본다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기만 하여 매일 즐거운 상태를 경험하기 어려워 불행해진다. 행복의 정의에 매일매일 즐거운 감정을 경험하는 것과 자신의 삶이 유의미하며 가치 있다고 인지하는 상태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 때, 때로는 취미활동이나 여행, 편안하게 밖을 바라보는 시간, 산책 등으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즐거움을 얻고, 한편으로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고된 훈련, , 반복 등)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부정적 감정들도 감수하는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마이너스 요소가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은 당신을 행복에서 자꾸 멀어지게 만든다.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감수하되 이 고통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즐거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족하다.

    

 

*더 알고 싶다면,

 

Briers, S. (2012). Psychobabble: Exploding the myths of the self-help generation. Edingburg, UK: Pearson Education Limited.

https://goo.gl/LER8b6

 

Gruber, J., Mauss, I. B., & Tamir, M. (2011). A dark side of happiness? How, when, and why happiness is not always good.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6(3), 222-233.

http://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1745691611406927

 

Lyubomirsky, S. (2001). Why are some people happier than others? The role of cognitive and motivational processes in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6(3), 239-249.

https://www.ncbi.nlm.nih.gov/pubmed/11315250

 

Lyubomirsky, S., & Nolen-Hoeksema, S. (1995). Effects of self-focused rumination on negative thinking and interpersonal problem solv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9(1), 176-190.

http://dx.doi.org/10.1037/0022-3514.69.1.176

 

Lyubomirsky, S., Sheldon, K. M., & Schkade, D. (2005). Pursuing happiness: The architecture of sustainable change.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9(2), 111-131.

http://dx.doi.org/10.1037/1089-2680.9.2.111

 

Mauss, I. B., Savino, N. S., Anderson, C. L., Weisbuch, M., Tamir, M., & Laudenslager, M. L. (2012). The pursuit of happiness can be lonely. Emotion, 12(5), 908-912.

http://dx.doi.org/10.1037/a0025299

 

Mauss, I. B., Tamir, M., Anderson, C. L., & Savino, N. S. (2011). Can seeking happiness make people unhappy? Paradoxical effects of valuing happiness. Emotion, 11(4), 807-815.

http://dx.doi.org/10.1037/a0022010

 

Nolen-Hoeksema, S., Wisco, B. E., & Lyubomirsky, S. (2008). Rethinking rumination.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5), 400-424.

http://journals.sagepub.com/doi/abs/10.1111/j.1745-6924.2008.00088.x

 

Schwartz, B., Ward, A., Monterosso, J., Lyubomirsky, S., White, K., & Lehman, D. R. (2002). Maximizing versus satisficing: Happiness is a matter of choi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3(5), 1178-1197.

http://dx.doi.org/10.1037/0022-3514.83.5.1178

 

Wilson, T. D., & Schooler, J. W. (1991). Thinking too much: Introspection can reduce the quality of preferences and decis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0(2), 181-192.

http://dx.doi.org/10.1037/0022-3514.60.2.181

 

Wilson, T. D., Lisle, D. J., Schooler, J. W., Hodges, S. D., Klaaren, K. J., & LaFleur, S. J. (1993). Introspecting about reasons can reduce post-choice satisfac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19(3), 331-339.

http://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0146167293193010

돕는 사람의 희열: 베풂의 따뜻한 빛

돕는 사람의 희열: 베풂의 따뜻한 빛

 

*본 콘텐츠는 애덤 그랜트(Adam Grant)의 저서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윤태준 역) “6장 이기적인 이타주의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던(Elizabeth Dunn)과 라라 애크닌(Lara Aknin) 그리고 마이클 노턴(Michael Norton)이 함께 수행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아침에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 점수를 매겼다(Dunn, Aknin, & Norton, 2008). 그런 다음 뜻밖에도 20달러가 든 봉투를 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오후 다섯 시까지 그 돈을 써야 한다.

 

이후 다시 행복 점수를 매겼을 때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쓴 사람과 남을 위해 쓴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하다고 느꼈을까?

 

대개는 자신을 위해 쓴 사람이 더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지만(경제학적인 가정), 사실은 그 반대다. 만약 당신이 그 돈을 당신을 위해 쓴다면 행복감은 변치 않을 것이다. 실험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쓴 사람이 자신이 많이 행복해졌다고 대답했다.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베풂의 따뜻한 빛이라 부르고(Andreoni, Harbaugh, & Vesterlund, 2010), 심리학자들은 돕는 사람의 희열이라고 칭한다. 신경과학 분야에서 최근에 발견한 바에 따르면 베풂은 보상과 의미를 느끼는 뇌의 중추를 실제로 활성화한다(Harbaugh, Mayr, & Burghart, 2007; Moll et al., 2006). 우리가 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면 뇌가 삶의 목적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돈을 줄 때만 그런 혜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투자할 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스물네 살 이상의 미국인 2,8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자원봉사는 1년 후 그들이 느끼는 행복과 삶의 만족도, 자신감, 우울증 정도를 예측하는 훌륭한 지표임이 밝혀졌다(Thoits & Hewitt, 2001).

 

자원봉사를 하는 예순 다섯 살 이상의 성인은 이후 8년간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더 작았다(Li & Ferraro, 2005). 자원봉사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실제로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Musick, Herzog, & House, 1999). 건강 상태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정도 등 여러 가지 변수를 통제해도 결과는 변치 않았다. 즉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나았다(Brown et al., 2003).

