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11

교정_CHAPTER 11 : 내일로부터 온 삶의 보고

 

 

  우리는 미래를 향하여 가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어떤 미래를 목표로 삼아야 하고 어떤 미래를 피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그토록 실수를 범하는 우리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미래의 일을 결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습겠지만 바로 물어보는 것이다. 사회적, 언어적 동물로서 인간의 이점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부딪쳐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수백만년 동안 인류는 발견의 수도를 나누어 감당하고 발견한 것들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무지를 극복해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우주선을 타보지 못했고 언어가 진화하는 과정을 개인적으로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위 질문의 해답을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누군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우리와 공유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은 일종의 대리학습 이기 때문에 우리는 의사소통을 통해 편한안 소파에서 굳이 일어나지 않고도 세상을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책이 지금까지 제기해온 핵심 문제에 명쾌한 해결책을 제공해준다. 미래에 느낄 감정을 상상하는 우리의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해보았으며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꺼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그렇다면 주변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용하는 조언이 틀렸을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조언은 훌륭하지만 우리가 그 조언을 거부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맞을까? 타인의 틀린 조언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조언도 무시해버리는 것일까? 이제부터 살펴보겠지만, 두 질문의 해답은 모두 YES 이다.

 

 

1. 초복제자 Super replicator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은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 가운데 가장 사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우리 행위 가운데 가장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와 닮은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해 유전자를 퍼뜨리듯, 우리는 마음이 닮은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해 신념을 퍼뜨린다. 물론 이런 시도는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특정한 신념이 우리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성공적으로 전달되게 하는 결정 인자는 무엇일까?

  특정 신념이 잘 전달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특정 유전자가 더 성공적으로 전달되는 원리를 살펴보면 된다. 신념의 전파 또한 같은 원리이다. 특정 신념이 그 신념의 전파를 촉진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신념은 더 많은 사람에게 수용될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신념이 성공적으로 전달될 확률을 높여주는 몇가지 속성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정확성이다. 정확한 지식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부정확한 신념도 꽤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다. 부정확한 시념은 마치 유해한 유전자와 같아서 스스로를 전파하는 초복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전달 수단을 촉진시킬 수 있다면 부정확한 신념들도 전달하게 된다. 부정확한 신념이든 정확한 신념이든 의사소통을 증진시킬 수만 있다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만일 어떤 부정확한 신념이 한 사회를 안정된 사회로 만드는 기능을 한다면 그 신념은 계속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 신념이 있는 사람들은 안정된 사회에서 살게 되기 때문이고, 안정된 사회는 다시 그 신념을 전파시킬 수단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행복에 관한 우리 사회의 신념 중 일부가 이런 성격을 지닌 부정확한 신념이다. 특히 돈에 관한 신념이 그렇다. 수십년간 부와 행복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결론은 절대 빈곤 상태에서 중산층에 이르게 하는 동안에는 부가 행복을 증가시키지만, 그 다음부터는 부가 행복을 증가시키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굶주리고 춥고 아프고 피곤하고 두려움에 떠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이 상태로부터 벗어나면 그 다음부터 돈은 갈수록 쓸모가 없어지는 종이조각과 같다.

  음식과 돈을 충분히 얻어 더 이상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계속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일까? 아담 스미스도 부의 생산이 반드시 개인의 행복 원천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경제가 활성화하려면 사람들이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획득하고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소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허기가 있어야 한다. 만일 모른 사람이 자신이 현재 소유한 것에 만족한다면, 그 졍제는 점차 소멸되어 결국 정지하고 말 것이다.

  이는 심각한 경제문제이긴 하지만 개인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다른 사상가들처럼 스미스도 사람들이 원하는 단 한가지는 행복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부의 생산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경제는 꽃이 피고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이처럼 잘못된 신념을 붙들고 있는경우에만 그들은 생산하고 획득하고 소비하는 일을 충실히 할것이고 그래야만 경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부의 생산이 개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 시스템의 필요를 채워주고 안정된 사회의 욕구를 채워주며 안정된 사회는 행복과 부의 관계에 관한 근거없는 생각을 전파시키는 네트워크로 작용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개인이 노력할 때만 경제는 성장하는 법인데, 개인은 오직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노력하기 때문에 그들이 생산과 소비가 개인적 행복의 필수요소라는 망상에 빠져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념은 초 복제자이다. 신념 전달 네트워크는 그 메시지를 전달할 사람을 끊임없이 채워넣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자녀를 기르고 돈을 벌어들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네트워크의 매듭으로서, 개인의 논리가 아닌 사회 네트워크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수고하고 자녀를 낳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일로부터 우리가 기대했던 즐거움을 얻지는 못한다.

 

 

2. 지문 fingerprints에 대한 신화

 

  나는 지금까지 상상력이 우리 미래 감정을 얼마나 부정확하게 예측하는지 자세하게 기술해왔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할 때 때로는 없는 정보를 채워넣기도 하고 일부러 어떤 정보를 빠뜨리기도 하며, 미래가 닥쳤을 때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더불어 수많은 경험, 사회의 문화적 지혜도 이러한 상상의 단점을 보완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미래 감정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마 뛸 듯이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있긴 하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금 실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경험을 이야기 할 때는 자신의 주관적 상태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말을 한다는 저이다. 사실 행복을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도 하여금 당시의 주관적인 상태를 말하도록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만큼은 제대로 말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미래의 어떤 경험을 통해 느낄 감정을 제대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그 경험을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현재 감정을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미래의 우리 감정을 예측하기 위해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감정을 회상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 분명한 해결책

 

  상상에는 세가지 오류가 있다. 첫 번째는 상상의 과정에서 우리가 없는 정보를 채워넣거나 있는 정보를 빠뜨린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미래 사건의 모든 특징과 결과를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최소한 몇 가지는 빠뜨린다. 문제는 이렇게 빠뜨리는 내용 중에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점이다. 자기 학교 팀이 라이벌 팀과 게임을 하고 난 후 자신의 감정을 예측하게 했던 연구를 기억해보자. 그 게임 결과가 주는 정서적 영향이 지속되는 기간을 과대 예측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래 경험을 상상하려고 할 때, 이기는 상상만 했고 게임이 끝난 후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게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게임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 간단하다. 그들은 상상하지 말았어야 했다. 실제로 상상한 집단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실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상상하지 못한 집단은 자신이 미래에 느낄 행복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

상상의 두 번째 오류는 현재를 미래에 투사하는 경향성이다. 미래를 상상할 때, 사건의 중요한 부분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때, 상상은 현재로부터 그런 부분을 끌어와 채워넣는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감자튀김 몇 개를 먹고 나서 그것을 얼마나 즐겼는지 보고하였다. 다른 참가자 집단에게는 프레츨을 배부르게 먹도록 해서 짭짤한 스낵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 예측하게 하였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은 다음날 그들이 먹을 음식이 감자튀김이라고 이야기해주고, 그것을 먹고나면 기분이 어떨지 예측하게 하였다. 그러나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다음날 먹을 음식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앞서 말한 보고자들의 기록 가운데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그들에게 보여주었으며 모르는 참가자들은 자신이 그것을 먹을 때 얼마나 즐거울지 예측할 때 상상을 하지 못했고 기록에만 의존해야 했다.

참가자들은 다음 날 다시 실험실에 와서 감자튀김을 먹고 실제 얼마나 즐거운지 보고하였다. 상상집단은 감자튀김을 먹은 후 예측보다 더 즐거워했다. 예측 당시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리집단은 다른 사람의 보고에 의존하여 예측했기 때문에 훨씬 더 정확한 예측을 했다. 중요한 점은 대리집단이 먹게될 음식을 알지 못하면서 얼마나 즐거울지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것이다.

 

 상상의 세 번째 오류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나면 그 일은 상상할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대리로 사용하는 것이 이 오류도 고쳐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불쾌한 경험을 조작하였다. 상상집단은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패했을 때 자신이 예측했던 것 보다는 기분이 더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이 얻지 못한 것에 대하여 재빨리 그리고 쉽게 합리화할지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분이 매우 나쁠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리 집단은 다른 사람의 실제 경험밖에 의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그 해결책을 거부하는 우리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실제 경험을 사용하여 자신의 미래 감정을 예측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내일어떻게 느낄지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오늘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해결책이 이처럼 간단하고 효과적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방식을 탈피하여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기대해 봄직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과학은 지금까지 평균적인 인간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자신을 평균적인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한다.

  남보다 나를 더 낫게 생각하는 이러한 경향성은, 사실 자신이 남과 다르다라고 믿는, 보다 더 일반적인 경향성의 표출이다. 때로는 남보다 낫고 때로는 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나와 남은 다르다고 믿는 것이다.

  무엇이 스스로를 이렇게 독특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가 스스로를 아는 방식이 특별하다. 이 세상에서 우리를 내면으로부터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직접 경험해도, 다른 사람이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은 그저 추론해낼 뿐이다. 사람들은 우리 자신을 아는 방식과 다른 사람을 아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판단하게 된다.

