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할 것들_02

Chapter 02_특별하게 만들어라

  

  

1. 구매 습관과 만족도

 

미국의 희극인이자 배우인 사라 실버맨(Sarah Silverman)은 평소 음담패설을 즐긴다. 그처럼 유쾌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에 관한 한 실버맨은 특별하게 만들라는 원칙을 인생철학으로 삼고 있다.

[1] 그녀의 대학 친구 말에 따르면, 실버맨은 마리화나를 한바탕 피우고 이런 것들(마리화나 같은 것들)을 즐기고 싶다면, 특별한 즐거움으로 만들어야 해라며 현인의 지혜 같은 것을 전수했다고 한다.

 

우리 대부분은 부족한 게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행운을 타고 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족한 게 없다 보니 풍요로움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어느 오후, 한 무리의 학생들이 심리학 연구실에 모였다.

[2] 학생들에게는 간단한 임무를 부여했는데, 각각 초콜릿 한 조각씩을 먹게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학생들은 다시 연구실에 들러 초콜릿 한 조각씩을 먹었다. 관찰해보니 대체로 학생들은 두 번째 찾았을 때 초콜릿을 입에 덜 가져갔다. 이 실험 결과는 인간 경험의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어떤 것에 자주 노출될수록 그 영향력이 더 감소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부분 어떤 나쁜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경험해왔다. 사고 싶은 것을 꼭 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습관이 몸에 배면, 흔히 긍정적인 체험에 투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평소 구매 습관은 지속적인 만족을 이끌어내는 데 근본적인 장벽이 된다.

 

사람들은 주택을 구입할 때처럼 승용차를 구입할 때도 거금을 들인다.

어떤 것을 사는 것이 좋을까? 이와 관련하여 미시간대학교 연구진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3] 연구진은 각 유형의 승용차를 운전하는 동안 얼마나 만족할 것인지 예상해보라고 학생들에게 요청했다. 학생들의 답변을 확인해보니 단연 BMW가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실제로 운전자들은 고급 승용차를 운전할 때 더 행복감을 느낄까? 이 물음의 답을 구하기 위해 연구진은 자가 운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운전했던 때를 떠올려보고 그 운전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평가해보라고 했다.

켈리블루북(Kelly Blue Book, 미국 자동차 전문 평가기관)이 평가한 자동차의 가치와 운전자들이 그날 운전에서 얻은 즐거움의 양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다.

 

이어서 도로에 급커브길이 있다는 전제를 두었다. 연구진은 또 다른 운전자들에게 자가용의 제조사와 모델, 연식을 적어보라고 한 뒤 운전할 때 대체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런 전제에서 자가용을 평가한 운전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고급 승용차를 소유한 운전자들은 운전에 대한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어느 순간 승용차의 가치와 그로 인한 감정적 효익(emotional payoff) 사이에 관련성이 생긴 것이다. 왜 그럴까?

 

무언가에 대한 일반적인 느낌을 물어보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반론에 기대어 대답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BMW 소유주라면 내게는 300마력에다 뚜껑이 열리는 미드나잇 블루 Z4가 있어. 당연히 운전이 즐겁지. 또 궁금한 게 있어?” BMW를 수차례 운전하며 느낀 감정을 재현하여 그 체험의 수준을 평균내볼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미드나잇 블루 Z4처럼 멋진 것이라 해도, 우리의 관심은 다른 것으로 넘어간다.

미시간대학교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자가 운전자들에게 근래 재미 삼아 차를 난폭하게 몰았던 경험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이에 운전자들은 저마다 마음껏 속도를 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결과는 고급 승용차 운전자들이 더 많은 만족감을 표출한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매일오지는 않는다. 때문에 고급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해서 만족감을 더 많이 느낀다고 볼 수 없다.

    

 

2. 삶의 소소한 즐거움에 감사하라

 

[4] “ 오늘 당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하나는 당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 오프라 윈프리가 한 말이다.

최근 유행하는 다이어트 요법에 관심이 바뀌듯이, 우리는 새로운 것에 관심을 빼앗긴다.

[5] 그처럼 뜻밖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 대한 들뜬 기분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커다란 빨간 리본으로 장식된 신형 스포츠카를 받는다면, 분명히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고 세상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나중에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이 일상생활이 되면 대부분 사라진다.

 

누구나 다 오프라 윈프리의 조언을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부분은 부의 영역에 조금씩 근접할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벨기에의 성인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부유한 사람일수록 삶의 소소한 기쁨을 맛보는 성향 면에서 낮은 점수를 얻었다.

[6] , 부유한 사람들 중에서 산을 오르다 아름다운 폭포를 감상하고 싶다고 한다거나 달콤한 주말 휴가의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부와 행복의 관계성이 별로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돈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부유함의 유해 효과가 그대로 일어날 수 있다.

[7] 한 연구 결과가 암시하듯, 돈이 쌓여 있는 사진만 보여주어도 부자인 양 행세하게 만들 수 있다.

[8] , 사람들은 돈이 쌓여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진짜로 갑부가 된 양 삶의 소소한 즐거움(폭포를 감사하며 추억에 젖기)을 누리는 마음이 적어진다고 한다.

 

부유함이 소소한 즐거움에 방해가 된다는 개념은 1964년 출간된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제와 상통한다.

찰리는 가난하여 1년에 딱 한 번 생일날에만 초콜릿을 받는다. 찰리는 초콜릿을 받을 때마다 그것을 보물처럼 간직한 채 며칠 동ㅇㄴ 보기만 하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다 충분히 참았다 싶으면 초콜릿 포장지를 아주 조금만 벗겨낸 다음 아주 살짝 베어 먹는다.

[9] 그 다음 날에도 초콜릿을 살짝 베어 먹는데, 그렇게 하면 10센트짜리 초콜릿을 한 달도 넘게 먹을 수 있다.

 

[10] 이 소설의 초콜릿 공장 주인인 윌리 웡카가 시도했을 법한 한 연구에서, 연구진은 캐나다 학생들에게 지폐 사진을 보여준 뒤 초콜릿 한 조각을 먹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몰래 관찰했다.

이 학생들은 지폐 사진을 보지 않았던 학생들에 비해 초콜릿을 매우 빨리 먹어치웠다. 하나 더, 이 학생들의 얼굴에서는 즐거운 표정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부유함을 떠올리기만 해도 삶의 작은 즐거움을 누리는 능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버맨의 신조를 실천하는 것은 찰리 버킷보다 부유한 우리들 대부분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11] “ 그래서 자신의 신조를 되뇌어야하는 거랍니다. 그런 것은 지독히도 잘 잊히니까요. ” 실버맨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흔히 난생 처음 승용차를 사서 몇 년 몰다 보면 감사하던 마음이 차츰 사라진다.

이와 관련하여 예일대학교 연구진이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만화경부터 최신형 평면 텔레비전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물건을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이어서 그중 평소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졌을 때의 만족감이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 달라질지 예상해보라고 말했다.

[12] 이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만족감이 낮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13] 연구진은 실험을 한 번 더 진행했다. 이번에는 일부 학생들에게 만화경 하나씩 나눠주고 일주일이 지나면 그것을 얼마나 재밌게 가지고 놀지 예상해보라고 했다.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하루가 지나면 만화경을 얼마나 재밌게 가지고 놀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에 두 집단은 기간에 상관없이 만화경을 실컷 가지고 놀 것 같다고 답했다. 이전 실험에서 시간이 갈수록 즐거움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다른 답변이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즐거움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늘 그런 생각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상기시켜주면, 즐거움이 곧 사라진다는 확신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처럼 시간의 흐름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즐거움이 끝없이 이어질 거라 생각하게 된다.

사실 만화경을 집에 가지고 간 학생들은 일주일이 넘어가자 만화경 보는 일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즐거움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온도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14] 연구를 맡은 셰인 프레더릭(Shane Frederick)교수와 조지 로웬스타인(George Loewenstein)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 수은에는 이전 상태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인간과 다른 생물체들은 이렇게 반응하지 않지요. ”

    

 

3. 달콤함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방법

 

우리 인간에겐 이전 기억을 상실해버리는 수은의 특성이 없다. 때문에 초콜릿 한 조각의 달콤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진다. 그럼에도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을 계속 섭취하면서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일부러 초콜릿 먹는 일을 중단하면, 즐기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15] 한 실험에서 학생들은 초콜릿을 한 번 맛본 후 일주일 동안 초콜릿을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집단 학생들은 초콜릿을 마음껏 먹기로 하고 약 1킬로그램의 초콜릿을 얻었다. 그들은 기분 좋은 횡재를 한 만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초콜릿을 한 번 더 먹는 자리에서 두 번째 집단 학생들은 일주일 전에 비해 초콜릿을 입에 별로 대지 않았다. 반면 중간에 초콜릿을 끊은 첫 번째 집단 학생들은 그다음 주에도 처음에 먹은 양만큼 초콜릿을 먹었다.

 

풍족함이 감사하는 마음에 적이 된다면, 부족함은 최고의 동지가 될지 모른다.

평소 즐기는 것을 중간에 끊어보자. 평소 즐기는 것을 특별한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적응에 대한 탈출구를 만들라는 말이다.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말은 아니다.

[16] 예컨대, 소박한 삶을 추구한다는 그럴듯한 명목을 내세워 이른바 옷 다이어트 Great American Apparel Diet’에 돌입한 사람들은 1녀 동안 옷을 한 벌도 사지 않았다.

[17] 옷 여섯 벌로 한 달을 버틴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계획은 도가 지나칠 수가 있다.

 

단순한 삶을 선택해 유명세를 탄 크리스텐 마티니라는 여성은 30대 중반에 도시 교외의 큰 집을 버리고, 숲에 있는 조그만 오두막집으로 이사를 했다.

[18] 마티니는 남부러운 안락한 삶을 버리고 약간의 음식과 옷 몇벌만 챙긴 후 두 아이와 함께 떠났다.

그녀를 떠나게 만든 가치와 목적은 확실히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 스스로 소박한 삶을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자. 그런 사람은 표정에서 행복이 묻어나온다.

달리 말하자면, 극도의 자기절제는 자신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소비를 줄이기만 하면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이는 한 연구에 따르면, 소비 패턴을 전환하여 지출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4. 한정된 즐거움을 누려라

 

사회심리학 교수이자 애견가인 제임 커츠(Jaime Jurtz)는 오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강아지를 영원히 강아지로 살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녀의 연구는 그녀의 꿈이 썩 좋은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 제임 커츠의 연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무언인가가 영원하지 않음을 알 때, 우리는 그것을 더욱 즐기고 느끼려고 한다.

[20] 졸업이 임박했음을 느낀 대학 4학년생은 운치 좋은 캠퍼스 가로수 길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평소 자주 가던 강의실과 동아리방을 찾아다니면서 학창 시절을 음미하고 즐긴다.

 

어떤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면, 그것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21] 젊은이들은 풍족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겠지만, 노인들은 감정적 효익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감정을 유발하지 않는 것들을 단절시키는 식으로 일종의 가지치기를 한다.

1995, 120세가 된 잘 칼망(Jeanne Calment)이라는 프랑스 여성은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최고령자로 공식 인정되었다. <뉴스위크>기자가 칼망에게 스스로 그리는 미래가 어떠하냐고 물었다.

[27] 그러자 이 굉장한 100대 노인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답했다. “아주 짧은 것이지요.”

끝이 가까워졌음을 깨닫는 데 행복의 비결이 있다. 그러면 순조롭게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을 특별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이 개념은 또한 즐거움이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사람들은 왜 자기 고향에 있는 관광명소를 잘 찾지 않는 걸까?

[23] 런던에서 단 2주 머물렀던 관광객들과 비교했을 때, 런던에서 1년을 거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빅 벤과 켄싱턴 궁전 등의 명소를 별로 찾지 않았다고 밝혔다.

[24] 런던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한 도시다.

하지만 런던 시민들은 다른 도시의 관광명소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무엇을 암시할까? 사람들은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인식할 때 어떻게든 특별한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고급 제과점에서 맛있는 케이크와 음료를 살 수 있는 상품권을 하나 얻었다고 해보자. 상품권의 유효기간이 두달이면 좋을까, 2주밖에 남지 않았다면 좋을까?

[25] 이런 선택에 직면한 사람들은 대개 두 달의 유효기간에 만족해한다. 또한 그들 중 68퍼센트는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상품권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네 제과점에서 맛있는 패스트리 빵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을 받은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유효기간 3주짜리 상품권을 받은 사람들 중 31퍼센트가 상품권을 사용했지만, 유효기간 두 달짜리 상품권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6퍼센트만이 상품권을 사용했다. 유효기간 두 달의 상품권을 받은 사람들은 상품권을 나중에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상품권 사용을 계속 미뤘다. 런던 시민들이 빅 벤을 잘 찾지 않는 현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26] 몇 년 전의 일이다. 미국 최대 전자제품 소매판매회사 베스트바이는 소비자들의 상품권 미사용으로 4,3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부 소비자 단체와 정책 입안자들이 상품권 유효기간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역효과를 낳으 우려가 있다.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어야 특별한 체험의 만족감을 최대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KFC의 더블다운은 베이컨 두 장에 두 종류의 치즈, 커널의 비밀 소스를 프라이드 치킨 두 조각 사이에 넣은 샌드위치로, KFC의 표현을 빌리면 고기로 꽉 차서 빵을 올릴 틈이 없는 샌드위치!’라고 한다.

 

이 빵 없는 샌드위치는 미국에서 꽤나 인기를 끌었는데, 캐나다에서는 가히 돌풍을 일으켰다. 더블다운 덕분에 KFC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다.

[27] KFC는 캐나다에서 사상 유례없이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했는데, 2010년 가을 캐나다에서 더블다운을 첫 출시한 후 한달도 안되어 100만 개의 매출을 기록했다.

[28] 이 회사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더블다운 100만 개는 하키링크 2,083개에 펼쳐놓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더블다운 출시 초기 KFC는 멈출 수 없는 성공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캐나다 전역 점포 메뉴에서 더블다운을 빼버렸다.

[29] ‘언제나 고객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겠다.(코카콜라의 오래된 모토)’ 목표가 지배적인 업종에서 KFC의 행보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맥도날드도 돼지고기 공급이 원활한데도 메뉴에서 맥립을 뺐다가 재출시하는 식으로 지난 30년간 시즌판매를 계속해왔다.

[30] 맥도날드의 언론관계 부서 소속인 아실리 잉글링(Ashlee Yingling)은 회사가 가을에만 맥립을 판매하여 여름 바비큐에 대한 향수를 불어일으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11월 맥도날드의 매출은 4.8퍼센트나 신장되었다.

[31] 맥립이 가장 큰 기여 요인이었다.

 

[32] 빵 없는 샌드위치, 뼈 없는 갈빗살로 만든 혁신 제품이 나오기 오래전부터 디즈니는 영화 상영기간을 제한하는 식으로 제한된 유용성의 효과를 활용해왔다.

디즈니의 인기 영화들은 약발이 떨어질 만하면 영화관에서 사라졌다. 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전략을 애용하고 있다.

 

애리조나대학교 심리마케팅학과 교수인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2002년에 내놓은 저서 <설득의 심리학 Influences>에서 희귀성을 이용하여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승낙의 기술을 집중 설명한다.

[33] 치알디니는 다양한 설득의 방식을 실전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34] 동시에, ‘아니라고 말하는 법을 알려주며, 희귀성을 이용한 마케팅에 현혹되지 말 것을 독자들에게 촉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버맨의 신조와 그 이면의 원리를 진지하게 따져본다면, 희귀성 마케팅을 윈윈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 즉 소비자들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없음을 이해하면서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고 감상하려 할 것이다.

 

회원제 자동차 공유서비스 회사인 집카(Zipcar)도 운전을 특별한 체험으로 전환하여 고객들에게 기쁨과 흥분을 제공한다. 자동차 대여회사들은 하나같이 흔하디흔한 승용차를 대여해준다.

[35] 반면에 집카가 최초로 대여해준 차는 연녹색으로 치장된 폭스바겐 비틀이었다.

집카의 창립자로 CEO를 지냈던 로빈 체이스는 자가용 운전과 집카 운전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자가용은 개인이 상시로 운행하는 차이지만, 집카는 여행을 위한 차라는 말이다.

 

1995년 런던에서 설립된 회원제 고급 자동차 대여회사인 클래식 자동차 클럽은 외골수처럼 집카의 이 접근법을 활용한다.

[36] 이 회사는 막대한 회비를 받고 회원들에게 페라리나 마세라티 같은 평생 구경하기 힘든 차를 빌려준다.

맨하탄에서 회원들은 최고급 슈퍼카13일 동안 모는 대가로 약 11,000달러를 회비로 낸다.

회비만 보면 전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 고가 자동차를 사는 비용치고는 놀랄 정도로 저렴한 것이다.

 

[37] 혁신적인 회사들은 자동차 외에 별장, 핸드백, , 프랑스산 송로버섯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도 다 나눠 쓰게 하고 있다.

세일타임에 가입한 회원들은 일곱 몇까지 다른 사람들과 요트를 나눠 타면서 그 속담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언론에서 세일타임을 두고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38] 요트를 나눠 탄다는 것은 상시 이용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명백한 제약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요트 타는 일을 특별한 체험으로 여기게 된다.

요컨대, 기회가 한정되어 있음을 알아야 감사할 줄 알게 된다.

    

 

5. 잠깐의 중단으로 만족감을 높여라

 

<오피스 The office>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애청하는 사람은 언제 가장 행복할까?

한 연구결과는 드라마 한 편과 다음 편 사이에 기다리는 기간이 있어야 즐거움이 커진다는 점을 암시한다.

[39] 광고가 텔레비전 시청 체험을 개선시킨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드라마 시청보다 더 획일적인 체험에서도 중단을 통해 즐거움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 백지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또한 이런 중단은 그 자체로 성가시긴 해도 전반적인 즐거움을 높이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연구진은 여러 인기 가요를 조합하여 매시업(mash up)을 만들었다.

[40] Eminen Lose Yourself, The Knack My Sharona, Michael Norton Sometimes가 음악에 포함되었다.

연구진은 각 노래에서 간단히 샘플을 뽑은 다음, 루프 기능으로 60초짜리 노래를 만들었다. 이어서 첫 번째 집단의 청취자들에게 중단 없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반면에 두 번째 집단의 청취자들에게는 처음 50초 동안은 같은 노래를, 그 다음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펑크 밴드의 시끄러운 기타 연주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백이면 백, 중간에 방해받지 않고 노래를 들어야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중간에 방해를 받았던 두 번째 집단 청취자들이 노래를 들으며 더 만족해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첫 번째 집단의 청취자들보다 비용을 두 배나 더 내면서까지 가수의 콘서트에 참여하려고 했다.

 

이 실험 결과에서 즐거움을 전달하는 원리와 방법이 드러난다. 노련한 안마사의 관점을 따라보자.

[41] 한 설문에서 막 안마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75퍼센트는 중간에 쉬지 않고 안마를 받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안마를 받다가 중간에 쉬었던 사람들이 쉬지 않고 안마를 받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만족해했다. 또한 이후 비용을 더 내면서라도 안마를 받으려고 했다.