 

성인이 아기를 안마해주거나 반대로 안마를 받게 하는 실험도 있었다(Field et al., 1998). 그 결과를 보면 안마를 해준 사람이 안마를 받은 사람보다 더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졌다. 베풂은 삶에 의미를 더해주고 골칫거리를 피하게 해주면 자신이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도록 도와준다. 즉 삶의 의미는 베풂을 행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나타났다(Baumeister et al., 2013).

 

베풂에 따르는 행복이 사람들을 더 열심히, 오랫동안, 솜씨 있게,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해준다는 증거는 더 있다. 행복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열심히 즐겁게 노력하도록 해주고 더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도 문제 앞에서 빠르고 유연하며 폭넓게 생각하도록 이끈다(Barsade & Gibson, 2007). 심지어 사탕 하나를 선물받고 평소보다 더 행복을 느끼는 의료진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Estrada Isen, & Young, 1997). 평균적으로 볼 때 더 행복한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실적을 올린다(Lyubomirsky, King, & Diener, 2005). 또한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협상을 더 좋게 이끌어내며 소속된 조직에 더 많이 공헌한다(Judge et al., 2001). 행복도 하나가 직원들 사이의 업무 실적에 10퍼센트의 차이를 낸다.

 

 

*더 알아보고 싶다면,

 

Andreoni, J., Harbaugh, W. T., & Vesterlund, L. (2010). Altruism in experiments. In Behavioural and Experimental Economics (pp. 6-13). Palgrave Macmillan UK.

 

Baumeister, R. F., Vohs, K. D., Aaker, J. L., & Garbinsky, E. N. (2013). Some key differences between a happy life and a meaningful life.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8(6), 505-516.

 

Barsade, S. G., & Gibson, D. E. (2007). Why does affect matter in organizations? The Academy of Management Perspectives, 21(1), 36-59.

 

Brown, S. L., Nesse, R. M., Vinokur, A. D., & Smith, D. M. (2003). Providing social support may be more beneficial than receiving it: Results from a prospective study of mortality. Psychological Science, 14(4), 320-327.

 

Dunn, E. W., Aknin, L. B., & Norton, M. I. (2008). Spending money on others promotes happiness. Science, 319(5870), 1687-1688.

 

Estrada, C. A., Isen, A. M., & Young, M. J. (1997). Positive affect facilitates integration of information and decreases anchoring in reasoning among physician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72(1), 117-135.

 

Field, T. M., Hernandez-Reif, M., Quintino, O., Schanberg, S., & Kuhn, C. (1998). Elder retired volunteers benefit from giving massage therapy to infants. Journal of Applied Gerontology, 17(2), 229-239.

 

Harbaugh, W. T., Mayr, U., & Burghart, D. R. (2007). Neural responses to taxation and voluntary giving reveal motives for charitable donations. Science, 316(5831), 1622-1625.

 

Judge, T. A., Thoresen, C. J., Bono, J. E., & Patton, G. K. (2001). The job satisfaction-job performance relationship: A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27(3), 376-407.

 

Li, Y., & Ferraro, K. F. (2005). Volunteering and depression in later life: Social benefit or selection processes? Journal of Health and Social Behavior, 46(1), 68-84.

 

Lyubomirsky, S., King, L., & Diener, E. (2005). The benefits of frequent positive affect: Does happiness lead to success? Psychological Bulletin, 131(6), 803-855.

 

Moll, J., Krueger, F., Zahn, R., Pardini, M., de Oliveira-Souza, R., & Grafman, J. (2006). Human frontomesolimbic networks guide decisions about charitable don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3(42), 15623-15628.

 

Musick, M. A., Herzog, A. R., & House, J. S. (1999). Volunteering and mortality among older adults: Findings from a national sample. The Journals of Gerontology, 54(3), S173-S180.

 

Thoits, P. A., & Hewitt, L. N. (2001). Volunteer work and well-being. Journal of Health and Social Behavior, 42(2), 115-131. 

다이어트 성공과 SNS를 통한 사회적 서포트

다이어트 성공과 SNS를 통한 사회적 서포트

    

 

*본 콘텐츠는 제임스 패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의 저서 단어의 사생활(What our words say about us) (김아영 역) “5장 줄리아니 뉴욕 시장과 리어왕, 그들은 왜 갑자기 단어를 바꿔 말했을까” (pp. 198-199)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신디 청(Cindy K. Chung)은 다이어트 블로그에 사용된 단어를 분석하는 박사 논문을 쓰면서, 다이어트 블로그 커뮤니티의 회원 수백 명을 대상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몇 달에 걸쳐 추적했다. 블로거 중에는 다이어트의 세부 사항에 치중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인간관계, 인생 경험, 감정적 문제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 다이어트 전문가 중에는 먹은 음식, 섭취한 칼로리, 하루의 운동량을 철저히 기록하는 것이 살을 빼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추천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신디 청의 관찰에 따르면 다이어트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표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참여 여부다. 요컨대 다른 사람들과 메시지나 게시물을 더 많이 주고 받을수록 살 빼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글을 쓴 사람들은 음식과 다이어트에 대해서만 글을 쓴 사람에 비해 훨씬 성공적으로 살을 뺐다.

 

*더 읽어 볼만한 논문

 

Ballantine, P. W., & Stephenson, R. J. (2011). Help me, I’m fat! Social support in online weight loss networks. Journal of Consumer Behaviour, 10(6), 332-337.

 

Eichhorn, K. C. (2008). Soliciting and providing social support over the Internet: An investigation of online eating disorder support groups. Journal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14(1), 6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