  둘째, 우리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보려는 동기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주변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어울려 그 속에 묻히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셋째, 우리는 꼭 우리 자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 개개인의 독특성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차이점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배경으로 깔려있는 사람들 사이의 유사성의 강도와 빈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실제보다 훨씬 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다양하다고 여기고 자기 자신을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은 감정 영역에서 특히 강력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은 직접 느낄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의 감정은 표정이나 목소리에 근거해 추론해야만 하기 때문에, 종종 다른 사람은 우리가 느끼는 것과 동일한 강도의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지 못할 때도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파악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개인이 지니는 다양성과 독특성에 대한 사람들의 강한 믿음이 우리가 타인을 우리 경험의 대리인으로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주요 요인이다. 다른 사람의 실제 경험을 우리 미래 경험에 대한 대용물로 사용하려면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과 우리의 반응이 대략 비슷할거라고 믿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감정적 경험이 매우 다양하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대용한다는 것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다른 사람의 경험이야말로 우리의 미래 감정을 예측하는 데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우리가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믿을 만한 방법을 거부하고 대신, 흠도 많고 오류도 많은 우리의 상상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3. 맺음말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배우려면 경험을 기억해야만 하는데, 기억이란 전혀 믿을 수 없다. 그렇다고 훈련을 하고 지도를 받는다고 해서 우리가 현재를 탈피해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어려움에 존재하는 역설 가운데 하나가 미래의 우리 감정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정보가 바로 우리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주목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여러 상황에서 실제로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고 우리는 자신을 독특한 존재라고 여기며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통해 배워야한다는 사실을 종종 거부하고 만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10

교정_CHAPTER 10 : 반복되는 실수

 

 

연습하기와 지도받기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든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지식에는 체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는 지식과 간접적으로 얻는 지식 두 가지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요리든, 무엇이든 어떤 과제를 숙달하기 위해서는 직접 연습해보아야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들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를 모든 종류의 오류에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을 직접 체험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실수를 연발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음번의 사건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기저귀를 떼는 방법을 배우듯 동일한 방식으로 이런 실수를 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1. 아주 드문 일들이 기억에 잘 남기 때문에 범하는 실수들

 

나이가 드는 것이 여러 면에서 좋다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좋은지를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따금 젊은이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가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부러워한다. 그들은 우리의 경험을 부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며, 풍부한 경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줄 것이라고 가정한다. 물론 가끔 그들의 말이 옳다. 그러나 숱한 경험의 소유자들도 반복해서 저지르는 실수가 셀 수 없이 많다. 대체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우리의 상상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미래에 일어날 경우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예측을 하기도 한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가정보다는 경험해 본 일이 있다면 이런 일들을 정확하게 예상하고 다음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피할 방법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하고 우리는 어느 정도 그렇게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앞서 여러 장에 걸쳐 보아왔듯 지난 경험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우리 뇌가 경험하는 아주 정교한 착각적 경험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기억의 편집기술은 정교한 만큼이나 오류도 많아서 때로는 과거를 잘못 회상하게 하거나 미래를 잘못 예측하게한다.

우리 마음 속에서 쉽게 떠오르는 것들은 실제로도 저 자주 접했던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그러나 부정확하게 가정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한다. 이는 경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대부분 야크(중앙아시아의 소)를 탄 기억보다는 자전거를 탔던 기억을 마음속에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야크보다 자전거를 더 많이 탔다는 올바른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는 전혀 오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어떤 기억이 쉽게 떠오르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그 경험을 실제로 얼마나 자주 했는가 뿐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험이 희귀하고 이례적일 때 그 경험은 기억 속에서 쉽게 떠오르게 한다. 때문에 미국인은 2001911일 아침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처럼 드문 경험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쉽게 떠오른다는 점 때문에 몇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계산대의 줄은 고를 때마다 계산이 느린 줄을 고른 것 같고 옆줄로 옮기면 이전 줄이 더 빨리 줄어든 것 같다. 계산대의 줄과 관련한 경험은 줄을 바꾼 뒤 우리 뒤에 있던 남자가 먼저 계산을 하고 가고있거나 바꾼 줄에서 실랑이가 벌어졌거나 하는 경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실제로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기억될 만한 사건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발생 가능성이 낮은 경험이 기억에 잘 남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미래 경험을 예측할 때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미래의 우리 감정을 예측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리는 그러한 기억이 빨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일이 흔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우리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을 이 마음속에 빨리 떠오르는 진짜 이유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들이 실제보다 더 흔하게 발생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흔하지 않은 이례적인 사건들을 잘 기억하는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주범 중 하나다. 여행에서 한 순간 가장 즐거웠던 순간으로 기억에 자리잡게 되면 휴가를 떠올릴 때 이 순간이 즉시 떠오른다. 그러나 이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여행은 그저 그랬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다음 번 여행 계획을 짠다면, 내년에도 인산인해의 캠핑지를 또 가게 될 것이다. 대체 작년에 이런 여행을 하고도 왜 또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는지 스스로 의아해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가장 좋거나 나쁜 순간이지 가장 흔한 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경험을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젊은이가 존겨아는 만큼 노인이 경험해서 많은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2.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믿는 착각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처음이나 중간의 항목 보다는 맨 마지막에 있는 항목을 훨씬 더 잘 회상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성은 우리가 즐거움과 고통에 관한 경험을 되돌아 볼 때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한 연구에서는 한 집단은 60초동안 차가운 물에 담그고 있었고, 다른 집단은 처음 60초 동안 차가운 물에 담그고 뒤이은 30초는 차갑지 않은 물에 손을 담갔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경우가 더 고통스러웠을까? 참가자들의 실시간 평가를 보면 처음 60초는 동일하게 고통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60초 보다는 총 90초에서 더 많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해보고 둘 가운데 어느 경우가 더 고통스러웠는지 물었을 때는 장기간 보다는 단기간이 훨신 더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전 보다 조금 따뜻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덜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은 결말 부분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이는 분명 합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경험의 즐거움의 합계는 그 경험을 구성하는 순간의 양과 질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참가자들은 경험의 양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합리적이라고 옹호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우리가 로데오 등에 올라타거나 멋진 배우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하는 것은 그 순간 경험 자체가 즐거워서가 아니다. 그 짧은 순간에 대한 회상만으로도 남은 평생을 행복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대쉬라는 여성의 삶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 여성은 60세가 될 때까지 화려한 인생을 살았고 60세가 되는 시점에서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65세가 되던 해 대쉬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녀의 삶은 얼마나 좋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참가자들은 9점 척도에서 5.7점의 평균을 나타냈다. 두 번째 집단에는 솔리드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60세에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죽기 전까지 그야말로 멋진 삶을 살았다. 그녀의 삶에 대한 평균은 6.5점이었다. 참까자들은 멋진 삶을 그보다는 못하지만 화려한 인생에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이 더해지는 것보다 선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찬물 실험의 결과와 동일하다. 대쉬의 인생은 즐거움의 총합이라는 측면에서는 솔리드보다 더 양이 많지만, 참가자들은 삶에서 누린 즐거움의 총량보다는 삶이 마감되는 시기의 질적인 측면을 더 중시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여성을 놓고 나란히 비교하게 했더니 그들은 두 사람의 삶에 동일한 평가를 내렸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어떤 경험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의 전체 양보다 그 경험이 어떻게 끝나는지 그 종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꼼곰히 따져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던 방식

 

기억은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할 때 마음속에 재빠르게 떠오르는 어떤 심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 임의대로 모든 정보를 이용해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우리의 뇌는 사실과 이론을 결합하여 과거 사건에 대한 추측을 만들어내고 동일한 원리로 사실과 이론을 결합해 과거에 경험했던 감정을 추측한다. 그런데 감정은 풍부한 사실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우리 뇌는 사실보다 이론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하여 과거의 감정을 기억해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이론이 옳지 않은 경우, 우리는 과거의 감정을 잘못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 감정이 어떠했을 것이라고 믿는 그대로 회상하는 경향이 있다. 회상할 때 범하는 이런 오류 때문에 우리는 예측 할 때도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만한 사건을 예측하게 하는 이론들은 동시에 그 사건 때문에 과거에 우리가 행복했었다고 회상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결국 우리의 예측이 틀렸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려워진다. 우리는 생일에 얼마나 행복할지 과대 예측하고 월요일 아침에 행복할지에 관해서는 과소 예측한다. 그리고 실제로는 이런 예측이 틀렸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런 잘못된 예측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실제 감정을 제대로 회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경험을하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4. 맺음말

 

집에 불났을 때 꼭 꺼내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하면 가장 흔한 답이 사진첩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 것은 단순히 기억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기억 그 자체다. 기억이란 사진보다는 화가의 재량이 발휘된 인상주의 그림과 같다. 그리려는 대상이 모호할수록 예술가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권은 더 많아지는데, 우리의 감정 경험보다 더 모호한 대상은 거의 없다. 따라서 감정에 관한 우리의 기억은 이례적인 사건, 일의 결말, 그리고 우리가 그 당시 어떻게 느꼈음에 틀림없다고 믿는 이론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많이 배울 수 없게 된다. 결국 반복해서 연습한다고 해서 감정 예측의 오류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습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연습이 우리가 범하는 오류를 고쳐주지 못한다면, 가르침을 받는 것은 과연 효과적일까?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9

합리화_CHAPTER 9 : 현실에 대한 면역

 

영리한 한스 이야기 말이 시사 사건이나 수학문제, 그리고 많은 주제에 대한 질문에 앞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방법으로 답을 맞힐 수 있었다. 일련의 실험 끝에 영리한 한스()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말의 내용이나 글이 아니라 말의 주인인 오스텐의 몸짓 언어였다는 점을 밝혀냈다.

영리한 한스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오스텐도 사기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한스에게 정답을 유도한 것이다. 오스텐의 속임수는 정교하고도 효과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오스텐도 모르는 무의식적 수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도 같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을 접하면 그것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잘 기억하며, 그 사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도 관대하게 적용한다. 다만 오스텐이 자신의 무의식적 속임수를 눈치 채지 못했듯 우리도 우리의 이런 속임수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사용하는 이런 속임수를 책략이나 전술이라 부르는데 이런 말들은 사전계획, 심사숙고 등의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속임수를 사용하는 약삭빠른 음모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대개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은 행동의 이유에 대해 질문 받으면 그럴 드한 이유를 만들어낼수는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조작할 때, 그것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좋은일이다. 의식적인 노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자신이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사ᅟᅵᆯ에 더해 치사한 자기기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처지가 된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사실을 요리해내는 것의 이점은 그것이 잘 먹혀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반대 급부로 인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게 된다.

 

 

1. 과거에 대한 평가를 미리 예측하기

 

우리는 미래의 어떤 사건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끔찍한 생각이 나중에 우리가 그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회상할 때도 동일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요역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이 어떤 사건에 대한 경험 후에 자연스럽게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관점의 변화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미래의 감정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한 연구에서 한 집단에게는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한 사람이 인터뷰 내용을 볼 것이며 다른 집단에게는 몇 명의 심사위원이 함께 인터뷰를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릴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인터뷰 후 참가자들에게 탈락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예측하게 하였으며, 몇분 후에 연구자가 실험실에 와서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탈락했다고 알려주었다. 이후 다시 기분을 측정하였다.

두 조건 참가자들 모두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심사위원의 수에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명의 심사위원보다 여러명의 심사위원에 의해 탈락한 경우, 더 큰 상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그럴까?

