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B_6장

Chapter 06_다시 즐거움을 느끼다

 

 

생존자가 느끼는 죄책감은 죽음 때문에 발생하는 2차 상실로, 즐거움을 강탈한다.

[1]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슬픔은 물론 자책이 밀려와 타격을 받는다.

생존자가 느끼는 죄책감은 개인화를 부추기는 함정이다. 격렬한 슬픔을 단계가 지나더라도 죄책감은 남는다.

[2] 회사가 직원을 해고할 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사람들도 생존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3] 의미 없이 오로지 쾌락만 추구하는 삶은 나아갈 방향을 잃은 삶이다.

반면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삶은 우울하다.

 

나는 댄스 플로어에서 순간적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나서야 지금까지 행복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 짧은 순간도 죄책감에 떠밀려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기에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는 누리지 못하리라는 예측은 맞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시동생 롭의 형은 지금도 형수가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라는 전화는 내게 진정한 선물을 안겨주었으며 올케인 에이미는 내 기분이 아이들에게 정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4] 자신만을 위해서는 끌어내기 힘든 동기라도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면 찾아낼 수 있다.

2015년 미 육군 소량 리사 재스터는 육군 특수부대 교육과정인 레인저 스쿨을 졸업하려고 도전했다. 리사는 행군을 하는 도중 구역질이 나고 발에 물집이 잡히면서 결코 완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자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리사는 남은 3킬로미터를 달려 목표 시간을 1.5분 남기고 결승선을 밟았다.

 

롭과 에이미의 말이 귀에 맴돌면서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생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행복을 허용하는 행위, 다시 말해 죄책감을 떨쳐내고 즐거움을 좇아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은 영속성에 대한 승리다. 즐겁게 생활하려는 것은 자기연민의 한 형태다. 실수했을 때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하는 것처럼, 삶을 즐기는 문제에서도 자신에게 관대해야 한다.

비극을 피하려면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역경에 직면하더라도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도둑맞은 것을 스스로 되돌리려는 행동이다.

[5] 유투U2의 리드싱어인 보노가 말했듯, “즐거움은 궁극적인 반항 행위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직장을 구하거나, 가족과 재회했을 때처럼 중대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6] 하지만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긍정적인 경험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7]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피험자의 26퍼센트가 사별한 후에도 예전과 같은 빈도로 즐거움을 찾았다.

그들에게 두드러진 점은 일상적인 활동과 상호 작용을 재개했다는 사실이다.

 

[8] 저자인 애니 딜라드는 하루를 지내는 방식이 바로 삶을 보내는 방식이다라고 썼다.

작은 일을 하며 행복을 느끼게 되길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행복을 안겨줄 작은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9] 블로거 팀 어번이 썼듯, 행복은 별로 특별하지 않아 쉽게 잊히는 수백 일의 수요일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즐거운 순간을 포착하고 누리려면 노력해야 한다.

[10] 우리는 긍정적인 순간보다 부정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쁜 사건은 좋은 사건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

[11] 요즘 우리는 일상적인 좌절과 소동에도 마치 목숨이 걸린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운다.

 

[12] 부정적인 감정에도 그렇듯, 긍정적인 감정에 꼬리표를 붙이면 감정을 처리하는 데 유용하다.

[13] 사흘 동안 즐거운 경험에 대해 글을 쓰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석 달 정도 계속하면 병원을 찾는 일이 줄어든다.

[14] 따뜻한 산들바람을 느끼거나 맛있는 감자튀김을 맛보는 것처럼(특히 다른 사람의 접시에서 집어 먹을 때) 매일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15] 우리는 나이 들면서 행복을 정의하는 기준을 즐거움보다는 평온에서 찾는다.

[16] 베로니카 고인스 목사는 이렇게 정리했다. “평온은 움직이지 않는 즐거움이고,

즐거움은 계속 움직이는 평온이다.”

[17] 긍정적인 사건을 다른사람과 공유하면 그 후 며칠 동안 기분이 유쾌하다.

[18] 인권 변호사로 일하면서 끔찍한 사건을 매일 다뤄야 하는 섀넌 세즈윅 데이비스의 말을 빌리면 즐거움은 일종의 훈련이다.”

 

[19] 자기 능력을 총동원해 간신히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에 심리학자들은 가까스로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 just manageable difficulty”을 극복한다고 말한다.

이 수준에서는 정신을 오롯이 집중해야 하므로 동시에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20] 누구나 몰입해서 무언가에 온전히 빠져들었을 때 커다란 행복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와 마주 앉아 깊이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함정이 있다.

몰입 분야의 선구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몰입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복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그런 감정을 언급하지 않다가 즐거웠다는 정도로 나중에 가서야 묘사한다. 심지어 몰입 상태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그 상태에서 황급히 벗어나기까지 한다. 심리학자가 연구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많은 사람이 몰입하기 위해 운동을 한다.

코미디언 패튼 오스왈트는 아내와 사별한 후, 배트맨 같은 만화책이 슬픔에 대한 반응을 이상하게 묘사한다는 걸 알게 됐다.

[21] “만약 현실에서 아홉 살짜리 브루스 웨인이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지금처럼 인기 있는 히어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살이 찌고 분노하고 혼란스러워하는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즉시 헬스장에 간다.”

[22] 운동을 하면 심장질환, 고혈압, 뇌졸중, 당뇨병, 관절염 등의 발병률을 낮추는 등 신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23] 또한 많은 의사와 심리치료사가 운동은 심리적 행복을 향상시키는 데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24] 주우울증으로 고통을 겪는 50세 이상 일부 성인에게는 운동이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만큼이나 효과적일 수도 있다.

 

몰입하는 것이 사치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비극을 겪고 나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4년 전 시리아에 살던 웨이파는 남편이 체포되자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 후 남편의 모습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세 자녀를 시리아에 남겨두고 가장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남동생과 함께 이스탄불로 피신했다. 얼마 후 시리아에 있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손자가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도저히 믿기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기가 막히게 끔찍한 것은 웨이파가 겪은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종류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25] 현재 난민의 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나는 웨이파의 사연을 읽고 그녀의 믿기지 않는 엄청난 회복탄력성에 감탄했다. 그녀를 직접 만나 교훈을 얻고 싶었다.

웨이파는 통역을 통해 털어놓았다. “아들이 살해당했을 때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어머니이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웨이파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과 가족과 친구들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면서 위안을 얻고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이스탄불에 있는 이웃이 아팠을 때, 웨이파는 일주일 동안 매일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웨이파에게는 자녀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이 즐거움의 원천이다.

 

즐거움을 훈련으로 보든, 반항하는 행동으로 보든, 사치로 보든,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든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 즐거움은 우리가 계속 살아가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 곁을 지키게 해주는 원천이다.

 

옵션 B_5장

Chapter 05_앞으로 튀어 나가다

 

  

[1] 깊디깊은 겨울에 결국 내 안에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여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알베르 카뮈, 프랑스 소설가이자 극작가.

 

내과 의사인 조 캐스퍼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헌신하며 의사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의 10대 아들인 라이언이 희귀하고 치명적인 형태의 간질을 앓는다는 진단을 받자 완전히 넋이 나갔다.

조는 당시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썼다.

[2] “불과 몇 분 만에 아들의 운명에 대해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치유될 희망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기차가 저만치 굽이를 돌아 달려오고 있는데 철로에 몸이 꽁공 묶여 있는 아들을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져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정신적 외상은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삶은 통제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가 있다는 인식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조는 공허로 빨려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3] 정신과 의사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비거 프랭클의 말처럼 더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을 바꾸라는 도전을 받는다.”

 

조는 정신적 외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찾아봤다. 조사를 거듭한 끝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샬럿캠퍼스 교수 리처드 테데스키와 로렌스 칼훈의 연구결과를 접할 수 있었다.

 

두 심리학자는 자녀를 잃고 비통해하는 부모들을 치료하면서 이들에게 정신의 황폐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징조가 나타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의 현상도 나타났다.

부모들은 너 나 할것 없이 고통을 겪었고 자녀를 살려낼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덤벼들 만큼 처절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자녀를 잃은 뒤 삶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고 말하는 부모도 많았다.

[4] 믿기 어렵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부모는 외상 후 스트레스가 아닌 외상 후 성장을 경험했다.

 

[5] 심리학자들은 온갖 종류의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 수백 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6] 피험자에는 성폭행 피해자나 성추행 피해자,

[7] 전쟁 난민이나 전쟁 포로,

[8] 사고나 자연재해의 생존자,

[9] 중상이나 중병의 생존자 등이 포함됏다.

이들 중에는 지속적으로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과 함께 긍정적 변화도 감지됐다. 그때까지 심리학자들은 주로 정신적 외상 후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결과를 주시했다.

첫째, 괴로워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거나,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회복탄력성을 보여 외상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세 번째 결과가 나타났다. 고통을 겪고 나서 앞으로 튀어나가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10]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 중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이는 사람은 5퍼센트 미만인 데 비해

[11] 절반 이상은 한 가지 이상 긍정적 변화를 보였다고 했다.

 

조의 아들, 라이어는 진단을 받은지 3년 만에 사망했고, 조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감정적 쓰나미에 떠밀렸으나 휩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애덤이 교수로 있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긍정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외상 후 성장이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개인에게 있는 힘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더욱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삶에서 더욱 많은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12]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로 개인의 힘을 정의했다.

테데스키와 칼훈은 니체의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내고 이를 좀 더 부드럽게 표현했다.

[13] “나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약하지만, 지금껏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강하다.”

삶이 던진 돌에 맞으면 부상을 당하고 그때 입은 상처는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속으로 결의를 단단히 굳히고,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격렬한 슬픔에 깊이 젖어 있어서 내가 더욱 강하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뿐인데 힘이 생겼다. 엣 격언을 빌리자면 내가 추락해야 한다면 추락하게 하소서. 내가 되는 사람이 나를 잡을 터이니

아주 천천히 내 삶에 새로운 균형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테데스키와 칼훈은 외상 후 성장의 결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비극을 겪으면서 더욱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인생의 큰 아이러니다.

하지만 슬픔과 함께 가족과 친구, 단순히 살아있다는 사실 등 과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지금은 훨씬 감사하게 되었다.

 

[14] 상실을 겪고 나면 생일, 기념일,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느끼는 공허가 특히 견디기 힘들 수 있다.

브룩은 이러한 이정표를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순간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특별할 때만 감사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5] 내가 좋아하는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자신에게 특별하게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감사 쪽지를 써서 전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쪽지를 받은 사람이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쪽지를 쓴 사람도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졌으며, 감사의 여운이 한 달 동안이나 지속됐다. 애덤에게 이 연구 결과를 들어쓸 때, 나는 이 방법이 왜 효과가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친구들과 가족에게 감사하는 순간마다 슬픔이 뒤로 밀려났다.

 

비극을 겪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외상을 격으면 다른 사람을 경계하게 되거나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받기 쉽다.

[16] 성적 학대와 성폭행 피해자의 상당수가 사람들이 선하다는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서 사람을 신뢰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17] 자녀를 잃은 부모는 친척이나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친구들과 다투거나 친구들에게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외상 후 성장의 셋째 결과로 비극은 새롭고 더욱 깊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

[18] 전쟁 기간 동안 커다란 상실을 경험한 군인은 40년이 지나서도 군 복무 시절 쌓은 우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나면 군인들은 생명의 가치를 더욱 존중하고, 그러한 이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19] 많은 유방암 생존자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커졌다고 보고했다.

 

비극을 함께 견뎌내면 유대관계가 강화된다. 서로 신뢰하고,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서로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엣 격언대로 ;풍요로울 때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을 겪을 때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

 

외상 후 성장의 넷째 결과는 삶에서 더 큰 의미, 즉 인간이라는 존재에는 의미가 있다는 신념에 뿌리 내린 더욱 강력한 목적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20]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어떤 면에서 고통은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종교에 귀의하거나 영성을 받아들여 삶의 의미를 찾는다.

[21] 정신적 외상을 겪으면서 믿음이 깊어질 수도 있는데, 이렇듯 강력한 종교적, 영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큰 회복탄력성을 보이면서 성장한다.

 

[22] 작년 봄 나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인 버넌 터너가 쓴 공개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어머니가 그를 임신하게 된 경위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18세 육상 스타였던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공격받아 헤로인을 주입당하고 갱들에게 강간당했다. 열한 살 대 버넌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어머니가 헤로인을 주사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내보내지 않고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봐두렴. 너는 이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야이짓이 너를 죽일 테니까.”

4년 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어머니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어머니는 버넌과 동생 넷을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양아버지가 돌봐줫지만, 버넌이 대학교 1학년이 됏을 때 양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버넌은 가정을 홀로 책임져야 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미식축구 리그에서 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버넌은 2군 대학 팀에선 인기 선수였지만, 프로가 되기에는 키가 작다거나, 체력이 부족하다거나, 재능이 모자라다는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버넌을 움직이는 목적은 분명했다. 버넌은 새벽 2시에 자명종을 맞춰놓고 일어나 온몸에 밧줄을 두르고 언덕 위로 타이어를 끌어올리며 근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버넌은 킥오프나 펀트된 볼을 받아 가능한 멀리 뛰는 역할을 하는 킥 리터너로 미식축구 리그에 입성했다.

 

[23] 가족과 종교는 많은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큰 원천이다.

뿐만 아니라 일도 목적의 근원이 될 수 있다.

[24]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직업에 큰의미를 부여한다.

성직자, 간호사, 소방관, 중독 카운슬러 등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기여도에 비해 낮은 보상을 받는 직업이지만, 우리의 건강과 안전, 학습, 성장에 기여한다.