[42] 이와 관련하여 리프 넬슨 Lief Nelson 교수와 톰 메이비스 Tom Mayvis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 사려 깊은 안마사는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고객의 만족도를 최대로 높인다고 한다. ’

 

아주 잠깐만 중단을 해도 우리의 활기온도계는 리셋된다.

안마를 받지 않는 것보다는 적절한 때, 적절한 부분에 안마를 받는 것이 좋고, 단 중간에 잠시 쉬면 안마의 전반적인 효과가 아주 커진다.

    

 

6. 난생 처음 여행해본 것처럼

 

여행을 자주 가면 갈수록 여행의 즐거움이 떨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43] 그간에 얼마나 많은 지역을 여행했는지 기록한 다음, 미국의 가장 흔한 관광지 세곳(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뉴욕 등)과 또 미국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의 여행지 세 곳(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아일랜드 등)을 여행한 후 어떤 일을 할지 실험 참가자들에게 상상해보라고 했다.

실험 결과부터 말하자면 리피처럼 여행을 별로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신이 나서 주변에 자랑을 하고, 여행 중 찍은 사진을 보며 그 추억을 음미하겠다고 답했다.

반면에, 여러 곳에 다녀본 사람들은 흔한 관광지에 대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체험은 단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할 수 없듯이 두 관광지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그보다는 한층 더 광범위한 문제가 생긴다. 여행한 나라가 늘어날수록 자칭 세계 여행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이런 경향 때문에 결국 일반적인 여행지를 즐기려고 하는 동기가 약해진다. 결국 즐거움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게 된다.

 

세상 곳곳을 누빌 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자기 내면의 팀 리피를 불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흔한 여행지를 여행하는 내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와 관련하여 보스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국립사적지에 등록된 올드 노스 교회 Old North Church에서 미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44] 관광객들은 올드 노스 교회에 입장하기 전에 여행 점검표를 작성했는데 도시 목록을 보고 자신이 방문했던 곳에 표시를 한 것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미국 관광지가 포함된 목록을 받은 관광객들은 많은 곳에 표시를 했다.

 

관광객들은 점검표를 다 작성하고 나서 교회로 들어갔다. 그런데 점검표 때문에 교회에 들어선 관광객들의 태도가 변화했다. 즉 이국적인 관광지 목록을 본 관광객들은 자신의 여행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교회에 들어섰고, 교회 곳곳을 아주 흥미롭게 감상하며 돌아다녔다.

 

[45] 세계 최고의 현자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에 집착하지말고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관련 연구를 보면,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에 집중할 때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감사할 수 있음을 언뜻 알 수 있다. 우리의 활기온도계는 수은의 객관성이 부족하다. 때문에 우리가 체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어느 정도는 달라진다.

    

 

7. 애인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라

 

나는 사귄지 오래된 연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해보았다.

[46]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애인 또는 실험에 참여한 다른 이성과 서로 교감을 나누었다.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까? 실험 참가자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상냥하고 쾌활하게 행동했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긍정적 행동을 취한 덕에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만 충실하다가 오래된 애인을 떠나보내지말고 이런 효과를 이용하여 연인관계를 돈독히 만들어보자.

이어진 실험에서 연인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더 불러 모아 얼마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애인 앞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난 듯이 상냥한 표정을 지어보라고 요청했다. 한편 나머지 사람들은 늘 하던대로 애인과 대화를 나누게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애인을 난생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한 사람들은 그와의 대화에서 상당한 만족감을 얻었다.

 

새롭고 흥분되는 일을 함께 해야 부부관계 자체도 새롭고 흥미로워진다. 이와 관련하여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47] 부부가 합심하여 일련의 신체적 과제를 수행하게 했는데, 말 그대로 부부의 손목과 발목을 각각 접착테이프로 묶은 뒤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다른 그룹의 부부들은 넓은 방에서 공을 천천히 굴리면서 반대편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등 더 지루한 임무를 수행했다.

실험이 끝나자, 접착테이프로 묶인 채 임무를 수행했던 부부들은 부부관계에서 상당한 만족감을 표현했으며, 연인 생각에 찌릿찌릿해지는 증상이 포함된 낭만적 사랑 징후 점검표 Romantic Love Symptom Checklist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신기하고 색다른 것의 가치는 소위 밤 데이트현장에서도 나타난다. 황소는 그의 정액을 추출하려고 농부드리 쓰는 인공적인 짝짓기장비에 싫증을 느낀다.

[48] 그런데 짝짓기 장치의 위치를 변경하는 식으로 새로운 변화를 주면 황소의 사정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인간이 사정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밤 데이트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새로운 요소를 투입함으로써 사전에 권태감을 막고 장기간 연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49] 현재 부부가 느끼는 권태감의 수준을 보면, 10년 후의 전반적인 부부관계 만족도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 그렇지만 돈으로 신기하고 흥분되는 활동은 살 수 있다.

 

화장지 브랜드 차민 Charmin은 화장지에 대해 색다른 생각을 가졌다.

차민은 번쩍번쩍 빛나는 이동식 화장실을 도심에 설치하는 포티 팔루자 Potty Palooze’ 이벤트를 진행했다.

[50] 차민의 이동식 화장실에는 벽지부터 채광창, 원목마루,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사용할 만한 편의시설이 다 설치되어 있었다.

소비자들은 포티 팔루자 덕분에 화장실 휴지를 쓰는 일을 즐거운 체험으로 전환했다.

 

새로움을 약간만 가미해도 만족 없이 소비하는 경향을 없앨 수 있다.

영화관에 간 사람들은 무심코 팝콘과 콜라를 사서 먹는다.

[51] 김빠진 콜라가 입에 맞지 않는데도 손은 콜라로 향한다.

이렇게 한번 해보자. 다음에 영화관에 가면, 평소 쓰지 않던 손으로 팝콘을 먹어보자. 이러면 무심한 소비에서 벗어날 것이다.

    

 

8. 새로움을 더하라

 

실버맨의 철학은 현대 미국의 풍토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미국 문화에서는 풍족함과 대량구매를 가치 있게 여긴다.

[52] 반면에 프랑스 문화에서는 작은 즐거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이런 문화 차이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53]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 비해 음식은 덜 먹고, 그 맛과 질감을 음미하면서 식사 시간을 더 보낸다.

맥도날드에서도 마찬가지다.

[54] 2003년 한 연구진이 파리와 필라델피아 중심가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을 비교 분석했다.

감자튀김 라지 사이즈 주문 건수를 보면, 파리 매장의 주문 수는 필라델피아보다 30퍼센트 더 적었다. 그러나 파리 매장 손님들은 필라델피아 매장 손님보다 50퍼센트 가량 더 오랜 시간 앉아서 식사를 했다.

 

프로테스탄티즘 노동관이 지배하는 문화에서는 즐거움을 주는 일이 종종 부적절하거나 심지어 부도덕하게까지 보이다.

[55] 그러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 대학생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피부 관리나 외식 같은 일에 돈을 펑펑 쓰면 마음이 꺼림칙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죄책감은 되려 즐거움이 주는 만족감에 의해 희미해지고 현실화되지 않는다.

[56] 그런데도 학생들은 장래 즐거움에 탐닉하는 일이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작은 즐거움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아주 순수한 만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작은 즐거움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즐거움 체험을 스스로 밀어낼지도 모른다.

[57] 이와 관련된 한 실험에서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2달러를 주면서 그냥 챙겨두거나 그걸로 복권을 구입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복권에 당첨되면 고급 식당에서 200달러짜리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자 참가자들의 84퍼센트가 복권을 구입했다. 반면에 복권 당첨금으로 현금 200달러를 주겠다고 했더니 실험 참가자들의 65퍼센트만이 복권을 구입했다.

 

이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현금을 가지고 있어봤자 상점 같은 곳에서 그저 그런 것들만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연구질은 두 조건을 나란히 제시해보았다. 이 경우 현금을 선택한 사람들이 두 배 이상 많았다. 현금 선택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며 뒤탈이 없는 일이지만, 즐거운 체험의 가치를 고려할 때,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여러분은 조그만 하트 모양의 초콜릿(50센트 짜리), 약간 더 큰 바퀴벌레 모양의 초콜릿(2달러 짜리) 중 어느 것을 더 즐겨먹는가?

[58] 이런 선택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하트 모양의 초콜릿을 즐겨 먹을 거라고 말한다.

의사결정 동안 더 매력적인 특징보다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속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퀴벌레 모양 같은 흥미로운 특징이 즐거움을 주는 요소인데도 말이다.

실용적인 상품을 고를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59] 하지만 초콜릿을 먹는 일 같은 즐거운 체험에 관한 한 사람들은 경제적 요소를 그다지 따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베벌리힐스 한복판에 소재한 고급스러운 포시즌 스파에서는 마사지 요금을 1시간 반에 230달러를 받는데 반해, 30분씩 세 번 받으면 330달러로 껑충 뛴다.

[60]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한번에 다 즐기기보다 여러 번 나눠서 즐기는 편이 더 낫다고 손님들은 대부분 말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는 90분짜리 마사지가 더 나은 거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그것이 더 나은 거래인지 따져봐야 한다.

90분 마사지를 받는 경우 마사지가 끝나기도 전에 따분해 지칠지도 모를 일이다. 대신 30분 짜리 마사지를 세 번 받으면 즐거운 체험을 세 번이나 할 수 있다. 큰 만족감을 얻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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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게 만들기위해 기억할 것!

어떤 것에 자주 노출될수록 그 영향력이 더 감소하기 마련이다.

평소 즐기던 것을 중간에 끊어보자. 특별한 것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참고 견디기보다 적응에 대한 탈출구를 만들어라.

사람들은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인식할 때 어떻게든 특별한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할 것들_01

Chapter 01_체험을 구매하라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 버진 그룹의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 Richard Branson)이 설립한 우주여행회사)은 현재 우주여행을 상용화하고, 6분가량의 우주여행 사전 예약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한 사람당 20만 달러나 되는 우주여행 항공권 가격은 절대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20만 달러를 좀 더 일반적인 구매를 위해 지출하면 어떨까?(집을 사서 개조하는 것) 사람들은 대부분 우주여행에 돈을 쓰느니 집을 고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에 관한 연구는 그러한 논의가 반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려한 저택을 사는 일이 현명한 지출이 아닐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보자.

[1] 1991년부터 2007년 사이 옛집이 뭔가 못마땅하여 이사를 한 수천 명의 독일 사람들을 추적 관찰해보았다. 사람들은 이사를 마치자마자 새집이 훨씬 더 맘에 든다고 밝혔다.

 

인간은 금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또한 여러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흔히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새집에 대한 만족감은 일시에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 사그라질 뿐이다. 5년 동안은 옛집보다 새집에 상당히 만족해했다. 문제는 집에 대만 만족도는 상당히 높아졌으나 삶에 대만 만족도(전반적인 행복)는 전혀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교는 신입생들에게 무작위로 기숙사를 배정한다. 기숙사를 보면, 일부는 캠퍼스 중앙에 위치해있기도 하고, 최악의 시기에 건축된 기숙사들은 부동산에 내놓기도 민망한 것들이다.

그래서 신입생들은 정문에서 멀리 떨어진 라드클리프 쿼드 기숙사에 배정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쿼드 기숙사에 배정된 학생들은 고통의 3년을 보낼 수밖에 없을까?

 

나는 동일한 집단을 연속적인 시간 간격으로 관찰한 끝에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캠퍼스와 가깝고 겉보기에 근사한 기숙사에 배정된 학생들이 쿼드 기숙사에 배정된 학생들보다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2] 평소 갈망했던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해서 더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수수께끼를 낳는다.

[3] 2011년 전국적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택 거품이 붕괴된 후에도 미국인들의 약 90퍼센트는 여전히 내 집 마련을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런데 미국 중산층의 심리로 보더라도 내 집 마련을 통해 행복감이 그다지 고양되지 않는다는 점은 놀랍다.

이와 관련하여 오하이오 주에 거주하는 여성 600명 이상을 대상으로 면밀히 조사를 실시했다.

[4]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주인이 세입자보다 체중이 5킬로그램 가량 더 나간 점은 특이할 만하지만, 집주인이라고 해서 세입자보다 딱히 행복을 더 많이 느끼지는 않았다.

 

물론 세입자들은 집을 매입하여 돈을 절약하기도 한다. 도구들을 통해 주택 매입의 투자 효과를 확실히 파악했다손 치더라도, 내 집 마련이 우리의 행복에 좋은 투자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주거가 인간의 행복에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주거환경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며, 상대적 빈곤 국가에서 주가의 질이 삶의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몇몇 증거도 있다*)

* 참고문헌 : Kaoki Nakazato, Ulrich Schimmack, Shigehiro Oishi. <Effect of Changes in Living Conditions on Well-being: A Prospective Top-Down Bottom-Up Model>, 사회지표연구(social indicators Research) 1001월호 11535.

    

 

1. 우주여행의 꿈을 실현하라

 

[5] 서른 살의 핵 기술자 마샤 피아멘고는 어린 시절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 존과 버진 갤럭틱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날 부부는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우주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그러던 중 2010년 그녀에게 시련이 닥쳤다. 존이 병에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생명보험금을 받긴 했지만, 슬픔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돈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그녀는 우주여행 약속이 생각났다. 마샤 피아멘고가 말했듯이,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통해 인생을 짧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행복을 높일 목적으로 무언가를 구매했던 일을 떠올려보자. 물질적인 것을 생각해보고, 이제 인생에 체험을 제공해준 구매를 떠올려보자. 두 유형의 구매 중 어떤 구매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까?

[6] 이런 질문을 받은 미국 사람들 중 57퍼센트는 물건보다 체험을 구매할 때 더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반면에 응답자 중 34퍼센트만이 상반된 답변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된 연구가 거듭 실시되었는데, 결과는 일관되게 나왔다. 사람들은 돈을 잘 썼다고 할 수 있는 체험적 구매를 되새기며 좋은 기분을 느꼈다.

 

[7]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열쇠고리나 액자 같은 물건을 구매할 때보다 비디오게임이나 음악 감상 같은 체험을 구매할 때, 한층 더 지속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단돈 1달러를 쓰더라도 마찬가지다.

 

[8] 현재 진행 중인 한 연구에서 연구진은 50세 이상 장년층을 대상으로 생필품 구매, 집세, 음주, 문화생활 등에 얼마나 많은 돈을 지출하는지 관찰해보았다.

연구지는 여행, 영화감상, 운동경기 관람, 헬스클럽 정기회원 가입 등이 속한 여가활동에서 지출 결정과 행복의 관련성을 발견했다. 이 여가활동에 지출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삶에 대해 상당히 높은 만족감을 표현했다.

이 연구에서 주거가 삶의 만족도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2. 자아가 반영된 체험적 구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직후 윌 딘은 터프머더 Tough Mudder라는 진흙 장애물 경주 회사를 창립했다.

[9] 장애물 경주는 본래 영국 특수부대가 만든 경주로, 딘은 이 행사를 두고 아이언맨이 버닝맨을 만나는 경주라고 말한다.

[10] 16킬로미터의 터프머더 경주는 진흙투성이로 뒤뚱거리며 뛰는 보통의 머드 런이나 혼이 쏙 빠지는 극기로드레이스가 아니다.

 

터프머더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티셔츠 같은 기념품을 사 입거나 몸에 문신을 새겨서 진흙탕 경주에 참여한 사실을 애써 드러낸다. 머리띠도 중요하다. 선수들은 길거리에서 머리띠를 한 사람들 만나면 서로 인사하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공동체 의식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관계 형성이 바로 딘의 사업 성공 비결이다. 이를 보면 체험의 가치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버드 기숙사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의 전반적인 행복은 기숙사의 물리적 특성과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누리는 사교활동의 질로 학생들의 행복을 예측할 수는 있었다. 흥미롭게도 건물이 물리적 특성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낮은 일부 기숙사에 테킬라 튜즈데이 Tequila Tuesdays’ 같은 사회적 전통이 있다.)

 

[11] 한 연구에 따르면, 체험을 하면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유대감이 형성되기 때문에 물건을 구매할 때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터프머더에서도 사회적 측면을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잡았다. 선수들은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서약을 암송한다. 이 의식을 통해 팀워크와 동지애를 발휘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장애물은 선수들끼리 힘을 보태야 넘을 수 있다.

 

터프머더 경주의 전염성이 강한 이유가 또 있다. 참가자들에게 추억이 생기기 때문이다.

[12] 딘은 터프머더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환멸감이 들었기 때문이라며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철인 3종 경기와 마라톤을 보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지 얼마나 버텼는가를 두고 잘 했나 못 했나를 따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뛰었어요?’라고 묻습니다. 사실 터프머더는 묻고 따지고 할 것도 없습니다. 굳이 물어본다면 불타는 장애물은 어땠나요?’라고 물어야겠죠.”

 

꼭 불타는 건초더미를 통과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13] 또 한 블로그의 묘사처럼 수천 년 묵은 거위 똥 냄새가 나는 연못에 반드시 거꾸로 곤두박질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물건보다 체험을 구매할 때 좋은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이와 관련된 실험을 하려고 코넬대학교 연구진이 거리로 나서싸. 연구진은 행인을 붙잡고 행복해지기 위한 구매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다고 했다.

[14] 대화에 응한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체험적 구매를 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려주었다.

이 설문 결과를 놓고 보면, 체험적 구매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열린 사고를 가진 데다 영리하고 붙임성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대학생들(19세 정도의 어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간략히 적어보라고 했다.

[15] 이에 학생들은 대부분 물건을 구매했던 일보다 체험을 구매했던 일을 소재로 삼았다.

또한 시카고 박물관이 18세에서 72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추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험 대상자들 중 체험적 구매를 했던 사람이 물질적 구매만 했던 사람보다 진실하고 본질적인 자아를 더 명쾌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넬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트레비스 카터(Travis Carter)와 톰 길로비치(Tom Gilovich)는 학부생들을 모아놓고 기억에 남는 물질적 구매와 체험적 구매를 네 가지씩 떠올려보라고 했다.

    

 

3. 체험적 이력을 만들어라

 

앞의 실험에서 학생들은 중요한 체험적 구매 또는 물질적 구매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이렇게 상상해보세요. 잠깐 동안 그때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내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그 구매에 관한 현재의 기억은 모두 다른 선택으로 인한 기억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 여러분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지금 있는 바로 그곳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

 

[16] 위의 전제에 직면했을 때, 체험적 구매를 떠올린 학생들은 그 기억을 별로 대체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구매에 그토록 만족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초현대적 약리학의 관점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기억을 어떻게든 지키려 든다.

유독 자신에게 특별했던 저녁 외식, 또 특별하진 않았지만 즐거웠던 저녁식사를 떠올려보자. 각각의 저녁식사 자리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17] 응답자의 10퍼센트 이상은 자신에게 특별했던 저녁 식사 자리를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답했다.

그와 같은 과거의 특별한 체험을 되돌아보다가 추억에 빠지기도 한다.