사실 어떤 한 사람에게 이런 거절을 당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대개는 금방 잊게 된다.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이런 경험의 모호성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사람의 사기를 꺽어놓는다. 여기에는 어떤 모호성도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아무리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참가자들은 이런 사실을 미리 고려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자신이 탈락 결과를 상상하게 했을 때 그들이 끔찍한 고통만 상상했을 뿐 우리의 뇌가 그 심사위원을 비난함으로써 고통을 감소 시킬거라는 점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회란 우리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가 우리가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은 미래의 후회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결정된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왜 후회하는 지에 대해 나름대로 정교한 이론들을 가지고 있고, 그 이론에 따라 후회할 만한 경험을 미리 회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이론이 가끔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행동한 것 보다 행동하지 않은 것을 더 후회한다. 한가지 이유는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는 행동하지 않은 것보다 행동한 것에 대해 훨씬 더 쉽게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겁이 많은 것보다는 대담한 것에 대해 더 쉽게 합리화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더라도 저질러봐야 할 때 주저하고 만다.

 

 

2. 심리적 면역 체계를 작동시키는 요인들

 

 – 강도 요인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 역시 일종의 방어체계로 위와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우리의 감정이 몹시 상하면, 심리적 면역체계는 사실을 조작하고 비난의 대상을 바꾸는 방법 등을 동원해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극도의 고통은 그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심리적 면역체계를 작동시키지만, 경미한 고통은 그렇지 않다는 다소 반직관적인 사실이 우리가 미래의 우리 감정을 예측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초래한다.

요약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심리적 방어체계가 경미한 고통보다는 강한 고통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나. 따라서 강도가 서로 다른 불행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이 각각에 대해 어떤 감정적 반응을 보일지 잘못된 예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 불가피성 요인

 

고통의 크기만이 심리적 방어체계 작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저질렀다면 절대 참을 수 없는 행동을 형제나 자매가 저지른 경우에는 왜 용서해주는 것일까?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상황보다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가 작동한다.

우리는 경험을 바꿀 기회가 없는 경우에만 그 경험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꿀 방법을 찾게 된다.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뒤바꿀 수 없는 상황은 심리적 면역체계를 발동시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지만, 정작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예상하지 못한다.

우리는 심리적 면역체계를 발동시키는 요인들을 예상하지 못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선택을 내린 후에 그 결정은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위협당할 때, 우리는 그 자유를 회복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결정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에는 유익과 더불어 그 대가도 있다. 심리적 방어체계가 발동하지 않은 사람은 단점에 더 특별히 주의를 두게 된다. 우리는 자유가 제공해주는 유익은 쉽게 상상하지만, 자유 때문에 오히려 훼손될 수 있는 즐거움은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3. 설명되지 않은 사건의 강한 여운

 

즐거움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즐거움과 고통을 관련 상황과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이 그러한 감정들을 왜, 어떤 방법으로 일으켰는지 반드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연상과 달리 설명은 즐거움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주고, 무엇이 관련 없는 것인지도 알려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역겨움이라는 느낌에 관해 과실파리가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설명은 우리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경험의 본래 특성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이미 앞에서 소개한 대로 우리는 불쾌한 것을 경험하고 나면 기분을 회복시켜주는 방향으로 그 경험을 재빨리 설명해버린다. 놀라운 사실은 설명이 불쾌한 사건의 영향을 감소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쾌한 사건의 영향력 또한 감소시킨다는 점이다.

설명되지 않고 미궁으로 남겨진 사건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감정적인 영향력이 크다. 첫째,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드물고 이례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어떤 사건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설명을 듣고 나면 그 일이 미래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래서 석양이 일식보다 더 멋진 광경을 연출하지만, 일식이 석양보다 덜 흔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일식을 보며 더 놀라워한다.

둘째, 설명되지 않은 사건은 계속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그 사건을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그 사건은 미스터리나 수수께끼로 남아 우리 마음 저편으로 넘어가는 법이 없다.

결국 설명하는 행위는 어떤 사건을 평범하게 보이게 하고,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 사건으로 인한 정서적 영향을 빨리 감소시켜 버린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을 실제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설명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기만 해도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 실험에서 도서관에 있는 대학생들에게 다가가 1달러짜리 동전이 붙어있는 인덱스카드 두 장 가운데 하나를 건네주고 사라졌다. 당신이 보기에도 그들의 행동은 뭔가 설명이 필요한 흥미로운 행동일 것이다. 카드 두 장 중 하나에는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가 이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라는 두 문구가 더 실려 있었다. 이 질문은 사실 아무런 정보도 추가해주지 않지만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구가 그 사건에 대한 설명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5분후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앞서 제시된 별 의미 없는 두 문장이 들어간 카드를 받았던 학생들이 그 문구가 없는 카드를 받았던 학생들보다 행복의 정도가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실히 가짜 설명이라 할지라도 일단 설명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 사건을 정리하고 다른 사건으로 생각을 옮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설명으로 인한 명료성과 확실성이 실제로는 행복을 감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선택하고 미스터리보다는 명료한 것을 선택한다. 시인 존 키츠는 위대한 작가들이란 불확실성, 미스터리 그리고 의심 앞에서 굳이 사실과 이유를 찾아나서지 않는 여유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나머지 사람들은 절반의 내용에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과 과실파리를 구분해주지만,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흥분을 잠재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4. 맺음말

 

우리의 눈과 뇌는 서로 음모를 꾸몄으며 모든 음모가 그렇듯 우리가 알지 못하도록 의식세계 저 편에서 서로 협약을 꾸몄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의 모습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에도 우리가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음로를 꾸밀 것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런 무지로 인해 우리는 미래의 고난으로 경험할 고통의 강도와 지속 기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는 우리의 눈과 뇌가 벌이는 작업에 역행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견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에 더 깊은 주의를 기울이기도 하고,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과 일부러 어울리기도 하며 그런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불쾌한 경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명해버린다. 그러한 설명은 부정적인 것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하지만, 긍정적인 경험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8

합리화_CHAPTER 8 : 우리만의 천국

 

 

대다수 사람들은 심리학자들이 가정했던 것처럼 꽃과 같이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외상을 경험하고 나서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는 탄력적인 존재임이 밝혀졌다. 탄력성이 우리의 기본 속성이라면, 사람들의 탄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에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청난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상상만 해본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의 말을 믿어야하지 않을까?

부정적인 사건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은 아니다. 실직이나 이별을 겪게 되면 어떨까? 우리는 어떻게 느낄지 예측해보라고 하면 과대평가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겪어본 사람들의 행복을 과소평가가하기 때문이다.

 

 

1. 경험의 모호함

 

기본적인 심리과정에서도 의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초기에 아무 분명해보이는 이 사실을 거의 무시 했다. 객관적 자극은 사람들 마음속에 주관적인 자극을 창출해내며, 사람들은 이러한 주관적인 자극에 반응한다. 우리가 글자를 이해하는 데는 잉크의 흐름이라는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우리가 주관적으로 그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자극 그 자체가 아니라 자극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반응하는 것이다.

 

 – 자극의 모호함을 해소하는 방법

 

대부분의 자극은 모호하기 때문에 한 자극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그 모호함을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맥락, 빈도, 최신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세가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욕망이나 소망, 욕구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단시 세상을 수동적으로 구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정서적으로 개입해 때로는 어떤 모호한 자극의 여러 가지 의미 가운데 특정 의미를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 자극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때, 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극을 해석한다. 결국 선호는 맥락, 빈도, 최신성처럼 자극을 해석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이다.

 

 – 경험의 모호함을 해소하는 방법

 

중요한 점은 우리가 모호함을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이 단어나 문장 혹은 도형의 모양을 해석하는 데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삶의 경험들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경험은 본래 모호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모호한 경험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것은 두 가지 해석 가운데 하나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단하다.

 

 

2. 사실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하기

 

생각해낼 수 있는 경험의 수 보다는 같은 경험이라도 그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의 수가 더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많은 해석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엄연히 현실과 이상 사이의 타협이다. , 우리는 명백한 현실과 낙관적인 환상의 적절한 조합을 경험하고 있다. 실제와 착각 가운데 어느 하나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우리는 현실 없이도 살 수 없고 착각 없이도 살 수 없다. 그것은 각각 나름대로의 목적을 수행하고 서로의 한계점을 보완해준다. 우리의 세상 경험은 이 두가지 거친 경쟁자들의 슬기로운 타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심리 면역 체계를 가진 존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체 면역체계처럼 우리의 심리 면역체계는 거절, 상실, 불운, 실패 등에 직면했을 때 우리를 방어하되 지나치게 방어해서는 안된다. 동시에 심리 면역체계는 우리를 충분히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심리 면역체계는 우리가 당면한 상황을 대처할 수 있도록 충분히 좋은 기분을 유지해주는 동시에 그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때로는 불편감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면 안된다.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물을 보는 최상의 관점을 찾아야 하며, 그 관점은 가능하면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현실과 착각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고자 하지만 그 관점은 동시에 믿을만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관점을 믿을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까?

 

 –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수집하기

 

과학자의 주장이 믿을만한 이유는 그것이 관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진화의 오랜 시기를 거치는 동안 뇌와 눈은 일종의 계약 관계를 발달시켜 왔다. 그래서 뇌는 눈이 보는 것을 믿고, 눈이 부인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를 믿으려면 그것은 사실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적어도 사실과 지나치게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어떤 관점이 믿을 만한 경우에만 수용되고 또한 믿을 만한 관점은 오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사실을 조작한다. 훌륭한 과학자들은 가장 적절한 기법에 따라 도출된 결론은 설사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나 형편없는 과학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 결론을 도출해줄 것 같은 기법을 선택한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과 경험에 관련된 사실을 모으고 분석할 때 형편없는 과학자들이 취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행위는 우리의 기억에서 정보를 끄집어낼 때도 일어난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우리의 뇌는 눈이 보는 것을 믿기로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눈은 뇌가 원하는 것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에 딴죽걸기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하거나 그런 정보를 줄 사람들은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견해를 얻는다. 두 대학의 학생들이 대학 간 풋볼게임을 보더라도 서로 상대방 팀 선수들이 더 비신사적이었다고 주장하며 똑같은 중독 관련 뉴스를 보더라도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은 상대편에게 더 우호적으로 편향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예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싶어 하는 것만을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때로는 달갑지 않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순간들도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이 분명히 존재하는 경우,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결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원하는 결과에 부합하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판단할 때 우리는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결론에 부합하지 않는 연구를 보면 그 연구에서 사용한 연구 방법에 대해 훨씬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 이런 이중 잣대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경험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결론과 반대되는 사실을 접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더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더욱 꼼꼼히 분석한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증거를 요구한다. 우리가 자신에 관한 정보를 처리할 때도 동일한 원리가 작용한다.