[25] 애덤은 의미있는 일이 극도의 피로를 완화시킴을 입증하는 다섯 가지 연구 사례를 발표했다.

기업이나 비영리 단체, 정부, 군대 등에서 자신이 종사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미들수록 직장에서 느끼는 감정 소모와 삶에서 느끼는 우울증세가 줄어들었다.

[26] 자신이 직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는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날에는 집에서 더욱 활력이 넘칠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더욱 능숙하게 대처했다.

 

기회를 쥔 사람이라면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장암으로 아내를 잃은 내 친구 제프 후버는 다섯째 외상 후 성장의 결과인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방식으로 의미를 찾았다.

테데스키와 칼 훈이 발견한 결과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정신적 외상을 겪고 나서 예전 같았으면 결코 고려하지 않았을 방향의 인생을 선택했다. 911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일부 미국인들은 직업을 극적으로 바꿔서 소방서에 들어가고, 군대에 입대하고, 의료직에 지원했다.

[27] ‘터치포아메리카(미국 전역의 우수한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2년 간 도심 빈민 지역의 공립학교 교사로 봉사하게 하는 비영리 단체)’ 지원자가 세 배 증가했고, 큰 뜻을 품은 많은 교사들이 911 테러를 계기로 교직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보다 커다란 목표에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쓰고 싶어했다.

[28]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일은 일종의 직업이었지만, 테러가 터지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소명에 부응하고 싶어 했다.

[29] 토네이도, 총기 난사, 비행기 후락이 발생해 자신이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살아난 후에 대부분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했다.

[30] 생존자들은 사건으로 인한 사망률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세운 삶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하고, 일부는 이를 성장의 기반으로 삼았다.

죽음이 스쳐 지나간 경험은 새로운 삶을 이끌어 냈다.

 

이것은 쉽에 이룰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대개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기가 힘들다.

[31] 사랑하는 사람이 몸이 아파 간호를 하려면 가족 구성원이 일을 줄이거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32] 300만명에 가까운 미국인이 암 환자를 간호하고 있는데, 여기에 드는 시간은 한 사람 평균 주당 33시간이다.

소득의 상실과 더불어 높은 의료비는 미국에서 가정 경제를 황폐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33] 질병이 파산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전체의 40퍼센트 이상이고,

[34] 암 환자가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는 정상인보다 2.5배 이상 많다.

[35] 미국인의 46퍼센트는 응급치료 청구액 400달러를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36] 비극은 우리의 현재를 갈기갈기 찢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산산조각 낸다.

사고는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꿈을 깨뜨린다. 심각한 질병은 일자리나 사랑을 찾기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러한 자아 인식의 변화는 부차적인 상실이자 우울증을 유발하는 위험 요소다.

[37] 이로 인해 우리가 되려고 희망하는 자아인 가능한 자아 possible self’가 부수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능한 자아가 사라지면 새로운 가능한 자아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비극을 겪고 난 뒤에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기 쉽다. 옛 자아를 갈구하는 데 모든 감정적 에너지를 쏟기 대문이다.

[38] 헬렌 켈러가 말했듯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닫힌 문만 오래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39] 수많은 정신적 외상 생존자가 역경에 직면한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다.

고난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삶의 목적에 그치지 않고 고통의 목적을 제시하므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독특한 원천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가 헛되지 않도록 자신이 상처를 받은 영역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은 고통 너머에 새로운 가능성이나 삶의 더 큰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기 힘들 수도 있다.

[40]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을 (그리고 노래 <끄맺는 시간 Closing time>의 가사를) 인용하면 이렇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시작한다.”

 

몇년 전 데이브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뮤지컬 <위키드>를 보러 갔다.

뮤지컬에서 두 주인공은 이렇게 노래한다.

 

[41] 나는 더욱 좋은 모습으로 달라졌어. 내가 너를 알기에 나는 달라졌어. 영원히.

 

노래 가사가 말하듯 데이브는 언제고 내 마음에 직힌 지문일 것이다. 데이브는 자신의 존재로 나를 심오하게 변화시켰다. 아울러 자신의 부재로도 나를 심오하게 변화시켰다.

데이브의 죽음으로 내가 느끼는 공포에서 좋은 의미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서 위안이나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데이브가 살았던 삶에 경의를 표현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닿아 데이브가 남긴 유산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옵션 B_4장

Chapter 04_자기연민과 자신감

 

25세 되던 해, 캐서린 호크는 에이즈를 앓는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루마니아로 선교 여행을 떠났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에는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했다.

그때 한 친구가 교회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텍사스 주 소재 교도소를 방문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주말마다 텍사스까지 날아가 교도소에서 창업 교실을 열고 수감자들을 가르쳤다.

[1] 그녀가 관심을 갖고 조사해보니 미국인 4명 중 거의 1명꼴로 범죄 경력이 있고, 20명 중 1명은 징역형을 살았다.

[2] 대부분의 수감자는 석방된 후에 일하고 싶어 했지만 범죄 경력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캐서린은 전과자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저축한 돈을 모두 털어 전과자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찾거나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인 교도소 사업 프로그램 Prison Entrepreneurship Program’을 만들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5년 만에 주 전체로 확대 실시되면서 졸업생 600명을 배출하고 스타트업 60곳을 출범시켰다.

[3] 텍사스 주지사는 캐서린의 활동을 높이 사서 공공서비스상을 수여했다.

 

하지만 캐서린의 사생활은 산산이 부서졌다. 결혼한 지 9년 되던 해, 남편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면서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렸다.

캐서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한 집단만은 자신을 비난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바로 교도소 사업 프로그램 졸업생들이었다.

 

캐서린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신랄한 고통을 겪는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졸업생들은 캐서린이 이사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감정이 불안정한 시기에 캐서린은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졸업생 중 한명 이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텍사스 주 형사사법부는 그녀가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녀가 텍사스 주 교도소를 출입할 수 없도록 조치했고, 그녀가 계속 관여한다면 프로그램도 폐지하겠다고 경고했다.

 

여러 해 동안 캐서린은 직원들과 기부자들에게 마음을 열라고 촉구하면서 전과자처럼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로 자신이 정의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녀의 삶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캐서린은 전과자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려고 헌신했다. 그때는 전과자들에게 연민을 품었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연민을 품어야 했다.

 

자기연민 self-compassion은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충분히 거론되지 않는다. 아마도 성가신 사촌뻘인 자기동정이나 방종과 자주 혼동되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친구에게 베푸는 것과 동일하게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자기연민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연민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비난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염려하고 이해하는 심정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4] 자기연민의 출발점은 불완전성이 인간의 속성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연민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역경을 더욱 빨리 극복한다.

[5] 결혼생활이 파탄 난 사람들의 회복탄력성을 연구해보면 이혼하기 전에 보였던 자부심, 낙관주의, 우울한 기분은 물론 관계를 유지하거나 별거한 기간도 이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이 시기에 고통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유용하게 작용한 비결은 자기연민이었다.

[6]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장에서 귀국한 군이 가운데 자신에게 너그러웠던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률이 현저하게 낮았다.

[7] 자기연민을 품으면 행복과 만족이 커지고 감정상 어려움과 불안이 줄어든다.

[8] 자기연민으로 남녀 모두가 혜택을 얻을 수 있지만 여성은 자신에게 더욱 가혹한 경향이 있으므로 더욱 큰 혜택을 얻는다.

[9]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자기연민이 우리가 때로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잔인한 태도에 대한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자기연민은 흔히 자책감과 공존한다.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자신을 몰아세워 스스로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자기연민은 나쁜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행위자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님을 인식하게 한다.

[10]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1] 자신의 성격이 아니라 행동을 탓하면 수치심이 아니라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12] 유머 작가인 에르마 봄베크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받는 선물에 비유했다.

[13] 죄책감은 떨쳐버리기 힘들 수 있지만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도록 만든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바로잡고 미래에는 더욱 나은 선택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수치심은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사람들을 분노에 차 공격하게 만들거나 자기동정에 빠져 움츠러들게 해서 자기 자신을 작고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14] 수치심을 느끼는 성향의 대학생이 마약과 알코올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죄책감을 느끼는 성향의 대학생보다 높았다.

[15] 수치심을 느낀 수감자의 재범 확률은 죄책감을 느낀 수감자보다 30퍼센트 높았다.

[16] 죄책감을 느끼는 성향의 초중등학생은 갈등을 완화시킨 반면에, 수치심을 느낀 초중등학생은 더욱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17] 인권보호단체 동등한 정의 계획 Equal Justice Initiative’을 이끄는 인권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은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손에 의해 망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헤쳐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개인은 자신이 여태껏 해온 최악의 행동 이상의 존재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캐서린 호크는 이 말의 의미를 깨닫고 가장 먼저 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는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보상하라고 격려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고 7500명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자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캐서린의 경우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글을 쓴 것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18] 글쓰기는 자기연민을 배울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경기를 하다가 코스를 잊어버렸거나, 운동 시합 도중에 넘어졌거나,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지는 등 기분을 상하게 만든 실패나 굴욕을 기억하라고 요청했다. 피험자들은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에게 쓴다고 가정하고 그러한 심정을 이해한다는 내용으로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지닌 긍정적 속성만 글로 쓴 통제 집단과 비교했을 때, 자신에게 너그러운 태도로 글을 썼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40퍼센트 더 높았고, 분노는 24퍼센트 더 낮았다.

 

[19]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 역경을 다루고 극복하는 데 유익하다.

수십 년 전 건강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대학생 두 집단에게 하루에 15분씩 4일 동안 일기를 쓰라고 요청했다. , 한 집단에게는 비감정적인 주제에 대해 쓰고, 다른 집단에게는 성폭행, 자살 시도, 아동 학대를 포함해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가장 충격적인 경험에 대해 쓰라고 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자 두 번째 집단의 경우(충격적 경험을 쓴) 행복은 감소하고 혈압은 상승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6개월 후 추적연구를 실시한 결과, 영향이 반전되어 자신이 겪은 정신적 외상에 대해 글을 썼던 집단의 정서와 건강이 상당히 개선되어 있었다.

 

그 후 100여 건 이상의 실험을 거치면서 일기 쓰기의 치료 효과가 입증되었다. 일기 쓰기의 혜택은 의과대학생, 만성 통증 환자, 범죄 피해자, 수감자, 출산한 여성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국가, 문화를 아우르며 효과가 입증됐다.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글을 쓰면 불안과 분노가 감소하고, 학업 성적이 올라가고, 실직에 따른 정서적 영향력과 결근이 줄어든다.

건강 면에서는 면역 활동을 하는 T 세포 수가 늘어나고, 간 기능이 개선되고, 항체 반응이 강화된다.

 

[20] 꼬리표를 붙이면 부정적인 감정을 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꼬리표의 내용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막연하게 기분이 안 좋다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마음이 외롭다라고 표현하는 편이 감정을 처리하는 데 유용하다. 감정을 던어로 표현하면 감정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21] 한 연구에서 거미 공포증이 있는 피험자들은 조만간 거미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또 그러기 전에 주의를 딴 데로 돌리거나, 거미를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거미를 보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꼬리표를 달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침내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에 꼬리표를 달았던 사람들은 생리적 자극 반응이 훨씬 안정적이었고, 심지어 거미에게 자진해서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22] 비극이나 위기가 발생한 직후에 일기를 쓰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너무 쓰라려 아직 감정을 추스릴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23] 상실을 겪고 나서 글을 쓰면 외로움이 줄어들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슬픔이나 우울증 증상이 반드시 완화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을 통해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

[24]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녹음기에 대고 말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미술이나 음악이나 춤을 통해 정신적 외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효과가 덜하다.

 

1년 동안 심리치룔르 받고 나서 캐서린은 사람들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과거를 초월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새로 출발할 장소를 뉴욕으로 정한 그녀는 과거 및 현재 수감자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조언과 훈련을 제공하는 디파이 벤처스(Defy Ventures)’를 설립했다.

 

캐서린은 직업에서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자신감을 회복했다.

디파이 벤처스의 사명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찰스 호크와 2013년 결혼한 것이다.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결혼한지 1년 후 캐서린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25] 자신감은 행복과 성공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감이 없으면 자신의 결점을 곱씹기 마련이다. 그러면 새로운 도전을 수용하지 못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없다. 커다란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자그마한 위험조차 감수하지 못하고 주저한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는 평생 자기의심과 씨름했다. 대학생 때는 시험을 볼 때마다 낙제할까 봐 겁이 났다. 성적 때문에 당황할 일이 벌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성적이 좋을 때도 교수들이 용케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26] 이것이 가면 증후군 impostor syndrome (자신이 이뤄낸 업적이나 능력을 스스로 의심하며 무능함이 밝혀질까 봐 불안해하는 심리 현상을 가리킨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가면 증후군은 남녀 모두에게 나타나지만 여성이 더 강렬하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27] 거의 20여 년이 지난 뒤, 많은 직장 여성이 나처럼 자기의심을 품고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나서 테드 강연에 나가 여성들에게 당당하게 테이블에 앉아라라고 격려했고,

강연 내용을 토대로 <린 인 Lean In>을 썼다.

 

그리고 데이브를 잃었다. 사람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당연히 슬픔에 빠지고 분노한다.

[28] 그런데 이때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아니 적어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정신적 외상이 삶의 모든 측면에 자기의심을 퍼뜨린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자신감 상실은 침투성의 또 다른증상이다. 한 가지 영역에서 허우적대느라 다른 영역에서 발휘하는 자기 능력을 갑자기 불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기 쓰기는 내 회복 과정의 주요 활동이 되었다. 나는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지 4일째 되어 장례식을 치른 날 어침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침에 겪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인간 존재에 관한 결코 대답할 수 없는 질문까지 온갖 생각과 감정을 모조리 적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생명이 없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까닭을 깨닫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글을 쓰겠다는 강박이 나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여러 순간을 기억해 글로 남기자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후회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29] 철학자 쇠린 키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삶은 다만 돌이켜 이해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일기를 쓰면서 내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헤쳐 나갈 자신감을 새롭게 구출할 수 있었다.