[18] ‘과거에 대한 아련한 갈망이라고 정의되는 이 감정은, 1600년대 한 스위스 의사가 집에서 멀리 떠나와 싸우는 군인들을 진찰하고 나서 대뇌질환이라고 처음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 연구에서는 이와 달리, 추억이 존재의 근원 같은 것이 된다고 말한다.

[19] 인생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추억은 행복이 줄어들지 않도록 방패 기능을 하는 동시에 활력을 북돋우고 스트레스를 완화시킨다.

[20] 사회학 교수인 프레드 데이비스(Fred Davis)는 추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추억은 과거의 행복과 성취를 우리에게 확신시킵니다. 이것들이 여전히 보관되기 때문에, 말하자면 기억의 저장고에 보관되기 때문에, 추억은 동시에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합니다.”

 

스웨덴 아이스 호텔 이야기를 해보자. 일반 호텔에서 안락하게 하룻밤을 보내도 될 법한데, 아이스 호텔 방문객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 호텔에서 밤을 보낸다.

[21] 바로 체험적 이력 Experiential CV’(CV는 라틴어로 ‘urriculum vitae’, 즉 한사람의 일생을 의미한다)을 만들기 위해서다.

 

[22] 사람들에게 퀘벡 시의 아이스 호텔과 그보다 더 일반적인 호텔인 플로리다 메리어트 호텔 중 어느 호텔에 묵고 싶은지 물었더니, 응답자들은 대부분 플로리다 호텔이 더 편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응답자들 대부분은 아이스 호텔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신기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체험에 대해 궁금증이 폭발한 사람에게는 흔히 판에 박힌 문구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

[23] 예컨대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지는 거야라거나 견디기 힘든 일이 달콤한 추억이 된다.”는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말을 들려주는 것이다.

세네카는 핵심을 짚었다.

[24] 조금 기분 나쁜 기억도 변화무쌍한 만화경 같은 기억에 대해 더해 장밋빛으로 남는다는 근거도 있다.

[25] 한 연구진이, 캘리포니아로 3주간 자전거 여행을 떠난 한 무리의 학생들을 추적 관찰해보았다.

여행하는 동안, 학생들의 61퍼센트는 여행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자 11퍼센트만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우리 기억에서 부정적인 것들이 다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26] 부정적인 체험은 간혹 기억의 백미러에서 확대되기도 한다.

체험적 구매를 하면, 후회의 감정이 미연에 방지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치명적으로 받지 않는 것 같다.

 

[27] 트레비스 카터와 톰 길로비치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텔레비전의 크기와 화질, 가격을 비교하여 모든 부분에서 가장 뛰어난 텔레비전을 선택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입니다. 반면에 사과 타르트와 오렌지 셔벗을 두고 맛과 질감을 비교하여 하나의 디저트를 선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사과의 맛과 오렌지의 맛을 비교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

 

[28] 고가의 구매를 하든 일반적인 구매를 하든, 대개 물품을 구입하고 나면 구매자의 후회(Buyer’s remorse)를 겪기 마련이다.

이 개념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늘 염두에 두는 것이다.

한 설문에서 과거의 체험적 구매를 떠올렸던 응답자의 83퍼센트는 지금부터 20년 후에는 자신이 저지른 일보다 저지르지 않은 일에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마크 트웨인의 말에 동조했다. 또한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다면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 체험적 구매의 기회를 그냥 놓쳐버린 것이라고 응답자들은 말했다.

물질적 구매의 경우에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거의 모든 응답자들은 사지 않았으면 좋았을 물건을 산 탓에 마음이 쓰리다고 밝혔다.

 

코넬대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번 진행해보았다.

[29] 학생들에게 경품으로 고급 만년필을 주고 그것을 사용해보라고 권했다.

첫 번째 집단은 고급 만년필 주변에 깎지 않은 연필과 고무줄 한 봉지 같은 별 볼일 없는 경품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번째 집단은 고급 만년필 옆에 USB드라이브와 가죽 장정 노트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첫 번째 집단의 학생들은 고급 만년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은 반면, 두 번째 집단의 학생들은 고급 만년필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 간단한 연구는 인간의 행복 증진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벽 중 하나를 보여준다. 우리의 만족감은 더 나은 것을 보는 순간 사라진다.

 

이런 경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썬칩 과자 한 봉지를 먹는 매우 단순한 체험에서는 매력적인 대안의 유해 효과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예컨대, 한 실험에서 썬칩 한 봉지를 먹게 된 학생들은 캐드버리 초콜릿이나 클램 주스 같은 상큼한 간식을 보고도 썬팁의 아삭아삭한 맛을 즐겼다.

    

 

4. 물질적 구매를 체험으로 전환하라

 

물질적 구매와 체험적 구매는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것만큼 그 차이가 분명하지는 않다.

여러 구매의 혼합은 모호한 중간 어딘가에 속한다. 이 책은 물질적인 것일까? 체험적인 것일까? 책장을 장식하거나 동료들에게 과시하려고 이 책을 샀다면, 이 책은 물질적인 부분에 더 가까이 놓여있다. 반대로 이 책을 다 읽은 후 친구에게 넘겨준다면, 혹은 불구덩이에 던져버린다면, 이는 체험적 구매에 해당한다.

[30] 이 책을 체험적 구매로서 구매하더라도 후회할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생각의 초점을 전환하면 된다. 음반을 보관할지가 아닌, 그 노래를 들으며 음악과 하나가 되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본다.

[31] 한 연구에서는 후자의 방식을 따를 때 음반 구매를 체험적 구매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와 같은 정신적 유연성(mental flexibility)은 무엇을 구매하든지 만족감을 높이는 출발점이 된다.

 

딸기를 떠올려보자. 유통기한을 고려한다면, 딸기는 분명히 물질적 상품이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셰프로 명성이 자자한 페란 아드리아의 손에서 딸기는 체험으로 바뀐다.

[32] 아드리아는 식사를 식사를 대체하는 체험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아드리아의 식상 엘불리에서의 체험은 음식 그 자체를 넘어선다.

[33] 클로틸드 뒤술리에라는 한 프랑스 여성은 그녀의 음식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 갈망을 기억해요. 바짝 다가온 배고픔의 고통도요. 매 시즌 수용 인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제 꿈은 요원하게 보였어요. ”

 

엘불리에 가는 길도 체험이었다. 바로셀로나를 출발해 2시간가량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 없는 도로를 지나 산을 오르는 일도 체험이었다.

엘불리 식사하는 꿈을 이룬 뒤 클로틸드 뒤술리에는 그날의 체험을 회상하며 블로그에 재기발랄한 글을 올렸다.

[32] “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여섯 시간이나 걸렸어요. 저녁 여덟시에 시작해서 새벽 두 시에 끝이 났답니다. 그래도 너무 기쁜 나머지 자리에 앉은 이후로 2분이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요. 엘불리에서의 식사는 일종의 체험이 분명했어요. 음식에 열정을 품으신 분, 폭넓은 미각을 가지신 분, 새로운 맛을 찾아 낼 때마다 흥분되시는 분, 그리고 약간 아찔해도 광적인 과학자가 조종하는, 날아다니는 양탄자에 휙 낚이는 기분을 즐기는 분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

 

물질적 구매보다 체험적 구매가 더 큰 만족이 되는 이유를 왜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가장 만족스러운 체험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한 것을 종합하면, 다양한 체험을 해나가면 다음과 같이 노력 대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사회적 결속감이 강화된다.

몇 년이고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체험을 통해 자존감이나 목적의식이 고양된다.

다른 조건의 선택과 단순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기회를 가진다.

 

그만큼 흥미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20만 달러는 6분이면 끝날 우주여행에 투자하기에 엄청나게 비싼 금액이다.

[35]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점은 체험의 기간이, 체험에서 얻는 기억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까? ‘아주 강렬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뉴질랜드에서 피서객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36] 피서객들은 휴가 기간 동안 매일 문자 메시지를 통해 휴가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했다.

또한 휴가를 마치고 1주일에서 2주일이 지난 후 휴가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이야기했다. 이어서 연구진은 만족도를 종합 분석해보았다.

그런데 휴가 기간은 휴가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과 별다른 관련성이 없었다. 문자 메시지를 보면 일상생활을 할 때보다 휴가를 보낼 때 더 큰 행복을 느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피서객들은 여행을 마친 후 실제 느꼈던 것보다 더 좋은 느낌으로 여행을 기억했다. 또한 가장 불편했던 일 때문에 휴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떨어뜨리진 않았다. 체험의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앞서 소개한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체험이라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5. 물질의 유혹을 물리쳐라

 

구글은 우수 사원들에게 백만 달러대 포상금을 지급하곤 했다.

[37] 그런데 최근 구글의 인력운영 담당 부사장 라즐로 복(Laszlo Bock)은 그런 제도에서 탈피했다고 밝혔다.

구글이 조사한 바로는 금전적인 포상금이 주식 기반 포상제도로 인해 조직의 분열이 초래될 수 있었다.

 

흔하디흔한 물질적인 것 대신 체험을 제공하여 고객과 직원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과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은 물질주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웨딩 레지스트리(wedding registry 축의금 대신 신혼부부가 원하는 혼수용품을 선물하는 풍습) 풍습과도 통하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travel’s joy)이라는 한 웨딩 레지스트리 업체는 예비부부들의 정형화된 혼수품목에서 탈피하고 있다. 예비부부들은 흔히 가지각색의 물품을 구입하는데, 그 중의 태반은 창고에서 썩기 일쑤이다. 마이클은 신혼여행 가는 친구에게 이 회사를 통해 투우대회 입장권을 사서 선물했다. 아마 그 친구는 스페인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상품의 혜택보다 체험의 혜택을 더 관념적으로 느낀다. 때문에 흔히 시간에 의한 심리적 거리를 느끼며 체험적 구매의 가치를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드넓은 대양과 전체 숲을 바라보면서도 강의 지류나 나무는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38] 때문에 가까운 장래보다 먼 장래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래서 임박한 체험에 직면했을 때는 구체적인 부분에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한 연구 결과도 체험적 구매에 대한 만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높아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물질적 구매에 대한 만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진다고 한다.

[39] 한 응답자는 이렇게 말했다. “ 물질적 소유,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 배경의 일부가 됩니다. 체험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것이 됩니다. ”

[40] 마찬가지로 당장 내일 구매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1년에 한 번 구매한다는 생각을 할 때, 체험적 구매가 더 흥미롭게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살다 보면 순간 흥분을 참지 못하고 충동구매를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처키치즈(Chuck E. Cheese 체인점 형식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아이의 생일 파티를 여는 부모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실내 놀이터를 찾은 아이들은 토큰을 한 움큼 받아서 아주 소규모의 경제활동을 한다. 아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파리 시내를 달리거나 총을 들고 외계인과 싸우는 등 다양한 체험을 매한다. 이런 게임은 금세 끝이 난다.

그렇지 않으면 운수에 맡기는 찬스게임에 토큰을 집어넣기도 하는데, 보통은 보조바퀴가 달린 슬롯머신으로 게임을 즐긴다.

외계인과 총격전을 벌이는 스릴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총 쏘는 게임과는 다른 묘한 중독성이 있다. 바로 티켓 때문이다. 게임기에 토큰을 하나 집어넣고 잠시 기다리면 티켓이 주르륵 나오는데, 그걸로 지우개부터 동물 모양의 고무인형까지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살 수 있다.

 

이를 두고 여덟 살, 열세 살짜리 아이를 둔 스티브 스토로에스너(Steve Stroessner)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티켓은 마약 같은 것이에요.”

물질적인 것에서 즉각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에 의한 기쁨은 서서히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체험적인 것에 의한 기쁨은 그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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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을 구매하기위해 기억할 것!

우리는 흔히 새로운 것에 익숙해진다.

우리의 만족감은 더 나은 것을 보는 순간 사라진다. 이는 인간의 행복 증진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벽 중 하나다.

물질적인 것에 의한 기쁨은 서서히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체험에 의한 기쁨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여가활동에 지출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삶에 대해 상당히 높은 만족감을 표현했다.

 

굿라이프_Epilogue_굿 라이프 10계명

Epilogue_굿 라이프 10계명

 

좋은 삶은 좋은 것이 많은 삶이다. 좋은 삶에 대한 정의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 추가 작접이 진행되어야 한다. 하나는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하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의 기준을 정하는 작업이다.

좋은 것의 리스트를 정하는 작업은 비교적 간단하다. 좋은 것의 기준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행복과 웰빙에 관한 그동안의 연구들을 참고하면 어렵지 않게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좋은 것의 많고 적은 기준을 정하는 방법도 얼핏 보면 간단해보인다. 세어보면 된다. 그러나 매번 세면서 살아가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삶의 모든 순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가지 대안은 좋은 것의 많고 적음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신호 혹은 증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 또한 그동안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굿 라이프의 3+7 시스템

 

3가지 신호

좋은 것의 많고 적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후보들은 좋은 기분, 삶에 대한 만족, 그리고 의미다.

1. 좋은 기분(Good feeling)

2. 좋은 평가(Good evaluation)

3. 좋은 의미(Good meaning)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의 세상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 전체를 평가하는 존재다. 경험 하는 매 순간에 자신의 삶에 좋은 것이 많으면 그것은 좋은 기분이라는 신호로 나타난다. 자신의 삶 전체를 평가할 때 좋은 것이 많다고 느껴지면 그것은 만족의미라는 신호로 나타난다. 굿 라이프란 이 세 가지가 양호한 상태다.

 

7가지 좋은 것들

우리 삶에도 좋은 것들이 있다. 기존의 연구들을 분석해보면 크게 일곱 가지의 좋은 것을 추출할 수 있다. 이 일곱 가지의 선정 기준은 위에 소개한 세 가지 신호와의 연결성이다.

이 일곱 가지는 우리에게 좋은 기분, 삶에 대한 만족, 그리고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1. 좋은 사람(Good people)

2. 좋은 돈(Good money)

3. 좋은 일(Good work)

4. 좋은 시간(Good time)

5. 좋은 건강(Good health)

6. 좋은 자기(Good self)

7. 좋은 프레임(Good Frame)

 

삶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명확하고, 동시에 그 기준이 건강하면 살아가는 데 거침이 없다. 그 기준 외의 것들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흔들리는 이유는 자기기준이 없어서다. <굿 라이프>는 단 하나의 옳은 기준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다. 독자 스스로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보시기를 권한다. 

굿라이프_3장

Part 03_품격 있는 삶

    

 

아리스토텔레스틑 <니코마코스 윤리학(Nichomachean Ethics)>에서 행복에 이르는 최고의 수단으로 덕스러움을 제안했다. ()과 행복에 관한 철학적 주장들은 현대 심리학의 실증적인 연구들을 통해서 사실임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특히 중요한 덕목인 이타성친사회성에 관한 연구들은, 덕이 행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행복을 유발하는 인과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1] 한 예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행복 효과가 크다는 점을 밝혀낸 연구도 있다.

타인에게 도움주기, 자원봉사, 기부는 개인 행복 뿐 아니라 국가 수준의 행복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세 가지를 합쳐 나눔 지표(Giving index)를 만들어 각 국 행복 지수와의 관계를 분석하면, 정적(+) 상관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나누고 베푸는 문화가 일상이 된 나라에서 사는 국민들의 행복감이 높다.

그러나 덕스러운 삶을 굿 라이프의 중요 요소로 포함시키려는 노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덕스러운 삶의 가치를 부정하기보다는 덕스러운 삶이 좋은 삶의 필수 조건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문제 제기다. 다시 말해 덕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는 염려가 섞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스러운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행복의 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을까?

이 점에 대한 철학자 로절린드 허스트하우스(Rosalind Hursthouse)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다.

[2] 그는 덕스러운 삶이 좋은 삶을 위한 유일한 수단(the only reliable bet)’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최근 심리학 연구들은 다양한 형태의 덕이 행복과 관련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덕스러운 삶이 좋은 삶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없더라도 좋은 삶을 위해 덕스러운 삶을 살라고 추천할 수는 있다.

노골적이지 않게 덕스러운 삶을 추천하고자 하는 입장은 자유주의적 개입(libertatian paternalism)’과 유사하다. 이는 행위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행위자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굿 라이프>의 입장도 이와 같다. 덕이 있는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덕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에 유리하다고 제안하는 정도의 입장이다.

인간의 최고 덕목 중 하나가 타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보면, 덕스러운 삶을 굿 라이프의 핵심 요소로 끌어안아야 하는 점이 더 분명해진다.

3부에서 덕스러운 삶이라는 표현 대신 품격 있는 삶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여전히 이라는 표현에 도덕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굿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숙제를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오히려 힘든 삶을 제안하게 될 수도 있다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이타성이나 친사회성과 행복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덕목들과 행복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 부족한 편이다. 많은 덕목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심리학이 인간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는 사실들이 인간의 품격이라는 표현으로 더 잘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3부에서는 윤리와 도덕의 관점에서 덕스러운 삶이 아니라 생각과 태도의 관점에서 품격 있는 삶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1.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3] 부자들은 남들도 부자인 줄 안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남들도 체력이 좋은 줄 안다.

심리학이 발견한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중심성이다. 인간은 자신이 세상의 보편적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하며 이 세상은 나를 포함한 상식적인 다수와 비상식적인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정상과 상식적 인간에 대한 욕망은 관계 편중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자기들끼리 그룹 과외를 한다.

우리의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의식이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바뀌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관계 편중성은 지리적 편중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이유는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때문이고,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유는 그들과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란 관계의 편중성이 가져오는 의식의 편중성을 의식하고,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에 있다.

현대 경영의 구루(guru)이자 사상적 리더인 오마에 겐이치(Omae Kenichi) 역시 인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으로 공간을 바꿀 것, 만나는 사람을 바꿀 것, 그리고 시간을 바꿀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지리적 공간을 바꾸는 일이 자신이 접하는 사람을 바꾸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사를 하기 좋은 시기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싶을 때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곁에서 사는 삶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2. 여행의 가치를 아는 삶

 

어떤 여행은 인생을 바꾼다.

1850년부터 1945년 사이에 태어난 피카소, 클레, 칸딘스키, 워홀, 고흐 등 이름만 들어도 소름 돋는 모던 아트의 슈퍼스타 214명의 생애와 그들의 작품 경매가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화가의 것이라 할지라도 여행 중에 그린 작품은 일상 시기에 그린 작품보다 경매가가 평균 7퍼센트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4] 매해 기록을 경신하는 그들 작품의 경매가를 감안하면 7퍼센트는 어마어마한 액수 차이다.