 

 

3. 맺음말

 

우리의 현실 왜곡은 우리의 경험히 본질적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지각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믿기 위해 뇌는 눈이 보는 것을 수용한다. 동시에 우리의 현실 지각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눈은 뇌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찾아낸다. 우리는 섬기는 뇌와 눈의 이런 음모로 우리는 엄연한 사실과 낙관적인 자기 착각의 지렛대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래의 감정을 예측하는데 어떤 영향을 줄까? 다음장에서 소개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과 착각의 지렛대 사이에서 살면서도 정작 그것을 모르고 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7

현재주의_CHAPTER 7 : 시간을 상상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지만 시간을 흘러가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을 상상하는 것보다,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물의 심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은 우리를 물리적 세계에 잘 적응하도록 만들어준다.

시간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므로 상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미래의 우리 감정을 예측할 때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상상을 해야한다. 그러나 만일 시간이 추상적인 것이라 그 심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대체 어떻게 마음속에서 시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

 

 

1. 시간을 공간처럼 생각하다

 

사람들은 어떤 추상적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추상적인 것과 비슷한 구체적인 사물을 떠올려 그것으로 추상적인 것을 대신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추상적인 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것은 공간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상상한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과거는 우리 뒤에 있다’,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노년 으로 향해 간다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영어권 사람들은 보통 과거를 왼쪽에 놓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오른쪽에 놓는다. 중국어권 사람들은 과거를 밑바닥에 놓는다. 모국어가 무엇이든 중요한 점은 우리가 과거나 미래를 어떤 장소에 놓는다는 점이다.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유추하여 상상하는 데는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진실 중 하나는 정말로 멋진 일도 처음 일어났을 때는 매우 감격스럽지만, 그것이 반복될수록 그 놀라움이 시들해진다는 점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습관화라고 부르고 경제학자들은 한계효용체감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장치를 고안해냈는데, 다양성과 시간이다. 다시 말해 습관화를 이기는 한 방법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반복되는 경험 사이 사이의 시간 간격을 늘리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다양성과 시간 중 하나만 있으면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는 점이다. , 같은 사건이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되면, 다양성은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다.

당신과 당신의 친구가 레스토랑에서 두가지 다른 요리를 주문한 것은 현명하다. 왜냐하면 음식을 빠른 속도로 먹기 때문에 두 요리를 시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한달에 한번씩 먹게될 요리를 미리 주문하라고 요구했을 때는 다양성을 추구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다양성을 원하는 우를 범했을까? 그 이유는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비유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한꺼번에 먹을 때 즉 한 공간에 여러 음식이 배치되어있을 때는 다양한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는 우리가 1년 동안 시간 간격이 충분한 열 두 번의 식사를 하게 될 때도 마치 테이블 위에 놓은 열 두가지 요리를 동시에 먹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2. 현재를 출발점으로 미래를 생각하다

 

시간을 상상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비유하여 상상한다. 물론 시간에 대해 전혀 상상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심상에는 시간이 들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일에 대한 미래의 우리 감정은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는 그 일이 현재 일어난다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한다. 그 후에 현재와 미래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우리의 느낌을 조정한다. 미래가 현재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는 행동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중에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참조하여 처음의 상상을 수정하는 판단 전략은 필연적으로 큰 오류를 저지른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초기 값이 최종 판단치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우리의 최종 판단치는 대개 초기값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정보가 우리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똑같은 우너리가 미래에 대한 상상 과정에도 적용된다. 미래 사건을 일단 현재에 일어나는 일처럼 상상한 후에, 그 사건이 미래에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하여 판단을 수정하기 때문에 동일한 실수를 범하게 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더 미래가 현재와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3. 미래에 대한 생각은 현재에서 출발해 현재로 끝난다

 

 – 과거와의 비교

 

사람의 뇌는 자극의 절대 강도에 민감하지 않다. 오히려 뇌는 차이와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즉 자극의 절대 강도보다는 상대 감도에 더 민감한 것이다 이는 모든 물리적 속성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이는 주관적인 속성에서도 나타난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훈계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 논리가 쇠귀에 경 일기나 마찬가지인 이유는 사람들이 돈의 절대 액수보다 상대 액수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장사꾼이나 정치가, 그 밖의 우리를 설득하려는 사람들은 우리가 상대벅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을 이용한다. 일단 과도한 요구를 한 뒤 거절하면 처음보다 적은 요구를 하면 받아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를 과거와만 비교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능한 대안들을 생각해내는 일보다 과거를 기억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이런 경향성 때문에 우리는 기억할 수 있는 과거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곤 한다.

 

 

4. 가능한 대안들과 비교하기

 

사람들이 현 상태를 가능한 대안들과 비교하지 않고 과거와 비교하기 때문에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앞서 소개하였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현재 주어진 대안과 새로운 가능성을 비교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실수를 한다.

나란히 놓고 비교할 때 발생하는 가장 위험한 사실 중 하나는, 비교 대상이 되는 여러 대안들을 서로 구별하도록 해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주의를 끈다는 점이다.

 

 

5. 비교하기와 현재주의

 

그렇다면 비교하기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이 미래의 감정을 상상하는데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그 특징을 정리하면

(a) 어떤 것의 주관적 가치는 비교를 통해서 결정된다

(b) 어떤 경우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비교가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c) 따라서 어떤 종류의 비교를 하느냐에 따라 어떤 것의 가치가 크게 느껴질수도 있고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어떤 일에 대한 우리 감정을 예측하고자 할 때 우리가 미래의 그 시점에서 그 일과 비교하게 될 대상이 무엇인지를 비교해야지, 현재의 대안과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하는 비교와 미래에 우리가 하게 될 비교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에 따라 비교 대상이 달라진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은 지금껏 이해하기 어려웠던 몇 가지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경제학,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1달러를 얻는 것보다 1달러는 잃는 것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큰 이득을 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해도, 같은 크기의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언가를 이득으로 볼 것인지 손해로 볼 것인지는 그 당시 우리가 행하는 비교에 달려있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하는 비교들은 우리의 감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더불어 우리는 오늘 하는 비교가 내일 하게 될 비교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의 우리 감정이 현재의 감정과 다를 것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한다.

 

 

6. 맺음말

 

시간은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현재와 비슷한 모습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경험하는 현실이 매우 강력하고 생생해 그에 기초한 미래는 현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주의는 우리가 미래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과 현재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다음 장에서 알게되겠지만, 미래의 자기 자신의 관점을 고려하지 못하는 이런 근본적인 무능함이야말로 어설픈 미래학자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문제이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6

현재주의_CHAPTER 6 : 현재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하다

 

 

과거에 현재를 예측한 모습을 보면 현재의 모습은 당시에 예측했던 미래의 모습들이 빠져있다. 당시에 예측한 모습에는 그저 그 시대의 기준에서 예측한 모습만 있을 뿐이다. 이런 내용들이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그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1. 오늘과 비슷한 내일을 예측하는 실수

 

미래가 현재와 다를 것이라는 점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성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윌리엄 톰슨 켈빈 경은 19세기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는 하늘을 날 수 없다라고 자신 있게 예측해고 많은 과학자들이 동조하였다. 그리고 천문학자 시몬 뉴컴은 현존하는 어떤 형태의 물질이나 기계, 그리고 동력을 조합하더라도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라이트 형제의 윌버 라이트 조차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50년 안에 사람이 비행에 성공하기는 어려울거라고 말하며 그들의 말을 일부 인정했다. 이처럼 잘못된 미래 예측의 사례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일일이 기억하기보다는 그런 실수의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 미래를 상상할 때 작동하는 현재주의

 

평범한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앞서 우리는 뇌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상상할 때 채워넣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뇌는 어제와 내일을 개념화하면서 그 사이의 빈 곳을 오늘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채워넣는다. 여러 연구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은 사람들은 그들이 현재 생각하고 행하고 말하는 것을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하고 말했었다고 회상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과거 기억의 빈 공간을 현재의 경험으로 채우는 경향성은 과거 감정을 기억할 때 더욱 강력하게 나타난다.

 

 – 과거를 상상할 때 작동하는 현재주의

 

과거가 여기저기 구멍 뚫린 벽이라면 미래는 큰 구멍 자체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채워넣기 속임수를 사용하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은 그 자체가 채워 넣는 속임수이다. 실험실 연구와 슈퍼카멧 현장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보면, 막 음식을 먹고 난 후 음식을 구매하는 경우 우리는 자신의 미래 식욕을 과소평가하고 조금밖에 사지 않는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미래의 배고픔을 상상하지 못하듯 우리의 마음 또한 그러하다. 한 연구에서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지리에 관한 다섯 가지 문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문제에 답하고 나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알려주어다. 하나는 문제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답 대신 초코바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참가자 중 일부는 문제풀기에 앞서 보상을 먼저 선택했고, 다른 참가자들은 퀴즈를 풀고 난 후 보상을 선택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은 문제를 보기 전에는 초콜릿 바를 선호했으나 문제를 풀고 난 후에는 정답을 더 알고싶어 했다. 다시말해 시험을 치르는 동안 사람들은 정답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어 초콜릿 바보다 정답에 더 가치를 두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그들이 미리 알았을까?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시험 전후 보상 선택에 대해 예측하라고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두 조건 모두 초코바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제를 풀어보면서 그 강렬한 호기심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답을 알고싶어 초코바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왜 실패하는 것일까?