 

애덤은 매일 일기를 쓰면서 당시 내가 한 일 중에서 잘한 일 세가지를 함께 써보라고 제안했다. 나는 처음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제대로 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대체 어떻게 잘한 일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30] 하지만 잘한 일을 적으면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작은 승리 small wins”에 집중할 수 있으므로 유의미하다는 증거가 있다.

[31]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잘한 일 세 가지와 그 이유를 일주일 동안 매일 기록했다. 다음 6개월 동안 피험자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어린 시절 기억을 기록한 집단보다 커졌다.

[32] 좀 더 최근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정말 잘한 일과 그 이유를 하루 5~10분 동안 기록했다. 3주 만에 피험자들의 정신 및 신체 건강과 관련된 고통이 완화되었고, 물론 스트레스도 감소했다.

 

이전에는 나 자신을 위해 감사 목록을 유익하게 사용했다면, 지금은 다른 목적으로도 유익하게 사용하고 있다.

[33] 애덤과 동료 제인 더튼은 자신이 받은 축볼을 센다고 해서 자신감이나 노력이 증가하지는 않지만, 기여한 일을 세면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애덤과 제인의 설명에 따르면, 감사는 수동적 성격을 띠어서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게 만든다. 반면 기여는 능동적 성격을 띠어서 스스로 변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상기시키는 까닭에 자신감을 북돋는다.

 

나는 직장에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해줬던 말을 나 자신에게도 했다. ‘완벽함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자기 능력을 늘 믿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약간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점점 더 기여의 양을 늘릴 수 있다고 믿으면 된다.’

 

내가 직장에서 실수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중압감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나를 도우려고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을 겪었는데 업무인들 어떻게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가 아닌 오히려 자신감을 북돋아줬던 말을 그래요? 나는 당신이 회의 시간에 좋은 의견을 내줘서 우리가 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요였다.

 

자기의심이 드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사람에게도 자기의심은 슬그머니 찾아온다. 애덤의 친구이자 동료 심리학자인 제네사 샤피로는 30대 때 전이성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제네사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물론 죽음이었다. 그 다음은 직업을 잃는 것이었다.

낙인을 연구한 전문가인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34] 그래서 동료 몇 명과 함께 이러한 가설을 시험해본 결과, 암 생존자들은 구직 면접에서 합격하는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제네사는 이렇게 의심했다. “사람들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게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제네사의 남편은 당신이 암에 걸리지 않았을 때도 하루에 논문 한 편을 쓰지는 못했어라고 상기시켜 아내가 좀 더 자기연민을 품고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제네사의 동료도 힘을 보탰다.

 

어쨌든 제네사는 종신 재직권을 받았다. 하지만 실직에 따른 두려움은 미국 전역에 만연해 있다.

[35] 2017년 한국에서 실직자는 100만명에 이른다.

해고당하거나 감원당하거나 강제로 직장을 나와야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실직 경험이 사람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36] 수입이 사라지면 엄청난 경제적 압박을 받을 뿐 아니라 우울증, 불안, 기타 건강 문제가 발생하면서 2차 상실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37] 소득이 사라지면서 자기 삶에 대한 통제감을 박탈당하고 실제로 신체적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38]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적인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받아 가정에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된다.

 

[39] 미시간대학교 심리학자들은 실직 후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울 목적으로 교회, 학교, 도서관, 시청 등에서 일주일 단위로 워크숍을 열었다.

수백 명의 실직자가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네 시간에 걸쳐 구직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설계된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실직자들은 구직 정보를 수집하고 경쟁력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탐색했다. 면접 보는 연습을 하고, 앞으로 직면할 가능성 있는 장애물은 무엇이며, 동기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목록으로 작성했고, 그 결과 작은 승리를 거둬나갔다. 그 후 두 달 동안,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새 직장을 구하는 확률은 20퍼센트 증가했다. 이후 2년 동안 그들은 자신감이 더욱 커졌고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 역시 더욱 커졌다. 분명히 짚어두건대, 자신감이 실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란 뜻은 아니다. 사회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을 제공해야 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사회보험 혜택을 제공해서 도와줘야 한다.

[40]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프로그램 같은 방법들을 통해서도 분명 변화를 달성할 수 있다.

 

직장에서 발휘하는 자신감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자주 거론되고 있지만, 가정에서 발휘하는 자신감은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자주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내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린 인>을 발표한 뒤 배우자가 없는 여성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해서 쓰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옳았다.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가정의 실제 모습에 대한 내 이해와 예상은 점점 더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41] 미국에서 편모의 수는 1970년대 초에 비해 현제 거의 두 배 정도로 증가했다.

세계 아동의 15퍼센트는 한 부모 가정에서 생활하고, 이 가정의 85퍼센트는 여성이 가장이다.

[42] 한국의 경우 미성년 자녀가 있는 가구의 8퍼센트 이상이 한 부모 가정이고, 이들 가정의 대다수는 편모가 가장이다.

 

많은 편모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 역할을 제외하고도 한 가지 이상의 직업에 종사한다.

질 높은 탁아 서비스는 비용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한다.

[43] 네 살짜리 아이 한 명과 갓난아기 한 명을 탁아 서비스 기관에 맡기는 비용은 미국 어느 곳을 막론하고 연평균 중간 수준의 집세를 초과한다.

 

[44] 이처럼 고되게 일하는데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국가에서 편모의 빈곤율은 편부보다 높다.

[45] 미국에서는 편모가 자녀들의 거의 3분의 1이 식량 부족을 경험하고,

[46] 흑인과 라틴계 편모가 가장인 가정은 생활하기가 훨씬 힘들어서 빈곤율이 40퍼센트에 가깝다.

우리는 이런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첨단산업지역)에 거주하는 세 가정 중 한 가정이 식량 원조를 받고 있다.

[47]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지역 푸드뱅크인 2의 수확 Second Harvest’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매달 9만 명에 가까운 아동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아이들을 위해 일어서라 Stand up for Kids’운동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해당 운동의 취지에 따라 한 지역의 자율형 공립학교에 음식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후 학생들의 징계 사례가 감소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동일한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학생들의 결석과 건강 관련 불평이 줄어들도 학업 성과가 향상되었다.

 

워킹맘 중에서도 특히 미혼모는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미국은 전 세계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다.

[48] 한국에서는 워킹맘에게 90일의 유급 출산휴가를 준다.

애덤이 밝힌 연구 결과는 미국 기업의 정책이 개인 문제가 직장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하여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9] 개인적인 곤경을 극복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직원들의 충성을 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직장인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데 필요한 휴가를 확보할 수 있도록 공공 정책과 기업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또한 자녀는 결혼한 이성 부모 밑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구식 전제도 버려야 한다.

 

결정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던 데이브가 없으므로 나는 친구들과 가족의 피드백에 크게 의존해야 했다. 직장 동료가 내 업무에서 긍정적인 점을 지적해주었을 때처럼, 친구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집에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예전에 지키던 규칙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수정하고, 자신과 아이들에게 좀 더 인내심을 가지라고 조언해주는 것처럼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을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도 좋았다.

 

정신적 외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데이브가 없는 생활에 적응하면서 일기 쓰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기라는 배출구가 없으면 감정이 폭팔하고 말 것 같은 느낌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데이브의 48번째 생일 다음 날 나는 애도의 단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여전히 슬프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도움을 구하는 법을 배웠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믿음도 강해졌다. 세상을 살아가기가 여전히 두렵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주위에서 말하듯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옵션 B_3장

Chapter 03_우정의 백금률

 

[1] 스트레스에 관한 고전적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불편할 정도로 큰 소리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울리는 가운데 퍼즐 맞추기처럼 집중력을 요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피험자들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심장 박동 수와 혈압이 증가했다. 그들은 집중하려고 애를 썼지만 실수를 했다. 많은 사람이 크게 좌절하면서 중간에 포기했다.

연구자들은 불안감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일부 피험자들에게 도피 수단을 제공했다. 소음이 너무 불쾌해지면 피험자가 버튼을 눌러 소음을 중단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버튼을 누르면 피험자들이 침착해지면서 실수와 짜증이 줄어들 것이었다. 이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런데 버튼을 누르는 피험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소음을 중단시키는 행위는 스트레스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 자신이 소음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영향을 미쳤다.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자 피험자들은 통제감을 갖고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었다.

 

[2] 누구에게나 고통에 빠졌을 때 누를 수 있는 버튼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들이 역경을 맞으면 어떻게 버튼을 제시해야 할까? 위기를 겪고 있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

[3]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우리는 대부분 두 가지 다른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공감함으로써 타인을 도우려고 나서거나, 고민함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작가 앨런 러커는 희귀한 질병을 앓아 몸이 갑자기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보이는 두 가지 반응을 목격하고 이렇게 썼다.

[4] “몇몇 친구들은 샌드위치를 사다 주거나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를 갖다주거나 빈손으로 와서라도 매일 내 상태를 살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취를 감췄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는 내가 처한 새로운 상황이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첫 징조였다.

러커의 신체적 마비가 일부 사람들에게 감정적 마비를 유발한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심지어 상상하기도 힘들다.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강렬한 고통을 느끼지 않을 때는 고통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피험자들에게 물이 담긴 양동이에 팔을 집어넣게 하고 만약 다섯 시간 동안 냉동실에 앉아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추측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5] 양동이에 차가운 물이 가득 차 있는 경우에 피험자들이 추측한 고통의 정도는 따뜻한 물이 가득 차 있는 경우보다 14퍼센트 컸다. 하지만 차가운 물에서 팔을 빼고 10분이 지난 후에 추측한 결과는 따뜻한 물에 팔을 담갔던 집단과 같았다. 차가운 물에서 팔을 뺀 지 불과 10분 지났을 뿐인데도 차가울 때의 상태를 기억하지 못했다.

 

애도하고 위로하는 방법이 한 가지뿐인 것은 아니다. 어떤 방법이 유용한지는 사람과 시기에 따라 다르다. 성장하면서 나는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우하라는 황금률을 따르도록 배웠다.

[6] 하지만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는 황금률을 따르지 말고, 그들이 대우받고 싶어 하는 대로 대우해주라는 백금률을 따라야 한다.

비탄에 잠긴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 그들을 이해하고, 좀 더 바람직하게는 행동으로 반응해야 한다.

 

저자 브루스 페일러는 무슨 일이든 해주겠다라고 제안하는 위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7] “의도가 좋기는 하지만 이는 결국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무심결에 의무를 지운다. ‘무엇이든해주겠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어떤 일을 하라라고 페일러는 썼다.

그는 이혼한 뒤에 이사해야 하는 사람에게 포장용품을 보내거나, 집을 잃은 친구에게 결혼 축하 파티를 변형한 형대로 파티를 열어준 사례를 소개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문제를 고치려고 애쓰기보다 문제가 초래한 피해에 마음을 쓰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8] 심리치료사 메건 디바인은 살다 보면 고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긴다. 문제는 다만 옮겨질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

[9] 심리학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연설하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10대 소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이때 어머니와 손을 잡게 하자 소녀들이 느끼는 불안이 감소했다. 식은땀이 줄어들고, 생리적 스트레스가 어머니에게 옮겨갔다.

 

누구에게 지지를 얻어야 할까?

[10] 심리학자 수전 실크가 고안한 링 이론 ring theory’을 참고하면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선 비극적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주위를 둘러싸며 원을 그린다. 그런 다음 더 큰 원을 그리고 사건 때문에 다음으로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위기에 근접한 정도를 기준으로 원을 더 크게 계속 그린다. 실크가 중재 전문가 베리 골드먼과 함께 썼듯 원을 전부 그리고 나면 푸념하는 순서가 생긴다.”

 

자신보다 원의 중심에 가까이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바깥쪽 원에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구한다. 자신보다 가까이에서 비극을 겪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좀 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라는 뜻이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 자신만의 시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퍼한다.

 

[11] 분노는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쿼블러 로스가 정의해서 유명해진 슬픔의 5단계중 하나에 속한다.

상실에 직면한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하다가 현실과 타협하고 우울해하는 네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수용한다.

[12] 하지만 요즈음 전문가들은 그러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다섯 가지 단계가 아니라, 정도가 오르내리는 다섯 가지 상태라고 본다.

슬픔과 분노는 물을 끼얹은 불길처럼 꺼지지 않고 순간적으로 깜빡이다가 다시 활활 살아난다.

 

(데이브가 죽었을 때의 상황) 나는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라 괴로웠다. 친구들은 슬퍼하는 나를 위로해주는 동시에 내가 예전에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강도로 강렬하게 뿜어내는 분노를 감당하고 받아내야 했다.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이 단순히 버튼이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위로를 받듯이, 내가 주위 사람을 견디기 힘들게 몰아세우더라도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확신시켜줄 친구가 필요했다.

 

당신은 이 위기를 극복할 거예요라는 말은 믿기지 않았다. 오히려 견디기 힘든 순간에 내 곁에 있겠다는 말이 더욱 큰 힘이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들은 우정의 백금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손수 보여줬다. 처음에는 그들과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었다. 그래야만 나 자신이 될 수 있었고 내가 겪는 고통과 분노를 그들이 흡수해서 해소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점차 내 선택 사항이 되었다. 관계 변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13] 사람들은 성숙해질수록 의미 있는 관계의 좀 더 세밀한 측면에 집중하고,

[14]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우정의 양보다는 질을 선택한다.