새롭고 낯선 환경을 의도적으로 접하려는 노력의 대가가 작가 등 한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 시계에 대한 개방성이 문화 발달에 끼치는 영향은 가까이에 있는 일본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5] 580년에서 1939년 사이에 일본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지, 외국인 스승을 둔 적이 있는지, 외국 여행을 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같은 시기에 일본을 방문한 유명한 외국인이 있는지 등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특정 시기의 일본 사회의 문화 개방성이 그 시기의 일본의 성취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한발 더 나아가 그 효과가 세대를 걸쳐서 나타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현 세대의 문화 개방성이 후속 세대의 성취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국 중심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개방성(openness). 심리학에서는 이를 한 개인의 정신적 경험적 삶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독창성과 복잡성이라고 정의한다. 의식의 개방성과 경험의 개방성, 인간의 품격을 판단하는 데 이만한 잣대도 없다. 애초에 개방적인 사람이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더 시도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연구 결과들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거꾸로 우리 안의 개방성과 창의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명확히 보여준다. 이주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본토 과학자들의 연구보다 더 독창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행과 이주를 보는 우리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여행은 단순한 레저가 아니며, 이주는 생계를 위한 고육지책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개인에게는 확장된 자아, 개방적 자아를 심어주는 일이고, 사회에게는 미래를 위한 장기 투자다. 무엇보다 삶의 품격을 세우는 일이다.

[6] ‘이주하는 자의 이점(The mover’s advantage)’이라는 한 논문의 제목처럼 이동하는 자, 여행하는 자에게는 열린 의식이라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3. 인생의 맞바람과 뒷바람을 모두 아는 삶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갈 때와 올 때의 비행시간은 약 두 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사람들이 제트기류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시절에는 동일한 거리에서 발생하는 비행시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맞바람 때문에 늘어나는 비행시간을 고려하지 못한 채 충분한 연료를 싣지 않고 비행에 나서는 아찔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안전한 비행기 운행을 위해서는 뒷바람과 맞바람의 힘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뒷바람으로 인한 시간 단축보다는 맞바람으로 인한 시간 지연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동일한 원리가 인생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뒷바람의 힘에는 둔감하면서 우리의 삶을 더 어렵고 거칠게 만드는 맞바람의 힘에는 예민하다. 우리는 감사할 대상보다는 원망할 대상을 찾는데 더 능하다.

[7] 또한 우리는 자신에게 불어오는 맞바람이 타인에게 불어오는 맞바람보다 더 거세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상황이 타인의 상황보다 불리하다고 믿는다.

보수는 보수라서 불리하고 진보는 진보라서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가진 자는 가진 자라서 불리하고 가난한 자는 가난해서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불고 있는 뒷바람은 무시한 채 앞에 있는 맞바람만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불고 있는 맞바람만을 탓하기보다 뒷바람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이런 품격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우리의 삶은 뒷바람을 타고 순항하는 항해와 같을 것이다.

 

 

4. 냉소적이지 않은 삶

 

冷笑(냉소). 그 차가운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 좋은 의도로 한 일에 냉소적 반응으로 돌아오면, 그 당사자도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을 갖게 되기 쉽다. 냉소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전 재산의 99퍼센트를 평생에 걸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들에게 돌아온 건 존경만이 아니었다. 냉소적인 태도가 쏟아졌다.

왜 인간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의 의도와 동기를 의심하고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냉소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일까? 냉소는 필요악일까?

만일을 대비한 의식과 준비는 자신에게 닥칠 손실과 상처를 예방해줄 수 있다. 이런 잠재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냉소, 특히 냉소적 불신은 혜택을 안겨주기보다는 심각한 역풍을 불러온다. 그리고 이 역풍은 주변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냉소적 불신이란 선한 행동 이면에 이기적 욕심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칭한다.

 

우선 냉소적 불신이 가득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늘 기분이 좋지 않다. 한마디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냉소주의자의 특허인 적대적 태도, 공격성, 분노는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8]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냉소적 불신은 치매 가능성까지 높인다.

냉소의 역풍은 인간관계에도 불어 닥친다. 냉소적인 사람들에게는 협동의 기회가 잘 찾아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에서 그들은 커다란 손해를 입게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냉소적인 사람들은 이 같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경제적 수입에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9]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교류 관계에서 서로 간에 제공하는 기회가 그들에게는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냉소적인 사람들은 일을 잘하지 않을까? 연구 결과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강한 경쟁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탁월성 자체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만일 이들이 리더라면 어떨까? 구성원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감시와 평가에 집착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유무형의 장치를 만드는 데 골몰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들의 비즈니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냉소적 불신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결함들이 있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냉소적 불신은 의식의 미세먼지 같은 것이다. 늘 뿌옇게 세상을 보고 있으니 좋을 게 없다.

품격 있는 사람은 비판적 사고와 냉소적 불신의 미묘한 차이를 아는 사람이다. 비판적 사고라는 이름으로 냉소 어린 독기를 뿜어내지 않는 사람이다. 건설적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기를 꺾는 사람이 아니다. 굿 라이프란 이런 격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삶이다.

 

 

5. 질투하지 않는 삶

 

네이마르는 결국 FC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그가 택한 것은 돈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질투에서 벗어나는 행복이었다.

스타플레이어는 팀 내에서 축복이자 위협이다. 팀 전체의 성과와 인지도를 올려서 그 혜택이 모든 팀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축복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그에게만 집중되는 관심, 그에게 우선적으로 부여되는 기회는 다른 팀원들에게 질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스타를 향한 개인들의 질투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질투가 개인을 넘어 집단에서 조직적으로 경험될 때 생긴다. 질투가 집단적 현상이 되어, 화합과 협동이라는 대의명분을 등에 업고 탁월한 소수를 은밀하게 그러나 조직적으로 괴롭힐 때, 질투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넘어 소수를 향한 다수의 갑질이 되기 쉽고 종국에는 모두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집단행동에 관한 많은 연구는 탁월한 성취를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정작 동료들에게는 차가운 평가는 받는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밝혀왔다. 이들의 이직률이 높은 이유는 높은 수요와 성취욕도 있지만, 이들이 조직 내에서 경험하는 은밀한, 때로는 노골적인 질투와 냉대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협동과 화합, 균등과 단합을 중시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 장점이 양날의 칼이 되어 평균을 깨는 소수의 탁월한 개인과 집단을 은밀한 방법으로 괴롭혀서, 결국은 모두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위험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10] 과학 저널 <사이언스>반사회적 처벌(antisocial punishment)’이라는 현상을 소개하는 논문이 실린 적이 있다.

반사회적 처벌이란 공동체를 위해서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을 오히려 벌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왜 벌주려하는 걸까?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집단의 평균을 깨트리고 남들 모두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적당히 하면 되는데 튀는 바람에 우리가 바보가 되었다는 심리가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벌주는 행동을 유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반사회적 처벌의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반사회적 처벌은 은밀하게 일어난다.

중요 직책에 임명된 사람들에 대한 과거 동료들의 칭찬이 인색한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런 풍토가 조직 전체의 특징이라면, 더 나아가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탁월한 조직이란 집단의 단합이라는 대의명분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조직이다. 집단적 질투가 집단의 화합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 않은지 우리를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품격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채용한다. 품격 없는 조직은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갈수록 못한 사람들만 채용해서 결과적으로 퇴보의 길을 걷는다. 품격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뛰어난 후배를 자랑스러워하며 그를 스타로 성장시키기 위해 진심으로 돕는다.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진실로 축복받은 삶이다.

 

 

6.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어느 분야에서나 1만 시간 이상 노력하면 대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the 10,000 hours rule)’이 학계에서 반박되고 있다.

[11] 그중에서도 2014년에 발표된 논문 하나가 언론을 통하여 소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국내 한 신문이 결론을 심각하게 왜곡 보도하는 바람에 논문 저자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결국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자조적인 반응이 생겨났다.

이 논문의 정확한 결론은 훈련이 중요하지만, 이전에 주장되던 것만큼은 중요하지 않다이다. 누구라도 재능과 상관없이 노력만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주장이 과장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지, 결코 노력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다.

둘째, 이 논문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여러 영역에서의 재능과 노력의 상대적 영향력을 숫자로 표시했다. 예를 들면 음악에서는 노력의 영향력이 21퍼센트, 선천적 재능의 영향력이 79퍼센트라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보도했다. 그러나 원 논문 어디에도 이러한 주장은 없다. 이 연구는 노력, 정확히는 훈련 시간의 차이가 성취의 차이를 설명하는 변량(variance)이 음악에서는 21퍼센트라고 말하고 있을 뿐, 나머지 79퍼센트의 변량이 모두 선천적 재능으로 설명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연구 방법론상 결코 그런 주장을 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국내 신문사는 선천적 재능으로 뒤바꾼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당연히 재능일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셋째, 재능과 노력의 구분은 그리 간단치 않다. 둘은 역동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노력이 정확히 몇 퍼센트, 재능이 몇 퍼센트라고 칼로 무 자르듯 결론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1만 시간의 법칙을 둘러싼 논쟁은 최고 수준의 전문성에 관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노력만으로 최고 수준의 전문성이 획득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노력의 양과 성취의 정도가 비례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大學(대학)>에 나오는 心城求之, 雖不中不遠矣(심성구지, 수부중불원의)라는 마음가짐이 최선이다.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비록 적중하지는 못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7.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삶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나면 모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런 생각의 오류를 심리학에서는 사후 과잉 확신 편향이라고 부른다.

[12] 어떤 일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선경지명의 능력은 없어도, 일단 결과를 알고 나서 뒤에서 보면 마치 처음부터 그 일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후면지명의 심리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런 후견지명의 착각은 때로 득이 되고 때론 독이 된다. 후견지명의 착각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비극에서 오는 슬픔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즉 어떤 비극이든지 쉽게 설명해줌으로써 고통의 크기를 줄여주는 기능을 한다.

후견지명의 착각은 인간 삶에 필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심각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충분하고 체계적인 분석 없이 너무 빨리 진단과 대책을 마련하는 위험성과, 이러한 착각은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착각을 강화시켜서 우리를 오만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폄하할 가능성이 높다. 후견지명의 착각은 우리에게서 思考(사고)의 집요함을 빼앗아간다.

후견지명의 또 다른 위험성은 놀람의 실종이다. 놀람이라는 감정은 지적 호기심의 가장 강력한 원천이다. 그런데 후견지명은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결코 호기심을 갖지 않게 된다.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고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그 자신이 지적 호기심의 결핍이라는 피해를 입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죄를 범한다.

 

품격 있는 삶이란, 후견지명이라는 달콤한 지적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남들을 비난하며 우쭐해한다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나요?’라는 냉소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품격 있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서 솔직하게 놀라는 사람이다. 모두가 빠른 진단과 대책을 앞 다투어 내세울 때, 몇 년이고 그 문제를 집요하게 그리고 골똘히 생각해서, 그 문제로부터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사람이다.

 

 

8. 假定(가정)이 아름다운 삶

 

인간의 의식이란 가정들의 집합체다. 인간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이루려는 경제 원리를 따른다. 가정은 주어진 정보를 넘어서게 하는(beyond information given)’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의식의 작용을 하향식 처리(top-down process)라고 한다.

인간은 각자 보유한 가정들에 의해 구분된다. 인격이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격 수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을 점검하여 나쁜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근거가 없는 가정을 정확한 가정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구하는 피아니스트 임현정에게 한 기자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물었다.

[13] 그에 대해 임현정은 사교 활동을 일체 안하고 음악에 집중하면 가능하죠. 음악과 나 사이를 보호해야 해요라고 응답했다.

세상을 음악과 자신 사이를 방해하는 곳으로 가정하고 있는 이 피아니스트에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요?”라는 기자의 질문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었다.

저서 <마지막 강의(the rast lecture)>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도전과 영감을 주고 세상을 떠난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의 랜디 포시(Randy Paush) 교수는, 실패란 내가 그 일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테스트해보는 것이라는 가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 가정 때문에 그는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경험하는 우월감이 행복의 원천일 것이라고 가정했던 한 연구자가 있었다. 그는 미국 최고 명문대 학생들 중에서도 아주 행복한 학생들에게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느낀 경험을 들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비교요? 잘 안하는데요였다. 정작 행복한 사람들은 비교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자의 가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가정들의 차이다. 누구나 하는 평범한 가정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이 품격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품격 있는 가정이 우리를 반드시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그런 가정을 품고 사는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해질 것이다.

 

 

9.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다는 자각을 갖게 된다. 이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인식이다.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추상적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또렷한 감각으로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는 자각이다. 비로소 우리를 철들게 만드는 깨달음이고, 내 피부 경계 안쪽의 좁은 세계에만 머물러 있던 인식을 자연과 우주와 인류 보편과 신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인식의 결정적 전환이 되기도 한다.

 

[14] 이런 인식의 시프트와 함께 우리의 심리 상태 또한 근본적인 시프트를 경험하게 된다.

우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게 만든다.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과감히 포기한다. 굳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 만나면 기분 나쁜 사람들, 꼭 나갈 필요가 없는 모임들에 대한 의무감이 사라진다. 무릇 미움 받을 용기란 나이 들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법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은 감정의 시프트도 만들어낸다. 즐거워도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니고, 즐거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의 의식이 나이에 따라 적절하게 시프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산 사람들의 감정은 철학적이다.

나이가 들면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고 믿게 되며, 지금의 나는 무한히 얽히고설킨 사건과 인연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실패에서도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비로소 인생이 하나의 스토리임을 깨닫게 된다. 젊은 날, 깨닫기 어려웠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원리가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깨달아진다.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큰 위로와 지혜를 얻는다. 미움 받을 용기가 가득한 그들에서 경외감을 느낀다. 죽음을 의식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삶의 품격이다.

 

 

10.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좋은 글과 좋은 삶에는 공통점이 많다.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기 위해서 단 한 줄의 글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좋은 삶도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서른셋을 살고 간 청년 예수의 짧은 삶이 좋은 예다.

길이와 형식에 상관없다면, 어떤 글을 좋은 글로, 어떤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하나는 생명력이다. 생명력 있는 글이 좋은 글이고, 생명력 있는 삶이 좋은 삶이다. 생명력 있는 글이란 불필요한 副詞(부사)가 많이 쓰이지 않은 글이다.

[15]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라면서 불필요한 부사의 남발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좋은 삶도 그렇다. 불필요한 부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는 인생은 생명력이 없다.

 

좋은 글과 좋은 삶의 두 번째 특징은 톤(tone)이다. 지나치게 강한 어조의 글은 독자들의 자유를 침해한다. 독자들의 상상력도 제한한다. 학자들의 글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을 투고했을 때, 단번에 심사를 통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연구 방법론의 한계나 분석의 오류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글 자체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심사자들이 단골로 지적하는 것이 문장의 톤이다. 글의 어조를 낮추어달라고 늘 요청한다. 증거는 최대한 치밀하고 확실하게 갖추되, 주장은 유연해야 좋은 논문이다.

좋은 삶도 그렇다. 아무리 자기 확신이 강하더라도 지나치게 단정적인 어조로 삶을 살아가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자유의 침해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인 경우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의식의 편협함을 드러낼 뿐이다.

유연한 삶이 곧 타협하는 삶은 아니다. 삶의 복잡성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고,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쿨한 인정이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이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확신으로 타인을 몰아붙이는 것은 타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궁극적으로 상대의 행복을 위협하는 행위다.

 

[16] 이문재의 시 <농담>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우리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자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시인의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농담의 뜻은 가벼운 농담이라고 이해하면 삶의 어조를 낮추고 지나치게 심각하게 살지 않는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라고 톤을 낮추는 듯하다.

물질과 권력과 이미지를 향한 욕망이 득실거리는 이 물질주의 시대에,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면 루저가 되고 말 것이라는 불안이 팽배한 이 자기표현의 시대에, 인생의 부사를 줄이고 삶의 어조를 낮추는 자세로 살았으면 좋겠다.

    

 

—Part 03을 나가며

인생에는 우리 자신의 행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많다. 그 중 으뜸은 타인의 행복이다.

타인의 행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품격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비록 자기 성찰의 노력이 우리를 곧바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삶에 품격은 더해줄 것이다. 

굿라이프_2장_Chapter 6

Part 02_의미 있는 삶 

Chapter 06_소명과 성취

 

 

1. 소명이 있는 삶

 

과연 자신이 하는 일을 단순한 돈벌이나 커리어의 일부가 아니라 소명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을까? 그들은 자기 일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인지 부조화를 소명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아닐까?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

[1] 이런 냉소적 시각들을 잠재운 연구의 시작이 미국 미시간 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이루어졌다.

이 연구는 대학교 교직원들에게 세 가지 유형의 인간형을 제시하고 각 유형의 사람과 자신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아주 많이’, ‘어느 정도’, ‘아주 조금’, ‘전혀의 척도에서 보고하도록 했다. 그녀가 제시한 세 유형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유형: 자신의 일을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유형>

일하는 주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터에서의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고, 주말과 휴가를 고대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자식들에게는 결코 같은 일을 권하지 않는다.

 

유형: 자신의 일을 커리어의 과정이라고 보는 유형>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싫지는 않지만 5년 후에도 같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더 높은 지위로 승진하기 위해 지금의 일을 참고 한다.

승진이 주된 목표다.

지금 하는 일이 때로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지만,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 참는다.

 

유형: 자신의 일을 소명이라고 보는 유형>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기 삶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한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면도 없지 않으나, 지금의 일이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믿는다.

자식들에게도 이 일을 권장한다.

 

이 연구가 발견한 사실은 놀라웠다. 우선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자신의 유형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리고 골고루 분포했다. 이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 C유형의 사람들이 극소수가 아님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발견은 자신을 C유형과 유사하다고 답할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뿐 아니라 회사에 결근하는 날이 적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일이 소명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행복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성실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는 월급, 교육 수준에 따른 차이는 아니었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또 하나의 좋은 삶의 요소를 추출할 수 있다. 굿 라이프란 좋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다. 좋은 일이란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자신의 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는 삶, 즉 소명이 이끄는 삶이 굿 라이프다.

    

 

2. 성취를 중시하는 삶

 

행복, 행복한 삶, 그리고 굿 라이프는 성취와 갈등적 관계에 있는 것일까? 물질주의적 가치를 위한 성취는 행복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성취를 위한 지나친 경쟁도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취와 성공은 굿 라이프, 특히 의미 있는 삶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의미 있는 삶은 의미 있는 성취를 필요로 한다. 두 가지 관점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앞에서 행복에 가장 중요한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로 유능감 욕구를 소개한 바 있다. 유능감 욕구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 있는 결과들을 만들어낼 때 충족된다. 의미 있는 성취에는 매우 사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이 포함된다.

둘째, 의미 경험이 굿 라이프와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1부에 소개한 PANAS를 살펴봐도 분명해진다. PANAS에는 자랑스러운(proud)’라는 긍정 정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자만심과 구분되는 감정으로서 의미 있는 성취를 전제로 한다.

PANAS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고요함(serenity)’이라는 감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요함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새벽 숲속에서 경험하는 고요함도 있지만, 중요한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에 찾아오는 고요함도 있다. 이런 유의 고요함은 의미 있는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경험된다.

의미 있는 성취의 끝에 찾아오는 자부심과 고요함, 그리고 그로 인해 충족되는 유능감은 행복에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행복과 성취는 양립 가능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유발하기도 한다.

[2] 긍정 정서의 혜택에 관한 바버라 프레드릭슨의 확장 구축 이론(broaden-and-build theory)’은 행복이 성취에 미치는 효과들을 잘 보여준다.