 

 

2. 미리 느껴보기(prefeeling)의 특징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상상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마음에 떠올린 것과 실제로 보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시각 피질이라 불리는 뇌의 영역은 마음의 눈으로 어떤 것의 모습을 탐색할 때도 눈으로 그 사물을 실제로 볼 때와 마찬가지로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뇌가 어떻게 상상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다시 말해, 뇌는 실제 세계에 있는 형상을 상상하고자 할 때 뇌의 감각 영역의 도움을 받는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싶거나 듣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우리 앞에 제시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 정보들을 기억으로부터 끄집어내 보고 듣는 것이다.

상상의 과정은 우리가 현재에 갇혀 있으면서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이라고 한다. 상상 속에서 경험하는 감정을 통해 미래의 감정을 예측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영리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상상할 때 경험하는 감정은 실제로 그 일이 발생할 때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좋은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우리가 미래의 사건을 상상할 때, 종이에 그 사건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 사건을 상상 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보고 그 상상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반응에 기초해 미래를 예측한다. 다시말해 우리의 상상은 사물을 미리 보게 해주며, 또한 사건을 미리 느껴보게 해준다.

 

 – 미리 느껴보기의 장점

 

우리의 감정을 예측할 때는 논리적 분석보다 앞에서 소개한 미리 느껴보기가 더 정확할 수도 있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과 가필드의 우스꽝스러운 포스터를 보여주었다. 몇몇 사람에게는 두 그림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한 뒤 하나는 왜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싫어하는지 논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요구했고 (논리적 사고 집단), 나머지 사람에게는 그림을 보는 순간 즉시 떠오르는 감정에 기초해 그림을 선택하도록 했다. (미리 느껴보기 집단) 연구진이 나중에 전화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이 고른 그림이 얼마나 좋은지 물었더니 논리적 사고자 집단이 더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리적 사고자 잡단은 집 안에 그림을 걸어 놓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미리 느껴보기 집단은 자신의 느낌을 따랐다. 즉 자기 벽에 걸릴 그림을 상상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느낄지를 떠올린 것이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으며 미리 느껴보기 집단이 논리적 사고자 집단보다 더 정확하게 미래의 만족도를 예측할 수 있었다. 현재 상태에서 감정을 미리 느껴보지 못하면 미래에 느낄 감정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상상을 통해 미리 무언가를 느껴보는 것이 미래의 느낌을 예측하는 데 항상 좋은 지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뇌의 영역들이 이미 다른 중요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면, 상상하는 데 쓸 여력이 없게 된다. 달리 표현하면 만일 우리가 뇌에게 실제 사물과 상상의 사물을 동시에 보도록 요구한다면, 뇌는 실제 사물을 보지 상상속의 사물을 보지 않는다.

뇌는 실제 상황을 지각하는 일을 최우선적 임무라고 생각하므로, 상상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잠시 시각 피질을 빌리려는 당신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되고 만다.

 

 – 미리 느껴보기의 한계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보거나 느낄 수 없다. 뇌는 무엇을 보고 느낄지 그리고 어떤 것을 무시해버릴지에 대해 엄격한 우선순위를 갖추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상상이 요구하는 것들은 거의 언제나 무시되곤 한다. 감각과 감정의 체계에서는 현신 우선 원리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즉 우리는 우리 감각 체계가 상상의 요구를 무시한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감정 체계도 그렇다는 점은 모르고 있다.

실제 세계에서 얻은 정보를 통한 시각 경험을 시각이라 하며, 기억에서 얻은 정보를 통한 시각 경험을 심상이라고 한다. 시각 경험의 큰 특징은 실제 세계의 정보와 상상의 정보를 구별할 줄 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경험은 다르다. 실제 세계에서 얻은 정보의 결과로 생기는 감정적인 경험을 느낌이라고 한다면, 기억에서 얻은 정보의 결과로 생기는 감정적인 경험은 미리 느껴봄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이 구별되지 않고 마구 뒤섞여버리는 일이 흔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유쾌하지 않는 순간에 내일 저녁에 친구와 카드게임을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지를 상상한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현재의 감정을 상상속의 당신 친구에게도 잘못 귀결시킬 것이다.

우울증의 징후 가운데 하나는 미래를 예측할 때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하면서 행복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현재의 감정이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지배해, 내일은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

현재의 일로 기분이 나쁠 때,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쾌한 기분의 원인을 뇌의 현실 우선 원리로 인한 어쩔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이기 보다 우리가 떠올린 미래의 사건 그 자체 때문이라고 잘못된 판단을 한다.

 

 

3. 맺음말

 

시간, 장소, 상황에 얽매여 있는 우리는 그런 제약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상상을 시도하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상상은 현재의 경계를 쉽게 뛰어넘지 못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상을 담당하는 노의 영역이 동시에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상과 지각이 동일한 뇌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둘을 착각하게 된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면서 경험하는 정서적 상태가 미래가 닥쳤을 때 실제 경험하는 우리의 정서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면서 경험하는 정서는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 이처럼 지각과 상상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이 현재주의를 유발하는 요인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5

현실주의_CHAPTER 5 :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위력

 

 

검사관과 대령은 마구간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고, 그들은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홈스는 무슨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에 주목했다. 홈스는 발생하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자신이 보통사람과 달리 뛰어난 인물임을 스스로 증명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할 때 자신의 상상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놓치는 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다.

 

 

1. 보이지 않는 정보들의 위력

 

비둘기는 두 레버 가운데 깜박거리는 레버를 눌러야 보상으로 모이를 얻는다는 것을 쉽게 배운다. 그러나 똑같은 보상을 얻기 위해 불이 켜지지 않는 레버를 눌러야한다는 것은 절대로 배우지 못한다. 학자들은 이 점에서 사람도 비둘기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에게 추론게임을 하기 위하여 세글자의 단어 조합을 보여주며 한 단어의 조합을 더 특별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참가자들의 과제는 이 단어 조합이 더 특별한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 조합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추론해내기까지 참가자들은 과연 몇 개의 단어 세트를 보아야 했을까?

절반의 참가자에게 보여준 단어 조합의 유일한 차이점은 알파벳 T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에서는 평균 34개의 세트를 보고 나서야 T를 추론하였다.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특별한 단어 조합에는 T가 빠져있었다. 놀랍게도 이 조건에서는 아무리 많은 수의 세트를 보더라도 원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알파벳 하나의 존재를 눈치 채기는 쉬웠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하기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무시하는 특성

 

연구를 통해 어떤 것의 부재를 생각하지 못하는 현상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많은 오류의 중요한 원천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비둘기가 행인의 옷에 볼일을 본다고 믿는 이유는 우리가 우연히 새 동을 맞았던 경험만 지나치게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둘기가 의도적으로 그러려 했다고 결론을 내리려면, 비둘기가 있는 곳을 지나칠 때 아무 일도 없었던 경우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두 현상이 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려 할 때, 대개 발생했던 일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을 하지만 발생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현상의 부재를 고려하지 못하는 경향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상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사람들에게 실론과 네팔, 동독과 서독 이 두 싸으이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들이 서로 더 비슷한지 물어 보았더니 동독과 서독을 골랐다. 반대로 서로 더 다르냐고 물었더니 동독과 서독을 골랐다. 사람들에게 두 나라의 유사성을 물어보면, 그들은 비슷한 점을 찾아내지만 보이지 않는 비슷한 점은 무시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서로 다른점을 물어보면, 그들은 차이점은 찾아내지만 보이지 않는 차이점은 무시해버리는 경향을 나타낸다.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무시하는 이 경향성은 개인적인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시로 당신이 다음의 두 섬 중 하나로 휴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한 섬은 보통날씨, 평범한 해변과 호텔, 유흥시설을 갖추고 있고 다른 섬은 환상적인 날씨와 해변이 있지만 호텔이 별로이고 유승시설도 전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의 섬을 택한다.

이제 두 섬에 갈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하고 있고 그 중 하나를 취소해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의 티켓을 취소한다. 사람들은 왜 후자의 섬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선택할 때는 장점에 주목하지만, 거부 결정을 내릴 때해는 단점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어떤 장담점이 존재하는지와 존재하지 않는지를 함께 고려해야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

 

 – 미래를 상상할 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무시하는 오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성은 미래를 생각하는 우리의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모든 세부 사항까지 상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에 대해 발생 가는성을 더 크게 지각하는 경향이있듯, 상상 속에서 빠뜨린 것에 대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주의를 돌려 우리가 빠뜨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 사건들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잘못 예측하곤 한다. 캘리포니아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캘리포니아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러한 것ㄷㄹ을 상상한다. 기후는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중요한 요인들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빠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습관은 맹인과 같은 사람들의 행복에대해서 과소평가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맹인의 삶은 단순히 시력을 잃었다는 것 보다는 훨씬 다양한 것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정상인이 맹인의 삶을 상상할 때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2. 사건의 지평선

 

우리는 어린 시절에 사물이 가까이 있을 때보다 멀리 있을 때 우리 망막에 더 작은 이미지가 생긴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해서 망막에 맺힌 이미지가 가까이에 있는 작은 물체인지 아니면 멀리 있는 큰 물체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일까?

바로 세부사항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의 뇌는 가까이 있는 물체의 표면은 세밀한 세부사항을 제공하지만 물체가 멀리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뇌는 눈과 물체 사이의 거리를 추정하기 위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세부사항이 어느 정도인지에 의존한다.

공간적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사물이 멀리 있는 것보다 더 세밀하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으로도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사건은 더 세밀하게 보인다. 가까운 미래는 아주 세세하게 보이는 반면, 먼 미래는 흐릿하고 모호해보인다. 예들 들어 젊은 커플들에게도 결혼에 대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어보면, 한달 정도 후 결혼할 커플은 결혼을 꽤 추상적이고 막연한 방식으로 상상하며 다음날 결혼하는 커플의 경우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을 상상한다.