 

슬픔이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나는 우정이 일방적인 관계에 머물지 않도록 균형을 회복해야 했다.

내가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싶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계속 내 상태를 살피고 내 곁에 있어주려고 노력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15] 그래서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되던 날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 Footprints in the sand’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냈다.

원래는 종교 우화지만 우정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신과 함꼐 바닷가를 거니는 꿈을 노래한다. 모래사장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지만 삶이 괴로움과 슬픔과 패배감에 젖어 있을 때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인다. 자신이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시인은 이렇게 항의한다. “당신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어째서 내 곁에 있어주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자녀야, 한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내내 내가 너를 안고 걸었단다.”

 

모래사장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찍힌 것은 내 삶이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내내 친구들이 나를 안고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내가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았던 것은 친구들이 내가 쓰러지면 부축할 준비를 하고 내 뒤에 바싹 붙어 걸었기 때문이다

옵션 B_2장

Chapter 02_방 안의 코끼리 내쫓기

 

데이브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처음 몇 주 동안, 나는 친구들이 안부를 묻지 않는 데 충격을 받았다.

[1] 그런 일을 처음 겪었을 때는 마치 아무것도 묻지 않는 친구를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블로거인 팀 어번은 이렇게 썼다.

당신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치자. 그러다 사랑에 빠졌는데 새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눈이 뒤집혀 두 사람을 살해했다 치자. 그렇다 한들 무슨 대수인가? 그 일에 관해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친구는 당신 삶에 관해 아무것도 결코 절대로 영원히 묻지 않을 것이다.”

떄로 이런 친구들은 자기 생각에 빠져 우리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하고,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불편해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내게 기분이 어떤지, 어떻게 지내는지 뭊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프와 아침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고통스러운 대화를 피하는 친구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예전에는 건강이 어떤지 제프에게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다. 염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프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데이브를 잃고 나서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피하는 것과 감정을 보호하는 것은 다르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실을 겪은 부모들 역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2] 저자 미치 카모디는 뇌종양으로 아홉 살짜리 아들 켈리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 때 우리 아들은 두 번 죽는 겁니다.”라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런 까닭에 미국 최대 애도 조직의 하나인 공감하는 친구 Compassionate Friends’는 세상을 떠난 자녀에 대해 공공연하게 자주 말하라고 가족들을 격려한다.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화제를 피하는 행동은 워낙 흔한 까닭에 이를 가리키는 특정 용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3] 수십년 전 심리학자들은 나쁜 소식을 공유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침묵 효과 mum effect’라는 명칭을 붙였다.

[4] 의사들은 예후가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환자들에게 말하지 않고 시간을 끈다.

관리자들은 지나치게 머뭇거리느라 직원들에게 해고 소식을 제때 알리지 못한다.

 

 

우리는 특정 상황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태도로 일관해 가족, 친구, 동료를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도 혼자 생각만 하고 있으면 불쾌한 심정에 빠질 수 있다.

[5] 한 실험에서 여성의 4분의 1과 남성의 3분의 215분 동안 혼자 앉아 생각만 하고 있느니 차라리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받는 쪽을 선택했다.

이렇듯 침묵은 고통을 증가시킨다.

 

나는 가족과 명 명 되지 않는 친구에게만 데이브의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 내가 마음을 열기 쉽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친구와 동료도 있었다.

[6] 심리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오프너 opener’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친구들과 달리 오프너는 질문을 많이 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대답을 귀담아 듣는다. 이들은 타인에 대해 알아가고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한다. 오프너는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평소에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오프너가 언제나 가장 친한 친구인 것은 아니다.

[7] 역경을 경험한 사람들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더욱 잘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8] 작가인 애너 퀸들런은 진정한 자아의 중심 깊은 곳에 동질의 깊은 틈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슬픔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한다라고 주장했다.

[9] 퇴역 군인, 성폭행 피해자, 자녀를 잃은 부모는 비슷한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유용한 심리적 지지를 받는다.

 

상실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심지어 매우 친한 친구조차도 나나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했다. 내가 주위에 있을 때 그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애덤은 사람들이 말을 건네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모를 뿐이라고 확신했다.

세계 어느 문화에나 부정적인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압력이 존재한다.

[10] 중국과 일본에서는 평온하고 침착한 것이 이상적인 감정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열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섢한다.

[11] 심리학자 데이비드 카루소가 주장하듯 미국 문화에서는 안부를 묻는 질무네 그저 좋아요정도로 대답해서는 안된다. … ‘무지하게 좋아요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힘들게 지낸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은 거의 부적절하다. 이면에 존재하는 진짜 감정을 숨기라는 끈질긴 요구가 따르기 때문이다.

 

[12] 애너 퀸들런은 이 말을 좀 더 시적으로 표현했다. “슬픔이 세상에서는 속삭임처럼 들리지만 마음속에서는 함성처럼 메아리친다.”

 

유대인 전통에서는 배우자가 사망하면 30일 동안 애도한다. 한 달이 거의 끝날 무렵, 나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내 감정을 전달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13] 그동안 감정을 글로 많이 쏟아내기는 했지만 공개하겠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었다.

하룻밤 고민한 끝내 다음 날 아침, 마음이 변하기 전에 글을 올렸다.

 

내가 느끼는 공허를 묘사하고, 그 공허에 얼마나 쉽게 빨려들어갔는지 적었다.생전 처음 기도의 힘을 깨달았다고도 썼다. 도저히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몇 주를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얼굴을 맞대고 하기 힘들었던 말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지내요?” 같은 일상적 인사를 들으면, 평상시와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 같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고 썼다. 대신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라고 물어주면 내가 상황을 이겨내라고 매일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고 설명했다.

 

내가 올린 글의 영향은 즉시 나타났다. 친구들, 이웃을, 동료들이 코끼리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인 비극을 누구나 마음 편하게 공개적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할지, 언제 어디서 말할지 나름대로 선택을 한다.

[14] 그런데 정신적 외상을 남긴 사건들을 공개했을 때,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친구나 가족들에게 사연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에게 이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몇몇 친구에게는 내 심정을 직접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모두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며 속마음을 말해줘서 고맙다며 내 안부를 물어주기 시작했다.

 

코끼리를 불러들이는 역경은 죽음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 이혼, 실직, 성폭행, 중독, 투옥, 질병 등 상실을 떠올리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자기 생각이나 사연을 털어놓으면 사회적 결속을 강화할 수도 있지만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몇 명 되지 않는 필리핀 학생이었던 앤서니 오캠포는공동체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아메리칸 드림 때문에 받았던 심적 압박감에 대해 말했다. 그에게는 덧붙여 감내해야 하는 자신만의 고통도 있었다.

[15] 사회학과 교수가 된 앤서니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난 후에 파생되는 문제를 연구했다.

앤서니가 인텁한 10대 필리핀 소년은 어머니가 내가 마셨던 물 컵이 더럽다며 내가 보는 앞에서 버렸다라고 했다. 한 이민자 가정의 아들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자 가족들이 자신을 차에 태워 멕시코 땅에 내려놓으면서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우라며 여권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화에서 앤서니는 모순을 보았다. 이민자 부모들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는 고통을 직접 겪었으면서도 성 소수자 자녀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겼다. 앤서니는 결과를 부모에게 설명했다. “자녀들은 마약, 알코올, 안전하지 않은 성행위를 탐닉하며 인정받으려고 해요. 가족에게 거부당한 기억은 여러 해 동안 사라지지 않으면서 삶의 모든 측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답니다.”

앤서니가 인내심을 가지고 사려 깊게 설득하자 부모도 앤서니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용기를 내서 침묵을 깨고 나자 가족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것이다.

 

작가 에밀리 맥도웰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에밀 리가 임파선 암에 걸렸을 때 경험한 최악의 상황은 항암화학요법을 받아 속이 메슥거리거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 아니었다.

[16]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많이 멀어져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꼈다.

그들은 내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의도치 않게 완전히 잘못된 말을 했다.“

[17] 그래서 메일리는 공감대화 카드 empathy card’를 만들었다.

 

의도가 정말 좋더라도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저자 팀 로렌스는 이렇게 물었다.

[18] “비극적인 일을 당하면 개개 주위 사람들이 사라지고 상투적인 말만 남는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거야말고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러면서 이렇게 제안했다. “가장 유익하고 적절한 행동은 인정하는 것이다. 0자 그대로 이렇게 말하다. ‘네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아. 내가 곁에 있어줄게.’”

 

고통이라는 코끼리는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코끼리를 무시하면 슬픔을 겪는 사람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위로해줄 수 있었던 사람은 오히려 상대방과의 거리만 넓히고 만다. 두 사람 모두 손을 뻗어야 한다. 공감하면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다. 코끼리가 사라지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나는 알아,네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여. 나는 너를 염려하고 있어라고 말해줄 수는 있다. 물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며 소리쳐 말하는 방식은 제외하고 말이다.

 

옵션 B_1장

Chapter 01_다시 숨을 쉬다

 

[1] 너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다.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아뮈엘 베케트 Samuel Beckett, 아일랜드 출생 프랑스 작가

 

데이브(저자의 남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쯤 지났을 때다. 오랜 친구의 전화였다.

내 친구는 자신이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는 젊은 여성이 겪은 황당한 사연을 들려줬다.

그녀는 며칠 전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가 근처에 사는 동료를 차에 태워주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동료는 흉기를 꺼내 들고 그녀를 위협해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했다.

 

그녀를 위로해줄 방법을 찾던 내 친구는 내가 예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있으니 그녀와 얘기하며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교훈들이 그녀에게도 유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회복탄력성의 씨를 심는다.

[2] 사람들이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수십 년 동안 연구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세 가지 P가 회복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P개인화 personalization’를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역경을 겪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침투성 pervasiveness’으로, 그 사건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재는 영속성 permanence’으로, 사건의 여파가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더라도 성인이나 아이가 자기 때문에 역경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 역경에서 더욱 빨리 회복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받지 않으며, 평생 역경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부정적인 사건이 자신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우울을 떨쳐버리고 역경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세 가지 P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4] 도시와 지방을 막론하고 교사가 학생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쳤고,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됐다.

[5] 경기 성적이 저조했던 대학교 대표 수영 선수들은 심박수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더 나은 성적을 올렸다.

[6] 보험 외판원들은 구매 거정을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 날 새로운 잠재 고객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동료보다 두 배 이상의 실적을 올렸고 근속기간도 두 배로 늘어났다.

 

그 젊은 여성과 통화하면서 처음에는 듣기만 했다. 그녀가 동료를 집까지 데려다준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기 시작하자 나는 공격받은 사건을 개인화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전부 그 사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두 가지 P인 침투성과 영속성을 거론했다. 그녀의 삶을 형성하는 다른 영역에서 좋은 점을 찾아 끌어냈고, 시간이 흐르면 절망이 누그러질 거라고 위로했다.

 

성폭행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엄청나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그 방법이 달라서 무척 복잡하다.

[7] 연구 결과를 보면, 성폭행 피해자는 흔히 자신을 책망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경향을 깰 수 있다면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나 역시 세 가지 P의 덫에 걸렸었다.

나는 데이브가 사망한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의료보고서에는 데이브가 운동기구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이 사망 원인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데이브를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거라고 끊임없이 자책했다. 하지만 신경외과 의사인 남동생 데이비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데이브는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심장부정맥으로 순식간에 사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데이브의 사망 원인을 제대로 알고 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자책할 다른 이유를 찾았다.

데이브의 사망으로 주위 사람들을 모두 정신적 붕괴 상태에 빠뜨린 것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탓했다.

 

[8] 그 후 몇 개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안해요였다.

결국 애덤은 미안하다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내게 조언했다. 아울러 사과합니다”, “후회합니다같은 표현도 쓰지 말라고 덧붙이면서 어떤 것이 됐든 자책하는 행동방식을 고치라고 설득했다.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력하자 나는 혀를 깨물며 버텨내는 과정에서 차츰 개인화된 사고방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책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모든 일이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슬픔 전문 카운슬러와 심리치료사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

직장에 복귀한 것도 침투성을 중단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직장에서 지지와 이해를 받는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왔다. 직접 비극을 겪고 나니 이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직장에서 그런 광경을 바람직할 만큼 흔히 목격할 수 없다.

[9]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민간 부문 근로자의 60퍼센트만 휴가를 받는데, 그것도 통상 며칠에 불과하다.

[10] 그래서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슬픔을 극복하지 못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또한 상실 뒤에 찾아오는 경제적 압박은 권투 선수가 잽을 맞고 연이어 스트레이트를 맞는 것과 같다.

[11] 미국 기업만 따져보더라도 슬픔에서 비롯된 생산성 손실은 연간 750억 달러에 이른다.

 

[12] 포괄적인 의료보험, 은퇴, 육아 간호 휴직, 병가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은 직원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더욱 충실하고 생산적인 노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직원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관대한 동시에 현명한 조치다.

 

내 경우, 세 가지 P 가운데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은 영속성이었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몇 개월 동안 가눌 수 없는 고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가 겪은 것과 같은 극단적인 투사를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무한정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13] 특정한 사건이나 결과가 발생했을 때 훗날 이를 어떻게 느낄지 예측하는 정서 예측 affective forecasting’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14]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의 영향을 받는 기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재 애인과 헤어졌다고 가정하고 두 달 후에 느낄 불행 정도를 예측해보라고 요청했다.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실제로 애인과 헤어진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느끼는 불행의 정도를 보고하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실제로 헤어진 대학생들이 이별 후의 불행을 예측한 경우보다 훨씬 덜 불행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여러 사건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5] 대학교 조교수들은 종신재직권을 거부당하면 다음 5년 내내 낙심하여 지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6] 마음에 들지 않는 기숙사에 배정된 대학생들의 생활이 참담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내 모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가장 불만이 많던 기숙사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 배정받았던 학생만 보더라도 이러한 연구 결과는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17] 인지적 행동치료법도 시도했다.