확장 구축 이론이란 긍정 정서 상태가 인간의 삶에 가져오는 혜택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긍정 정서는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확장시켜주고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자원인 건강, 관계, 수명, 창의성 등을 구축해준다고 주장한다.

 

 

3. 목표가 있는 삶

 

소명과 성취는 목표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명, 성취, 목표라는 단어가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마르지 않는 행복의 원천이라고 칭송받던 목표가 워라밸을 위협하는 흉물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게 된 데는 목표에 대한 우리의 오해가 큰 역할을 했다.

과도한 목표 지상주의는 행복의 장애물이다. 그러나 목표 지상주의에 대한 경계가 목표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 전체를 태우는 것과 같다.

어쩌다 우리는 아무런 목표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목표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목표의 크기가 아니라 목표의 개인적 의미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일지라도 개인에게 의미가 없다면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적 목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개인적 목표보다는 집단적 목표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아를 위해 소아를 희생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목표란 늘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 목표는 비록 우리의 연봉을 올리거나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우리 삶에 규칙과 질서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제공해준다.

목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다. 남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발견해야 한다. 무엇보다 목표의 일상성을 회복해야한다.

 

 

4. 자기를 절제하는 삶

 

어떤 특성을 알면 그 사람이 이루어낼 성취의 정도를 정확하게 미리 예측할 수 있을까? 어떤 특성을 갖춘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평생 신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인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관상을 보거나 손금을 보거나 별자리를 보아왔다. 성취를 예측해주는 요인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전환점을 맞이한 계기는 IQ 검사의 개발이었다.

그러나 IQ가 높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연구를 통해 분명해졌다. 이후 다양한 개념이 IQ의 대안 혹은 보완재로 등장했는데, EQ가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력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통제(self-control)라는 개념이다. 최근에 등장한 그릿(Grit)이라는 용어도 자기통제와 유사한 개념이다.

[3] 심리학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는 그의 저서 <의지력의 재발견(Willpower)>에서 지능과 자기통제야말로 인간 성취의 양대근원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엄격한 자기통제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인간적인 모습은 전혀 없이 기계처럼 일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4] 더 나아가 <정서적 성공(Emotional Success)>을 저술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데스테노(Daivd Desteno)감사’, ‘공감’, ‘자부심과 같은 긍정 정서가 성취의 진정한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5] 이 뿐 아니라 긍정 정서의 효과에 관한 연구들을 총 정리한 기념비적인 논문 <긍정 정서의 혜택: 행복은 성공으로 이어지는가?(The Benefits of Frequent Positive Affect: Does Happiness Lead to Success?)>에서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 에드 디너(Ed Diener), 그리고 로라 킹(Laura King)은 긍정 정서를 자주 경험하는 사람들이 건강, 학업, 인간관계, 직장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룬다는 점을 밝혀냈다.

긍정 정서가 성취의 부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를 가져오는 선행 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일련의 연구는 우리의 성공 방정식에 긍정 정서라는 또 하나의 변수를 추가하게 만들었다. 즉 누군가의 성취를 예측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지능(intelligence), 자기통제(self-control), 그리고 긍정 정서(positivity) 이 세 가지의 점수를 측정하면 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저자는 첫 알파벳을 따서 사이PSI’라고 부른다)

 

성취 방정식>

지능 X 자기통제 X 긍정 정서 = 성취

 

성취 방정식에 이 세 개의 유력 변수들이 포함되자 그중에 무엇의 힘이 더 센지를 밝히고자 하는 열망 또한 강해졌다. 그러나 이 대결이 큰 흥미를 끌지 못했던 이유는, 자기통제는 훈련과 상황적 개입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강하지만, 지능은 애초부터 개선의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요구되는 대결은 자기통제와 긍정성의 대결이다. 두 가지 모두 지능보다는 개선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둘 사이의 대결이 주는 실천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긍정성이 성취의 유력한 원인이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 비교적 최근일이기 때문에 긍정성과 자기통제를 대결시키는 연구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6] 우리 연구팀은 이 점에 주목하고 긍정 정서와 자기통제를 비교하는 일련의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긍정 정서와 자기통제 간의 총 다섯 번의 대결 기회를 마련했다. 모든 대결에서 참가자들의 자기통제 점수와 긍정 정서 점수를 측정했다. 자기통제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나는 유혹을 잘 이겨낸다’, ‘나쁜 습관을 버리기가 어렵다(역문항)’, ‘나는 정리정돈을 잘한다와 같은 36개 문항들로 구성된 척도를 사용했다. 긍정 정서 수준은 PANAS를 사용했다.

첫 번째 연구는 100명의 서울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학점(학업 성취)과 친한 친구 수(인간관계 성취)를 측정하여 긍정 정서와 자기통제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일단 긍정 정서와 자기통제 둘 다 학업과 친구 관계에 중요했다. 그럼에도 학업에서는 긍정 정서의 힘보다는 자기통제의 힘이 더 강했고, 친한 친구의 수에서는 자기통제보다는 긍정 정서의 힘이 더 강했다. 각자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성취 영역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학업: 긍정 정서 < 자기통제

친구 관계: 긍정 정서 > 자기통제

 

이 결과가 특정 집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반복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동일했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는 성취를 보기위해 연봉과 번 아웃 정도를 측정했다. 인간관계는 친한 친구 수와 함께 관계 만족도를 측정했다. 이 연구 결과 역시 놀라울 정도로 동일했다.

연구의 일반화를 위해 미국 성인들을 대상으로도 같은 연구를 진행했으나 결과는 동일했다.

직장인의 연봉과 번아웃 정도: 긍정 정서 < 자기통제

직장인의 친구 수와 관계 만족도: 긍정 정서 > 자기통제

이 결과들은 긍정 정서와 자기통제가 각기 우위를 점하는 삶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하다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연구들은 상관관계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 정말로 자기통제가 학업적 성취를 가져오는 원인이고, 긍정 정서가 친한 친구의 수를 늘리는 원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종단 연구를 사용해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대학 신입생들을 6개월 간격으로 반복조사했다. 분석 결과, 우리는 상관 연구들에서 도출한 결과와 일치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학기 초에 측정한 자기 통제와 긍정정서가, 6개월 후에 측정한 학업 성취와 인간관계 성취 정도를 각각 잘 예측한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부정 정서보다 긍정 정서를 더 많이 느끼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인 것은 맞지만, 학업과 직장 내에서의 성취를 위해서는 ()의 상태보다는 눈앞의 유혹을 이겨내는 자기통제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우리 연구는 즐거움 삶과 의미 있는 삶의 균형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5. 삶의 4대 의미: , 사랑, 영혼, 초월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면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 의식의 내용(Contents of consciousness)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내용들을 주제별로 분류한 학자들에 따르면, 인간 의식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뉠 수 있다. 지극히 사적인 내용은 배제되었다.

[7] 이를 ‘Big 4’라고 하며, 각각의 앞 글자를 따서 WIST라고 부른다.

<인간의 4가지 의식: WIST>

1) (work)

2) 사랑(intimacy)

3) 영혼(Spirituality)

4) 초월(Transcendence)

 

인간은 이 네 영역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심리학 연구들은 이 네 가지 영역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할 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을 통해 의미 있는 성취를 경험하려는 행위는 실존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의미 있는 목표를 세우고 많은 도전 앞에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결국 이겨내려는 용기, 기백,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소명을 발견하는 기쁨, 이런 목표가 우리를 굿 라이프로 인도한다.

사랑은 단순히 이성 간의 애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과 신뢰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 베푸는 삶, 인류애를 품으로 사는 삶까지 포함한다.

영혼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종교를 갖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초월적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 우주에 경외감을 갖고 사는 것까지 포함한다.

초월에 대한 관심이란 의식의 중심에서 자신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 공동체에 관한 관심, 미래 세대에 대한 관심 등을 의미한다.

의미 있는 삶은 의미를 경험해야 한다는 결심을 되풀이하는 행위가 아니라 일, 사랑, 영혼, 초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Chapter 06를 나가며

굿 라이프란 좋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다. 좋은 일이란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해답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는 소명이 이끄는 삶이 굿 라이프다.

행복은 성공을 포기하는 대가가 아니다. 성공과 성취를 행복의 장애물로 보는 시각을 유지하는 한, 의미 있는 성취를 통해 유능감과 자부심, 그리고 고요함을 경험하기 어렵다. 성공해야만 행복하다는 성공 지상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성공을 포기해야 행복하다는 ()성공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굿라이프_2장_Chapter 5

Part 02_의미있는 삶 

Chapter 05_의미와 쾌락의 차이

 

 

1. 젊어서는 쾌락 vs. 나이 들면 의미

 

일을 잘하는 것(성공 가능성)과 자기다움의 삶을 사는 것(통합)이 우리를 행복과 의미로 이끄는 두 개의 트랙임을 앞에서 소개했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트랙이 나이가 들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에 충실한 것(통합)이 의미뿐 아니라 행복에도 중요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하는 일들이 나는 누구인가?’와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어야 행복(즐거움)과 의미 모두를 강하게 경험한다.

우리 연구팀은 앞서 소개한 브라이언 리틀의 개인 프로젝트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쾌락과 의미의 상대적 중요성이 나이와 함께 변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이 책에서는 쾌락과 즐거움을 동의어로 사용함)

즐거움과 의미의 상대적 중요성은 두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과 의미를 경험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과 의미를 추구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굿 라이프에 중요한 것이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미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개인의 생각을 측정한 후, 그 생각의 차이가 건강이나 성취 같은 삶의 결과에 차이를 가져오는 정도를 알아보는 것이다.

 

[1] 우리 연구팀은 두 번째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일련의 연구를 시리즈로 수행했다.

먼저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굿 라이프에 대한 신념을 측정하기 위해 웰빙 신념 척도(Beliefs about well-being scale)를 이용했다. 이 척도는 쾌락주의와 의미주의라는 두 개의 하위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즐거움이 중요하다는 정도고 후자는 의미가 좋은 삶에 중요하다고 믿는 정도를 잰다고 할 수 있다.

쾌락의 의미에 대한 개인의 신념이 좋은 삶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해보기 위하여, 우리는 참가자들의 주관적 안녕감을 결과 변인으로 측정했다. , 삶에 대한 만족감()과 정서적 균형()을 잰 것이다.

분석 결과, 개인의 주관적 안녕감과 쾌락주의는 부적(-) 관계를 보였고, 주관적 안녕감과 의미주의는 정적(+) 관계를 보였다. 다시 말해, 굿 라이프가 즐거움을 경험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라고 믿을수록 역설적으로 즐거움과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결과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의미주의(‘자기가 성장하는 것과 타인의 삶에 기여하는 것’)가 좋은 삶이라고 생각할수록 행복이 증가하는 패턴이 존재하는데, 이 패턴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강해진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롭고 고무적인 결과였지만, 우리 연구팀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이 결과가 한국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중요한 삶의 결과물로 우리 연구에서 측정한 것이 오직 주관적 안녕감 하나였기 때문이다. 더 다양한 결과 변인이 있어야만 결과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다.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인을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또 주관적 안녕감과 함께 실생활의 스트레스 수준을 추가로 측정했다. 우리는 미국인들에게서도 동일한 패턴을 얻을 수 있었다.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과 고통을 피하는 것이 굿 라이프에 중요하다고 믿는 미국인들이 자기 성장과 타인에 대한 기여가 굿 라이프에 중요하다고 믿는 미국인들보다 훨씬 낮은 행복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패턴은 스트레스 측정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미국인들에게도 나이가 들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쾌락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의미에 대한 추구였다.

우리 연구는 쾌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미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2. 연약한 쾌락 vs. 강인한 의미

 

쾌락과 의미의 상대적 중요성을 비교해보는 더 직접적인 방법은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쾌락적 행복과 의미적 행복을 측정한 후에, 각각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이 존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많은 방법론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들이 갖는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2] 실제로 그에 답하고자 하는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가 2013년에 <미국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되었다.

논문을 제출한 연구팀은 80명의 건강한 미국 성인의 쾌락적 행복과 의미적 행복을 측정했다. 쾌락적 행복과 의미적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서 참가자들에게 아래 질문들에 답하게 했다.

 

<쾌락적 행복 측정을 위한 질문들>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자주 당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셨습니까? ()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자주 당신의 삶에 만족하셨습니까? ()

 

<의미적 행복 측정을 위한 질문들>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자주 당신의 삶이 의미가 있다고 느끼셨습니까?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자주 당신 삶의 경험들이 당신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느끼셨습니까?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자주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셨습니까?

 

이런 질문에 답하게 한 후에 연구팀은 이 두 가지 종류의 행복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매우 독특하고 전문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백혈구의 역경에 대한 보존 전사 반응(CTRA: Conserved Tranional Response to Adversity)’이라고 불리는 역할(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그것과 싸우는 좋은 역할을 하거나 염증을 유발하여 악화시키는 나쁜 역할을 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역할)을 측정했다.

측정 결과, 쾌락적 행복 점수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항바이러스를 위한 유전자 발현이 약하고 염증과 관계된 유전자 발현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건강하지 않은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의미적 행복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항바이러스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이 강하고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은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의미적 행복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 몸의 역경을 이겨내는 건강한 유전자 활동과 관련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에만 기초해서 쾌락보다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굿 라이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쾌락을 중시하고 의미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좋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3. 함께하는 쾌락 vs. 홀로인 의미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것이 즐거움과 의미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지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쾌락적 행복과 의미적 행복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유형의 행복이 존재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행복이 있다기보다는 행복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후자의 입장은 쾌락 경험과 의미 경험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둘을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자의 입장은 두 가지가 경험적으로 관련 있다고 해서 그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쾌락의 의미가 정말로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쾌락 경험과 의미 경험이 어떻게 유사하고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

 

[3] 우리 연구팀은 쾌락 경험과 의미 경험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알아보려고 18세부터 63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 603명에게 모바일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를 다섯 시간 단위의 세 구간으로 나눈 후, 컴퓨터가 각 구간 내에서 임의적으로 시간을 선정해 참가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그 순간에 경험하고 있는 쾌락과 의미를 100점 척도에서 각각 보고했다. 또한 그 순간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를 총 35개 활동 리스트 중 하나를 택하여 보고했다. 만일 해당 리스트에 없는 활동이면 자유롭게 기입하도록 했다. 제공된 35개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35개 활동 목록>

SNS

TV 시청

게임

공부

그냥 있기

낮잠

대화

데이트

독서

라디오 듣기

먹기

문자

병원 진료

사교 활동

산책

세면/목욕/화장

쇼핑

수업

여행

영화 시청

요리

운동

육아

음악 듣기

음주

이동 중

자원봉사

전화 통화

종교 활동

집안일

취미/여가

컴퓨터

회식

흡연

기타

 

또한 그 순간 누구랑 함께 있는지를 총 열 명의 가능한 후보(친구, 배우자, 자녀, 상사, 부하 등)가 제시된 리스트 중에서 고르도록 했다. 해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유롭게 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인구통계학적 정보들은 미리 수집하였다.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의미와 쾌락이 얼마나 중첩되는지를 보기 위해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순간순간의 시점에서, 하루하루의 시점에서, 그리고 개인차 수준에서 각기 계산했다.

순간순간 시점에서의 상관관계란 한 개인의 특정 순간에 경험한 쾌락과 의미의 중첩 정도를 의미하고, 하루하루 시점에서의 상관관계란 하루 동안(순간이 아닌) 경험한 의미와 행복을 다 합쳐서 계산한 서로의 중첩 정도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차 수준에서의 상관관계란 연구 기간 내내 한 개인이 경험한 즐거움의 총합과 의미의 총합 사이의 상관이다.

분석 결과, 놀랍게도 하루 시점과 개인차 수준에서는 쾌락과 의미의 상관계수가 .75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의미를 많이 느낀 날에는 즐거움도 많이 느꼈고(하루 수준), 연구 기간 내내 의미를 많이 느낀 사람은 즐거움도 많이 느꼈다는 것을 뜻한다(개인차 수준).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쾌락 경험과 의미 경험은 서로 중첩되는 정도가 커서 두 개를 굳이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반전은 순간 시점의 의미와 쾌락의 상관관계에서 나타났다. 이 상관계수는 겨우 .36 이었다! 이는 순간에 경험한 즐거움이 높다고 해서, 그 순간에 반드시 의미를 많이 경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가령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순간에 즐거움은 강하게 느끼지만 의미는 별로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쾌락과 의미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순간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구가 밝혀낸 쾌락과 의미의 차이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나이 효과다. 나이가 들수록 쾌락과 의미 경험이 모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이 효과는 의미에서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결혼 여부는 쾌락 경험과는 큰 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하루하루의 삶에서 기혼자가 미혼자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미 경험에서는 기혼자들이 미혼자들보다 순간순간 경험하는 의미의 정도가 크게 나타났다. 기혼자가 결혼으로 얻는 일상적인 이점이 쾌락보다 의미에 있음을 시사 하는 결과다.

셋째, 각각의 구체적인 활동들이 제공하는 쾌락과 의미 경험의 정도가 달랐다. 어떤 경험은 즐거움은 많이 주지만 의미는 주지 못했다.(TV시청, 회식, 게임이 대표적) 반대인 경우도 존재했다.(수업 듣기, 병원 가기, 일하기) 즐거움과 의미 모두에 정적(+) 관계에 있던 아이 돌보기, 요리하기, 운동하기, 기도하기, 자원봉사는 의미와의 관계가 더 강했다. 반대로 둘 다 정적 관계이나 즐거움과의 관계가 강한 활동에는 영화보기, 술 마시기, 수다 떨기등이 있었다.

 

특히 흥미로운 변수는 혼자 있는 것의 효과였다. 혼자 있는 상태는 우리의 기분을 저하시키는 힘이 강하지만, 의미를 떨어뜨리는 효과는 약했다.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격리시킨 상태에서 경험하는 성찰의 시간이 성장과 의미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부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면에 즐거움 혹은 쾌락은 혼자 있을 때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훨씬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우리 연구는 쾌락과 의미가 상당히 중첩되는 경험이면서 동시에 매우 구별되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즐거움과 의미 모두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4. 지금은 쾌락 vs. 나중엔 의미

 

우리는 즐거움과 의미, 쾌락과 탁월함, 향유하는 삶과 성찰적 삶 가운데서 꼭 하나를 택해야 하는 존재일까?

쾌락과 의미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이 둘의 상대적 중요성을 평가하는 개인차(의미형 인간과 재미형 인간)와 문화 차이(한국은 대표적인 의미 중심의 국가)가 존재하지만, 이 가운데 한 가지만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4] 우리 연구팀은 시간이 중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이 지금 당장은 즐거운 경험을 하고 싶어 하고, 나중에는 의미있는 경험을 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현재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가까운 미래(혹은 현재)에는 즐거움을, 먼 미래에는 의미를 추구하는 내적 장치가 우리 안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5] 우리의 이런 생각은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이라고 불리는 아주 매력적인 심리학 이론으로부터 비롯했다.

해석 수준 이론은 거리가 인간의 심리에 만들어내는 극적인 차이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거리는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시간적 거리와 관계적 거리도 포함한다.