한달 전에 약속을 할 때에도 세부 사항들을 상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정작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세부사항이 마침내 눈 앞에 닥쳤을 때 우리가 매우 놀란다는 점이다. 미래에 하게 될 아이 돌보기는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옥수수 밭이 단순한 사각형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물론 옥수수 밭이 실제 그리 단순하지 않고 멀리 바라보았을 때만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건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는 점은 모르고 있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서로 다르게 상상하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 사건에 대한 평가 또한 달라진다. 한달 뒤에 배달되는 티켓이나 사과보다는 바로 오늘 오후에 얻게 될 티켓과 사과 파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돈을 더 지불 하려고 한다. 또한 먼 미래의 일이라면 하루 정도 연기되는 것은 그저 작은 불편함 정도로 치부하나 가까운 미래에서의 하루가 지연되는 것의 고통은 고문처럼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먼 미래의 일보다는 세밀한 세부사항으로 가득 찬 가까운 미래의 일이 더 생생한 경험으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상상할 때 우리의 뇌는 훨씬 더 흥분하고 긴장하게 된다. 실제로 뇌에서 쾌락과 흥분을 담당하는 부분은 가까운 미래에 얻는다 할 때 활동하지만 먼 미래에 받는다고 상상할 때는 활동하지 않는다.

 

 

3. 맺음말

 

뇌는 채워넣기도 하지만 동시에 빠뜨리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에는 뇌가 채워넣은 세부사항도 있지만 뇌가 빠뜨려 존재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우리의 뇌는 채워 넣기와 빠뜨리기를 자신도 모르게 자유자재로 한다는 단점과 더불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또 다른 단점도 가지고 있다. 6장에서 이야기 함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4

현실주의_CHAPTER 4 :마음의 눈에 존재하는 맹점

 

 

우리는 모두 안고 있는 취약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할 때 체계적인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보는 것은 마치 공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행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행위 중 하나이며, 우리는 이것을 날마다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희망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원하는 모습 그대로 미래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슬픔은 저 멀리 사라질 것이라 확신하다.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하는 온갖 상황에서 여러 대안이 제공될 미래를 상상해보고 각각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생각해본다.

우리가 최상의 삶이라고 예상했던 것이 실제로는 최악의 것일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상상을 통해 미래를 선택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실수를 범할 수 있고 또한 그 실수로 인해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 실수는 무엇일까? 상상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도구이다. 그러나 상상이라는 도구에도 결점은 있다. 이번 장과 다음 장에서 그 첫번째 결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 현실을 왜곡하는 뇌의 마술

 

 – 뇌가 채워 넣는 기억

 

인간의 뇌는 수백개의 스냅샷을 찍어내고 수백만 개의 소리를 기록하며 수많은 냄새, , 감촉 등 수많은 것을 기억속에 추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그 방대한 양의 경험을 두 귀 사이에 있는 조그만 저장고에 모조리 집어넣을 수 있을까? 우리는 경험 전체를 그대로 기억속에 저장하지 않는다. 그 경험들은 저장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실마리로 축소되고 압축된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그 경험을 기억하고자 할 때, 뇌는 그 경험을 실제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압축해놓은 정보 덩어리를 재조합한다.

기억으로 재구성된 것이 그대로의 과거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많은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빨간 자동차가 양보 신호를 받고 나아가다가 우회전을 한 행인을 치는 일련의 슬라이드 사진들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후 몇몇 참가자에게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나머지 사람에게는 빨간 자동차가 정지 신호를 받아 멈춰 서 있을 때 그 옆으로 또 다른 차가 지나갔나요? 라는 질문을 하고 나서 모든 참가자에게 두가지 그림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빨간 자동차가 양보 신호로 접근해가는 그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빨간색 자동차가 정지 신호로 접근해가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아까 실제 보았던 장면을 골라야 했다. 참가자들은 본 것을 기억에 저장했다면, 양보 신호로 접근해가는 빨간 차를 골라야한다. 하지만 질문을 받지 않은 참가자들은 90% 이상이 양보 신호를, 질문 받은 집단은 80%가 정지 신호 그림을 선택했다. 참가자들의 뇌는 슬라이드를 본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했던 것 중 기억나는 것을 짜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심리학자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건이 발생한 후에 습득한 정보가 사건 그 자체에 대한 나중 기억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밝혀 냈다. 이 현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두가지에 대하여 확신하게 되었다. 첫째, 기억 행위는 실제로 저장되지 않았던 세부사항을 나중에 채워 넣는것까지 포함된다. 둘째, 채워 넣는 작업은 무의식적으로 재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파하지 못한다.

 

 – 뇌가 채워 넣는 경험

 

채워넣기 현상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왜곡한다. 그리고 그 현상은 우리의 지각 과정에도 영향을 준다. 눈동자에는 신경다발이 지나가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맹점에는 시각 수용기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이 지점에 들어오는 사물의 상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맹점이 자리한 지점이 점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이는 당신의 뇌가 그 맹점 주변에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맹점 자리에 무엇이 보일지를 추측하여, 빈 장면들을 절묘하게 채워넣기 때문이다.

당신의 뇌는 없는 것을 발명하고 창조하며 만들어낸다! 당신의 자문을 구하지도 않으며 당신에게 승인을 받지 않는다. 최선의 추측을 토대로 현재 빠진 부분을 알아서 채워 넣는 것이다. 채워 넣기속임수는 단지 시각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 연구에서는 문장을 테이프로 녹음한 후 한 단어의 첫 번째 s발음을 기침으로 대체했다. 참가자들은 문제없이 기침 소리를 들었음에도 테이프에 없던 s 소리도 들었다. 그들의 뇌는 그 발음이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친절하게도 스스로 그것을 채워 넣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속임수를 알더라도 여전히 속임수가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각 체계에 대하여 아무리 심오하게 이해해도,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그 속임수는 실패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줄 생각이다.

 

 

2. 현실과 주관적 경험 사이의 혼동

 

 – 이상주의자와의 만남

 

뇌는 무엇을 믿는 것이지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적 관점을 지닌 철학자들의 유일한 의문점은 뇌가 어떻게 놀랍도록 믿을 만한 형상을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가 무언가는 지각하는 경험은 우리 눈이 세상의 이미지를 그대로 뇌로 전달할 때 일어나는 생리적인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고 하였다. 오히려 지각 현상은 눈이 보는 것들이 우리가 이미 생각하고 느끼고 알고 원하고 믿던 것들과 합쳐지는 심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현실 지각은 감각 정보와 현존하던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합작품인 셈이다.

역사가 윌 듀런트는 칸트의 생각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업적을 남겼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하나의 건축물이자 완성된 결과물이며, 누군가는 그것을 하나의 제조된 물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사물이 형태를 만들어내는 데 자극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그 형태를 주조하는 데 기여한다.” 지각은 하나의 그림이지 사진이 아니며, 이 그림에는 묘사된 사물의 속성과 아울러 그것을 그린 화가의 재주도 담겨있다.

이 이론은 획기적이었고 이후 이 이론을 확장해 세상을 이해해나가는 인간의 인지적 성장 과정에까지 적용했다. 1920년대 장 피어제는 어린아이들이 종종 자신이 지각한 사물의 모습과 사물 자체가 보유한 실제 속성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어린이는 세상에 있는 것과 마음속에 있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 각자가 그들의 마음속에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극단적인 현실주의자에서 이상주의자로 옮겨간다. 그들은 지각 경험은 세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닌, 일좀의 관점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 현실주의로부터의 탈출

 

그러나 현실주의를 탈피한다고 해서 그렇게 멀리가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특정한 상황에서는 성인들조차 현실주의자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한 사람에게는 큰트럭과 중간크기의 트럭, 그리고 작은 트럭까지 다 볼 수 있으며 다른 한사람은 작은 트럭을 볼 수 없는 실험에서, 시야가 폐쇄된 사람이 완전한 시야를 확보한 사람에게 특정한 물건을 정해진 위치로 옮기라고 지시하였다. 이 상황에서 지시자가 작은 트럭을 맨 밑 칸으로 옮기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행자가 이상주의자라면 아마 중간 크기의 트럭을 옮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시자의 관점에서는 중간 크기의 트럭이 가장 작은 트럭이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한편, 수행자가 현실주의자라면 지시자의 관점에서 말하는 작은 트럭이 사실은 중간트럭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 트럭 중 가장 작은 트럭을 옮길 것이다. 실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중간 크기의 트럭을 옮겼다. 이와 다르게 이상주의자들처럼 행동한 경우에도 손과 눈 추적 장치를 사용했을 때, 지시사항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의 작은 트럭을 보았으며, 반사적으로 작은 트럭을 옮기려는 상황에서야 직전에 적합한 중간 트럭을 옮기라는 지시를 뇌가 손에게 내린 것이다. 손은 이상주의자처럼 행동했을지라도 뇌는 순간적으로 현실적이었음을 눈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우리의 지각 과정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주의적 버릇이 남아 있다. 이 논리를 연장시킨다면 우리는 어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경험이 그 사물의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나중에 가, 그것도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능력이 있는 경우에만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 세계는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한다.

우리는 뇌가 기억과 지각의 조각을 다시 짜 맞춘 기억과 지각의 조각을 다시 짜 맞추는 고도의 사기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이렇게 뇌가 짜 맞춘 기억과 지각의 구체적인 내용 하나하나는 매우 강력해서 그것의 허구성을 밝혀내기가 무척 어렵다.

 

 

3. 뇌가 말해주지 않았던 부분

 

상상에는 별다른 노력이 들지 않는다. 최소한의 의욕만 있다면 우리의 뇌가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마음의 그림들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상의 결실을 머릿속에서 경험한다. 지각과 기억처럼 이런 마음속 그림도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그림은 의식의 감독 없이 자체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에 기억과 지각 경험을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듯, 상상도 정확한 것으로 가정하고 시작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미래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예측할 때 뇌가 항상 채워넣기 속임수를 사용한다는 것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일부 참가자들에게는 미래 사건에 대한 예측을 하기 전에 그 사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속의 모든 세부사항을 사실로 가정하도록 지시하였다. 나머지 참가자에게는 세부사항을 묻지도 않았고 어떠한 가정도 요구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모두 자신의 예측을 확신했다. 왜일까? 설명을 가정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상상할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들은 그 모든 세부사항이 허무맹랑한 이미지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정확한 내용에 근거한 것이라고 가정했다.