우선 자신에게 고통을 안기는 생각이 무엇인지 적고,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바탕으로 인지치료와 행동수정을 통합했다.

우선 가장 큰 두려움, ‘아이들이 다시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종이에 적은 문장을 보고 속이 쓰리고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어릴 때 부모를 잃은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내 예측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문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데이브의 장례식을 이끈 랍비 냇 에즈레이는 끔찍한 상황을 맞으리라 예상하고 준비하라는 뜻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들다 lean in to the suck”라고 내게 말했다. 유익한 조언이었다.

여러 해 전, 나는 슬프거나 불안할 때 2차로 파생된 감정으로 인해 두 배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울할 때는 우울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우울해졌고, 불안할 때는 불안하다는 사실에 불안해졌다.

[18] C. S. 루이스가 썼듯, “모든 비참함의 일부는 비참함의 그림자다. …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스스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뒤 2차로 파생되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부정적 감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하지만 랍비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마음이 많이 안정됐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도 깜짝 놀라지 않고, 그러한 감정이 일어나리라 예측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불교 신자들이 깨달아온 교훈을 막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숭고한 진리는 삶이 곧 고통이라는 것이다.

불교 스승 페마 초드론 Pema Chodron은 미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티베트 불교 전통에 따라 승려로 임명받아 선 세계의 천장을 깼다.

[19]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이 숭고한 진리를 받아들일 때 실제로 고통이 줄어들고 내 마음속 악마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내 악마와 밖에서 함께 술을 마시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자 이런 악마가 마음에 나타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기가 막히게도, 내게 가장 도움이 됐던 방법 중 하나는 최악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20] 애덤은 내게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데이브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운전하다가 심장부정맥을 일으켰을 수도 있잖아요.” 라는 생각은 그 순간에 아이들이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러난 감사의 마음이 슬픔을 얼마간 덮어줬다.

 

데이브와 나는 저녁식사를 할 때 우리 가족만의 의식을 치렀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그 날 하루 동안 겪은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돌아가며 말하는 것이다. 이제 가족이 세 명이 되면서 나는 한 가지를 덧붙여 감사한 순간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또 식사 전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에게 기도하다 보면 우리가 매일 축복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축복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축복일 수 있다.

[21] 심리학자들이 한 집단에게 감사했던 일 다섯 가지를 매주 목록으로 작성하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다퉜던 일을, 세 번째 집단에게는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게 했다.

감사 목록을 작성한 집단은 9주 후 훨씬 행복해졌고 건강 문제도 개선되었다.

[22] 경제 침체기에 직장에 들어간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자기 직접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직장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축복을 나열하다 보면 삶에서 좋은 점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정말로 행복과 건강이 증진된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아무리 슬픔이 밀려오더라도 하루 동안 감사한 일과 감사한 사람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또 우리 가족이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 깊이 감사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하나만 터져도 하루아침에 경제적 안정을 잃는 사람이 많다.

[23] 한국에서는 전체 인구 100명 중 19명 이상이 빈곤에 노출되어 있고,

그 위험성은 여성과 한 부모 가정의 경우, 더욱 높아진다.

[24] 미국인의 60퍼센트는 생계유지 능력을 위협하는 사건을 경험했고, 3분의 1은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해 경제적 위협에 계속 노출되어 있다.

[25] 배우자의 사망으로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초래되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보다 소득이 적고 연금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의 경우 특히 그렇다.

[26]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심신이 황폐해지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돈마저 없어 혼자 남겨지는 여성이 많다.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고통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세 가지 P에 대해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난관을 헤쳐 나갈 때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실직하거나 실연당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등 살다 보면 누구나 상실에 직면한다.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지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여기에 맞서야 한다.

 

회복탄력성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올 때, 외부의 지지를 받을 때 생겨난다. 자기 삶에 주어진 혜택에 감사하고 최악의 상황에 달려들 때 생겨난다. 스스로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슬픔을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때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실에 대한 통제권이 적을 수도 있고, 특 수도 있다.

 

나는 삶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더라도 바닥을 박차고 수면으로 올라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프레임_Chapter 10

Chapter 10_지혜로운 사람의 11가지 프레임

 

 

목사이자 신학자인 찰스 스윈돌(Charles Swindol)은 삶에 있어서 객관적 사실은 인생을 통틀어 겨우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그 일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고 주장했다.

[1] 또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이렇게 말했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아 갈 수 없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프랭클의 말처럼 삶의 상황들은 일방적으로 주어지지만, 그 상황에 대한 프레임은 철저하게 우리 자신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더 나아가 최선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성의 최후 보루이자 도덕적 의무이다.

이제 이 책을 마치면서 우리가 진정 더 지혜롭고 자유로운 사라미 되는 데 도움이 되는 11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의미 중심의 프레임을 가져라

 

[2] 어떤 일을 의미 중심의 상위 수준으로 프레임하는지, 절차 중심의하위 수준으로 프레임하는지는 그 일을 하는 타이밍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결혼식을 앞둔 커플들도 결혼식 몇 개월 전에는 영혼의 결합이나 인생의 동반자같은 추상적인 의미로 결혼을 바라보며 가슴벅차한다. 그러나 결혼식이 코앞에 다가오면 혼수 문제’, ‘공항까지 누가 운전하나?’ 와 같은 구체적이고도 사소한 상황들을 염두에 두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결혼의 깊은 의미보다는 현실적인 절차에 압도당하고 만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까운 미래나 현재의 일도 늘 상위 주순으로 프레임해야 한다. 일상적인 행위를 마치 먼 미래에 하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의미 중심으로 프레임하는 습관을 길어야 한다.

 

2. 접근 프레임을 견지하라

 

행복과 성공은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의 몫이다. () 정주영 회장이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다는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은 접근 프레임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하고 싶었지만 주저했던 일이 있다면 이제라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자기 방어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밖의 세상을 향해 접근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새로운 일을 접했을 때 늘 접근의 프레임을 견지하라. 그것이 두려울 땐 기억하다. 접근함으로 인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안주함으로 인한 후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는 것을!

 

3. ‘지금 여기프레임을 가져라

 

사람들은 현재를 준비기라고 프레임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즐기고 만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참고 견뎌야 하는 대상이라고 믿는다. 인생의 전 과정이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지금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일이나 가족, 친구들의 생일을 챙기고 적극적으로 축하하고 누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3] 영어의 ‘savoring’이라는 말은 현재 순간을 포착해서 마음껏 즐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프레임은 준비기로서 희생하는 현재가 아니라 ‘savoring’ 대상으로서의 현재다.

 

4. 비교 프레임을 버려라

 

진정한 마음의 자유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데 있다.

[4] 저자가 속한 연구팀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타인과의 비교는 설령 그 대상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도 너무 자주 하게 되면 정신 건강에 좋지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연구팀은 3주에 걸쳐 매일 학생들에게 그날 하루 자신을 남들과 비교했는지, 비교를 했다면 얼마나 자주, 어떤 영역에서 비교를 했는지 체크하게 했다. 또한 매일 그 날의 행복 정도를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한 학생일수록 그날의 기분과 행복감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객관적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도 횟수가 잦을수록 행복감을 떨어뜨렸다.

 

비교 프레임은 배움의 기쁨과 도전정신도 앗아간다. 우리로 하여금 잘하는 것에만 안주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생산적이고 지혜로운 비교는 없을까? 우리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들과의 횡적인 비교보다는 과거 자신과의 비교 혹은 미래의 자신과의 종적인 비교가 하나의 대안이 된다. 과거의 자신보다 현재의자신이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상의 비교가 남과의 비교보다 훨씬 생산적이라는 결론이다.

 

5.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

 

한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의 프레임을 결정한다.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은 언어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특히 긍정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1932180명의 젊은 여성들이 미국에서 수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감격적인 순간에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간증문을 쓰도록 했다. 70여년이 지난 이후 학자들의 손에 간증문이 넘겨졌고, 연구자들은 단어와 문장을 분석하여 간증문에 얼마나 긍정적인 정서가 표현되어 있는지를 측정했다.

[5] 놀라운 사실은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한 상위 25% 수녀들 가운데 90%가 넘는 수녀들은 85세까지 장수하고 있었지만, 긍정적인 단어를 적게 사용한 하위 25% 수녀들 중에서는 겨우 34%만이 생존해있었다는 점이다.

매일 사용하는 단어 속에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까지 담겨있다. ‘대충, 아무거나등의 단어들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최고(best)’ 프레임에서 순식간에 충분한(good enough)’ 프레임으로 바꿔버린다. 항상 긍정의 프레임을 만드는 긍정적인 언어로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6.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회나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특정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삶을 바꾸려고 하듯이, 우리 스스로에게도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줘야 한다.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하나쯤 기억해주는 것이 좋다.

 

만일 기억에 담아둘 만한 이야기가 없다면 소설사 마샤 뮐러(Marcia Muller)의 방법을 이용해볼 것을 권한다.

[6] 뮐러는 2001<뉴욕타임스>에 기고하던 글 쓰는 법에 대한 작가들의 조언이라는 연재물에서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 샤론 매콘과 자신이 어떻게 닮아가게 되었는지, 정확하게는 자신이 어떨게 매콘처럼 변하게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뮐러의 미스터리 소설에서 매콘은 탐정으로 나오는데 뮐러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매콘의 캐릭터에 그대로 구현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매콘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7] 오랫동안 실직 상태에 있던 뮐러는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 가상의 인물처럼 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자신이 정말로 그 사람처럼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 키가 그녀처럼 커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신에 살을 빼서 훨씬 날씬해졌으며 좀 더 용감해졌다. 38구경 권총으로 범인을 체포하거나 유도로 때려눕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전보다는 삶에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후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안전한 곳이든 위험한 곳이든 찾아가서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나 자신만의 독립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본받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반복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대상이 없다면 뮐러처럼 이상적인 자기를 만들어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자신에게 들려줘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상상소그이 이야기가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7. 주변의 물건들을 바꿔라

 

주변에 놓여 있는 물건들은 단순히 현실생활에 필요한 기능만을 담당하는 건 아니다. 앞에서 비즈니스와 관련된 물건들이 있는 곳에서 게임을 하게 되면 훨씬 더 경쟁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연구를 소개한 바 있다. 경쟁적인 마인드를 갖고 싶다면 경쟁심을 유발할 만한 물건들로 주변을 채워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양심적인 행동을 유발하고 싶다면 집안에 거울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8]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부정행위가 거울 앞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디너 교수는 한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거울을 마주 본 채로 문제를 풀게 하고, 다른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거울을 등지고 문제를 풀게 했다. 어느 조건의 학생들이 시험이 종료된 후에도 문제를 계속 푸는지 관찰했더니, 거울을 등지고 문제를 푼 학생들 중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이 훨씬 많았다. 거울이 양심과 도덕의 프레임을 유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본받고 싶은 인물의 사진을 걸어놓거나 가지고 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신이 닮고 싶은 롤 모델의 사진을 걸어놓는 행위가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프레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소유보다는 경험의 프레임을 가져라

 

소유가 목적인 소비와 경험이 목적인 소비를 선명히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행복은 소유 자체를 위한 소비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를 했을 때 더 크게 다가온다. 음식을 먹을 때, 단순한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음식에 들어간 재료들을 음미하는 미식가로서의 경험을 추구해보라. 영화를 볼 때도 단순히 흥행 영화를 본다는 프레임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이 창조해낸 작품을 감상한다는 차원으로 프레임을 해보라.

[9] 우리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소비한 경우보다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한 소비를 했을 때 더 강한 행복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 소비해야겠지만, 정녕 한 차원 높은 행복을 경험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소비하도록 하라. 누군가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을 단순한 인사치레나 이례적 선물로 프레임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복 비타민이라고 프레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9. ‘누구와의 프레임을 가져라

 

[10] 심리학에서 Mr.Happiness 혹은 King of Happiness라고 불리는 행복 전문가인 에드 디너 교수는 긍정심리학의 또 다른 대가인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교수와 함께 <매우 행복한 사람(Very Happy people)>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 디너와 셀리그먼은 222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행복을 측정한 후에, 그 점수에 근거해서 가장 행복하다고 스스로 보고한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가장 행복하다고 답한 10%와 나머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차이점은 관계였다. 최고로 행복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적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행복은 어디서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 커다란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 자기 삶에 만족을 누리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옆에서 보고 있기만 해도 영감이 느껴진다. 그런 사람과 있으면 완벽의 경지에 도달하고픈 충동과 치열한 삶의 욕구가 나도 모르게 생겨난다. 어떤 사람은 함께 있기만 해도 즐겁고 유쾌하다.

연구에 의하면 배우자가 사망한 후 일주일 이내에 남은 배우자가 죽을 확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두 배나 높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은 후에 생존할 확률은 친밀한 관계를 통한 사회적 지지가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관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애기다.

 

10. 위대한 반복 프레임을 연마하라

 

습관은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도스토옙스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블링크(Blink)>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Malcom Gladwell)20065, 뉴욕에서 열린 미국 심리학 연차 학술대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 강연에서 그는 자신이 10대 시절 캐나다 마라톤 챔피언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그는 15세 때 챔피언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후 흥미를 잃었다가 대학에 들어가 다시 시도했지만, 더 이상 자신이 뛰어난 마라토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글래드웰의 조사에 따르면 마라톤 능력이 떨어진 것은 그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사례는 아니었다. 그는 13세 때 캐나다 전국 순위 15위에 들었던 소년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24세가 되었을 때의 랭킹을 조사했다. 그 결과, 24세에 전국 15위에 들었던 선수들 중에 단 한사람밖에 없음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24세때 캐나다 랭킹 1위는 어린 시절 엘리트 선수들로부터 조롱받던 별 볼일 없는 아이로 밝혀졌다.