거리가 멀어지면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사건의 큰 그림을 보게 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면 그 대상이나 사건의 구체적인 특성들을 보게 된다. 물리적 거리에 적용되는 이 사실이 시간적 거리와 관계적 거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해석 수준 이론의 핵심이다.

해석 수준 이론에서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보이는 부분을 상위 표상이라고 부르고, 가까이 있을 때 보이는 부분을 하위 표상이라고 부른다. 상위 표상과 하위 표상의 대표적인 대비는 중요성(Desirability)과 가능성(Feasibility)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한다. 그러나 거리가 증가할수록, 특히 시간상 거리가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어떤 일의 중요성을 중시하고, 시간이 임박할수록 그 일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우리 연구팀은 해석 수준 이론에 착안하여 즐거움은 하위 표상이고, 의미는 상위 표상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보기로 했다. 이 가설이 옳다면 사람들은 임박한 시점에서는 즐거운 일을 선호하고 상대적으로 먼 미래를 위해서는 의미있는 경험을 선호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연구 결과는 우리의 가설이 타당함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당장은 신나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나중에는 가치 있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즐거움과 의미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지 않고 두 가지 본성을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며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시간의 중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현재는 쾌락의 시간이고, 미래는 의미의 시간이다.

 

 

5. 한 번 사는 인생은 쾌락 vs. 한 번 죽는 인생은 의미

 

즐거움과 의미를 중재하는 시간의 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재 시점으로부터의 거리뿐만 아니라 어떤 경험의 지속 시간도 중요한 중재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어떤 경험이 짧게 지속될 경우 사람들은 쾌락적 경험을 선호하고, 어떤 경험이 오래 지속될 경우에는 의미있는 경험을 선호한다.

[6] 우리 연구팀은 삶의 짧음과 덧없음에 대한 자각은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적 삶을 추구하게 하고, 반대로 삶의 무한성에 대한 자각은 요도(YODO: you only die once)적 삶(“한번 죽을 인생이니 의미 있게 살자”)을 추구하게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일련의 연구를 수행했다.

첫 연구에서는 한 조건에서 단 하루 동안 하게 될 활동을 선택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즐겁고 신나는 일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를 택하게 했다. 다른 조건에서는 6개월 동안 하게 될 활동을 선택하게 했다.

결과는 매우 분명했다. 단 하루 동안 할 일을 선택하게 하면,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절대 다수가 즐겁고 신나는 일을 선택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하는 일을 선택하게 하면, 두 가지 일을 선택하는 비율이 매우 비슷해졌다. 지속 시간이 긴 일일 경우 의미를 경험하려는 경향성이 강해진 것이다.

우리는 지속 시간을 더 다양하게 변화시켰다. 결과는 동일했다. 지속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신나고 즐거운 활동보다는 가치 있고 의미있는 일을 경험하려는 선택이 유의하게 증가했다.

짧은 시간을 위해서는 즐거운 경험을 선호하고 긴 시간을 위해서는 의미있는 경험을 선호한다는 위 결과들이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인생이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쾌락을 추구한다는 가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제공해주지 못한다. 이 가설을 보다 직접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짧다고 보는지, 혹은 길다고 보는지를 직접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일가치 있고 의미있는일이란 표현에 대한 해석이 각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활동들 자체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인생에 대한 당신의 관점>

인생은 짧다

인생은 길다

0

100

 

이를 위해 우리는 위와 같은 척도를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곳에 표시를 하게 하여 인생의 길이에 대해 측정했다. 결과는 우리의 가설과 일치했다. 인생이 짧다고 생각할수록 키스하기술 마시기같은 활동을 평소에 자주한다고 보고했고, 인생이 길다고 생각할수록 공부를 하거나 고전을 자주 읽는다고 보고했다.

사람들은 즐거움과 의미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 연구는 이분법적 구분보다는 한 개인 내에서도 경험의 지속 시간에 따라 즐거움과 의미에 대한 선호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Chapter 05를 나가며

굿 라이프란 의미와 쾌락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삶이다. 의미의 중요성은 나이와 함께 더 증가하고, 의미는 홀로 있어도 경험된다.

우리가 쾌락과 의미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지 않고 균형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시간의 중재가 있기 때문이다. 신나고 즐거운 일은 당장 하고 싶어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은 나중에 하려고 한다.

의미와 쾌락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때로는 쾌락을 때로는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굿라이프_2장_Chpater 4

Part 02_의미있는 삶

    

 

좋은 삶이 좋은 기분을 많이 느끼는 삶일 수도 있지만, 좋은 기분만이 좋은 삶의 조건은 아니다. 좋은 기분을 많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살만한 이유와 가치를 충분히 느낀다면 좋을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幸福(행복)이라는 한 단어를 가지고 때로는 행복한 기분을, 때로는 행복한 삶을 가리키기 때문에 종종 오해가 발생한다.

행복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을 행복한 기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의 의미를 간과하는 실수를 범한다.

진화적 관점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행복을 설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인간만이 추구하는 행복, 즉 좋은 삶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의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1]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 두 가지의 구분을 위해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기(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가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카너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좋은 기분이 아니라 좋은 삶이라는 관저에서, 그리고 경험하는 자기가 아니라 기억하는 자기의 관점에서 핵심 요소인 의미 있는 삶에 관하여 논할 것이다.

    

 

Chapter 04_의미의 의미

      

1. 무거운 의미와 가벼운 의미

 

의미를 행복의 핵심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에 회의적인 이유는 의미를 지나치게 무겁게 보기 때문이다. 의미를 좋은 삶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의미에는 무거운 의미뿐 아니라 가볍고 경쾌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무거운 의미 혹은 큰 의미란 삶에 대한 목적의식과 소명 의식, 자기희생, 대의명분 같은 것을 뜻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자기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의미가 아니며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의미의 의미를 확장하면,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불필요한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학자들이 정의한 의미의 의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의미란 중요성(significance)이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모두 의미다. 의미 경험은 주관적이어서 타인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간주하더라도 자신이 의미를 경험하면 그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둘째, 의미는 유용성(usefulness)이다. 자신의 행위가 쓸모 있다고 느낄 때 그 일은 의미를 갖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간 낭비가 아니라라고 느끼는 경험이 의미다.

셋째, 의미는 이해(understanding)이다. 인간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욕구중 하나는 세상을 이해하려는(sense-making) 욕구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때, 우리는 의미 없음을 경험한다.

넷째, 의미는 정체성(identity)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과 연결되어 있을 때, 즉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의미를 경험한다. 의미 있다는 것은 곧 자기다움을 뜻한다.

 

의미의 의미를 이렇게 해부해보면, 의미를 경험하게 하는 행위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의미 추구는 엘리트 도덕주의자의 강압적 명령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우리의 본성이다.

  

  

2. 의미를 향한 인간의 의지

 

인간은 의미에의 의지가 충만한 존재다.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의 연구와 저술은 의미를 향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준다.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는 삶에 대한 희망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한 결정적 힘이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닌 삶의 의미, 더 정확하게는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지였음을 보여준다.

[2] 프랑클의 저술이 무겁고 큰 의미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실험은 작고 가벼운 의미의 힘을 잘 보여준다.

애리얼리 실험의 참가자들은 문장들이 가득한 페이지에서 특정 알파벳을 찾아 체크하는 과제를 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완수한 페이지 수만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조건에서는 다 마친 종이에 참가자 본인의 이름을 적게 했으며 다른 조건에서는 이름을 적지 않고 바로 파쇄기에서 파쇄 됐다. 참가자들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다. 어느 조건에서 더 많은 양의 작업을 완수했을까?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후자의 조건이 훨씬 유리하다. 적당히 하고 제출해도 들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자신의 이름을 적은 조건에서 참가자들은 훨씬 더 많은 과제를 해냈다. 이 실험은 자기 이름을 적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자기 일이라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의미의 발견이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있다면, 의미의 부재는 쾌락을 고통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가 유발하는 문제는 매우 다양하다. 의미의 부재는 우리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굿 라이프는 의미가 가득한 삶이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3] 심리학자 에릭 클링거(Eric Klinger)의 말처럼 인간의 뇌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다(The human brain cannot sustain purposeless living)”

    

 

3. 의미의 원천, 자기다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지혜는 맹목적으로 성공을 추구하는 행위를 경계해왔다. 바벨탑, 소크라테스의 경고등은 인류가 얼마나 가치 없는 성공을 경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의미 없는 성공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너 자신을 알라는 가르침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제시한 것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인간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고, 삶의 궁극적 목표로서 자아실현, 의미의 실현, 인격적 성숙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본주의 심리학은 방법론적 엄밀성의 부족으로 인해 주류 심리학으로부터 차가운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는 쾌감으로서의 행복만을 좋은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좋은 삶의 의미 측면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심리학자 브라이언 리틀(Brian Little)개인 프로젝트(personal projects)’ 분석이다. 리틀의 연구는 인간이 경험하는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것, 즉 자기다움의 삶을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개인 프로젝트란 글자 그대로 한 개인의 일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의미한다. 개인 프로젝트는 다양한 차원에서 평가될 수 있다.

[4] 리틀은 다양한 평가 차원이 아래의 다섯 가지 상위 차원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했다.

<개인 프로젝트의 5가지 차원>

1)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self benefit)

2) 성공 가능성(efficacy)

3) 재미(fun)

4) 타인의지지(support)

5) 통합(integrity)

 

이 중 주목할 만한 차원이 성공 가능성과 통합이다. 성공 가능성은 그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에 대한 개인의 지각을 나타내고, 통합이란 그 프로젝트가 자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잘 통합되어 있는가를 나타낸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하고자하는 일이 자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나타낸다.

리틀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 프로젝트(어떤 일)의 성공 가능성은 삶에 대한 만족과 현재의 기분과 관계가 있었지만, 삶의 의미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반대로 하고자 하는 일이 자기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는 정도는 삶에 대한 만족이나 감정과는 무관하지만, 삶의 의미와 정적(+)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 자기다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4. 의미형 국가, 영국이 주는 교훈

 

영국은 최근 들어 행복에 관한 몇 가지 인상적인 노력을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81,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을 임명했다. 영국의 시도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이 시도가 그간 영국 정부가 국민들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통계청(ONS: Office of National Statistics)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국의 행복 측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통계청은 ‘PWB ONS 4’라고 부르는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이용해 영국인의 행복을 측정한다.(PWB : Personal well-being)

 

1) 전반적으로 요즘 당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2) 전반적으로 당신이 인생에서 하는 일들이 얼마나 가치 있다고 느끼십니까?

3) 전반적으로 어제 얼마나 행복을 느끼셨습니까?

4) 전반적으로 어제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습니까?

 

첫 번째 질문은 삶에 대한 만족()을 측정하는 질문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평소의 감정(())을 측정하기 위한 질문으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각각 측정하고 있다. 이 세 질문은 1부에서 살펴본 快足(쾌족)을 측정하므로 새롭다할 수 없다.

주목해야할 질문은 두 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묻는 질문이다. 이는 행복에 대한 영국의 이해가 매우 균형 잡힌 이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국은 행복한 기분을 넘어 행복한 삶을 측정하고자 하고, 경험하는 자기만이 아니라 기억하는 자기의 행복을 관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의 중요성이 영국에서는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Chapter 4를 나가며

인간은 의미를 향한 의지가 충만한 존재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의미는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의미의 부재는 괘락을 고통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굿 라이프란 의미가 충만한 삶이다. 의미에는 큰 의미도 있지만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의미도 존재한다. 의미의 일상성을 인식해야 의미있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굿라이프_1장_Chapter 3

Part 01_행복한 삶 

Chapter 03_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며 균형 있게 사용한다. 첫 번째 그룹은 심리주의자의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기술이다. 명상을 하거나, 감사한 일을 세어보거나, 부정적 사건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해보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그룹은 환경주의자의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애초부터 쉽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행복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 예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심리주의자의 기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는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한 후에 사용하는 기술들이기 때문에 소극적이며 사후 처리적인 특성이 강하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1.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

 

행복한 사람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만일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딜레마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1] 이 질문에 답하고자 우리 연구팀은 일련의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 연구팀은 대학생 참가자들에게 어느 일자리를 소개하면서 그 일이 참가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이후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물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그 일이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그 일을 본인이 얼마나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물었다.

흥미롭게도, 두 경우 모두에서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이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보다 자신이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행복감이 높은 학생들은 그 일을 좋아하면, 잘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그 일자리가 본인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본인이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아는 것이 자신의 결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물었을 때 나타났다.

행복한 학생들은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했지만, 행복감이 낮은 학생들은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했다.

우리 연구팀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경험하는 행복의 정도가 그 일을 좋아하는 정도와 그 일을 잘하는 정도 중 어느 것에 의해서 더 결정되는지를 알아보았다. 하루에 몇 차례씩 연구 참가자들에게 모바일 설문을 실시하여 설문을 받은 그 순간에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보고하게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느끼고 있는 즐거움과 의미의 정도를 보고하게 했다.

분석 결과,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 정도보다는 그 일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서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하는지 여부가 행복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느끼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다.

우리는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하여 또 다른 연구를 진행했다. 한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학기 초에 그 수업을 좋아해서 듣는 정도와 잘할 수 있기 때문에 듣는 정도를 보고하게 했다. 학기 말에 그 학생들을 다시 조사하여, 그들이 한 학기 수업을 통해 경험한 행복감을 측정했다. 분석 결과, 그 수업을 좋아해서 듣는다고 보고한 학생일수록 수업에서 경험한 행복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잘할 수 있어서 듣는다고 보고한 정도와 행복감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수 없다는 어른들의 조언이 들려올 때,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한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2. 되어야 하는 나보다 되고 싶은 나를 본다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Tory Higgins)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세 개의 자기 간의 공존과 갈등의 장이다. 한 사람의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 자기(actual self), 되고자 열망하는 이상적인 자기(ideal self),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당위적인 자기(ought self) 사이의 괴리와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들 사이의 괴리는 개인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 삶을 전진시키기 위해 이상적 자기라는 엔진을 장착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당위적 자기라는 브레이크를 장착한 사람들일까?

[2] 우리 연구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려 일련의 연구를 진행했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108개의 행동 특성 리스트를 제공하고, 이 중에서 자신이 이상적으로 보유하고 싶은 특성 다섯 가지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특성 다섯 가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중복되어도 상관없었다.

그 후에 현재 자신이 각각의 특성을 어느 정도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5점 척도에서 평정하게 했다. 이 평정치는 현실적 자기가 이상적 자기와 당위적 자기의 특성을 각각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는지(즉 괴리의 정도)를 나타낸다.

우선, 두 괴리 점수 모두 행복과 부적(-) 관계에 있었다. 다시 말해 행복한 사람들일수록 두 괴리 점수가 낮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결과는, 행복이 현실 자기와 당위적 자기의 괴리보다는, 현실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괴리 정도와 훨씬 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점을 시사한다.

행복은 역할, 의무, 책임, 조심, 경계, 현상 유지로 대표되는 당위적 자기의 브레이크보다는 꿈, 비전, 이상, 열망으로 대표되는 이상적 자기라는 엔진을 달고 전진하는 사람에게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국내 일간지와 한 인터뷰는 이상적인 자기 엔진을 달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3] 요요마는 자신의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터닝 포인트를 이렇게 소개했다.

19세 때 뉴욕에서 독주회를 했다.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었고 1년을 준비한 무대였다. ~ 불현 듯 이건 아주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전환점이었다고 본다.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이 문제였던 것이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까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때를 해야 한다(should)’하고 싶다(want to)’로 바꾼 순간으로 부른다. 중략.

 

‘Should’‘Want to’로 바꾼 것, 이는 당위의 브레이크가 지배하는 삶에서 이상의 엔진이 지배하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행복한 사람은 당위의 영역을 줄이고 이상의 영역을 넓히는 삶의 기술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3. 비교하지 않는다

 

사회 비교(social comparison)와 사회적 유대(social companion)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강력한 욕구다. 때로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기도 한다. 또 한편 우리는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외로움을 해결한다. 사회 비교와 사회적 유대가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예를 들어, 만나면 기분이 좋은 친구(사회적 유대)와 만나면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사회 비교) , 누구를 만나야 할까?

[4]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 연구팀은 ‘Comparison vs Companion’이라는 대결적 제목을 미리 정하고 일련의 실험을 시작했다.

한 시나리오에서 참가자들에게 중요한 시험의 가채점 결과 자신의 점수가 60점이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두 명의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다고 상상하게 했다. 한 친구는 90, 다른 친구는 40점 맞았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두 친구 중 누구와 더 놀고 싶어할까?

우리는 실험에 맞서 참가자들의 행복 점수를 미리 측정해두었다. 유사한 일련의 실험을 반복한 끝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은 비록 자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만나면 기분이 좋은, 즉 유대감을 경험할 수 있는 친구를 선호하지만, 행복감이 나은 삶들은 자신보다 점수가 낮아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친구를 선호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트레이드마크가 타인과의 비교라면, 경제적 수준에 비해 행복감이 낮은 편인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남들과의 비교를 자주하는 것은 아닐까?

[5] 한국인의 낮은 행복 지수를 설명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 인기 있는 가설을 검증해보기 위해, 우리는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교수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의 특이점은 비교로 인한 심리적 반응을 측정하기 위해 뇌영상촬영(MRI)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연구의 주된 관심은 소위 보상 영역이라고 불리는 뇌영역의 활동이었다. 연구팀은 이 영역이 자기 점수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정도와, 자기와 타인의 점수 차이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정도를 비교 분석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어떤 선택을 한 후 그 선택으로 인해 본인에게 주어지는 점수뿐 아니라 다른 참가자의 점수도 알려주었다. 모든 절차가 MRI 기게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기분을 참가자들이 보고하지 않아도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촬영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 미국 사람들의 보상 영역은 자신의 점수에 강하게 반응했지만, 한국 사람들의 보상 영역은 다른 사람과의 점수 차이에 강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뇌는 불행히도 비교하는 뇌였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교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행복한 사람들은 관계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4. 돈의 힘보다 관계의 힘을 믿는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매장에서 경험을 쇼핑하는 사람들이다. 시간과 돈을 지불하고 다양한 경험을 카트에 집어넣는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카트에 어떤 것들을 담을까? 우리 연구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행복한 사람들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 카트에 넣는 내용물을 비교하는 일련의 연구를 시작했다.

[6] 일련의 연구에서 우리가 발견한 사실은 행복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자신의 카트에 집중적으로 쓸어 담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금전적 이득을 주로 담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행복한 사람들은 친밀한 사람들이 주는 위로를,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돈이 주는 위로를 찾았다. 금전적 이득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려는 것은 마치 술로 쓰린 배를 다시 술로 달래려는 것과 같다. 이 패턴이 만성화되어 있는 사람을 우리는 물질주의자라고 부른다.

 

[7] 우리 연구팀은 물질주의자의 하루를 해부해보려는 또 다른 연구를 수행했다.

참가자들에게 하루 세 번씩 랜덤하게 문자를 보내, 문자를 받은 순간에 하고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고하게 했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각 참가자의 물질주의 정도를 미리 측정해두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여전히 놀라웠다. 물질주의자들은 TV 보는 시간과 쇼핑하는 시간이 많았다. 반면 책을 읽거나 봉사하는 시간은 적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비물질주의자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었다.