우리는 종종 미래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예상은 뇌가 최선을 다해 마련해준 이미지에 기초한 것이지만, 이 경우는 그 이미지가 실제와는 완전 딴판이다. 요점은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종종 우리 마음에 있는 맹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미래의 사건 그 자체에 대해 틀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형수도 죽은 피셔보다 부자인 이스트먼으로 사는 것이 더 즐거울 거라고 생가갛. 그러나 우리의 뇌가 얼마나 민첩하게 두 삶의 빈 내용을 채워 넣는지, 또한 그렇게 채워진 내용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감안해서 지나친 확신은 재고해야 한다.

 

 

4. 맺음말

 

당신에게 뇌를 스스로 선택하라고 했다면, 아마도 온갖 수작을 부리는 뇌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선택권이 없다. 채워넣기 기술을 모르는 뇌를 가졌다면 당신은 아마 불완전한 기억, 형편없는 상상력, 그리고 가는 곳마다 작은 블랙홀 같은 것이 따라다닌다고 느낄 것이다. “개념이 없는 지각은 맹목적인 것이다라는 칸트의 말은 우리에게 채워넣기 기술이 없다면 우리는 현재와 같은 주관적 경험을 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뇌가 채워넣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미래가 우리의 상상대로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5장에서) 더 큰 골칫거리는 뇌가 상상에 첨가하는 내용보다 거기에서 빠뜨리는 내용 때문에 생긴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3

주관성_CHAPTER 3 : ‘에서 을 들여다보기

 

 

로리와 레바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뿐 실제로는 그들이 잘 모르고 있다고 의심한다. 그러나 행복하다는 사람의 말을 의심하기 전에 과연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모를 수 있는지 또한 그런 일이 이론적으로나마 가능한지를 먼저 짚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 경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가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1. 감정에 대한 우리의 무지

 

우리 주변에 보는 있는 어떤 대상을 보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한번 짐작해보라. 빛이 눈에 도달하는 시간과 최종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의 아주 짧은 간격 동안, 우리의 뇌는 그 물체의 특징을 추출하고 분석해서 기억속에 있는 정보와 비교한다. 이는 실로 복잡한 일이며 어떤 과학자고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그 어떤 컴퓨터도 이 방법을 흉내 낼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상상도 못할 속도와 정확성으로 이 복잡한 작업을 실행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 먼저 설계되고 덜 중요한 기능은 수십만년의 세월을 거치며 서서히 추가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뇌 밑바닥에 깔려있고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위, 예를 들면 기질을 통제하는 부위는 마치 콘 위에 얹어놓은 아이스크림처럼 뇌 윗부분에 놓여있다. 오소리인지 개인이 파악하는 일보다 도망치는 것이 포유동물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수단이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우선 어떤 물체가 중요한지 아닌지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에 그 물체가 무엇인지 결정한다. , 당신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당신의 뇌는 오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해도, 무시무시한 것을 보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연구에따르면 정체를 규명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대략적인 정보만을 가지고도 사람들은 그 물체가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인식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뇌가 두려운 것을 만났다고 판단하면, 체내의 호르몬선에서 높은 생리적 각성 상태를 일으키는 호르몬을 생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따라 우리는 행동을 개시할 준비를 하게 된다. 뇌가 충분한 분석을 거쳐 그 물체가 오소리라는 사실ㅇㄹ 알아차피리도 전에 이미 우리 몸은 도망갈 사전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생리적으로 흥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정서 상태를 정확히 모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2. 실제 경험하는 감정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생리적 각성도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그 각성을 유발했다고 믿는 것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공포를 욕정으로, 염려를 죄책감으로, 수치심을 불안으로 오해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감정 경험을 무엇으로 부를지 모른다고 해서, 그 경험 자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은 아니다. 그 경험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유발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항상 알고있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우리의 시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우리의 자각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뇌손상은 이 시각 경험과 그 경험의 자각 중 하나만을 손상시킴으로써 평소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험과 자각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사람들의 뇌를 촬영해보면 뇌 부위의 활동이 감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자극을 보지 못했다는 그들의 말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뇌 촬영 결과가 보여주는 또 다른 사실은, 시각과 관련된 뇌 영역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벽에 한 점의 빛을 비추고 맹인에게 보았느냐고 물으면 못보았다고 하지만 어디에 빛이 있는지 추측하라 하면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정확하게 추측해낸다. 본다라는 말이 빛을 경험하그 정보를 얻는 것을 뜻한다면, 그는 지금 보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자신이 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뜨한다면 그는 보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자각과 경험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가 감정의 측면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리하게 기분과 감정을 인식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괜찮아, 별로 안좋아 같은 정도의 표현만으로 자신의 감정세계를 충분히 표현한다.

결론적으로 행복, 슬픔, 지루함 혹은 호기심 같은 감정을 실제로는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3. 행복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대부분의 과학하자 동의하는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측정이 불가능한 현상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혹자는 측정을 통해 수량화할 수 없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과학이 밝힌 그 어느 것보다 값지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적 탐구의 대상은 반드시 측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한 개인의 행복을 측정하고 그 값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확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거나 어떻게 느꼇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설사 그 느낌을 다 알고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그 경험의 묘사가 서로 얼마나 일치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주관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제대로 측정하기

 

목공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전제가 있다. 그것은 완벽하지 못한 연장은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로 못을 박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이다. 주관적 경험은 그 특성산 완벽한 행복 측정기, 즉 조금의 오차도 없이 사람의 행복을 재고 기록하고 또한 그 값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 가능하도록 해주는 도구를 만드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관찰과 측정이 지닌 어느 정도의 모호함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두 번째 전제는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주관적 경험의 측정치 가운데 가장 결험이 적은 것은 한 개인이 주의를 기울여 제공하는 실시간 보고라는 점이다. 물론 행복을 측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중 어떤 방법은 행복을 느끼는 당사자의 말보다 더 정밀하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근전도 검사 같은 것.

실시간 자기 보고에 의존하는 과학자들은 종종 이러한 보고가 위의 생리적 측정치와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이것은 앞뒤가 뒤바뀐 논리다. 왜냐하면 근육 움직임에서 피질 혈류에 이르기 까지 여러 증상들을 행복의 지표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경험을 할 때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광대뼈 근육이 수축하고 눈을 더 천천히 깜빡이며 좌측 전뇌 영역이 혈액으로 가득 차는 현상을 행복의 신체적 증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보고하는 사람의 말에 당황할 수도 있고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미심쩍어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사람은 오직 당사자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물린 자기 보고를 통해 우리가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찰자인 우리 입장에서는 자기 보고가 그의 내면세계에 가장 근접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에 만족해야 한다.

 

 – 여러번 측정

 

세 번째 전제는 측정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주관적 경험에 대한 자기 보고에 존재하는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해답은 통계작자들이 다수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다수의 마법이 주관적 경험을 측정할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해줄 수 있다. 동전 던지기 횟수가 많아 진다면 앞면이 나올 확률이 뒷면의 확률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가? 직관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확률이다. 동일한 논리가 주관적인 경험의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이 신경 써서 제공하는 자기 보고가 그들의 내면 경험을 나타내주는 불완전한 근사치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부다. 따라서 확실한 것을 원한다면 다수의 법칙에 의거하여 불완전함이 상쇄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측정하면 된다.

 

 

4. 맺음말

 

우리가 무언가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을 위해 좋은지를 말해야 한다. 인류가 좋다고 평가하는 많은 사물과 경험을 모두 가져다놓고 과연 그것이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오직 한 가지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데 좋은 것들이다. 느낌은 중요하기 때문에 느낌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과학자들이 바라는 만큼 정확하게 느낌을 측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기 개발한 방법론적, 개념적 도구가 한 사람의 느낌을 완벽하게 측정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그것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반복해서 측정해 완벽성을 높일 수는 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_Chapter 2

주관성_CHAPTER 2 : ‘에서 밖을 내다보기

 

 

로리 셰플과 레바 셰플은 쌍둥이이면서도 많이 다르다. 이들이 평범하지 않은 점은 태어날 때부터 이마 앞부분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단순히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즐겁고 유쾌해하며 낙관적이다.

만약 당신이 이들처럼 살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결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쌍둥이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현 상태가 유지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행복에 대하여 로리와 레바가 행복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 둘을 제외한 우리가 모두가 행복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리와 레바가 이미 반박한 주장(샴 쌍둥이는 불행하다는 통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로리와 레바의 행복에 대해 내세우는 주장도 일련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1. 여러 종류의 행복

 

행복에 관찬 책들은 대부분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다. 이는 처음부터 빠져나오기 힘든 웅덩이를 향해 무작정 나아가는 것과 같아. ‘행복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우리가 편의상 이름붙인 단어 그 이상, 이하고 아니기 때문이다.

뒤죽박죽된 용어들을 살펴보면, 어떤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에 관한 서로 다른 주장은 행복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상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의 요소로 가장 많이 주목받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행복이라는 단어는 최소한 세가지 면, 즉 감정적인 행복, 도덕적인 행복, 평가적인 행복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 외계인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

 

감정적인 행복은 너무나도 기초적인 것이라서 오히려 그 의미를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마치 꼬마가 가 무슨 뜻이냐고 물을 경우 어떻게 설명할지 모를 때 느껴지는 막연함과 비슷하다. 감정적인 행복은 느낌, 경험, 주관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에 해당하는 물리적 실체는 없다.

예를 들어 노란색이라는 주관적인 경험을 정의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당신은 노란색이 한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심리적인 상태일 뿐이다. 노란색에 대해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철학자들에 따르면 주관적인 상태는 더 이상 최소화할 수 없는것으로 다른 것을 통해 지칭할 수도 없고 빗대어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주관하는 신경학적 토대를 제시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외계인에게 색깔을 볼 수 있는 신체적 기능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할지라도 그와 노란색이란 경험을 공유할 수 없을 것이다.

감정적인 행복도 마찬가지다. 여러 상황(행복을 느끼는)에서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은 행복이다. 물론 구체적인 느낌은 다르다. 경험도 서로 다르지만, 모든 것은 행복이라는 척도 어딘가에 위치하는 느낌의 한 형태이다.