결국 여러 연구에 따르면, 성인기의 성취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영역이든 중단 없는 노력에 의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나 적절한 지적이다. 반복의 위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인지 심리학 분야에는 ‘10년 법칙이라는 규칙이 존재한다. 우리가 천재라 알고있던 상당수는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집중과 반복의 산물임을 기억하라.

최근 10년 법칙의 수정을 요하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10년 법칙의 창시자 앤더슨 교수도 10년 법칙이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왜곡되어 소개되고있다고 실토하였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말하는 연습이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특정 학습 목표를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존재하며, 자기 수행에 대한 즉각적이고 반복적인 피드백이 존재하는 계획된 훈련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그저 시간만 쌓아가는 단순 반복으로 오해라고 있다고 한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탁월성에 이르기 위해 집요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최고 수준의 전문성이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프레임을 바꾸기 위한 리프레임(reframe) 작업이 바로 이와 같다. 프레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리프레임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11. 인생의 부사(副詞)를 최소화하라

 

부사나 형용사를 남발하게 되면 문장이 생명력을 잃는다.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조언에 등장하는 공통적인 가르침이다.

부사를 남발하는 심리적 이유에 대하여 작가들은 한결같이 자신감의 부족을 지적한다. 불안하면 사람들은 수식어를 많이 쓴다. 생명력이 넘치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부사를 줄이고 자신의 의사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전달해야 한다.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부사를 줄여야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액세서리들을 줄여야 한다.

행복에 관한 연구들이 지적하는 대표적인 인생의 부사를 꼽아본다면, ‘소유물타인의 시선이다. 적정선을 넘게 되면 득보다는 독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작가의 프레임으로 인생을 바라보면 삶의 매 순간이 문장이다. 문장이 살아있어야 삶에 생명력이 있다. 글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이지, 부사가 아니다.

 

프레임_Chapter 9

Chapter 09_변화 프레임,

경제적 선택을 좌우하는 힘

 

 

만일 불의의 사고로 손발을 잃거나 하반신이 마비된다면 어떨지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불행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불행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통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예측이 실제와 다른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적응 능력에서 기인한다. 어두운 극장에 가면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몇 초 지나면 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어떤 상태에 쉽게 적응하는 탓에 변화에 무척 예민하다. 이것이 우리의 경제적 선택과 판단을 움직이는 또 다른 핵심 원리다.

 

 

1. 선택의 갈림길

 

아래 상황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상황 1>

현재 100만원의 수입이 생겼다고 가정해보다.

A 추가로 50만원을 확실히 더 받을 수 있다.

B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뒷면이 나오면 한 푼도 못 받는다.

 

조금 적지만 확실한 50만원을 받을 것인가? 확률은 반반이지만 한푼도 못받을 상황을 감수하면서, 추가 수입 100만원의 가능성에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

 

이제 두 번째 상황을 보자.

<상황 2>

현재 200만원의 수입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A 무조건 50만원을 내놓아야 한다.

B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내놓고, 뒷면이 나오면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상황에서는 어느 쪽 옵션을 선택할 것인가?

 

만일 당신이 상태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면 <상황 1><상황 2>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상태를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두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 또한 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변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 상황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상황 1>은 현재 상태에서 돈이 늘어나는 변화(이득의 관점)에서 문제가 기술되어 있고, <상황 2>는 손실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

[1] 카너먼 교수와 트버스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득 상황으로 문제가 프레임되면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안전하고 보수적인 대안을 선택한다.

그러나 동일한 문제가 손실 상황으로 프레임되면 안전한 선택보다는 모험을 감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효과를 두 연구자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t)’라고 불렀다. 프레임의 중요성을 학계에 인식시킨 역사적인 연구라 할 만하다.

이 연구는 우리가 내리는 모험적 선택 혹은 안전 위주의 선택이 객관적으로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프레임 때문에 내려진 선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손실 프레임과 이득 프레임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보라

1) 현금으로 구입하시면 1,000원 할인해드립니다.

2) 신용카드로 구입하시면 1,000원 추가요금이 부과됩니다.

 

1번과 2번의 상황은 동일하다. 그러나 1번은 이득 프레임을, 2번 프레임은 손실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두 경우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2번의 경우에 현금 구입을 더 많이 선택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양의 이득으로 오는 만족보다는 동일한 양의 손실이 주는 심리적 충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카너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손실은 이득보다 2.5배 정도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손실 혐오(loss aversion)’라고 한다.

 

우리는 매장에서는 잘 맞던 구두가 다음 날부터 신기만 하면 발뒤꿈치가 아플 때, 다음과 같이 미련하게 행동한다.

1) 비싼 구두일수록 아픈 것을 잘 참고, 무리해서라도 그 구두를 신고 나가려고 한다.

2) 잘 맞지 않아 더 이상 그 신발을 신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비싼 구두일수록 쉽게 버리지 못한다.

[2] 구두에 관한 시카도 대학교 리처드 테일러(Richard Thaler)교수의 이 재치있는 지적은 손실 혹은 낭비에 대한 인간의 혐오가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어떤 대학생이 게임을 보며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전자레인지용 스파게티를 하나 샀다. 마침 50% 할인 행사를 하고 있어서 절반 가격인 3,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와 경기를 보는 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아 단짝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친구가 먹을 스파게티를 사러 슈퍼마켓으로 갔더니, 세일이 끝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제값인 6,000원을 주고 샀다.

집으로 돌아와 경기 시간에 맞춰 스파게티 2개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 못온다고 한다.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파게티 2인분을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어느쪽 스파게티를 먹겠는가? 합리적인 답은 둘 중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제값 주고 산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제값을 다 주고 산 스파게티를 먹어야 덜 아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이는 매몰 비용(sunk cost)’이다. 제값 준 스파게티를 먹든, 반값 스파게티를 먹든 그 중 일부의 돈이 돌아온다든지, 손해를 본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제값에 산 걸 먹어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손실에 대한 원초적 거부다.

 

 

3. 현상 유지에 대한 집착

 

어느 날 당신 앞에 다음과 같은 행운의 상황이 찾아왔다고 상상해보자.

 

<상황 1>

당신은 그동안 목돈이 없어 별다른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큰아버지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현금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고, 이제 아래 옵션들 중 어디에 얼마씩 투자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1) A회사의 주식

향후 1년 동안 가격이 30% 상승할 확률 50%

가격이 20% 하락할 확률 30%

가격 변동이 없을 확률 20%

 

2) B회사의 주식

향후 1년 동안 가격이 100% 상승할 확률 40%

가격이 40% 하락할 확률 30%

가격 변동이 없을 확률 30%

 

3) 국채 : 1년 간 거의 확실하게 9% 이득 보장

 

4) 지방채 : 1년간 약 6% 이득 보장(세금 면제)

 

당신이라면 이 네 옵션에 각각 얼마씩 투자하겠는가? 이번에는 당신이 처한 상황이 다음과 같다고 가정해보자.

 

<상황 2>

당신은 그동안 목돈이 없어 별다른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큰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유산이 전부 ‘A 회사의 주식이었다. 이제 그 주식을 그대로 보유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것인지를 고민 중인데 위 네 가지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

 

[3] 위의 상황은 경제학자 윌리엄 새뮤얼슨(William Samuelson)과 리처드 제크하우저(Richard Zeckhauser)가 연구 참여자들에게 실제로 제공한 것들이다.

두 상황에 주어진 선택 대안들은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첫 번째 상황에서는 유산이 현금이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유산이 전부 A회사의 주식이다. 다시 말해 A 회사 주식이 첫 번째 상황에서는 중립적인 대안으로 프레임되어 있고, 두 번째 상황에서는 현재 상태로 프레임 된 것이다. 이 연구의 주된 관심은 ‘A회사의 주식에 대한 선택이었다.

 

새뮤얼슨과 제크하우저는 A 회사의 주식이 현재 상태로 주어진 경우에 그 옵션을 유지하는 경향성이, 그 옵션이 중립적 대안으로 제시되었을 경우 그 옵션을 새롭게 선택하는 경향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상황은 네 가지 옵션 중 어느 것이 현재 상태로 주어진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이 연구 결과는 어떤 대안이든지 그것이 현재 상태로 주어져 있으면 사람들은 바꾸기 보다는 유지하려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언가를 유지하려 할 때 그 결정은 최선의 것이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현재 상태였기 때문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로 주어져 있는 대안을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 심지어 기존의 직업까지도 처음 접하는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해서 본다면 아마도 많은 선택들이 달라질 것이다.

 

 

4. 소유 효과

 

리처드 테일러 교수는 코넬 대학교 재직 당시, 코넬 대학교의 로고가 새겨진 기념 머그잔을 경제학 시간에 일부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4] 그런 후에 테일러 교수는 일종의 경매시장을 열고 컵을 받은 학생들에게 최소 가격을 적게 했다. 반대로 컵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어느정도의 가격에 살 용의가 있는지 적게했다.

컵을 소유하고 있던 학생들이 적어낸 판매가의 평균치는 5.25달러, 컵을 사려고 학생들이 적어낸 구입가의 평균치는 2.75달러에 불과했다. 똑같은 컵이었는데 왜 팔려는 학생은 사려는 학생들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적어냈을까? 돈을 주고 구입한 컵이 아니므로 본전을 찾으려는 심리 때문이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프레임 때문이었다. 컵을 소유했던 학생들은 컵을 파는 상황을 손실 상황으로 프레임했고, 컵을 사고자 했던 학생들은 컵을 새로 얻는 이득 상황을 프레임했던 것이다. 판매하려는 가격과 구매하려는 가격의 차이를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고 한다.

일단 무엇이든 내 소유가 되고 나면 그것의 심리적 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내 것의 프레임으로 보는 사람과 아직은 내 것이 아닌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이 느끼는 물건의 심리적 가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5. 후불제의 위력

 

가정불화를 극복하지 못한 부부가 이혼을 결정했는데, 하나뿐인 아들의 양육권을 놓고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양육권 결정은 법원에 맡겼다.

당신이 이 사건의 배심원이라면 어느 부모에게 양육권을 주겠는가?

<부모 1> : 보통 수준의 수입, 건강 상태 보통, 업무량 보통, 아이와의 사이는 보통 수준, 사회생활 보통 수준

<부모 2> : 평균 이상의 고수입, 사소한 건강상 문제 있음, 업무상 출장이 잦음, 아이와의 사이는 친밀함, 사회생활 아주 활발함

[5] 프린스턴 대학교의 엘다 샤피어(Elder Shafir)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64%<부모2>에게 양육권을 맡겨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판사다 배심원단에게 질문한 요청이 어느 부모에게 양육권을 주어야하는가? 가 아니라 어느 부모에게 양육권을 주면 안되는가?였다고 해보자. 질문의 방향, 즉 프레임이 중요하지 않다면 동일한 답변이 나와야하지만, 무려 55%의 사람들이 <부모2>에게 양육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배심원 입장에서 보자. 안되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장점보다 단점을 찾는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그러니 <부모 2>가 눈에 띈다.

그러나 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단점 대신 장점을 찾는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에 따라 양육에 적합해보이기도 하고, 부적합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교묘한 프레임 효과가 후불제 마케팅에도 작용하고 있다. 선불제로 물건을 살 경우 소비자들은 잘못 선택했을 때 생길 부담 때문에 대개 장점을 찾는 프레임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후불제로 주문한 경우는 이 물건이 반환할 정도로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가?’의 프레임, 즉 단점을 찾는 프레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따라서 심각한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반환을 요구하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된다. 처음 후불제로 물건을 주문할 때는,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환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고객의 프레임은 돌변하며 웬만해서는 반환하지 않게 된다.

이런 후불제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물건을 받은 이후에도 이 물건을 꼭 사야 할 뚜렷한 장점이 있는가?”의 프레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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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9를 나가며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반드시 던져봐야 할 질문은 내가 내린 선택이나 결정이 절대적으로 최선의 것인가, 아니면 프레임 때문에 나도 모르게 선택되어진 것인가?”이다. 어떤 레임으로 제시되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결제적 지혜의 핵심이다.

자신의 선택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현상 유지적일 때, 소심한 성격을 탓하기 보다는 그 선택이 어떻게 프레임되어 있는지부터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경제적 선택은 총성없는 프레임 전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프레임_Chapter 8

Chapter 08_이름 프레임,

지혜로운 소비의 훼방꾼

 

 

2002년 노벨경제학상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이변으로 통한다. 그 이유는 수상자 중 한 명이 경제학자가 아닌 대니얼 카너먼이라는 심리학자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물어보는 방법(프레임)에 상관없이 언제나 동일한 선호를 보일 것이라고 가정한다.

예를 들면, 잡지 구독료가 1년에 12만원이라고 하든 한 달에 1만원이라고 하든 사람들은 구복 여주에 대해 동일한 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카너먼 교수는 이런 기대가 틀렸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람들의 경제적 선택이 프레임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 프레임이 노벨상을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프레임을 좌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름이다. 낙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낙태를 선택의 권리라고 이름붙이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생명의 권리라고 이름 붙인다.

여러 영역 중에서 이름의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는 영역은 무엇일까? 바로 돈이다.

 

 

1. 공돈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돈에는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의 출처에 따라 돈에다 갖가지 이름을 붙이고는 마치 서로 다른 돈인 양 차별해서 쓰는 습관이 있다. 특히 공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면 그 돈은 어차피 없었던 돈이라는 프레임이 작용해서 결국 돈을 쉽게 써버리고 만다.