 

[8] 연구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우리 연구팀은 장난기가 가미된 아주 간단한 연구를 하나 진행했다.

우리는 서울대 학생들에게 이성 친구와 1주년 기념으로 23일 제주도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고 가정하게 하고, 얼마를 받으면 안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결과는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행복감이 상위 50퍼센트인 학생들은 이성 친구와 23일 제주도 여행을 포기하기 위해 무려 약 160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행복감 하위 50퍼센트인 학생들은 35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얼핏 생각하면 행복한 사람들이 더 탐욕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그들이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에 매우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결과다.

 

 

5. 소유보다 경험을 산다

 

이스털린 역설이란 돈과 행복의 관계가 일관되지 않고 서로 모순되는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힌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A. Easterlin)의 주장이다. 이스털린은 한 사회 내에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행복한 것은 맞지만, 한 사회의 부가 일정기간 동안 증가하더라도 그 사회 전체의 행복 수준이 그와 비례해서 증가하지는 않는 역설적인 패턴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스털린이 이 이론을 발표한 1974년 이후 더 광범위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이 역설은 더 이상 역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의 부의 증가가 국민의 행복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맞지만, 그 정도를 결정하는 몇 가지 변수가 존재함이 밝혀진 것이다.

국가적 수준의 변수로는 소득 불평등이 대표적이다.

[9] 시게히로 오이시(Shigehiro Oishi) 등의 연구에 따르면 다음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즉 지니계수가 클수록 소득 증가와 국민 행복 증가 사이의 관계는 약해진다.

  

  

     

이는 일정 기간 한 사회의 부가 증가하더라도 개인에 집중된다면 소득 증가의 행복 효과가 대다수 사람에게는 강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 가계의 총 소득보다 총처분가능소득(이자나 세금처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하는 돈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소비, 저축할 수 있는 소득)의 증가가 행복 증가와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 참고로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 가계 1인당 실질 총처분가능소득이 1800만 원가량으로 조사돼, 비교 대상인 OECD 소독 29개국 중 19위인 중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소득 불균형과 가계 총처분가능소득이라는 변수는 국가의 구조적 변수다. 따라서 소득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잘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돈 자체의 효과가 없다기 보다는 사회 구조의 특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소득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잘 연결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인 수준의 변수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변수가 개인의 소비 행태다. 우리의 소비는 소유물을 사는 소비와 경험을 사는 소비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소비를 소유와 경험으로 구분한 후에 각각의 소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한 다수 연구에 따르면, 소유 소비보다는 경험 소비가 행복에 미치는 힘이 단연코 크다.

[11] 소득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행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을 사는 데는 인색하고, 행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소유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한편 경험을 사지 않고도 경험 소비에 의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역설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소유물을 보는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책장이라는 물건을 사면서 지식을 저장하는 경험을 산다고 의도적으로 프레임 할 수도 있다.

[12] 우리 연구팀은 소유물을 경험으로 프레임화 하는 작업이 경험을 사는 것 만큼의 행복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행복한 사람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사는 사람이다. 소유를 사더라도 그 소유가 제공하는 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6. 돈으로 이야깃거리를 산다

 

험의 삶이 곧 무소유의 삶이다. 소유하지 않는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소유에 대한 욕망을 삶에 대한 경험과 관찰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험의 차이에 대한 연구에 천착해온 코넬 대학의 토머스 길로비치(Tomas Gilovich)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경험이 무소유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소유물은 비교를 불러일으키지만 경험은 비교를 유발하지 않는다. 소유는 본질적으로 물건(thing)이기 때문에 비교가 쉽게 일어난다. 소유가 유발하는 비교는 남들과의 비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건을 구매한 후에도 자신보다 싸게 산 사람은 없는지, 더 싸게 파는 곳은 없는지 등 전방위적인 비교가 발생한다.

[13] 최적의 물건을 최적의 시기에 최적의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이런 강박적인 소비 성향을 심리학자 베리 슈워츠(Berry Schwartz)sms ‘극대화(maximizing)’라고 부르고, 극대화 성향이 강할수록 행복감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반대로 경험은 본질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비교가 쉽지 않다. 소유와 달리 경험은 지금 여기의 심리 상태를 강하게 유발하기 때문에 경험하는 그 순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둘째,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 목록을 보아야한다. 경험은 우리의 의식과 철학과 가치를 구성한다. 무소유의 삶은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삶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 리스트를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이력서를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셋째, 경험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소유가 대화의 주제가 되면 그 대화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소유는 비교를 유발하기 때문에 소유에 대한 대화는 관계를 위협한다. 반면에 경험에 관한 대화는 즐거움을 창출한다. 경험은 소유보다 훨씬 관계 지향적이다.

 

    

 

7. 돈으로 시간을 산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물질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인내로 견디려는 우직함도 마냥 칭송해서는 안된다.

돈으로 시간을 사야한다. 부의 증가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을 크게 늘렸지만, 가장 중요한 자원 하나를 고갈시켰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 빈곤은 인류가 경험하기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이다.

시간은 본질상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돈을 버는 데 쓰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활동을 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14]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활동에는 여행, 운동, 수다, 걷기, 먹기, 명상 등이 포함된다.

우리가 비록 과거에 비해 훨씬 부유해졌을지는 몰라도 행복을 가져오는 이런 활동에는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부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잘 연결되지 않는 이유이다.

[15] 최근 하버드 대학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시간을 벌어주는 데 돈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가사 부담을 덜기 위해 가끔 가사도우미를 쓰거나 운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등 자신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는 소득 수준과 상관이 없었다. 알뜰하게 사는 것은 소중한 미덕이다. 그러나 시간의 결핍을 줄이려는 노력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돈을 택하면 시간에서 손해가 발생하고, 시간을 택하면 돈에서 손해가 발생하는 갈등적 상황이 흔하게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선택할 것인가 돈을 선택할 것인가? 행복한 사람들은 어느 쪽을 택할까?

[16]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UCLA 연구팀이 일련의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돈과 시간 중 무엇을 더 원하는지 물었다. 또한 행복감을 측정했다. 분석결과,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시간보다는 돈을 더 원했으나 시간을 선택한 사람들이 돈을 선택한 사람들보다 행복감이 높게 나타났다!

시간을 선택한 사람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가 이미 돈이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에 대비해 연구자들은 경제적 요인이 작용하는지 분석했다. 결과는 반론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중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돈보다 시간을 선택한 것이었다.

 

 

8. 걷고 명상하고 여행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도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기술만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행복한 활동들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다. 행복한 사람들이 애초부터 행복한 활동을 자주하는 환경주의자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행복하고 불행한 활동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17] 이를 위해 우리 연구팀은 소위 경험 표집법(experience sampling method)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일상의 많은 경험이 주는 행복감을 측정하고자 했다.

참가자들은 하루에 일정 횟수 씩 설문에 임하여 그 순간에 하는 경험과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하여 보고했다. 참가자들은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이 제공되었다. 하나는 그 순간의 즐거움에 관한 것, 다른 하나는 그 순간에 경험하는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짧게는 2, 길게는 4주를 진행하였다.

  
 

 

그래프에 따르면 행복을 추구하는 길은 3사분면 활동들을 최소화하고, 1사분면 활동들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한 경험을 제공해주는 활동들을 애초부터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9.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발견한다

 

유도 경기에는 어려움 채점 방식이 있다. ‘효과는 아무리 많아도 유효하나를 이길 수 없고 유효는 아무리 많아도 절반하나를 이길 수 없었다. 국가 순위의 집계 방법에도 총 메달수와 금메달 개수를 우선으로 집계하는 방법이 있다.

[18] 유도 채점 방법과 올림픽 국가 순위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행복은 긍정 정서 대 부정 정서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달려있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city, of positive Versus negative Affect)>라는 논문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한 자극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 자극에 적응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행복 혹은 불행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쩌다 한 번 강한 자극을 경험하는 것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자주 경험하는 것이 행복에 유리하다.

만일 이 행복 원리가 사실이라면, 행복한 사람들은 금메달 수보다 총 메달 수를 중시하는 집계 방법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19] 우리 연구팀은 이 가설을 검증해보기 위해 연구를 수행했다.

참가자들에게 올림픽 국가 순위를 정하는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물었다. 예상대로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이 총 메달 수에 따른 순위를 더 선호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금메달 하나는 은메달 몇 개에 해당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평균 2.5개라고 답했지만,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평균 6개라고 답했다. 행복한 사람은 작은 것도 크게 보지만, 행복감이 낮은 사람은 큰 것만 크게 본다는 점을 시사한다.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을 음미하기(savoring)’라고 한다. 음미하기란 소소한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마음의 습관을 의미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소소한 즐거움들을 더 자주 경험하려고 일상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이다.

    

 

10. 비움으로 채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을 때, 우리는 압도당하다(overwhelmed)’라는 표현을 쓴다. 이 단어는 긍정적인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예상을 뛰어넘은 좋은 일들을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이때는 과분하다는 뜻이다.

[20] 미국의 기자이자 작가인 브리짓 슐트(Brigid Schulte)가 현대인의 삶을 기술한 책의 제목이 ‘Overwhelmed’이며, 이 책의 한국어판은 <타임 푸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현대인의 고통 중 하나로 시간 빈곤 문제를 제기한다. 이 일하는데 찔끔, 저일 하는데 찔끔 하는 식으로 시간을 쪼개 쓰다 보니, 정작 굿 라이프의 중요한 영역이라고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주장한 일, 사랑, 놀이에 쓸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다는 것이 슐트의 주장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시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점을 이미 소개한 바 있으나, 이들이 사용하는 또 다른 삶의 기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혹시 시간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일부러 타인을 위해 시간을 내면 자신에게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21] 이 가설을 검증해보기 위해 심리학자 캐시 모길러(Cassie Mogilner)와 그 연구팀은 참가자들을 두 조건에 랜덤하게 할당했다.

한 조건에서는 중병을 앓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희망을 주는 편지를 쓰게 했고, 다른 조건에서는 라틴어 문장들이 가득한 페이지들에서 철자 ‘e’를 체크하게 했다. 전다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조건이었고, 후자의 경우 별 의미 없는 일을 위해 시간을 쓴 조건이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풍족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참가자들이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팀은 또 다른 실험을 실시했다. 한 조건의 참가자들에게는 어떤 고등학생의 작문을 15분 동안 고쳐주라고 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작문을 고치는 일을 주었으나, 다른 사람이 이미 그 일을 했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결과적으로 전자는 15분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할애해야 했지만, 후자는 15분이라는 자유 시간이 생긴 셈이었다. 이후 시간적 여유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공짜로 생긴 사람들보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할애한 참가자들이 시간적 여유가 더 많다고 응답한 것이다.

시간을 내어주면 역으로 시간이 생긴다(더 정확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는 점을 보여준 연구 결과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을 비움으로 자신을 채우는 삶의 비결을, 시간을 내어줄수록 시간의 부자가 된다는 삶의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소유를 내어주면 오히려 더 채워지게 된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실제로도 발생함을 보여주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22] 아서 브룩스(Arthir Brooks)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기부를 하고 나면 이후에 수입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비워야 채워진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해주는 결과다.

    

 

—Chapter 03을 나가며

행복한 사람들은 마음과 일상에 묘술을 부린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심리주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쉽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일상을 다르게 배치하는 환경주의 기술도 중요하다. 

굿라이프_1장_Chapter 2

Part 01_행복한 삶 

Chapter 02_행복과 유전에 관한 올바른 생각

 

 

1. 행복은 유전이 만들어낸 운명인가

 

굿 라이프에 대한 성찰은 두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하나는 굿 라이프란 무엇인가이며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에 관한 물음이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물음이 있다. 바로 좋은 삶과 유전, 행복과 유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만일 행복이 유전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믿으면,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은 불필요하게 된다. 반대로 유전의 힘을 무시하고 이루어지는 좋은 삶을 향한 노력은 우리를 과도한 긍정주의의 함정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

    

 

2. 행복은 키 키우기보다 쉽다

 

[1] 1996<심리 과학(Psychological Science)>라는 매우 권위 있는 저널에 행복은 우연적 현상이다(Happiness is a stochastic phenomenon)”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데이비드 리켄(David Lykken)과 오크 텔리건(Auke Tellegen)이라는 두 명의 미네소타 대학 심리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이다.

[2] 리켄과 텔리건은 바로 직전 해인 1995년에 발표된 데이비드 마이어스(David Myers)와 에드 디너(Ed Diener)의 연구에 큰 감동을 받고 자신들이 보유한 데이터를 이용해서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고자 했다.

마이어스와 디너는 개인의 행복과 개인의 인구통계학적 특성들 사이에는 큰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리켄과 텔리건은 이 결론을 한 번 더 증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구통계학적 변수들이 행복을 설명하는 힘이 약한 이유가 유전의 힘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다.

리켄과 텔리건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들의 행복을 9년 간격으로 조사한 자료를 분석할 수 있었다. 우선적으로 분석한 것은 각자의 행복 점수가 9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였다. 각자의 9년 전과 9년 후 행복 점수 간의 상관계수를 구한 결과, .55로 나타났다.

매우 놀랍게도, 9년 전에 측정한 자기 쌍둥이 형제의 행복 점수와 9년 후의 자기 행복 점수의 상관이 .54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복 간의 상관이 높다는 점은, 개인 간 행복의 차이가 유전적 특성에 의해 대부분 결정됨을 시사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결과를 해석하면서 논문의 끝 부분에서 매우 유명한(악명 높은?) 발언을 하게 된다.

It may be that trying to be happier is as futile as trying to be taller.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키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부질없다.)

 

이 문장 하나로 그들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다. 예상치 못한 관심에 리켄은 학자로서 큰 부담을 갖게 된다. 단순한 유명세에 대한 부담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마지막 주장이 과장을 넘어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데서 오는 부담이었다.

 

그 무렵에 세계적인 출판 에이전트인 존 브록먼(john Brockman)이 행복과 유전의 관계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펴는 책을 써볼 것은 리켄에게 권한다.

[3] 그래서 출간된 책이 리켄의 <행복: 즐거움과 만족감의 선천성과 후천성(Happiness: The nature and nurture of Joy and Contentment)> (1999)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리켄은 자신의 발언이 일종의 오버이자 오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리켄의 책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마지막 문장만을 기억하면서 행복에 대한 과도한 유전자 결정론을 신봉하고 있다.

    

 

3. 변화 가능성과 유전율에 대한 오해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과 특성에는 유전이 관여한다. 그러나 관여한다는 말이 결정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언론 매체가 자극적인 제목으로 유전자 결정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특정 질병과 특정 특성이 특성 유전자에 의해 단독으로 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어떤 유전자가 구체적인 질병이나 행동으로 발현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환경적 요인이 관여한다.

[4] 따라서 유전자와 유전자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 유전자와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감안하면, 유전과 환경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은 도널드 햅(Donald Hebb)의 주장처럼 마치 가로와 세로 중에 무엇이 사각형 넓이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 큰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유전이 운명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과 환경이, 그리고 유전자들이 서로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유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큰 이유는 유전율(heritability)과 변화 가능성(modifiability)이라는 두 가지개념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유전율이란 어떤 특성에서 나타나는 개인들 간의 차이가 그들의 유전적인 차이에 의해서 설명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는 철저하게 집단 내 개인차에 관한 개념이다. 한 개인의 절대 점수에 관한 개념이 결코 아니다.

이와 달리 변화가능성은 한 개인의 특성이 변화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집단 내 개인차와 유전의 관계를 다루는 유전율과 한 개인의 변화를 의미하는 변화가능성은 애초부터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행복의 유전율이 높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행복이 행복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행복보다 높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의 행복 수준 자체는 현재보다 높아질 수 있다. 변화 가능성은 유전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4. 행복한 나라에 가면 행복해진다

 

일란성 쌍둥이 입양아 연구는 유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지만, 환경의 힘을 확인하기에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밖의 대상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민자들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난 그들은 과연 더 행복해졌을까? 만일 유전이 행복을 결정하는 운명 같은 요인이라면 아무리 더 나은 국가에 정착했더라도 그들의 행복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 경제적 여건, 사회문화적 환경 등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민자들의 행복은 자기 조국의 행복 수준을 넘어 새롭게 정착한 국가의 행복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유엔 행복보고서(UN World Happiness Report) 2018년판은 바로 이 문제에 주목하고, 최소 100명 이상의 이민자가 포함된 나라들만 뽑아서 이민자의 행복 점수를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먼저 자국인들 자료에 근거하여 각 나라의 행복 점수를 계산했다. 이때 측정한 행복은 삶의 만족감(, ())이었다. 그런 후에 이민자들의 응답에 기초하여 각 나라의 행복 점수를 다시 계산했다. 이민자들의 출생 국가가 아닌 이민 와서 살고 있는 국가의 행복 점수를 다시 계산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117개 국가의 두 가지 행복 점수를 계산한 후에, 이 두 점수 사이의 상관 계수를 구했더니 무려 .96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국인들을 대상으로 행복 점수를 계산해서 국가별 순위를 정하나, 이민 온 사람들의 행복 점수를 계산하여 국가별 순위를 정하나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행복한 나라에는 행복한 국가의 국민들이, 불행한 나라에는 불행한 국가의 국민들이 이민 오기 때문에 이 결과는 새로 정착한 국가의 특징이 아니라 이민자들의 조국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흥미 있는 대안 가설이다. 캐나다에 이민 온 총 100개국 출신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한 결과, 그들의 행복 수준은 출신 국가의 행복 수준이 아니라 캐나다 자국민들의 행복 수준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분석을 주도한 연구자들은 행복은 거주하고 있는 사회의 질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실제로도 변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행복이 유전에 의한 운명이라면 결코 기대될 수 없는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에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다.

    

 

5. 행복은 운명이라는 믿음의 역풍

 

행복과 유전의 관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은 서로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 다를까? 또한 개인들이 가진 생각의 차이는 개인의 실제 행복 수준과 행복해지려는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 연구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련의 연구를 진행했다.

[5] 특히 유전자 결정론을 신봉하는 사람일수록 행복해지려는 의지가 약할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해보고자 했다.

유전자 결정론을 믿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열 두 문장을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동의하는 정도를 물었다. 동의하는 정도가 강할수록 유전자 결정론을 신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두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행복은 대체로 유전자에 의해 미리 결정된다.

한 개인의 행복 수준은 평생 동안 잘 바뀌지 않는다.

 

예상대로 사람들 간의 개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누군가는 유전자 결정론을 강하게 신봉했고, 누구는 환경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우리 연구의 중요 목적은 유전자 결정론을 강하게 믿을수록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데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행복을 위한 노력의지를 측정하기 위해, 심리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행복에 도움이 되는 열한가지 활동을 제시하고 얼마나 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행복을 위한 11가지 활동>

1) 명상하기

2) 운동하기

3) 친절 베풀기

4)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 추구하기

5) 감사 표현하기

6) 낙관적 마음 갖기

7)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8) 행복한 사람들처럼 행동하기

9)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기

10) 스트레스를 이기는 효과적 전략들을 사용하기

11) 타인과 비교하지 않기

 

분석 결과 우리의 가설을 확증해주었다. 유전자 결정론을 믿는 정도와 행복 증진 활동에 참여할 의사 사이에 부적 상관관계가 발견된 것이다. 이 패턴은 미국인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되었다.