이런 경험을 할 때, 우리는 보통 비슷한 형태의 신경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 속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이런 현상을 하나의 언어 범주에 묶어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행복이란 왜 그런 느낌 알죠?”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적인 행복의 본질은 경험이다. 그것은 오로지 선행되는 사건, 더불어 그 경험과 연관된 또 다른 경험과의 관계 등을 통해서만 대략적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그의 저서 인간에 대한 에세이의 약 1/4를 행복에 관해 다루면서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누가 행복을 정의내릴 것이며, 누가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혹은 덜 행복하다고 말할 것인가? 이것이 행복이라고 또는 저것이 행복이라고 말할 사람은 누구인가?”

감정적인 행복을 언어로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느낌으로 경험해보면 행복이 존재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은 행복하길 원하고 행복 외에 바라는 모든 것은 대개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지닐 뿐이다. , 인간 욕구 본질에는 행복에 대한 추구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순수하게 고통이나 아픔을 선호하는 것은 정신병적 증상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모습이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자들은 인간 행동에 대한 이론을 행복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정립해왔다. 행복의 추구가 빠진 인간에 대한 이론은 이론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고결한 행복

 

역사 속의 모든 사상가가 사람이 감정적인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왜 그 단어의 의미를 놓고 그렇게 많은 혼란이 있었을까?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행복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배설의 욕구와 별반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우리에게 욕구가 있지만, 굳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이러한 믿음이 퍼져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의 가상현실 기계에 대한 예를 제시하였다. 이 기계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는 경험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 기계에 연결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잊게 된다. 노직은 이런 기계의 도움으로 얻는 행복은 결코 행복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누구도 평생 그런 기계에 붙어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말해 감정적 행복은 돼지에게는 충분하지만, 우리 같이 고상하고 복잡한 존재가 추구하기에는 너무 하찮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만약 당신이 행복을 좇으면서도 단시 느낌만을 추구하는 삶의 허망함을 개탄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면, 어떤 결론을 제시하겠는가? 아마도 행복은 일반적인 좋은 느낌 보다는 특별한 수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좋은 느낌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부끄러움 없이 추구할 수 있는 그런 행복 말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행복을 유데모니아라고 불었다. 이 단어를 번역하면 좋은 정신을 뜻하지만, ‘융성한 인간’ ‘훌륭한 삶의 뜻에 더 가깝다.

여러 철학자에 따르면 이런 행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신의 의무를 고결하게 수행하는 것에 있다. 2천년 동안 철학자들은 행복을 고결함과 연관지어 규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왔다. 우리가 원해야 하는 행복은 바로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을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행복의 이유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가리켜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철학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뒤섞어놓으면서까지 몇가지 극단적인 주장들을 고수하려 애써왔다. 예를 들어, 일광욕 하는 나치 전쟁범은 진짜 행복을 느끼지 못하지만, 식인종에게 잡아먹히는 선교사는 행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그렇다. 우리는 행복을 하나의 경험 상태를 일컬을 때 사용하지, 그 경험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행복이란 느낌이다. 이에 반해 고결함은 행동을 가리키며, 이 행동은 행복의 느낌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고결함이 그리고 고결함만이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 머리로만 이해하는 행복

 

철학자들이 행복이라는 단어의 도덕적 의미와 감정적 의미를 섞어놓았다면, 심리학자들은 행복에 담긴 감정적 의미와 평가적 의미를 섞어놓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전체적으로 내 삶을 봤을 때,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자.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그가 행복하다고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간혹 어떤 긍정적인 가치를 포함하는 일에 대해서도 행복하다는 말을 쓰곤 한다. 기쁜 느낌과 전혀 멀 때조차 그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말을 일종의 관점을 나타내기 위해 쓰는지, 아니면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행복이라는 말이 그것 또는 에 관하여 등의 단어 뒤에 따라올 때는 말하는 이가 자신의 느낌보다는 어떤 관점을 나타내려고 그 말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행복이라는 말을 감정적인 행복으로 보지 않는 다면 이 문장을 이해하기 한결 쉽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장은 내가 실제로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사람에게 행복감을 줄 수 이쓴, 혹은 주어왔는지 아니면 마땅히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이해를 드러낸다.

 

 

2. 행복은 정말 비교 가능한가?

 

행복이라는 말은 즐거운 또는 기쁜 같은 주관적인 감정 경험에만 사용하고, 그 경험을 유발하는 행동의 도덕성이나 그 경험의 유익함을 판단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기로 한다고 해보자. 그래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바나나 크림파이 한 조각을 먹을 때의 행복과 코코넛 크림 파이 한 조각을 먹을 때의 행복은 차이가 있을까? 대체 주관적인 감정 경험이 서로 다르거나 같다는 것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판단은 불가능하다. 두 경험이 완전히 같은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서투른기억

 

두 가지 행복이 서로 다른 느낌이 드는지 아닌지를 판정하려면 각각 다른 사람의 경험을 비교하려 애쓰기 보다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해본 한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 경우에도 두 자기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두 경험 가운데 하나는 이미 겪었을 것이고, 다른 하나만을 현재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경험을 비교할 뿐이다. 물론 기억이 완벽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경험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전혀 믿을만하지 못하다.

언어는 우리가 경험했던 것의 중요한 특징을 추출하고 기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우리가 가눙에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행복하다와 같은 단어를 써서 우리의 경험을 압축한다. 이것이 반드시 적절하다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방법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경험하는 일들을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 눈앞의 것도 놓치는 우리

 

과거의 기억은 불완전하므로 현재의 경험을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 내용과 비교하는 것은 위험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좀 더 다른 접근법을 시도해보자. 이는 경험과 경험 사이의 시간 간격을 줄인 뒤 두 경험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컴퓨터 스크린을 보고 몇 가지 텍스트를 읽어보라고 요구했다. 그 텍스트에는 대문자와 소문자가 번갈아가며 나왔다.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그들이 텍스트를 읽는 동안 1초에 몇 번 씩 글자 모양이 변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후속 연구에서도 사람들이 이런 시각의 불연속성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앞서 사람들에게 이러한 시각의 불연속을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꽤 자신있어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놓치는 것은 미묘한 변화 뿐만이 아니라 아주 극적인 변화까지도 종종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대학 캠퍼스에서 연구진이 학생에게 접근하여 빌딩 위치를 물어보았다. 연구자가 준비한 지도를 함께 보는 동안 커다란 문짝의 양쪽 끝을 잡은 건축기가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학생과 연구자 사이를 무례하게 뚫고 지나가면서 연구자와 자리를 바꾸었으나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러한 실험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과거에 직접 경험한 일들도 때로는 마치 다른 사람의 경험을 대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까지 불투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현재의 경험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는 데 우리가 둔감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현상적 경험이 변화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의 마음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변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기억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3. 행복의 언어

 

로리와 레바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다른 행복을 비교해볼 믿을 만한 방법은 없다. 우리가 무슨 근거로 그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언어축소 가설이란 한정된 경험만을 해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전체 경험의 범위 중 일부만을 지칭하게 되는 경우를 가르킨다. 이 가설에 따르면 로리와 레바가 황홀ᄒᆞ는 극적인 표현을 쓰는 경험은 사실 우리가 다소 기쁘다고 말할 때 느끼는 정도의 경험과 비슷하다.

 

 – 로리와 레바의 착각?

 

언어축소 가설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가설은 생일 케이크를 받았을 때 비록 사람들이 그 느낌을 서로 다름 말로 표현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에 세상을 조금 덜 복잡하게 만든다. 둘째, 로리와 레바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진정으로 행복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보다 우리의 삶이 더 낫다는 우리의 판단이 정당해진다.

그러나 이 가설은 상당히 많은 오점을 안고 있다. 로리와 레바가 풀밭에서 뒹굴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8점 척도를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새앆한다면, 우리는 경험하지 못하고 그들만이 경험하는 경험 역시 고려해야 한다. 우리 역시 그들의 경험을 해보지 못했으므로 경험 부족 때문에 축소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한 연구에서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퀴스죠 질문을 몇 가지 제시하고 그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정답을 맞히게 될지 추정해보도록 요구했다. 한 집단은 질문만 보여주고, 다른 집단은 질문과 정답을 동시에 제시했다. 질문만 제시해준 집단은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정답을 함께 제시받은 집단은 매우 쉬운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는 아직 정답을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 질문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연구가 보여주는 사실은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고 나면, 다시는 그 경험을 하기 이전처럼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로리와 레바가 몇 주 동안 분리되어 지낸 후, 예전의 삶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예전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 하더라도, 최근에 겪은 분리된 경험이 이전의 삶을 평가하는데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나고 나서는 예전에 했던 자신의 말이 빈약한 경험에서 나온 짧은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예전에 행복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 역시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돌이킬 수 없는 경험의 힘

 

로리와 레바가 정말로 한정된 경험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의 한정된 경험 배경이 그들의 언어적 표현이 나타내는 경험의 범위를 축소시킬 수도 있지만, 그러한 생각은 설득력이 없다고 앞서 말했다. 또 다른 대안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한정된 경험이 경험의 강도를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8점을 유발하는 사건은 다르지만 8점이 주는 행복의 느낌은 동일할 수 있다. 이를 경험확장 가설이라고 한다.

우리는 경험축소 가설과 경험확장 가설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행복에 관한 어떤 주장도 누군가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 관점은 핸재의 경험을 평가하기 위한 맥락, 렌즈 혹은 배경 역할을 하는 과거 경험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개인적인 관점이 끼어들지 않은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어떤 경험을 하고 나면, 그 후로는 그 경험을 하기 전처럼 세상을 볼 수 없다. 과거를 기억할 수는 있어도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당시의 마음 상태로 그것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맺음말

 

1916515일 아침, 북극 탐험자 어니스트 쉐클턴은 역사상 가장 험난한 모험 중 하나였던 탐사의 마지막 단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탐험선호는 침몰했고, 선원들은 엘러펀트섬에 좌초되었다. 7개월이 지난 뒤, 쉐클턴과 5명의 선원은 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극한의 항해를 보냈고, 남 조지아 섬에 도착한 뒤 그 섬 반대쪽에 있는 고래잡이 정박장에 도달하려는 희망으로 섬을 걸어 횡단하기 시작했다. 쉐클턴은 이렇게 적고 있다.

“~… 흥겹게 항해를 했죠. ~~ 우리는 행복해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우리를 보았다면 파티를 즐기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쉐클턴의 이 말은 진심이었을까? 그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과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행복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남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 그 말의 진위를 평가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