다음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공돈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돈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여준다.

 

[2] 한 신혼부부가 카지노에 들어갔다. 몇 시간 즐기다 보니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잃고 말았다. 신혼부부는 게임을 더 하고 싶었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자신들의 절제력이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신부가 샤워를 하는 동안, 신랑은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앉아 있는데 화장대 위에 놓인 5달러짜리 카지노 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기념품으로 가져온 칩이었다. 그런데 칩 위에 ‘17’이라는 숫자가 홀로그램처럼 비치는 것 아닌가? 신랑은 좋은 징조로 보고 신부 몰래 카지노에 향했고, 5달러를 17에 걸었다. 놀랍게도 공은 17에 들어갔고 신랑은 35배 배당을 받아 175달러를 챙겼다. 그는 또다시 17에 걸었고 이번에는 6,125달러를 땄다. 이러다보니 마침내 7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따게 되었다. 그는 다시 한번 17에 걸었다. 그때 카지노 매니저가 다가와 정중히 그만둬달라고 부탁했다. 신랑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순간, 신랑은 행운의 여신이 자기편인지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택시를 타고 더 큰 카지노로 향했다. 거기서 17에 모든 돈을 걸었다. 놀랍게도 공은 17을 향했고 그는 26,200만 달러를 거머쥐게 되었다. 그는 한번 더 시도했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공은 18에 떨어졌고, 그는 지금까지 딴 돈은 모두 잃고 말았다.

호텔로 돌아온 신랑에게 신부는 어딜다녀왔는지 물었고, 신랑은 카지노에 다녀왔다고 했다. 결과를 묻는 신부의 질문에 신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 괜찮았어 겨우 5달러밖에 잃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이 신랑은 분명 26200만 달러를 잃은 것이지, 자신의 말처럼 5달러만 잃은 것이 결코 아니다.

오래전에 빌려주고 까맣게 잊다가 돌려받은 돈, 옷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돈 등등 이런 돈들은 횡재라도 한 듯 짜릿함을 안겨주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지 못한다. 이들에게 공돈이라는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경제생활의 출발은 돈에다 이름을 붙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공돈이라는 이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사회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의 조언대로 해보라.

공돈을 은행에다 2주간만 저축해놓아라.”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동안 그 돈은 공돈에서 예금이라는 이름으로 심리적 돈세탁이 이루어질 것이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돈을 아끼게 될 것이다.

 

 

2. 푼돈

 

공돈 못지않게 지혜롭지 않은 이름이 푼돈이다. 액수가 적은 돈에 습관적으로 붙는데, 이 이름이 붙는 순간 쉽게 소비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1년에 36천원이라는 것과 한달에 3천원이라는 것은 결국 같은 뜻이지만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한 달로 프레임하게 되면 그 돈을 소소한 돈, 즉 푼돈으로 바라보게 한다.

실제로 연간 구록료로 가격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권당 구독료로 제시하는 것이 잡지 구독률을 10~40%까지 올려준다는 보고가 있다.

[3] 하버드 대학교의 존 거빌(John Gourville) 교수가 수행한 연구를 보면 이러한 푼돈 프레임(마케팅에서는 ‘Pennies-A-Day’ 기법이라고 함)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연구팀은 참여자들에게 회사에서 한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사원들에게 1년간 기부할 의사를 물었다. 한 조건에서는 연간 기부액 30만원, 다른 조건에서는 일일 기부액 850원을 제시했다.

과연 어느 조건에서 기부 참여자가 더 많았을까? 분석 결과, 연간 총액 프레임 조건에서는 30%만이, 일일 기부액 프레임 조건에서는 52%가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일일 기부액 조건의 사람들이 더 선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푼돈 프레임이 제시되어 선한 일을 더 쉽게 하도록 유도외었을 뿐이다.

위 같은 이유로 푼돈 프레임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원치 않는 소비로 이끌 수도 있다. 한 잡지에서 출간 기념으로 독자들이 원하는 가격에 잡지를 구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의를 했다고 했다. 이때 당신에게 한 부당(매주) 구독료가 얼마면 구독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고 하자. 만일 이 질문 대신에 연간 구독료가 얼마면 구독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고도 해보자. 얼마를 적어내겠는가?

만일 프레임이 중요하지 않다면 어떤 프레임으로 묻는 동일한 총액을 적어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전혀 이와 다르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연간 구독료를 물어본 조건보다 권당 구독료를 물어본 조건에서 연간 총액 기준으로 거의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을 적어냈다. 권당 프레임 조건에서 푼돈 심리를 유발했기 때문에 액수가 높아진 것이다.

푼돈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지혜롭게 잘만 이용하면 만족할 만한 일을 할 수 있다.

살다 보면 형편이 여의치 않아 계속 미루게 되거나 못 하게 되는 일들이 많다. 단기적 프레임으로 보면, 한 달 살기도 힘든데 무슨 호사냐고 하며 미루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큰 돈을 푼돈처럼 만들어주는 평생 한 번인데라는 장기적인 프레임을 가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프레임을 바꿔보는 것도 지혜로운 삶의 한 방편이다.

 

 

3. 원래 가격

 

푼돈이 절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돈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푼돈으로 여겨지는 100원도 상황에 따라서 귀한 돈이 될 수 있다.

[4] 카너먼 교수와 그의 동료인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 교수가 1981년에 발표한 연구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상황 A>

당신이 TV를 사기 위해 매장에 들렀다. 마음에 드는 제품은 100만원이었다. 생각보다 비싸서 고민하고 있는데, 매장 직원이 말하길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매장에서 특별 세일을 하고 있는데 그 곳에 가면 3만원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한 시간 운전을 해서 3만원 더 싼 TV를 사러 갈 것인가?

 

<상황 B>

당신이 전자계산기를 사기 위해 매장에 들렀다. 마음에 드는 계산기가 있는데 5만원이었다. 생각보다 비싸서 고민하고 있는데, 매장 직원이 말하길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매장에서 특별 세일을 하고 있는데 그 곳에 가면 3만원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한 시간 운전을 해서 3만원 더 싼 계산기를 사러 갈 것인가?

 

이 질문을 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100만원짜리 TV3만원 더 싸게 사기 위해서 한 시간씩 운전하지 않겠지만, 5만원짜리 전자계산기를 3만원 더 싸게 사기 위해서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두 상황 모두 절약할 수 있는 절대 액수는 3만원으로 동일하다. 당신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싼 매장 또는 모두 싼 매장으로 가지 않는 일관된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와 같이 행동한다. ‘원래 가격이라고 붙은 이름에 현혹되어 돈을 상대적 가치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세일 기간에 이뤄지는 충동구매의 대부분은 원래 가격이라는 이름의 함정에 넘어간 결과다.

 

 

4. 문화비

 

아이들은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다가 아들 녀석이 기념품 인형을 사달라기에 5천원을 주고 사준 적이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에 뿌듯했는데, 그만 잃어버리게 되었다. 같은 인형을 또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단번에 거절했고, 아이를 달래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더 비싼 피자를 사주었다.

누구나 경험해봤을 상황이다. 왜 저자는 그 상황에서 인형 값으로 5천원 추가 지불은 거부하면서, 그보다 더 비싼 피자는 쉽게 사주었을까? 그 답 역시 이름에 있다.

 

<상황 A>

평소 보고 싶던 뮤지컬 공연 티켓을 5만원에 구입했다. 극장 매표소에서 확인해보니 오는 도중 티켓을 분실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극장에는 잔여 티켓이 남아 있고, 지갑을 확인하니 티켓을 살만큼의 돈이 들어 있다. 5만원을 주고 다시 티켓을 구입하겠는가?

 

<상황 B>

평소 보고 싶던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해보니 오는 도중에 현금 5만원을 분실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극장에는 잔여 티켓이 남아 있고, 지갑에는 표 살 만큼의 돈이 남아 있다. 5만원을 주고 티켓을 구입하겠는가?

 

[5] AB, 어느 상황일 때 당신은 표를 구입하겠는가? 행동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사람들이 A의 경우에는 표를 사는 데 주저하지만 B의 경우에는 흔쾌히 표를 산다. 독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A의 경우 사람들은 문화비라는 항목에서 10만원이 지출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티켓 한 장에 10만원이나 쓰다니라고 스스로를 나무라면서 다시 구입하기를 주저한다.

B의 경우는 처음 분실한 5만원이 문화비가 아닌 생활비라는 항목에서 나간 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표 한 장에 10만원을 지출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티켓은 5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심리적으로 두 사건을 분리시켜버리는 것이다.

공연을 보는 것이 자신에게 정말로 의미 있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면, 티켓을 잃어버렸어도 티켓이 아닌 현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프레임 방법이다.

 

 

5. 일일 이용권과 시즌 이용권

 

H군와 S군은 34일 연휴동안 스키장을 찾았다. H군은 나흘치 리프트 이용권을 하나의 패스로 구입했고, S군은 1일 리프트 이용권 4장을 낱개로 구입했다. 두 사람이 지불한 총 가격은 동일했다.

열심히 즐기는데, 3일째 되던 날 밤에 날이 갑자기 풀리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연휴 마지막날이기에 둘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게 되었다. 다음 날 스키장 상태는 그럭저럭 탈 정도였지만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은 아니었다. 함께 간 N군이 제안하길 조금 일찍 서울로 떠나자고 했다.

둘 다 스키를 무척 좋아했고, 둘 다 과음을 해 몸 상태도 비슷했다. 그런 상황에서 H군과 S군 중 누가 더 스키를 타는 데 집착할까? 누가 지불한 돈을 더 아까워했을까?

[6] 이 주제를 연구했던 소먼(Soman)과 거빌(Gourville) 교수의 해석을 들여다보자.

S군은 마지막 날 스키를 타지 않으면 티켓 1장이 그대로 남게되고, 결국 하루치가 낭비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H군은 나흘치 패스를 구입했기 때문에 하루 리프트 이용에 정확하게 매치되는 물리적 단서가 없다. 마지막 날 스키를 타지 않으면 무엇이 얼마만큼 낭비되는지 상대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사흘동안 충분히 잘 즐겼다고 쉽게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스포츠센터 이용권을 끊어놓고도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센터로 가 낱장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라. 당신이 자주 못가는 이유는 의지부족일 수도 있지만, 이용권이 패스로 되어 있어 몇 번씩 빠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6. 원화와 달러화

 

돈에는 실제 가치가 있고 명목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미화 1달러는 원화로 1,000(편의상)에 해당한다. 겉으로 사용되는 수치는 11,000으로 차이가 많이 나지만 실제 가치는 동일하다. 따라서 원화로 구입할 때 1만원짜리 물건을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달러로 구입할 때 10달러는 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면세점에서 고급 넥타이를 사려 하는데, 한곳에는 200달러, 다른 곳에는 20달러로 가격표가 붙어있다고 하자. 어느 면세점에서 넥타이를 사는 데 더 주저하게 될까?

연구에 따르면 원화로 계산하는 경우에 주저할 가능성이 높다. 기본 단위의 가치가 높다 액수 자체가 줄어들면, 즉 달러는 겨우 200달러라고 생각하기 쉽다. 명목상의 숫자 200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기본 단위가 작아 겉으로 드러나는 액수가 큰 경우, 즉 원화는 무려 20만원이나 한다고 느끼게 된다

[7] 돈의 실질적인 가치는 같지만 돈의 가치를 나타내는 프레임, 즉 기본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돈에 대해서도 심리적으로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7. 신용카드와 포인트

 

돈에 대한 프레임은 돈의 물리적 형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신용카드는 플라스틱일 뿐 현금과 동일한 통화 수단이다. 현금과 달리 지출 시기가 일정 기간 늦춰진다는 특징이 있지만, 신용카드도 엄연히 돈이다.

[8] 미국의 한 식당에서 일주일 동안 135명의 손님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그들이 신용카드로 음식 값을 계산하는지 현금으로 계산하는지를 기록하고, 종원원들에게 주는 팁의 액수를 조사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한 손님의 수와 식사비 총액을 계산했다.

후에 식사비 총액이 비슷한 테이블을 구분하여 팁 액수를 비교했더니, 현금으로 식사비를 계산한 손님보다 신용카드로 계산한 손님들이 팁을 더 많이 준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은 총 식사비용의 14.95%가 팁으로 주어졌지만, 신용카드의 경우 16.95%가 팁으로 주어졌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참여자들에게 몇 상품을 보여주고 각 물건을 얼마에 살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한 조건에는 상품 목록이 제시된 책상 한켠에 신용카드 로고가 그려진 상징물을, 다른 조건에는 이 상징물을 비치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신용카드 로고를 본 참여자들이 제시된 상품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돈의 형태가 바뀌자 지출의 규모가 달라진 것이다. ‘신용카드=소비라는 공식이 의식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보기만 해도 소비 행동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놀라운 연구 결과라 할 수 있다.

신용카드가 돈의 물리적 형태를 바꿔놓은 것이라면, 각종 포인트와 마일리지는 돈의 물리적 형태 자체를 없애버린 경우다.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포인트를 사용할 때 더 쉽게 사용한다. 마치 포인트 점수는 현금보다 가치가 덜한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총 자산을 계산할 때 포인트까지 포함시키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식사에서 식사 값을 더 내라고 하면 주저하면서도 포인트 점수는 흔쾌히 사용한다. 쓰는 사람과 주변인 모두 포인트는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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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8을 나가며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트렌드 중 안타까운 하나는 바로 재테크에 대한 지나친 강조다. 물론 관심이나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돈 씀씀이를 결정하는 마음의 습관에 대한 공부가 더 절실하다.