반론도 존재한다. 유전자 결정론을 믿는 사람들은 애초에 행복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 활동 참여 의사가 낮은 것이지, 행복이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행복 활동 참여 의사가 낮은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다.

우리는 이런 반론에 대비하여 참가자들의 행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미리 측정해두었다. 분석 결과, 유전자 결정론자든 환경론자든 행복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에서는 별 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유전자 결정론의 오류와 위험성이 행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6] 심리학자 스티븐 하이네(Steven Heine)는 운명이 아니다: 당신과 당신 유전자에 관한 완벽한 오해(DNA Is Not Destiny: The Remarkable, Completely Misunderstood Relationship Between You and Your Genes)> 라는 책을 통해, 인간이 어떤 특성(지능 같은)이나 사회적 범주(흑인 같은)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본적으로 본질주의적(essentialistic)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그 특성이 보이게끔 하는 어떤 본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본질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자를 여자이게끔, 머리 좋은 사람을 머리 좋게끔 만드는 보이지 않는 어떤 본질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1990년대 시작된 인간게놈 프로젝트 이후로 사람들은 유전자가 그 본질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행복이 행복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도 그 일례일 뿐이다.

스티븐 하이네의 는 운명이 아니다>에 잘 정리되어 있듯이, 유전자 결정론은 사람들 간 불평등의 기원을 유전적 특성에 두기 때문에 불평등 자체를 불가피한 것으로 규정한다.

강한 유전자 결정론은 사실 관계에서 이미 틀렸을 뿐만 아니라 좋은 삶과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7] 유전자가 운명이라고 보는 강한 유전자 결정론보다는 유전자가 인간의 특성에 기여한다고 보는 약한 유전자 결정론이 훨씬 타당하다.

유전자의 힘은 궤도가 정해진 기찻길이 아니다. 다른 유전자들 및 환경 요인들과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바뀔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6. 행복은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가


[8] 1971년 심리학자 필립 브릭먼(Philip Brickman)과 도널드 캠벨(Donald T. Cambell)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용어를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쾌락의 쳇바퀴란 어떤 경험으로 유발된 정서적 상태가 시간이 지나면 결국제자리로 돌아오는 적응(adaptation) 현상을 지칭한다.

이런 생각이 존재한 이유는, 그만큼 적응 현상이 인간의 생존과 건강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리활동은 일시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감정도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래의 감정 상태로 돌아온다. 이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그 자체로 놀랄 일도 아니고 실망스러운 일도 아니다.

유전이 행복을 결정한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리고 국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개인의 행복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결코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행복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우선,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행복감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데 아주 길다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주장은 틀린 말은 아니라도 효용성 면에서는 의미가 없다.

[9] 이 주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분석이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의 리처드 루카스(Richard Lucas) 교수 연구팀에 의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실험 결과, 삶의 중요한 사건들 중에서도 사별, 장기 실업, 중증 장애를 경험한 사람들의 행복감은 심각하게 낮아진다. 이들의 행복감이 제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약 9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 후로도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런데 최소 9년이라는 시간은 행복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주장을 궁색하게 만들 정도로 매우 긴 시간 아닌가?

두 번째로 생각해볼 사항 역시 시간과 관련 있다. 파도에 지워질 것임이 분명함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백사장에 표시하는 연인들을 무모하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결국 사라질지언정 그 순간이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측면이든 고통의 측면에서든 결국 원래의 감정 상태로 돌아갈 것이기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이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무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7.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오해

 

도대체 우리는 왜 행복과 불행 수준이 영원하지 않고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그렇게 집착하게 되었을까?

[10] 한 연구의 결과가 왜곡되어 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복권 당첨과 같은 큰 행운을 경험한 사람들과 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의 행복감을 일반인의 행복감과 비교했다. 다음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복권 당첨자와 일반인의 행복 점수는 별 차이가 없다. 이 결과는 복권 당첨이 우리를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우리의 통념과 일치한다. 다음으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점수는 일반인 점수에 비하여 유의하게 낮았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일반인과 같은 수준으로 행복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연구 결과가 사고를 당한 사람들도 일반인처럼 행복하다는 내용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을까?

 

<복권 당첨자와 사고 희생자, 일반인들의 행복감 비교

조건

행복 점수

과거

현재

미래

복권 당첨자

3.77

4.00

4.20

일반인

3.32

3.82

4.14

사고를 당한 사람

4.41

2.96

4.32

* 출처: Brickman & Coates & Janoff-Bulman(1978)

 

연구자들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행복감 평균치 2.965점 척도의 중간값인 2.50보다 낮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다시 말해,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현재 행복 점수가 예상보다는 낮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나머지, 그 점수가 일반인의 행복 점수 보다는 낮다는 점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예상보다 불행하지 않다는 결과가 사고를 당해도 불행하지 않다로 둔갑되었고, 이후 이 논문은 불행한 사건 후에도 사람들의 행복감은 결국 제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증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종합하면, 유전이 인간의 행복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의 거의 모든 특성에 유전이 관여한다는 행동유전학(behavioral genetics)의 제 1법칙에서 보면 이는 그리 놀랄 만한 점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유전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맞지만 유전이 결코 행복을 운명 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Chapter02를 나가며

유전자의 힘은 궤도가 정해진 기찻길이 아니다.

유전은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과 특징에 관여하지만, 유전자의 발현 과정에는 수많은 환경적 요인 또한 관여한다.

유전율이란 집단 내 개인차에 관한 개념일 뿐, 한 개인의 변화를 의미하는 변화 가능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 키 작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키 큰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보다 키가 더 크기 어렵겠지만, 그 아이는 키 작은 부모의 키보다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는 남들보다 행복해지기 위한 시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원할 뿐이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행복을 향한 노력, 제자리로 돌아온다해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긍정할 줄 아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굿라이프_1장_Chapter 1

Part 01_행복한 삶

 

우리가 추구하는 많은 좋은 것 중에 행복처럼 갈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드물다.

행복에 대한 경계는 진화론적 관점을 만나면서 절정에 이른다.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진화심리학은 주장한다.

삶에 대한 만족 자체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고 삶의 고요를 경험하는 상태가 행복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들이 마치 서로 다른 것인 양 생각하고 행복을 경계한다.

행동에 대한 이런 경계와 의심은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정의를 허용하지 않는 다중적이고 애매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의심과 경계는 행복 자체가 의심스럽고 위험한 실체라서가 아니라, 행복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기초하여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프레임부터 점검해야 한다.

1장에서는 행복에 대한 많은 오해와 의심의 근원이 어쩌면 幸福(행복)이라는 한자에서 기인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 것이다. 그리고 오해들과 함께 오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들을 소개할 것이다.

2장에서는 행복과 유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어떤 특성도 유전의 힘을 비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유전의 힘이 작동한다는 것과 유전이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2장에서는 행복에 대한 유전자 결정론의 한계들을 짚어볼 것이다.

3장에서는 행복 실천법을 소개하고 있다.

 

Chapter 01_행복의 의미

  

1. 幸福(행복)이라는 이름이 문제다

 

우리는 幸福(행복)이라는 이름이 과연 적절한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전에 제시된 행복의 첫 번째 정의는 우연히 찾아오는 복이다. 이 정의는 우연()과 복()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행복의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1] 30개 국가의 사전을 분석하여 각 나라에서 행복이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를 고찰한 한 연구에 따르면, 30개 국가 중 총 24개 국가의 사전에서 행복은 운 좋게 찾아오는 사건이나 조건이라고 일차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대부분의 언어권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복이라고 정의한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연재해, 질병, 권력자의 횡포를 미리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었던 인간에게 행복이란 고통과 질병이 다반사인 세상에서 우연히 예외적으로 찾아오는 자연의 축복과 건강, 그리고 권력자의 자애일 수밖에 없었다.

[2] 행복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학자 대린 맥마흔(Darrin M. McMahon)의 분석에 따르면,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는 행복을 우연히 찾아오는 복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로 바라보는 관점의 변환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행복에 관한 초기 생각이 남아있기 때문에, 幸福(행복)이라는 한자처럼 행복 경험의 본질 자체보다는 그것을 가져오는 사건들의 우연성과 예외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르쳐주지 않는 행복 경험의 실체는 무엇인가?

두 번째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행복이란 자기 삶에 대한 만족과 보람, 그리고 흐뭇한 상태다. 이 정의는 심리학자들이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라고 부르는 행복에 대한 정의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나 幸福(행복)이라는 단어는 유쾌함과 만족이라는 뜻을 전혀 담지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름을 바꿔보면 어떨까? 일본식 한자인 행복이 생기기 전 동양 문화권 사람들이 행복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들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아래는 고전 연구자인 박재희 박사가 2012년에 쓴 한 칼럼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3] 남의 시선과 기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삶의 자세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만족스럽다. 그 만족의 상태를 自謙(자겸)이라고 한다. 겸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운 상태를 바로 快足(쾌족)이라고 한다.

송나라 시대 유학자 주희가 엮은 <大學章句(대학장구)>에 나오는 문장을 해석한 글인데, 여기 등장하는 쾌족이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기분이 상쾌하고 자기 삶에 만족하는 심리 상태를 지칭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행복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행복 대신 쾌족이라는 한자를 쓰자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라는 심리적 경험의 본질에 대해서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는 이유가 행복이라는 한자의 한계라면,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 쾌족이라는 단어를 함께 떠올려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첫걸음은 행복의 조건과 행복 자체를 구분하는 것이다. 행복의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행복 경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쾌족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2. 행복에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쾌족으로 이해하게 되면, 행복한 감정(())이란 외따로 존재하는 개별적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다양한 감정 모두를 지칭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감사해서도 기분이 좋고 영감을 받아서도 기분이 좋으며 고요하고 평화로워서도 기분이 좋다. 기분 좋은 감정의 색깔은 기본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행복을 실제로 측정하는 방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4] 심리학에서 행복한 감정을 측정할 때에는 PANAS(positive and negative affect schedule)라는 도구를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다.

PANAS는 일정 기간 동안 개인이 경험한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의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이다.

아래는 PANAS를 구성하는 감정 목록이다.

감정 목록>

긍정 감정

부정 감정

관심 있는

괴로운

신나는

화난

강인한

죄책감 드는

열정적인

겁에 질린

자랑스러운

적대적인

정신이 맑게 깨어 있는

짜증 난

영감 받은

부끄러운

단호한

두려운

집중하는

조바심 나는

활기찬

불안한

  

 

     행복한 감정 상태를 측정하는 감정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행복하다는 감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불행하다역시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행복한 감정 상태가 행복이라는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상태가 아님을 의미한다.

많은 연구가 우리가 충분히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로 단 하나의 옳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직된 사고를 꼽는다. 예를 들어 가능한 행동의 선택지를 극소수로 제한해놓은 문화, 다시 말해 엄격한 행동 규범이 존재하는 문화의 구성원들이 느슨한 문화의 구성원들보다 낮은 행복감을 경험한다. 개인적 자유가 억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 행복이라는 어떤 특수하고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경직된 사고가 우리의 행복을 억압했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쾌족으로 행복을 이해할 때 얻게 되는 또 하나의 값진 깨달음은 행복이 철저하게 일상적이라는 깨달음이다. 행복이 좋은 기분과 만족, 그 정도라면 그걸 가능케 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알게 된다. 행복은 철저하게 일상적이다.

 

 

3. 행복은 가벼운 것이라는 오해

 

행복이라는 한자는 행복이라는 단일 감정의 존재를 가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감정은 피상적이고 얕은 감정일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5] 철학자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행복? 그딴 건 영국 놈들이나 추구하는 것이야(Man does not strive for happiness; only the Englishman does that)”라고 행복과 영국 사람을 폄하했을 때, 그가 생각했던 행복은 그런 오해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PANAS에 포함된 몇 가지 긍정 감정을 살펴보면, 우리의 오해가 얼마나 근거가 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관심있는(interested)

PANAS는 우리의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은 나는 무언가에 관심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이 질문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이며 명확하다. 관심 있는 마음 상태는 결코 피상적이거나 얕은 감정 상태가 아니다. 관심은 사랑과 예술과 과학, 그리고 모든 문화적 활동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영감 받은(inspired)

행복한 상태에 대한 우리의 상상에 잘 등장하지 않는 또 하나의 긍정 정서는 영감이다. 영감이란 보통의 인간에게서는 쉽게 기대되지 않는 성취나 행동을 목격했을 때 우러나는 고취의 감정이다. 영감의 사전적 정의는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이다. 이런 영감의 상태가 행복의 또 다른 요소이다.

 

감사(gratitude)

경외감(awe)

영감과 사촌 관계에 있는 정서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감사이고 다른 하나는 경외감이다. 영감, 감사, 경외감 이 세 가지는 자기만의 경계를 벗어나게 하는 초월적 감정들이다. 영감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탁월함을 경험하고, 감사를 통해 자기와 연결된 타인들과 자연 그리고 신을 인식하게 되며, 경외감을 통해 자기보다 더 거대한 존재들을 느끼게 된다.

이 감정들은 우리 안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영원한 것에 눈을 뜨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 감정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행복에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으면서 동시에 지극히 일상적이다.

 

4. 고통이 없어야 행복이라는 오해

 

스마일리는 행복을 기원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스마일리는 전 세계에 웃음과 행복 전도사 역할을 해온 한편, 원치 않는 방향으로 행복에 관한 오해를 키워왔다.

행복이 스마일리와 연합되면서, 행복은 항상 즐거운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들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행복이 과도한 감정노동과 자기기만을 요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로부터 자기가 소외되는 현상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6] <긍정의 배신(Bright-Sided)>라는 책에서 저자 바버라 애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무조건 행복할 것을 강요하는 행복 운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행복, 즉 쾌족의 상태는 고통의 완전한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 경험보다 긍정적인 감정 경험이 더 많을 때를 행복한 상태라고 이야기할 뿐이지, 부정적인 감정 경험이 전혀 없어야만 행복하다고 결코 정의하지 않는다.

최근에 일부 학자들이 긍정 경험과 부정 경험의 이상적인 비율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 어떤 학자고 그 비율이 100:0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7] 2005년에 바버라 프레드릭슨(Barbara Fredrickson)과 마르샬 로사다(Marcial Losada)가 긍정과 부정의 이상적 비율이 대략 3:1(정확히는 2.9013:1)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이후에 이들의 계산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중요한 점은, 그 어떤 비율도 부정 정서 경험이 제로인 상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고통에도 듯이 있다는 말처럼,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행복이 고통의 완벽한 부재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은 완벽하게 틀린 생각이다.

 

이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조금 돌아가보려고 한다.

[8] 두 명의 천재적인 심리학자의 삶을 파헤친 <언두잉 프로젝트(Undoing Project)>를 읽는 것은 저자에게 뜻밖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두 명의 위대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에이머스 트버스키(Amos Tversky)의 평생에 걸친 공동 작업과 그들의 우정을 소개하고 있다.

조국 이스라엘을 떠나 미국에서 유학한 이들이 젊은 시절부터 의기투합하여 오늘날 행동경제학이라고 부르는 분야를 만들어낸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특히 부러운 점은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시기와 질투, 그리고 갈등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비단 저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가 파헤친 그들의 관계를 사뭇 달랐다. 두 사람의 관계를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에 대한 섭섭함, 시기, 질투, 오해로 얼룩져갔다. UC버클리에 재직하던 카너먼이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긴 이유도 버클리에서 매우 가까운 스탠퍼드 대학에 재직하던 트버스키를 벗어나고자 함이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로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절망은 저자가 이들에게 가졌던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이었다. 어떤 오류도 없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 생각이 우리를 괴롭히듯이, 이상적인 관계에는 어떤 갈등도 없어야 한다는 비현실적 기대 역시 우리를 힘들게 한다. 가끔 다툴 수도 있고 갈등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다툼과 갈등이 실제로 발생해도 충격을 더 받는 법이다.

 

이 원리는 행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행복을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없는 늘 즐거운 상태여야 한다고 기대하면 조그만 고통에도 크게 좌절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그런 기대를 갖지 않은 사람보다 역설적으로 더 낮은 행복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연구팀은 이 가능성을 검증해보고자 했다.

[9] 심리학자 이선 맥머핸(Ethan McMahan)에 따르면 사람들은 행복의 본질을 다음 네 가지 차원에서 파악한다.

1)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

2)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 것

3) 타인의 웰빙에 기여하는 것

4) 자신이 성장하는 것

 

맥머핸은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위의 네 가지 차원에서 제각각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연구팀은 2번에 주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행복이란 고통도, 부정적인 감정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이 얼마나 동의하는지에 주목했다. 더 나아가 행복에 대해 이런 이상적인 혹은 비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행복감이 낮은지, 그리고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10] 결과는 우리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우선, 고통이나 부정적인 감정이 없어야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행복감이 낮았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경향성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고통의 완벽한 부재가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들이 즐거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더라도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예상된다면, 그런 일을 애초부터 피하려고 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제한해버리는 꼴이었다.

 

행복에 관한 연구 분야에 대한 가장 빈번한 비판은, 이 분야가 인간의 고통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긍정할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 누구도 행복은 고통의 완벽한 부재 상태이며, 고통은 무조건 부정하고 기피해야할 대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고통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균형 잡힌 이해를 갖게 되면, 행복이 스마일리처럼 마냥 즐거운 상태라는 오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5. 행복의 우연성을 허하라

 

행복이라는 단어가 행복의 조건만 가리킬 뿐 본질에 대해서 눈을 감지만, 이 단어가 마냥 해로운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가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우리는 행복의 우연성을 점점 간과하게 되었다. 행복이 설계되고 기획되고 추구되어야할 대상이 되면서, 우연한 행복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행복은 본질 자체가 자유로움이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느슨해야 한다. 행복을 종용하는 것은 행복의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행복, 우연한 행복, 심각하지 않은 행복이 설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11] 그런 면에서 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은 우연히 발견한 행복을 실감케 한다.

: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 고맙다

: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우연히 발견한 소소한 행복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만큼 적절한 것이 있을까.

 

행복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쾌족이라는 한자가 더 낫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행복의 우연성에 대한 가르침 때문이다. 정복, 추구, 설계의 대상이 되어버린 행복이 우리에게 주는 중압감을 이겨내기에 ()’이라는 글자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 Chapter 01을 나가며

행복은 선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다.

이런 경계와 의심은 행복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幸福(행복)이라는 한자와 관련이 있다. 행복이라는 한자는 행복의 본질이 아닌 조건을 지칭하고 있다.

행복은 가벼우면서도 깊이가 있다. 행복은 고통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려는 자세다. 행복은 단 하나의 감정이 아니다. 삶의 고요함을 만끽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가슴이 설렌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이미 행복한 것이다