이 장에서는 그런 습관 중에서도 돈에 이름 붙이는 이름 프레임의 위험성에 대해 알아봤다. 돈에 붙여지는 이름에 따라 돈을 다르게 쓰게 된다는 이 단순한 원리 하나만 잊지 않고 살아도 큰 부자는 못 되더라도 지혜로운 부자는 되고도 남을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의 기본은 돈에 이름 붙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만 충실히 지켜도 경제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프레임_Chapter 7

Chapter 07_현재 프레임,

과거와 미래가 왜곡되는 이유

 

 

우리가 고대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은 당대에 자신들을 고대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의 관점에서 우리가 그렇게 부를 뿐이다. 미래를 보는 시각도 우리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해석하는 핵심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1. 후견지명 효과

 

과거에는 없고 현재에만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결과.

현재에만 존재하는 결과론적인 지식이 과거에도 존재했던 것처럼 착각하고 내 그럴 줄 알았지’ ‘난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심리 현상을 사후 과잉 확신(hindsight bias)’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런 형상을 선견지명 효과에 빗대어 후견지명(hindsight) 효과라고 부른다.

[1] 여기서 hindsight는 영어의 behindsight가 결합한 말로, 글자 그대로 결과를 알고 난 후에 뒤에서 보면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는 의미다.

성수 대교 및 삼풍 백화점 붕괴 등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던 당시 신문과 방송을 보면 후견지명 효과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모든 매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예고된 인재라고 보도했다.

예고된 인재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왜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단 말인가? 과거에 이루어진 정책을 후세에 평가하는 것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가 그의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지적했듯이, 현재의 프레임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마치 1900년대 초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에 와서 그 당시 사람들을 체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과거가 아직 과거이기 전에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는 현재의 눈으로 볼 때만 질서 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것이다.

 

 

2. 그럴 줄 알았지

 

후견지명 효과는 사후에는 무엇이든지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기인한다. 자기 생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 설명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 능력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어떤 결과든 사후에는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에도 좀처럼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되면 임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들었다고 해보자, 많은 독자들이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당연하지! 입양하면 임신에 대한 부담감이 적어지니까. 교수들이 기껏 이런 연구나 하다니..”

그런데 반대로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되면 임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결과를 들었다고 하자. 이번에도 역시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당연하지! 입양했으니 임신하려는 노력을 안할테니까. 그걸 꼭 연구해야만 알 수 있나?”

A결과에 놀라지 않았으면 not-A 결과에는 놀라야하지 않는가? 그러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그 어떤 상황도 별로 놀랍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당연시하며 그 일이 처음부터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할 때, 우리는 현재 프레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후에 내리는 모든 판단에 대한 확신을 지금보다 더욱 줄여야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떄 내가 진짜 알았을까?’라고 솔직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10년 전의 나는 행복했을까?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을까? 젊은 날의 나는 부지런했을까?

만일 우리가 경험한 과거의 모든 사건들과 순간순간 경험했던 감정을 저장해놓은 데이터가 있다면 이런 질문에 답하는 건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정확하게 담아놓은 것은 없다.

[2] 따라서 과거 회상은 다시 보기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3] 1973년과 1982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 마커스(Markus) 교수 연구팀은 898명의 중년 부모들과 그들의 자녀 1,135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태도 조사를 실시했다.

1973년 당시 자녀들의 평균 나이는 25세였고, 부모들의 나이는 54세쯤 되었다. 그로부터 9년 후인 82년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에서는 사회보장제도’ ‘소수민족 우대 정책’ ‘마리화나에 대한 처벌’ ‘정칮으로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등을 포함한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다. 82년 재조사에서는 이들로 하여금 각 이슈들에 대해 73년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 회상하도록 했다.

연구 관심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73년의 태도와 82년에 회상한 73년의 태도 사이의 유사성이었다. 분석결과, 이 둘 사이에는 0.39~0.44 정도의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년전 태도와 회상한 태도와 어느 정도 유사함을 보여준다.

두 번째 관심사는 82년에 대답한 실제 태도와 82년에 회상한 73년 당시의 태도 유사성이었다. 분석 결과, 이 둘 사이에는 0.56~0.79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태도와 회상한 73년의 태도 사이에 꽤 높은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연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82년 회상한 73년의 태도가 73년에 실제 측정한 태도보다 82년 회상 당시의 태도와 더 깊은 상관관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사람들이 회상해낸 자신의 과거 모습은 과거의 실제 모습을 닮았다기보다는 현재의자기 모습과 더 닮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버릇없고 자기 절제가 부족하다고 꾸짖는다. 또한 교수들은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은 상당 부분 근거가 엇다. 어른들은 자신이 어렸을 떄도 지금처럼 절제력이 있고 책임감이 강했다고 잘못 회상한다. 자신의 완벽한 과거 모습과 비교하면 현재 젊은이들이 부족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랫사람에게 우리 땐 안그랬는데같은 말이 튀어나오려 하면 정말 그랬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3. 과거 죽이기

 

현재 프레임은 과거를 현재와 유사한 것으로 부활시키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현재와 전혀 다른 과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히 어떤 사건이나 특정 시점을 계기로 스스로 발전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높은 경우에 그렇다.

결혼하게 되면 전보다 더 철이 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존재한다. 결혼 후에도 철이 들지 않은 사람들은 이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킬까? 바로 결혼 전의 자기 모습을 실제보다 더 형편없게 회상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변화를 겪은 경우에도 동일한 매커니즘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종교인들은 종교에 귀의 전 자신이 벌레만도 못했다고 고백함으로써 현재 자신이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믿는다.

[5] 이런 과거 죽이기현상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 사람이 심리학자 마이클 콘웨이(Michael Conway)와 마이클 로스(Michael Ross) 교수다.

이들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공부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시점에 참여 학생들은 자신의 공부 기술을 스스로 평가했다. 3주의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에 참가자들은 자신의 공부 기술을 다시 평가했고, 프로그램이 시작되던 시점에 자신이 평가한 공부 기술을 회상하게 했다.

그 결과, 훈련 프로그램을 마친 학생들은 프로그램 참여 전 자신의 공부 기술을 당시에 평가한 것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회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훈련을 통해 공부 기술이 향상되리라는 기대가 강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과거의 자신을 더 깎아내려서 심리적 향상을 경험하려 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과거의 영광을 과장되게 부풀려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초라한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은퇴한 복서는 자신의 챔피언 시절을 되돌아보고, 더 이상 천재 소리를 듣지 못하는 평범한 대학생은 잘나가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과거가 실제보다도 더 부풀려져서 영광스럽게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날카로운 이빨은 지니지 않은 존재들은 과거 자신의 이빨이 얼마나 날카롭고 강했는지를 떠올리며 현재를 보호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과거는 실제보다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한다.

 

 

4. 자서전의 비밀

 

서재필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1866년생이라고 강격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1882년 과거 급제 당시의 <국조방목>에는 그가 1863년생이라고 되어 있다.

[6] “서재필은 자신이 13~14세 때 최연소자로서 장원급제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광린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그는 20세 때인 1882병과 3등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당시 합격자 중 최연소자임은 사실이나 장원급제자는 아니었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은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가 <역사비평>에 기고한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주진오 교수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의 회고록에 왜곡이 심하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서재필의 자서전을 예로 들었다. 다음은 주진도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들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ᅟᅩᆼ하여 그들이 살다 간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아가 그것을 하나의 귀감으로 삼기 위해서다. 따라서 그것은 신화를 만드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7] 사회심리학자인 지바 쿤다(Ziva Kunda)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한 실험은 자서전이 현재 프레임에 의하여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대학생 실험 참가자들에게 외향적인 사람들이 직업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런 후에 절반의 참여자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과 얼마나 활발하게 교류했는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넸는지 등을 평가하게 했다.

다른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내성적인 사람이 직업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고 같은 질문을 제시했다.

그 결과, 외향성성공 조건의 참여자들이 자신을 더 사교적이고 활발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먼저 말을 걸었던 경우처럼 사교적으로 행동한 구체적 사례들을 기억하게 했더니, 외향성성공 조건의 참여자들이 그런 사례를 더 많이 기억해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꺼내주는 마술 보따리와 같다. 모든 것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비교 검증도 하지 않고 사실이라고 단정 짓는 습관은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더욱이 우리가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는 우리 스스로의 자서전 작업에는 비판적 시각을 더 철저하게 견지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5. 서태지의 멜빵바지

 

유명 연예인들의 데뷔 시절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들의 과거 모습이 한결같이 촌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담하건데 그 시절의 스타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 모습을 10년 후 쯤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 역시 한없이 촌스러운 지금의 모습에 웃고 말 것이다. 현재의 프레임으로 보는 과거의 모습은 늘 촌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0년 후에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촌스럽게 여길지 상상하면서 킬킬대거나 주눅들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어느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의 관습과 제도 역시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미개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과거의 선조들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관대해져야 할 것이다.

 

 

6. 계획표의 함정

 

[8]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 연구팀은 37명의 4학년생들에게 자신의 학부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데 며칠이나 소요될지 예측하게 하였다. 평균 대답은 33.9일 이었다. 이들 중 자신이 예측한 시간 내에 논문을 제출한 사람은 겨우 30%에 불과했다. 실제로 논문을 제출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55.5일이었다.

 

현재 프레임은 과거에 대한 회상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 과정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도 현재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과 동시에 어김없이 만든 것이 바로 동그라미 계획표다. 그러나 방학 첫날부터 동그라미 계획표는 빛을 잃고 그 계획표는 그저 방학숙제 제출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과정을 초등학교 내내 반복하는 것도 모자라 중고등학교에서도 반복한다. 이번만은 예외라는 현재의 의지가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은 의지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애초부터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계획이 현재의 의지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현재에 의지에만 집착하여 미래 계획을 세우다보면 관심이 자기 내면으로만 집중하게 된다.

미래를 예측할 때 현재 존재하는 자기 내면의 의지만 보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는 존재하게 될 여러 상황 요인들을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을 세우는 사람의 말은 한 번 정도 걸러내고 듣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7. 예측하기 힘든 내일의 감정

 

우리가 현 시점에서 내리는 선택과 판단은 미래에 누리게 될 것들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우리 삶의 질은 미래 감정에 대해 우리가 현재 내리는 예측의 정확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분야의 연구들은 미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예측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거듭 보여준다.

점심에 된장찌개를 먹은 사람이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음 날 점심 메뉴를 미리 정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그럼에도 내일 또 먹겠다고 결정할 확률은 생각보다 낮다. 왜냐하면 또 된장찌개를 먹으면 지겨울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그다음 날도 된장찌갤먹을 때 만족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내일 점심을 먹기까지 저녁, 내일 아침을 먹어야하므로 내일 점심에 된장찌개를 먹어도 연이어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안겨주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일까? 바로 현 시점에서는 미래의 시간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예측 속에서 경험하는 미래의 시간에서는 세부 사항들이 생략한 채 현재와 미래가 바로 연달아 일어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미래에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할 때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편이 좋다. 그 편이 이것저것 다양하게 섞어놓은 종합선물세트를 골랐을 때보다 실제 만족도가 더 크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8. 선물 세트가 잘 팔리는 이유

 

[9] 저자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쓸 물건을 살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살 때 훨씬 더 다양하게 물품을 구입한다. 똑같은 물건을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서 물리는 현상이 더 빨리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평소 가장 즐겨먹은 특정 스낵을 5일 연속으로 먹게 될 경우 5일 간의 만족도를 예상해보도록 했다.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만족도는 어떠할지도 예상하게 했다. 그 결과 자신도바는 타인이 더 빨리 질려할 거이라고 예상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미래 시간을 예측할 때 시간 수축 현상이 훨씬 더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 24시간보다 타인의 미래 24시간이 훨씬 더 짧게 수축되어 상상되기 때문에, 선물을 살 경우 다양성의 유혹에 빠질 확률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선물용으로 나온 제품들에 세트종류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9. 마음의 면역체계

 

미래를 예측할 때 현재에 존재하는 것들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 역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요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사건에 직면했을 때 작동하게 되는 마음속의 면역체계다.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면역체계가 존재하듯이 마음에도 심리적 면역체계가 존재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되면 심리 면역체계가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스스로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나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미래의 스트레스 상황을 상상만 할 때는, 그런 면역체계가 작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사전의 충격을 과대하게 예측한다.

[10] ‘정서 예측(affective forecasting)’이라는 개념으로 연구되고 있는 이 분야의 대표적 학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대니얼 길버트와 버지니아 대학교의 팀 윌슨(Tim Wilson) 교수다.

이들 연구자들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현재 사귀고 있는 연인과 헤어진다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오랫동안 비참할 것인지 예측하도록 했다. 또한 실제로 실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현재 얼마나 비참한지, 얼마나 행복한지 보고하게 했다. 그 결과, 상상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삶이 비참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로 실연을 경험한 사람들은 상상만 했던 사람들의 예측보다는 훨씬 더 빨리 행복을 되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 면역체계의 탁월한 활동은 우리를 실연이라는 역경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게 해준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이러한 면역체계의 존재와 활동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인과 헤어지면 자신이 오랫동안 괴로워할 것이라고 과대 예측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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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7을 나가며

이미 일어난 일들의 결과로 둘러싸인 현재는 과저를 예측 가능한 곳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면 예방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현재는 과거로부터 파생되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과거에 대한 이러한 자신감은 현재가 만들어내는 축복인 동시에 함정이다.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만 질서 정연하게 보인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럴 줄 알았지라고 외치며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하거나 합리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할 일에 대한 의지로 둘러싸인 현재는 미래를 실제보다도 낙관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긍정적인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의 습관도 중요하지만, 현재가 만들어내는 미래의 장밋빛 착각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또한 반드시 갖춰야 할 지혜로운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